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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185화 (185/412)

타자 인생 3회차! 185화

24. 역대급 신인(6)

봄에 열린 대통령배에서 경복 고등학교는 신성 고등학교를 상대로 13 대 3 대승을 거두었다.

당시 신성 고등학교의 선발은 좌완 김동화.

평균만 해줘도 다행이라고 여기고 내보냈지만 3이닝 동안 무려 8실점을 하고 무너졌고.

그 덕분에 경복 고등학교는 투수들을 아끼며 편하게 결승전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때 박유성이 안타를 3개 쳤지?”

“네. 4타수 3안타에 3득점이었습니다. 홈런 빠진 사이클링 히트였고요.”

“그딴 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넘어가고. 어쨌거나 이번에도 박유성이한테만 점수를 주면 되는 거야. 그럼 끝나는 거라고.”

“감독님. 신성 고등학교는 지난 5경기에서 50점을 뽑아냈습니다. 박유성은 타율이 9할이 넘고요.”

“다른 학교들하고 우리 경복하고 같아? 적어도 타선은 우리하고 경성이 고교 투톱이잖아. 안 그래?”

김경모 수석 코치가 경계심을 풀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지만 최명욱 감독은 듣지 않았다.

“괜찮다니까 그러네. 김 코치야말로 자신감을 가져! 수석 코치란 사람이 말이야 박유성 원툴인 학교에 겁먹으면 어쩌라는 거야?”

다음 날.

선두타자로 나선 박유성이 임성진을 상대로 선제 홈런을 때려내자 최명욱 감독은 박수를 쳤다.

“괜찮아. 괜찮아. 줄 점수 준 거야.”

박유성은 타석에 서 있을 때보다 주자로 나갔을 때 더 짜증 나는 선수였다.

타석에서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인 반면 베이스를 밟으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오진욱이는 별거 아니고 장태수만 조심하면 되겠네.”

“감독님. 이번 대회 오진욱 타율이 거의 4할입니다.”

“그거 다 박유성이 효과잖아? 박유성이가 없는데 뭐가 걱정이야?”

박유성이 루상에서 투수를 괴롭히면 후속 타자들의 안타 확률이 올라간다는 걸 모르는 지도자는 없었다.

최명욱 감독은 오진욱의 안타 중 절반은 박유성 덕분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하지만 지난 한 달간 가장 크게 성장한 타자가 다름 아닌 오진욱이었다.

‘넓다. 넓어. 1, 2루간도 넓고 3유간도 넓네.’

박유성 게임을 하며 오진욱은 많은 걸 깨달았다.

정타가 아니어도 안타가 될 수 있다는 것.

1루까지 전력 질주하면 야수들의 실책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

빈 공간을 의식하고 치면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것.

1루 베이스 쪽에 붙어 선 1루수를 확인한 뒤 오진욱은 1, 2루간으로 타구를 보내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러고는.

따악!

바깥쪽 빠른 공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결대로 밀어 쳐 1루수 옆을 꿰뚫었다.

“괜찮아. 괜찮아. 단타잖아.”

최명욱 감독은 이번에도 박수를 치며 임성진을 독려했다.

경기 시작부터 박유성이라는 자연재해에 한 방 먹었으니 잠깐 집중력이 떨어진 거라 여겼다.

하지만 3번 타자 장태수가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로 오진욱을 불러들이더니 선풍기로 유명한 김병욱마저 적시타를 때려내자 최명욱 감독의 표정이 달라졌다.

“뭐야? 왜 계속 안타가 나오는 건데?”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신성고 전력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박유성 혼자 야구하는 팀이 아닙니다.”

“젠장. 빨리 윤성이 준비시켜! 빨리!”

최명욱 감독이 뒤늦게 에이스 배윤성을 불펜에 보냈지만 터지는 신성 고등학교의 안타를 막지 못했다.

-이 타구가 다시 한번 1, 2루 사이를 빠져나갑니다.

-홈에서 승부가 될 것 같은데요?

-김경준 3루를 돌아 홈으로! 공 홈으로 연결됩니다. 홈에서 세이프! 신성 고등학교가 1회에만 벌써 5점을 올립니다.

-이제 박유성 선수 타석인데요. 2사 주자 1, 2루인 상황이지만 여기서 박유성 선수와 정면 대결을 하는 건 여러모로 위험해 보입니다.

-아, 최명욱 감독. 마운드로 올라옵니다.

-지금 불펜에서 배윤성 선수가 몸을 풀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투수를 바꿀 것 같습니다.

김경모 수석 코치는 박유성을 고의4구로 거르고 2번 타자 오진욱과 상대하는 게 낫다고 조언했지만 최명욱 감독은 이번에도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의 실추된 자존심을 만회하려는 듯 아직 다 몸을 풀지 않은 배윤성을 마운드로 끌어 올렸다.

“윤성아. 자신 있지?”

“네. 자신 있습니다.”

“오늘 여기서 박유성 잡으면 네가 영웅이 되는 거야.”

“네. 꼭 잡아보겠습니다.”

“그래. 너만 믿는다.”

최명욱 감독 앞에서는 담담한 척 굴었지만.

배윤성은 박유성과 정면 승부를 할 생각이 없었다.

“최대한 어렵게 가자. 그럼 저 녀석도 내 의도를 알겠지.”

라이온즈에서 경복 고등학교 배윤성을 우선 지명했을 때 라이온즈 팬들조차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많았다.

라이온즈 팜에 마땅한 선수가 없는 건 사실이지만 배윤성은 U-18 야구 월드컵에도 뽑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라이온즈 구단은 배윤성은 야구 지능이 높은 선수라며 우선 지명의 이유를 밝혔다.

“요즘 고교 야구 투수들은 대부분 타자들을 힘으로 찍어 누르려 합니다. 그게 고교 리그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프로에서는 어림없습니다. 오히려 배윤성처럼 타자들과 수 싸움을 할 줄 아는 투수들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유성을 상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배윤성은 이 타석을 통해 자신을 우선 지명한 라이온즈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박유성은 어지간한 야구 지능으로는 따라갈 수가 없는 40년의 경험치를 가지고 있었다.

‘보나 마나 유인구로 살살 꼬시겠지. 초구에 뭘 던질래? 어설프게 던졌다가 얻어맞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몸쪽 낮은 코스의 체인지업. 그거밖에 없겠네.’

그 예상대로 한참 동안 도리질을 해대던 배윤성은 몸 쪽 체인지업 사인에 고개를 끄덕였고.

박유성이 절대 치지 않도록 릴리즈 포인트를 낮게 끌고 나왔다.

어지간한 타자라면 몸쪽 낮게 출발한 공에 방망이를 내밀지 않았겠지만.

박유성 게임을 통해 1, 2학년 투수들의 말도 안 되는 공을 상대해 온 박유성은 망설이지 않고 방망이를 퍼 올렸다.

-아아, 큽니다! 이 타구가 쭉쭉 뻗어 나갑니다!

-설마 또 넘어가나요?

-우익수 뒤로! 우익수 뒤로! 이 타구가 담장 밖으로 넘어갑니다! 홈런! 쓰리런! 박유성 선수가 1회에만 두 개의 홈런을 때려냅니다!

벙 찐 배윤성을 뒤로하고 박유성은 빠르게 그라운드를 내달려 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자신을 기다리는 타자들과 격렬하게 하이 파이브를 나눈 뒤에 선발 투수 김동화를 보며 말했다.

“동화야! 부족해?”

“아니! 이 정도면 충분해.”

“말만 해. 점수는 우리가 뽑아줄 테니까.”

“그래! 김동화! 오늘은 한 10점 내줘도 괜찮아.”

“10점 받고 10점 추가요~”

“미친놈들아. 차라리 지라고 악담을 해라.”

1회부터 8점을 뽑아준 타선을 등에 업은 김동화는 대통령배 때의 김동화가 아니었다.

-헛스윙 삼진 아웃! 김동화 선수가 오늘 경기 5개째 탈삼진을 솎아냅니다.

-오늘 저 슬라이더가 상당히 잘 들어가는데요? 좌타자는 물론이고 오른손 타자들도 꼼짝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16강전에서도 김동화 선수가 6이닝 2실점 호투를 펼쳤는데요. 오늘 경복 고등학교 타선을 상대로 5회까지 단 한 점도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박유성을 앞세운 파상 공격과 김동화의 각성투 속에 신성 고등학교는 경복 고등학교를 16 대 1로 대파하고 대통령배의 패배를 설욕했다.

콜드 게임이 있었다면 6회에 경기가 끝났겠지만 애석하게도 8강전부터는 콜드 게임이 적용되지 않았다.

신성 고등학교의 결승전 상대는 호남의 야구 명문 광일 고등학교.

대통령배 8강에서는 신성 고등학교가 광일 고등학교를 잡아냈지만 황금사자기에서는 광일 고등학교가 신성 고등학교를 이기고 올라가 우승을 차지했다.

“야, 이건 모르겠다.”

“모르긴 뭘 몰라? 광일고 선발 김신우 아니야?”

“김신우면 뭐? 신성은 박유성이 나오는데?”

“신성고 선발은 누구야?”

“손지원.”

“손지원 요즘 폼이 바짝 올랐던데? 구속도 빨라졌지?”

“구속도 구속이지만 포심 패스트 볼에 자신감이 붙었더라. 제구 신경 안 쓰고 힘으로 윽박지르던데?”

“원래 손지원 구위는 괜찮은 편이었어. 제구가 들쑥날쑥이라 문제였지.”

“결국 김신우를 상대하는 신성고 타선이냐, 손지원을 상대하는 광일고 타선이냐인데 이러면 신성고 쪽이 조금 더 유리하지 않나?”

“신성고 보고 박유성 원툴이라고 하지만 광일고도 김신우 빼고 나면 별거 없긴 마찬가지야.”

“이번에 어디가 초공이야?”

“신성.”

“그럼 난 신성에 한 표.”

“나도. 왠지 박유성이 안타 치고 나가서 김신우 멘탈 박살 낼 거 같아.”

청소년 대표팀 투타 에이스 간의 맞대결을 두고 고교야구 팬들은 물론이고 프로 야구 팬들까지 관심을 보였다.

└박유성하고 김신우면 누가 위임?

└???

└야알못이세요?

└고교 야구는 잘 모름.

└고교 야구는 안 봐도 올림픽은 보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아직도 박유성을 평범한 고교 선수들하고 비교하면서 내려치는 사람들 있는데 박유성은 그냥 축구로 치면 메르시고 배구로 치면 강연경임.

└배구는 강연경인데 왜 축구는 메르시임? 송흔민이라고 해줘!

└강연경은 여자 배구판 고트잖아.

└그럼 박유성은 야구판 고트임?

└최소 국내 프로야구 판은 씹어먹지 않을까?

└올림픽에서 하던 거 반만 해도 프로 야구 고트 확정임.

└박유성 결승전 4타수 4안타에 사이클링 히트 예상함. 단 팀은 5 대 4로 패배.

└ㅅㅂ 밸런스 게임이야 뭐야? ㅋㅋㅋ

└광일 고등학교도 타선이 강한 팀은 아니라서 박유성 초반에 못 막으면 신성이 이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유성 이번에 이기면 전국대회 첫 우승이라 김신우가 못 막을 거임.

타이거즈 우선 지명으로 뽑힌 김신우도 4일을 푹 쉬고 등판한 터라 팽팽한 경기가 진행될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따악!

경기 시작과 동시에 터져 나온 박유성의 2루타가 승부에 방점을 찍어버렸다.

-박유성 선수 뜁니다! 공은 3루로! 아아, 3루에서 공이 빠집니다.

-송산아 선수가 너무 서둘렀어요.

-박유성 천천히 홈을 밟습니다. 스코어 1 대 0. 신성 고등학교가 손쉽게 한 점을 추가합니다.

너무나 손쉽게 점수를 내주자 돌부처라 불리는 김신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 볼입니다. 오진욱 선수에 이어 장태수 선수까지 볼넷으로 출루합니다.

-김신우 선수. 지금 뭔가 밸런스가 맞지 않는 것 같은데요.

-아, 송경환 감독이 그라운드로 나옵니다.

마운드에 올라온 송경환 감독은 김신우로부터 공을 빼앗아 들었다.

“어지간하면 너한테 맡기려고 했는데 네 숨소리 들어보니까 안 되겠다.”

“더 던질 수 있습니다.”

“신우야. 너 혼자 다 할 필요 없어. 네가 아니었으면 결승전까지 못 왔을 거다. 그러니까 동료들을 믿고 여기까지만 하자.”

결승에 오기까지 김신우의 피칭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16강전에서 덕우 고등학교 이관우를 상대로 7이닝 퍼펙트 피칭으로 승리를 따냈고.

사흘 만에 등판한 8강전에서는 우승 후보라 불리는 경성 고등학교 타자들을 9이닝 2실점으로 잠재우며 타이거즈 팬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고교 야구 선수 랭킹은 박유성이 저만치 앞서고 있는 상황이지만.

적어도 투수들만 놓고 봤을 때 김신우는 현 고교야구 최고의 투수였다.

그래서 송경환 감독은 김신우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었다.

“괜찮으니까 어깨 펴고 당당히 내려가.”

“죄송합니다. 감독님.”

고개를 떨어뜨리는 김신우의 어깨를 두드린 뒤 송경환 감독은 3루 쪽 더그아웃을 바라봤다.

상대 팀 감독으로서 박유성이 얄미워야 정상인데 올림픽에서 활약하던 모습을 보고 나니까 그냥 헛웃음만 났다.

“그래도 경복 꼴은 나지 말아야지.”

지더라도 허무하게 지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송경환 감독은 투수들을 총동원했고.

그렇게 경기는 4 대 3, 한 점 차로 끝이 났다.

“청룡기 우승팀은 신성 고등학교!”

경기 직후 진행된 시상식에서 박유성은 주장으로서 청룡기 우승기를 받았다.

그리고 뒤이어 치러진 봉황기에서도 전승 우승을 이끌며 유일한 흠이었던 전국 대회 우승 경력을 채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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