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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178화 (178/412)

타자 인생 3회차! 178화

23. 라이징 스타(10)

김재식 단장의 부탁으로 약속 장소에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송광철은 그저 얘기만 들어볼 생각이었다.

스타즈에 입단한 이후 4년 이내에 해외 진출하는 시나리오를 써놨지만 그렇다고 스타즈에게 휘둘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일단 누가 갑인지 확실하게 해놓아야 해. 그래야 현민이 때처럼 고생하지 않지.’

트윈스 팬들은 트윈스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송현민의 해외 진출을 허락한 거라 알고 있지만 사실은 달랐다.

고교 시절 미국행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송현민에게 트윈스가 해외 진출을 보장하겠다고 먼저 제안했고.

트윈스에 입단할 때 그 내용을 계약서에 넣은 덕분에 송현민의 해외 진출이 가능해진 것이다.

외국인 선수 제한 문제로 해외 진출 자격 조건이 1년 줄어들게 되자 송현민과 트윈스 구단은 매일같이 싸웠다.

송현민은 약속대로 해외 진출을 허락해 달라고 요구한 반면 트윈스는 계약 당시 기준으로 6시즌을 채우라며 맞섰다.

그나마 지난해 트윈스가 통합 우승을 일궈내면서 송현민의 해외 진출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만약에 올해처럼 포스트 시즌 진출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럼 아마 말을 바꿨을 거야. 현민이가 없으면 우승이 힘들 테니까.’

당시 송현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언론을 다룰 줄 아는 최상규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어 구단을 압박했고.

생애 첫 MVP를 차지하며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준비가 됐다는 걸 스스로 입증해 냈다.

거기에 팀을 통합 우승으로 이끌며 최고의 시나리오를 완성시켰다.

만약 셋 중에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송현민은 올해도 트윈스 유니폼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단장님. 박유성 선수와 송현민 선수, 둘 중에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현재 기준에서 말씀이십니까?”

“저는 지금도 박유성 선수가 송현민 선수에 비해 크게 밀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만 놓고 보자면 비교조차 할 수 없고요.”

“동감합니다. 솔직히 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송현민 선수 고등학교 시절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올림픽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송광철은 일단 박유성의 실력에 대한 김재식 단장의 동의를 얻어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현시점의 송현민에 미치진 못하지만 고교 리그를 씹어 먹으며 역대 최고의 재능 소리를 들었던 송현민보다는 훨씬 나은 정도.

이렇게 되면 박유성에 대한 계약 기준이 트윈스와 계약한 송현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언제 박유성 선수를 알게 됐는지 아십니까?”

“송현민 선수가 박유성 선수를 소개해 줬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송현민 선수, 아니, 현민이 놈이 미국 가기 전에 그러더라고요. 박유성이라고 눈여겨본 후배가 있는데 자기만큼 잘하는 거 같다고, 그러니까 장비 좀 챙겨 달라고요.”

“송현민 선수가 확실히 안목이 좋네요.”

“현민이가요? 하하하. 단장님이 현민이를 잘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현민이 녀석 다른 사람 절대 인정 안 합니다. 단장님이 생각하시기에 현민이 이전에 야구 천재가 누가 있습니까?”

“글쎄요. 그래도 기정후 선수와 감백호 선수 아니겠습니까?”

“기정후 선수는 정말 기가 막히죠. 기종범 선수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아마 기정후 선수 보는 모든 야구인들이 같은 생각을 할 겁니다. 저런 아들을 낳고 싶다고요.”

“감백호 선수도 투타 겸업을 고민했을 만큼 재능이 충만한 선수였고요.”

“현민이는 그 두 선수를 보며 야구 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이 그 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렇습니까?”

“고교 시절 성적은 현민이가 더 좋았고 프로 시절 통산 성적도 기정후 선수 못지않습니다.”

송현민의 프로 야구 시절 통산 성적은 0.331에 155홈런, 510타점.

5시즌 동안 3할 타율에 연평균 31개의 홈런과 102개의 타점을 기록했다.

신인왕과 4년 연속 출루 1위를 포함한 6개의 타격 타이틀, 거기에 마지막으로 나눔 리그와 한국 시리즈 MVP 트로피까지 들어 올렸고.

중견수로 뛰다가 2루수로 자리를 옮기면서 외야와 내야 양쪽에서 골든 글러브까지 차지했으니 이 정도면 프로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도 충분할 정도였다.

“송현민 선수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현민이는 기정후 선수나 감백호 선수를 라이벌로 생각했죠. 존경보다는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현민이를 싫어하는 기자들이 아직도 많고요.”

“그래도 실력으로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연초에 레인저스 가서 삽질할 때는 포털 사이트 들어가는 게 겁나더라고요. 오늘은 또 누가 뭐로 깠으려나 하고요.”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스타즈가 어이없게 역전패당하는 날에는 기사 못 보겠더라고요.”

“잠깐 얘기가 새긴 했는데, 어쨌거나 그 송현민이가 처음으로 인정한 게 박유성 선수입니다. 심지어 자신보다 낫다고까지 말했고요.”

“송현민 선수가 말입니까?”

“현민이가 지금껏 누굴 인정한 적도 처음이었지만 자신보다 낫다고 말하니까 호기심이 동하더라고요. 그래서 신성 고등학교에 찾아가 봤죠.”

“어땠습니까?”

“솔직히 확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연습 경기 중이었는데 확실히 재능은 있어 보였어요. 타격도 준수하고 발도 빨라 수비도 잘했는데 왜소한 체격이 걸리더라고요.”

“아무래도 요즘 선수들은 체격이 좋으니까요.”

“이게 피지컬이 약해도 되는 게 있고 아닌 게 있잖아요? 현민이도 고교 시절에는 비쩍 말라서 구단에서 식단까지 짜줬는데, 박유성 선수는 현민이보다도 호리호리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잘하면 현민이만큼은 해줄 거라 믿고 챙겨봤는데 웬걸요. 이건 제 예상을 한참 뛰어넘더라고요.”

송광철의 말에 김재식 단장도 기분 좋게 웃었다.

아직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는커녕 국내 잔류 확답을 받은 것도 아니지만

송현민의 에이전트인 송광철이 극찬하는 선수가 내년부터 스타즈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된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단장님은 야구단 오시기 전에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들으셨을지 모르겠지만 본사 감사팀에서 일했습니다.”

“그럼 야구는 많이 보셨습니까?”

“좋아하긴 했습니다. 그래서 단장을 맡아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렵더라고요. 지금도 많이 공부 중입니다. 하하.”

“그럼 제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네. 경청하고 있으니까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전 아직 혼자라서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하. 저는 처자식이 있지만 어디서 뭘 하는지 신경도 쓰지 않을 겁니다.”

“유부남의 비애로군요.”

“그래도 결혼해서 좋은 점도 많으니까 빨리 좋은 짝을 찾으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많이 오는데 아직까지는 일이 좋습니다.”

“이거 단장님 연애를 위해서라도 빨리 스타즈가 우승해야겠는데요?”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당장 결혼 정보 업체에 가입하겠습니다.”

종업원이 들어와 새로 주문한 고기를 굽는 동안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던 두 사람은, 주변이 조용해지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현민이가 고교 시절에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눈도장을 받았던 비결이 뭔 줄 아십니까?”

“그것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해하실 거 없습니다. 그걸 아는 건 스카우트들 정도니까요. 사실 현민이가 손목 힘이 좋습니다. 고교 레벨 타자 중에서 손목 힘으로 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선수가 거의 없거든요. 다들 체중을 활용해서 공을 찍어 누를 줄만 알지 정확한 임팩트로 홈런을 때려내진 못합니다.”

“그런데 그걸 송현민 선수가 해냈다는 말씀이시군요.”

“현민이가 어렸을 때부터 절 따라다녔습니다. 그래서 제가 훈련할 때 따라서 방망이를 휘두르곤 했죠.”

“일종의 조기 교육이네요.”

“제가 사고로 야구를 그만두니까 현민이가 울면서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대신 야구 해서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고. 그래서 현민이에게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알려주었습니다. 물론 국내 최고가 된 건 현민이의 노력 덕분이지만요.”

김재식 단장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재능이라면 당연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쪽이 잘할 가능성이 크겠지만 게으른 천재는 백날 가르쳐 봐야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박유성 선수가 현민이처럼 치더라고요.”

“그랬습니까?”

“게릿 벌렌더를 상대로 친 홈런을 기억하십니까?”

“그럼요. 제가 몇 번이고 돌려봤는지 모릅니다.”

“현재 박유성 선수의 피지컬로는 사실 게릿 벌렌더의 공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타보다는 차라리 빗맞은 안타를 기대하는 게 나을 정도죠.”

“그럼 홈런은 어떻게 나온 겁니까?”

“박유성 선수는 운이 좋았다고 하는데 그 말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순수하게 운으로 때려냈다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고요.”

잠시 뜸을 들이던 송광철이 빈 음료병을 들어 올렸다.

“단장님. 컵에 담긴 물을 따라서 이 병 안에 넣을 수 있을까요?”

“넣을 수는 있겠죠. 다만 많이 흘릴 것 같습니다.”

“흘리지 않고 넣는 건 불가능할까요?”

“글쎄요. 그래도 엄청 집중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요?”

“그럼 그렇게 해서 이 안에 물을 넣었다고 칩시다. 그건 운이 좋아서일까요, 아니면 노력의 결과일까요?”

“아아…….”

“네. 박유성 선수의 홈런은 운이 좋았습니다. 게릿 벌렌더가 정직하게 한복판으로 빠른 공을 던져주지 않았다면 홈런이 나오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그 공을 완벽한 자세로 완벽하게 때려낸 건 절대 운이 아닙니다. 그게 실력이죠.”

“……!”

“경험 많은 프로 선수들도 에이스 투수나 용병 투수를 만나면 위축되게 마련인데, 박유성 선수는 그 부담감을 이겨내고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낸 겁니다.”

김재식 단장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박유성의 홈런 장면을 떠올렸다.

빈말이 아니라 박유성의 홈런 장면은 꿈에 나올 정도로 보고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왠지 모를 전율을 느꼈다.

누군가는 게릿 벌렌더가 맞아준 거라고 하고.

누군가는 박유성이 냅다 휘두른 방망이에 공이 걸린 거라고 하지만, 새하얀 공이 새까만 방망이에 잡아 먹히는 그 순간의 감정은 뭐라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송광철의 얘기를 듣고 나니까 박유성의 홈런 장면에 홀려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언론에서는 왜 그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걸까요?”

“박유성 선수가 어리니까요.”

“고작 그 이유로요?”

“언론에서 지금 박유성 선수를 가리켜 천재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 천재라는 표현이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습니다. 뭔가 많은 걸 알지만 완벽하게 그 의미를 통달하는 느낌은 아니죠. 아무래도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니까요.”

“일만 시간의 법칙이 왜 있겠습니까? 누구나 오랜 시간을 노력하다 보면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스포츠 같은 경우가 더 그렇죠. 천재 소리 듣던 선수들보다 드래프트 끝자락에 지명됐지만 죽어라 노력한 선수들이 살아남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 박유성 선수의 타격은 최소 10년 이상 주전으로 뛴 베테랑보다 완성이 되어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언론에서도 천재라는 표현으로 뭉뚱그린다는 말씀이시로군요.”

“네. 야구팬들에게도 천재라는 한 마디보다 더 와닿는 표현은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단장님은 그러시면 안 됩니다. 적어도 단장님만큼은 박유성 선수에 대한 실력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계셔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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