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179화 (179/412)

타자 인생 3회차! 179화

23. 라이징 스타(11)

경험 많은 단장이었다면 송광철이 박유성의 칭찬을 늘어놓을 때 적당히 화제를 돌렸겠지만.

이미 그 말에 푹 빠져 버린 상황에서 냉정함을 되찾기란 쉽지 않았다.

“박유성 선수의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알겠습니다. 제가 막연히 느꼈던 것들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시니까 더 명확해진 것 같고요.”

김재식 단장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송광철은 그 정도 반응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박유성 선수는 지금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선수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느 고등학교 3학년 선수가 올림픽에서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를 상대로 연거푸 홈런을 때려냅니까? 마츠다 유이토를 상대로 3연속 3루타는 어떻고요? 크리스 반스를 상대로 안타 빠진 히트 포 더 사이클까지 쳤습니다.”

“네. 박유성 선수가 정말 대단한 재능을 가진 선수라는 거 인정하겠습니다. 이제 원하시는 걸 말씀해 주시죠.”

“신상욱 회장님이 언론 인터뷰까지 해서 박유성 선수를 잡겠다고 말씀하셨고 단장님이 이렇게 먼저 연락을 주셨으니까, 오늘 이 자리에서는 미국 직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해외 진출에 대한 논의는 먼저 마무리 짓고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포스팅 말씀이시죠?”

“네. 일단 현행 규정대로라면 박유성 선수는 5시즌을 채우는 게 최선입니다. 국대 포인트로 한 시즌을 줄인다 한들 아마추어 계약을 하게 될 테니까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다만 지금 메이저리그 쪽에서 아마추어 계약 조건을 손질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서요. 만에 하나 자격 기준이 낮아진다면 조기 진출을 허락해 주십시오.”

“어느 정도까지 말입니까?”

“일단 메이저리그 노사 협의 결과를 기다려 봐야겠지만 지난번에 논의된 대로 21세까지 자격 연령이 낮아진다면 3년입니다.”

“그러니까 3년 후에 박유성 선수가 자격을 갖춘다면 메이저리그로 보내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마 아마추어 자격 조건은 개정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올림픽 때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아마추어 교체를 특별히 허락한 이유도 그것 때문일 테고요.”

“죄송한데 조금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메이저리그 쪽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요.”

김재식 단장은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야구에 대해 열심히 공부한다고 하지만 전직 야구 선수에 베어스 프런트로 일했고 에이전트까지 하고 있는 송광철에 비한다면 야알못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자 송광철도 가볍게 웃고는 메이저리그의 현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오타니 쇼헤 아시죠?”

“그럼요.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일본 최고의 야구 스타이지 않습니까?”

“오타니 쇼헤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역대 최고 계약금을 받을 거라는 전망이 많았습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오타니 쇼헤를 위해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었죠. 하지만 제도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게 아까 말씀하신 아마추어 계약입니까?”

“네. 해외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빅마켓 구단들이 돈으로 선수들을 쓸어 담았거든요. 국내 프로 구단으로 치면 용병 선수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아, 네. 이해가 됐습니다.”

“예전에는 계약금에 대한 제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제 대회에서 활약한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관심이 몰렸죠.”

“그만큼 경쟁이 붙었겠네요.”

“그렇습니다. 프로 구단들이 실력 있는 용병 선수들을 데려오기 위해 경쟁하는 것처럼 말이죠.”

김재식 단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메이저리그 이야기를 국내 사정에 빗대어 들으니까 이해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하지만 경쟁이 과열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유망주들에게 수천만 달러를 쓴다는 게 사실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저런 제약을 걸었습니다. 한 해에 쓸 수 있는 돈을 제한하고, 또 아마추어 계약을 할 수 있는 나이도 제한하고요. 편법을 쓰는 구단들은 사치세를 비롯해 페널티도 물렸습니다. 자, 이러면 무슨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구단들의 불만이 커질 것 같습니다. 국내의 예로 들자면 용병 선수들을 제한하고 연봉도 제한하는 꼴이니까요.”

“네. 바로 그렇습니다.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세상 모든 구단들은 적은 지출로 우승을 차지하고 싶어 합니다. 구단도 결국 돈을 벌어야 유지가 되니까요. 그런데 그 길을 자꾸 막아버리면서 선수들의 처우 개선만 요구하니 구단들도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오타니 쇼헤라는 괴물이 나타났고요.”

“야구를 잘 모르던 저도 오타니 쇼헤의 이름은 알 정도였으니까요.”

“오타니 쇼헤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당시 메이저리그 구단들에게 자신을 영입하고 싶은 이유에 대한 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대단한 배짱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무려 27개 구단에서 오타니 쇼헤가 원하는 대로 답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1차 서류 면접인 거죠.”

“저도 그 얘기는 들었습니다. 양키즈도 까이지 않았습니까?”

“당시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오타니 쇼헤 특별 전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타니 쇼헤 같은 선수라면 제도를 무시하고라도 일단 데려오는 게 메이저리그에 도움이 된다는 거였죠. 하지만 결국 오타니 쇼헤는 푼돈을 받고 메이저리그에 입단했습니다. 그리고 3년간 최저 연봉에 가까운 돈을 받았죠.”

“손해가 막심했겠네요.”

“그때 이후로 25세였던 허들이 23세로 낮아졌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큰 효과가 없었습니다. 본래 23세였던 게 25세로 올라갔던 거니까요. 그사이 노사 협약을 통해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처우가 많이 개선됐습니다.”

“해줄 만큼 해줬으니까 이제 구단들이 욕심을 낼 차례겠군요.”

“네. 그래서 연말에 자격 조건 완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미 야구 협약에 따라 프로 야구 협회도 방법을 만들어야 할 테고요.”

“설마 해외 진출 자격 조건이 1년 단축될 거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게는 힘들 겁니다. 보통 해외 진출 자격 조건은 FA 자격 조건과 맞물려 움직이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박유성 선수처럼 재능이 넘치는 선수들이 혜택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게 뭡니까?”

“국가대표 포인트 제도.”

“……!”

“포인트 제도를 개선하고 해외 진출에 한해 최대 2년까지 단축할 수 있게 만든다면 어떨까요? 그럼 반대할 구단이 있을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현민이도 4년간 국가대표로 열심히 활동했지만 145점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3년 안에 그 두 배를 채우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잠시 멈칫했던 김재식 단장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포인트 제도를 어떻게 손볼진 모르겠지만 3년 안에 290점을 채우는 건 박유성이라 해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제가 원하는 건 간단합니다. 메이저리그에서 해외 진출 자격 조건을 완화하고 프로 야구 협회에서 국가대표 포인트 제도 개선을 논의할 때 반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박유성 선수가 조기 해외 진출을 위해 국제 경기에 참여하는 것도 보장해 주셨으면 좋겠고요.”

“그러니까 3년 후 해외 진출이라는 목표를 구단 차원에서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거네요.”

“네. 해당 내용을 계약서에 정확하게 명시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스타즈 구단만 손해 보는 건 없을 겁니다. 박유성 선수가 점수 획득에 실패하거나 메이저리그 해외 진출 자격 완화가 수포로 끝날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김재식 단장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송광철의 계획이 다소 터무니없게 느껴지긴 했지만 최악의 경우 박유성을 3년 만에 메이저리그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렇다고 이제 와 박유성을 놓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조건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계약금이 조정되거나 하지는 않겠죠?”

“구단에서 한발 양보해 준다면 계약금에 크게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물론 현민이보다는 더 주셔야겠지만요.”

“정말이십니까?”

“대신에 옵션을 추가했으면 좋겠습니다.”

“옵션이라 하시면?”

“리그 MVP, 골든 글러브, 신인왕은 기본이고 타격 성적마다 세분화해서 보너스를 걸었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실력으로 받아 가겠다는 말씀이시로군요.”

“참고로 박유성 선수가 그렇게 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요?”

순간 김재식 단장의 표정이 풀어졌다.

신상욱 회장으로부터 최고 계약을 약속받은 박유성이 옵션을 원한다고 하니까 협상의 여지가 생겼다.

“그럼 해외 진출을 적극 협조하겠다는 걸 계약서에 명시하면 되는 겁니까?”

“일단 거기서부터 시작입니다. 계약금과 옵션에 대해서는 차차 논의하면 될 것 같고요.”

“알겠습니다. 제가 내일 바로 회장님을 만나 뵙고 확답을 받아 오겠습니다.”

“문서화 해주신다면 스타즈의 우선 지명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송광철과 기본적인 협상을 마친 김재식 단장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신성 그룹 본사를 찾았다.

“그러니까 3년 후 해외 진출이 목표라고?”

“네, 회장님. 대신 계약금은 적당히 양보할 생각이 있다고 합니다.”

“하하. 재미있네. 재미있어. 그래, 사내놈이 그 정도 배포는 있어야지. 안 그래?”

역정을 낼 줄 알았던 신상욱 회장은 껄껄 웃었다.

스타즈의 구단주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야구팬으로서 그 역시도 박유성을 오래 붙들 생각이 없었다.

“박 과장. 박유성이 에이전트 말처럼 될 가능성이 얼마나 돼?”

“메이저리그 쪽에서 아마추어 계약 조건을 완화할 가능성은 커 보입니다. 박유성 선수라는 전례가 생겨 버렸으니까요.”

“메이저리그에서 박유성이 뛰는 걸 빨리 보고 싶으면 알아서 법을 뜯어고칠 거라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프협의 대처는?”

“저도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만 국가대표 포인트 제도 개선이 가장 무난해 보입니다.”

“그래?”

“일단 우리만 찬성한다면 다른 구단들이 반대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앞으로 제2의 박유성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박유성 특별법이 될 테니까요.”

“박유성이가 잘하면 잘할수록 다들 메이저리그로 보내려고 안달일 거라는 거지?”

“내년 시즌 박유성 선수의 활약에 달려 있겠지만 올림픽에서 했던 것의 반만 해줘도 충분할 거라 생각합니다.”

신상욱 회장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송광철의 제안을 받으라고 지시했다.

추가로 계약금도 두둑이 챙겨주라고 덧붙였다.

“내 입으로 최고 대우를 약속했어. 그런데 송현민이보다 조금 더 챙겨주면 내 체면이 뭐가 돼?”

“회장님. 박유성 선수가 3년 후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상황도 고려하셔야 합니다.”

“그게 왜? 선수가 잘나서 메이저리그에 가겠다는데 그걸 어떻게 말려? 자네는 헤드헌터가 연봉 2배 준다고 하면 이직 안 할 거야?”

“그야…….”

“박유성이 오래 데리고 있을 생각 말고 박유성이가 있는 동안 우승할 생각을 해. 그게 남는 장사야.”

신상욱 회장의 배려 속에 김재식 단장과 송광철은 기본적인 합의서에 서명했다.

[스타즈 구단은 박유성의 해외 진출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이를 어길 시 박유성을 즉시 FA로 풀어준다.]

[박유성은 스타즈 구단의 우선 지명을 받아들이며 스타즈에서 최소 3시즌 이상을 성실하게 활동한다.]

그렇게 서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뒤 스타즈는 2029년 우선 지명 선수로 신성 고등학교 박유성을 발표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