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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184화 (184/412)

타자 인생 3회차! 184화

24. 역대급 신인(5)

“태수야. 내 스윙 좀 봐봐.”

“보긴 뭘 봐?”

“장난하는 거 아니니까 유성이하고 뭐가 다른가 봐줘.”

김병욱은 틈만 나면 주변 선수들을 불러 자신의 퍼지는 스윙을 교정하려 했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자 결국 최윤석 타격 코치를 찾아갔다.

“코치님. 제 스윙은 왜 이 모양인가요?”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해?”

“코치님이 모르시면 어떻게 해요?”

“어휴. 이놈아. 그래서 내가 연초부터 스윙 좀 바꾸자고 얘기했잖아.”

“조금 더 잔소리하셨어야죠. 코치님이 잔소리를 반만 하시니까 제가 말을 안 들은 거잖아요.”

“이놈 봐라? 나중에 프로 못 가면 평생 나만 원망하겠다?”

“어떻게 아셨어요?”

“에라이, 이놈아. 암튼 지금 그렇게 벼락치기로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거 없어. 오히려 네 장점만 죽일 뿐이야.”

최윤석 타격 코치는 박유성을 기준으로 두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박유성보다 키는 작지만 몸무게가 10㎏ 이상 많이 나가는 김병욱은 전형적인 풀히터였다.

타격 기술이 떨어져서 선풍기라 놀림받고 있지만 방망이에 스치기만 해도 타구를 외야로 날려 버릴 만큼 힘이 좋았다.

그런 김병욱에게 필요한 건 바로 공을 끝까지 보는 것.

“넌 오늘 타격에서 빠지고 유성이만 봐라.”

“유성이만요?”

“유성이 루틴 따라 하진 말고. 유성이가 파워 포지션에서 공을 칠 때까지의 모든 동작을 계속 봐. 그러다 보면 뭔가 깨닫는 게 있을 거야.”

최윤석 타격 코치는 김병욱뿐만 아니라 타격 전에 머리를 돌리는 습관이 있는 선수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

“이러니까 전부 다인데?”

“사실 고교 레벨 타격은 공을 끝까지 지켜보는가에서 갈리잖아요.”

최윤석 타격 코치 기준으로 그나마 공을 잘 보는 타자는 장태수와 오진욱, 그리고 김경준 정도.

하지만 정작 3학년들은 가장 앞줄에서 박유성을 보겠다며 후배들을 밀어냈다.

“야 인마. 너희가 양보해.”

“그래. 우린 남은 두 대회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어쩌다 보니 동물원 원숭이가 되어버린 박유성은 게임 룰을 바꿨다.

“그럼 이번에는 2학년하고 1학년 투수들을 올려주세요.”

“후배들 괴롭히게?”

“제가 끝까지 공을 지켜보는 걸 보여주고 싶으신 거잖아요. 그럼 공을 골라내는 것부터 시작해야죠. 겸사겸사 후배들 배짱도 키우고요.”

가장 먼저 마운드에 올라온 건 2학년 장기석.

내년 시즌 신성 고등학교의 1선발로 뛰어야 할 재목이었다.

주말 리그를 거치며 제법 공 끝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 정도로는 전국 대회에서 성적을 내기 어려웠다.

“기석아. 볼넷 주면 운동장 10바퀴다.”

“넵! 선배님!”

“나한테 얻어맞는 건 창피한 게 아니니까 씩씩하게 던져. 그렇다고 한복판으로 던지면 죽는다.”

“넵! 김산 선배님 리드대로 던지겠습니다!”

“대신에 나한테 삼진 뺏으면 네가 원하는 선수 글러브 받아다 주마. 어때?”

“정말이십니까?”

“그래. 그러니까 이 악물고 해봐.”

우완 투수인 장기석이 평소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다름 아닌 송찬우.

파이터즈라는 약팀에서 뛰지만 실력을 인정받아 국가대표 에이스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프로에 가면 송찬우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손지원이 송찬우의 친필 사인 글러브를 받았을 때.

장기석은 너무 부러워서 몰래 훔쳐가고 싶은 욕망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나중에 야구 열심히 해서 꼭 스타즈에 입단하리라 마음먹었는데 이렇게 송찬우의 사인 글러브를 받을 기회가 생길 줄은 미처 몰랐다.

‘무조건 잡을 거야.’

장기석은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 공을 던졌다.

그리고 박유성은 쳐봐야 좋을 게 없는 코스의 공을 골라내며 타자들에게 시범을 보여주었다.

“엉뚱한 데 보지 말고 유성이 시선을 봐. 턱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따라 해보라고.”

두 달 전의 박유성을 타석에 세워놓고 잔소리를 했다면 다들 건성으로 들었겠지만.

U-18 야구 월드컵과 2028 LA 올림픽에서 연거푸 MVP를 차지한 박유성이다 보니 선수들의 집중력이 달라졌다.

고작 두 달 사이에 박유성은 야구 좀 잘하는 동기를 넘어서 자신들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최고의 재능을 가진 선수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자, 이제 기석이는 좀 쉬고 명준이 올라와라.”

장기석을 흠씬 두들겨 팬 박유성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2학년 좌완 투수 윤명준이 씩 웃으며 마운드로 뛰어 올라왔다.

“선배님! 저는 임찬기 선배님 글러브로 부탁합니다!”

“삼진부터 잡고 그런 말 해라.”

“꼭 잡을 겁니다!”

장기석이 얻어맞는 모습을 보며 연구를 했던지 윤명준은 공을 빼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던졌다.

“명준아. 좋아. 버리는 공이라 해도 그렇게 던져야 해. 머릿속으로 이 공을 버린다고 생각하면 타자가 절대 안 속는다. 그럼 파울도 안 나와.”

박유성의 1칭찬을 들은 윤명준이 씩 웃었지만.

곧바로 몸쪽 꽉 차게 던진 공을 얻어맞고는 울상이 됐다.

“우리 명준이 공 좋네~”

장기석과 함께 내년 시즌 신성 고등학교 마운드를 책임져야 할 윤명준의 공을 담장 밖으로 날리며 박유성이 씩 웃었고.

“야, 너희 저런 건 배우지 마. 저건 유성이만 가능한 거야.”

혹시나 박유성을 따라 자존감만 높아질까 봐 최윤석 타격 코치가 냉큼 주의를 주었다.

2학년 투수들에 이어 1학년 투수들까지 상대한 뒤 박유성은 뒤로 빠졌다.

그리고 박유성을 대신해 3학년 타자들이 타석에 서서 3학년 투수들과 맞붙었다.

당연하게도 앞서 박유성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프리 배팅 같은 장면은 나오지 않았지만.

타자들은 박유성처럼 공을 끝까지 보려고 노력했고.

투수들도 그런 타자들을 속이기 위해 더 이를 악물고 공을 던졌다.

“유성아. 고생 많았다.”

“고생은요. 저도 재미있어서 하는 건데요.”

“그래도 올림픽에서 크리스 반스 상대하다가 애들 공 치는 거 힘들지?”

“오히려 그래서 더 마음이 편한데요?”

“뭐?”

“올림픽에서 상대한 투수들의 공은 솔직히 다 못 쫓아갔거든요. 절반, 아니, 70퍼센트 정도는 느낌으로 상대했어요. 그래서 마츠다 유이토한테 삼진도 먹었고요.”

“나도 그거 봤다. 너 그게 올해 당한 첫 삼진인 거 알지?”

“그래서 다음 타석 때 이 악물고 쳤잖아요.”

“너 타석에 서는 모습 보고 김 감독님이 그러시더라. 유성이 열받았다고.”

“암튼 그때는 빠른 공들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학교 와서 애들 공 치니까 오히려 생각이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정리?”

“쟤들 공을 완벽하게 때려내다 보면 결국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도 쉬워지지 않을까요?”

“……!”

최윤석 타격 코치는 고작 고등학교 3학년인 녀석이 이렇게 대견한 생각을 한다는 게 놀라웠다.

하지만 박유성은 인생 3회차였다.

프로에서만 40년을 구른 짬으로 올림픽에 나가 좋은 성적을 내긴 했지만 매 타석을 곱씹어 봤을 때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

그래서 빨리 실력을 끌어올려야겠다는 조바심이 생겼는데.

박유성 게임을 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메이저리그 가려면 앞으로 4년이 더 남았어. 그렇다면 기본부터 다시 시작하자.’

3회차를 시작하면서 박유성은 철저하게 40년 차 프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방망이를 휘둘렀다.

지난 40년간 했던 기본적인 훈련들을 다시 한다는 게 솔직히 귀찮았다.

하지만 이번에 LA 올림픽에서 세계 최정상급 투수들을 상대하고 나니까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걸 여실히 깨달았다.

“사실 졸업할 때까지 피칭 머신만 하루 종일 때릴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연습 핑계로 매일같이 라이브 배팅을 하면 저야 좋죠.”

“이야, 유성아. 넌 다 계획이 있구나?”

며칠 후.

봉황기 대진표가 나왔다.

주말 리그 후반기에도 4위를 차지한 신성 고등학교는 1라운드부터 경기를 치르게 됐다.

“일단 대진은 나쁘지 않습니다. 이대로만 올라간다면 4강전까지는 충분히 해볼 만합니다.”

“유성이도 돌아왔으니까 이번 대회 때는 결승 한번 가 보자고.”

선수단을 총괄하던 김석률 감독이 빠졌지만.

나승균 감독과 최윤석 타격 코치는 4강 이상을 바라봤다.

지난 몇 주간의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이래서 애들 가르치는 게 힘들어. 프로처럼 돈을 주는 게 아니잖아?”

“애들이 어려서 동기 부여를 하기가 쉽지 않죠.”

“내가 지난번에 말했잖아. 전국 대회 강호들이 괜히 강한 게 아니야. 그 학교들은 전국 대회에서 성적을 내는 게 당연한 거야. 그러니까 그만큼 열심히 훈련을 시킬 수 있는 거지.”

“그래도 유성이 덕분에 자발적으로 연습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서 다행입니다.”

“이 꼴을 보면 김 코치, 아니, 김 감독도 혀를 찰 거야. 김 감독 있었을 때도 저 정도는 아니었잖아?”

“김 감독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팀 분위기를 잡아야 한다는 거였죠. 유성이 국대 차출되고 나서 그것 때문에 매일 고생하셨고요.”

박유성이 U-18 야구 월드컵과 LA 올림픽에서 맹활약하면서 신성 고등학교 야구부의 자부심도 올라갈수록 훈련 분위기는 흐트러졌다.

박유성이라는 신성 고등학교 전력의 핵심이 빠진 것보다 훈련을 주도하며 선수들을 자극했던 리더가 빠진 타격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다.

“솔직히 이번 봉황기도 유성이 아니었으면 힘들었지.”

“유성이 덕분에 경성을 잡아서 겨우 막차를 탄 거죠.”

“아무튼 기왕 분위기 잡은 거, 이번에 일 한번 내보자고.”

주변 학교들은 신성 고등학교의 전력을 낮게 평가했다.

박유성이 복귀한 것보다 김석률 감독이 이탈한 게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유성이야 그냥 홈런 주면 되는 거잖아.”

“그렇죠. 박유성 혼자 북 치고 장구 쳐봐야 3점입니다. 박유성 앞에 주자만 모아주지 않으면 됩니다.”

“하지만 김석률 코치 빠진 건 감당 못 할 거야. 막말로 신성고 훈련은 김 코치가 다 했잖아?”

“선수들 하나하나 개별 면담하면서 챙긴 것도 김석률 코치죠. 모르긴 몰라도 지금 선수들 전체가 붕 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신성 고등학교는 연전연승을 거듭하며 4강에 올라왔다.

박유성과 함께 훈련하면서 타자들은 물론이고 투수들까지 각성한 결과였다.

“신성 투수들이 저렇게 잘 던졌나?”

“매일같이 박유성을 상대했다고 합니다. 박유성이한테 삼진 잡으면 국대 선수들 사인 장비 받아주겠다고 했대요.”

“박유성이 그놈도 웃기는 놈이네. 그 정도면 사행성 조장 아니야?”

“그렇지 않아도 다른 학교에서 문의 넣었다가 욕만 바가지로 먹었답니다. 일부 학교에서는 매주 MVP 뽑아서 포상도 한다면서요.”

“박유성이 때문에 장비 뜯기는 국대 선수들은 무슨 죄야?”

“그게…… 없답니다.”

“뭐가 없어?”

“박유성이 삼진 잡은 선수가 없답니다. 일종의 미끼 상품인 거죠.”

“젠장할. 박유성이 하나 때문에 이게 뭐야?”

“그러게 말입니다. 황소개구리 때문에 고교 야구 생태계가 무너진 느낌입니다.”

신성 고등학교의 4강전 상대는 대통령배 4강에서 만났던 경복 고등학교.

“지금까지는 운 좋게 올라왔을지 몰라도 우리 경복은 다르지.”

앞서 신성 고등학교를 꺾은 경험이 있던 경복 고등학교 최명욱 감독은 라이온즈에 우선 지명을 받은 에이스 배윤성 대신 2학년 에이스 임성진을 내세웠다.

주변에서 임성진보다는 3학년 선발을 내세워야 한다고 말했지만, 최명욱 감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성 선발이 지난번에 우리한테 탈탈 털린 김동화잖아. 그런데 뭐가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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