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177화
23. 라이징 스타(9)
배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신화 여자 중학교 배구부는 여자 중학 배구 최강 팀 중 하나였다.
대표팀의 주축으로 활약하고 있는 한소정과 제2의 강연경 소리를 듣는 민지혜 모두 신화 여자 중학교 출신.
그런 곳에서 먼저 테스트를 제안했다면 박유선도 확실히 재능이 있다고 봐야 했다.
“야구도 아닌데 뭘 쳐? 그리고 내 키 때문에 그러는 거야.”
“운동선수에게 체격 조건이 좋은 게 얼마나 큰 장점인데?”
“됐어. 솔직히 배구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수로 신화 여중을 가?”
박유선은 정말로 관심 없는 모양이지만 박유성의 생각은 달랐다.
“할 수 있으면 신화 여중에서 운동하는 게 좋아. 거기서 2년 내내 뒤치다꺼리만 해도 잘하는 선수들 틈에서 배우는 게 너한테 도움이 될 거야.”
“난 경기 나가고 싶은데?”
“경기 나가는 거 좋지. 좋은데 인프라도 무시 못 해. 그리고 신화여중 출신들은 고등학교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난리야. 중학교 때는 경기 출전보다 기본기를 쌓는 게 중요해. 그러니까 이건 오빠 말 들어.”
1회차 시절에도 박유선은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1학년 때부터 거의 전 경기를 뛰며 혹사를 당했고 그 결과 온몸에 부상을 달고 살아야 했다.
같은 선수로서 경기에 뛰고 싶어 하는 박유선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앞선 1회차와 2회차 때 어느 정도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신성 고등학교의 환경이 좋았기 때문이다.
“오빠도 경기 못 나갈 때 엄청 짜증 냈잖아.”
“그 철없던 시절의 박유성은 잊어라. 걔는 죽었어. 지금이 진짜 박유성이야.”
“뭐래. 얼마나 지났다고.”
“암튼 신화 여중 테스트 잘 받고 와. 거긴 또 내가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잘 말해줄 수 있어.”
“뭘 잘 말해줘? 오빠 빽으로 들어가라고?”
“뭔 소리야? 죽어라 굴리라고 할 건데. 넌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안 그래?”
“오빠 맞냐?”
“오빠가 맞으니까 이러지. 그리고 기왕 하는 거 열심히 해서 국대까지 해라. 진천 선수촌 밥 꿀맛임.”
“오빠는 무슨 밥 먹으려고 국대 해?”
“나중에 진천 선수촌 가 보면 알게 될 거다.”
야구 대표팀과 달리 여자 배구 대표팀은 모든 국제 대회 합숙 훈련을 진천 선수촌에서 진행한다.
은근히 입맛이 까다로운 박유선도 매일같이 펼쳐지는 진천 선수촌 뷔페를 맛보고 나면 국가대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터.
‘그때 가서 고생 안 하려면 줄을 잘 서야 해. 소정이 누나는 몰라도 민지혜는 계속 국대 하고 있겠지? 모교 출신이면 아마 더 챙겨줄 거야.’
순식간에 스테이크 한 접시를 해치운 박유성이 새 접시를 집어 들었다. 그러면서 아직 한창 더 커야 하는 두 동생을 보며 말했다.
“이제 남은 스테이크는 두 개. 내가 다 먹기 전에 서두르는 게 좋을걸?”
그 말에 박유선과 박유신의 포크 질이 빨라졌고.
“어휴, 천천히들 먹어.”
이선영만 중간에서 고생을 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단독) 박유성, 송현민과 한솥밥 먹는다!]
박유성이 송광철과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는 기사가 나자 베이스볼 파크가 발칵 뒤집혔다.
└내가 뭐랬어? 박유성 메이저리그 갈 거라고 했지?
└스타즈 팬들 부들부들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ㅋㅋㅋㅋ
└뭐어? 계약서에 도장 찍기 직전?
└그 계약서 박유성이 찢어버렸죠? ㅋㅋㅋ
└박유성하고 송현민이 친하니까 송현민 삼촌하고 계약한 거잖아. 왜들 이럼?
└그 송현민 삼촌이 송현민 메이저리그 보낸 건 왜 빼나요?
└팩트 체크 – 송현민 삼촌인 송광철 씨는 송현민이 고등학교 졸업하면 곧바로 메이저리그에 보내려고 했다.
└아니 그러니까 그냥 에이전트 계약한 거잖아요?
└박유성 정도 되면 국내 에이전트들이 줄을 설 텐데 왜 하필 송현민 에이전트일까? ㅋㅋ
└이쯤 되면 스타즈 우선 지명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님? ㅋㅋㅋ
└박유성 우선 지명했는데 박유성 메이저리그 진출하면 어떻게 되나요?
└어떻게 되긴요. 낙동강 오리 알 되는 거죠.
└낙동강 오리 알보다 더 심하죠. 박유성이 잡겠다고 신성 고 우선 지명 금지도 깼는데 ㅋㅋㅋㅋ
└와, 지금 봤는데 반짝반짝 분위기 살벌합니다. 박유성 메이저리그 가면 진짜 다들 신성 그룹 찾아갈 기세임.
└그런데 선수가 잘해서 메이저리그 간다는 걸 무슨 수로 말림?
└못 말리죠. 그래도 아직 시간 남았으니까 스타즈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함.
└스타즈가 과연 박유성 잡을 수 있을까? 송현민 에이전트 송현민 메이저리그 보내면서 노하우 좀 쌓았을 테고 메이저리그에서도 박유성 오퍼 넣는다고 하던데?
└관건은 결국 돈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 1천만 달러쯤 쓰면 박유성 미국 간다고 봅니다.
└저기요. 1천만 달러를 못 써요.
└님아. 메이저리그는 선수 연봉 자체가 다릅니다. 우리 나라 기준으로 1천만 달러가 대단할지 몰라도 메이저리그는 푼돈이에요.
└아니 그러니까 박유성은 아마추어 신분이라 1천만 달러를 못 쓴다고요.
└아마추어 신분하고 뭔 상관임? 송현민도 4년에 6천만 달러를 받는데 박유성이 1천만 달러도 못 받는다고요?
└하아. 이분 말이 안 통하시네. 국제 아마추어 계약 때문에 그게 안 된다니까요. ㅠ.ㅠ
└내버려 둬요. 설명해 줘도 못 알아들을 거임.
└이대로 박유성 포기 못 합니다. 신상욱 회장님아! 유성이 사줘!
└유성이 사주세요. 제발!
신상욱 회장도 갑작스러운 소식을 접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뭐야? 박유성이가 정말 메이저리그에 갈 수도 있다는 거야?”
“에이전트 쪽에 문의를 해봤는데 원론적인 대답만 들었습니다.”
“원론적이라니?”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박원호 과장이 신상욱 회장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신상욱 회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한 실장!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회장님. 일단 진정하십시오. 혈압에 좋지 않습니다.”
“진정이고 나발이고 이제 곧 우선 지명을 해야 하잖아! 박 과장. 우선 지명이 언제까지지?”
“올해는 8월 말까지 발표해야 합니다.”
“8월 말이면 이제 한 달도 안 남았잖아?”
이미 다른 구단은 우선 지명 선수를 일찌감치 확정 지었지만 스타즈는 달랐다.
신성 고등학교 출신인 박유성을 배제하고 동호 대학교 원투 펀치인 고윤식과 김혜성을 두고 저울질하다가 박유성이라는 슈퍼 루키가 급부상하면서 겨우 교통정리를 끝낸 상태였다.
그런데 그 박유성이 하필이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송현민의 삼촌과 계약을 했다니.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팬들 반응은 어때?”
“난리도 아닙니다. 요즘 스타즈 팬들 국대 유니폼 주문 인증샷 올리는 재미로 살지 않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박유성 선수가 메이저리그를 갈지도 모른다고 하니까 다들 허탈해하는 모양입니다.”
아이돌 팬질의 기본이 앨범이라면 프로 야구 팬질의 기본은 유니폼이었다.
그래서 많은 팬들이 박유성의 유니폼을 원했지만 신성 고등학교 유니폼은 비매품이라 구매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결승전 직후 프로 야구 협회에서 국가대표 에디션 제작을 발표했다.
20년 만의 올림픽 야구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출전 선수들의 실제 유니폼을 한정 판매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지기가 무섭게 30분도 되지 않아 프로 야구 협회 홈페이지가 터져 버렸고.
다시 서버가 정상화됐을 때는 박유성의 유니폼 옆에 품절이 박혀 있었다.
홈페이지 접속 불가로 박유성의 유니폼을 주문하지 못한 팬들이 단체로 항의하자 프로 야구 협회는 당초 선수 한 명당 최대 1천 장까지 주문하도록 설정해 놓아서 품절 사태가 빚어진 거라며 최대 수량을 1만 장으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1만 장조차 현재 잔여 수량이 천 장 이하로 떨어진 상태였다.
박유성의 스타즈 유니폼을 기다릴 수 없었던 스타즈 팬들이 국가대표 에디션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주문 후 제작까지 1개월이 넘게 소요되고 교환 반품이 되지 않고 어센틱 유니폼이라 한 벌에 19만 9천원이라는 고가로 책정됐음에도 불구하고 1만 장의 유니폼이 또다시 품절을 앞두고 있을 만큼 스타즈 팬들의 박유성 사랑은 상당했다.
그런데 박유성이 메이저리그에 갈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터졌으니 팬들의 상실감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일단 팬들을 달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회장님께서 따로 박유성 선수를 꼭 잡겠다는 의지를 밝혀주시고 김 단장님이 따로 박유성 선수 에이전트를 만나면 팬들도 일단은 결과를 기다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우선 지명은?”
“당연히 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현실적으로 박유성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갈 가능성은 낮습니다. 송현민 선수 에이전트와 계약한 건 송현민 선수와의 친분 때문일 가능성이 높고요.”
“확실한 거야?”
“박유성 선수도 미래를 보고 계약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송현민 선수가 레인저스에서 자리를 잡았으니까 에이전트가 박유성 선수를 어필하기도 쉬울 테고요. 물론 언론 쪽에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그야 뻔한 거지. 박유성이라고 돈이 싫겠어?”
“일단 회장님의 확실한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제도 박유성 선수가 기자회견장에서 회장님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그 핑계로 인터뷰라도 해서 팬들을 달래라는 거지?”
“지금 스타즈 팬들을 진정시킬 수 있는 건 회장님뿐입니다.”
박원호 과장의 조언대로 신상욱 회장은 홍보팀을 소환했다.
그리고 광고를 넣고 있는 언론사를 통해 자체 인터뷰 형식의 기사를 올렸다.
[신성 그룹 신상욱 회장, 박유성은 오래전부터 눈여겨본 선수. 스타즈를 우승으로 이끌어줄 선수, 극찬!]
[신상욱 회장, 스타즈 구단주로서 약속. 박유성 최고의 대우로 꼭 잡겠다!]
기사가 나자 베이스볼 파크가 다시 들썩거렸다.
└내가 뭐랬어? 박유성 스타즈 갈 거라고 그랬지?
└너님 아까 메이저리그 간다고 하지 않았음?
└이 사람 원래 이래요. ㅋㅋㅋ
└스타즈 팬으로서 이제 좀 마음이 놓이네요.
└저도요. 아까 박유성 메이저리그 갈 수도 있다는 기사 보고 얹힌 것처럼 답답했는데 이제 좀 속이 풀리네요.
└저는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ㅠ.ㅠ
└아직 방심할 때 아닙니다. 신상욱 회장이 의지를 보여줬으니까 이제 스타즈 구단이 나설 차례입니다.
└윗선에서 오더 내려왔으니까 바로 움직이겠죠. 만약에 박유성 놓치면 단체로 옷 벗을 각오 해야 함.
└옷 벗는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죠. 욕은 욕대로 먹고 박유성 놓치면 최소 10년은 조롱당할 겁니다.
└그럼 저 박유성 유니폼 반품 안 해도 되는 거죠?
└님. 박유성 유니폼 주문하긴 했음? 꼭 사지도 않은 사람들이 이런 댓글 쓰더라.
└했는데요? 영수증도 있는데요?
└저기요. 박유성 국대 유니폼 환불 반품 불가예요. 제발 알아보고 개소리하세요.
└그냥 드립 한번 쳐본 거 가지고 왜 이렇게 민감하게 구냐, ㅅㅂ.
└그런데 신상욱 회장이 잡겠다고 하면 다 끝나는 거임?
└기사 제대로 안 보셨네요. 역대 최.고.대.우. 약속입니다.
└송현민 때도 그런 얘기 나오지 않았나요?
└송현민하고 박유성은 다르죠. 송현민도 고등학교 시절에는 잘했지만 박유성은 올림픽 MVP 출신입니다. 비교할 걸 비교하세요.
└박유성이 2년 정도 웨이트해서 몸 키우면 송현민 잡을 거라는 게 학계의 정설임.
└그럼 일단 신인 최고 계약금 경신은 확정인 거죠?
└송현민 때 깨졌을걸요?
└송현민 8억인데요?
└그거 축소 발표한 거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세금 구단에서 내줬을걸요?
└박유성은 일단 송현민 깔고 갈 겁니다. 세금 떼고 10억 이상 예상해 봅니다.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렇게 호들갑을 떨 정도로 박유성이 가치 있음?
└??
└???
└다음 중 자신의 국적을 고르시오. 1. 일본 2.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주장하는 나라 3. 도쿄가 수도인 나라 4. LA 올림픽 야구 동메달 국가.
└에이, 야구 모르는 야알못일 수도 있죠. 뭘 그렇게 정색을 하세요? ㅋㅋㅋ
└귀엽다. 귀여워. 어그로 귀엽네.
└미튜브 들어가서 LA 올림픽 박유성 스페셜 영상 쳐보고 오세요. 그럼 왜 이러는지 알게 됩니다.
└ESPM이 선정한 LA 올림픽 20대 스타 중 한 명이 바로 박유성입니다.
신상욱 회장이 기사를 통해 스타즈 팬들의 동요를 잠재우자 김재식 단장도 행동에 나섰다.
송광철의 전화번호를 수소문한 뒤에 곧바로 약속을 잡은 것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송 대표님. 김재식 단장입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송광철입니다.”
“갑작스럽게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에 단장님을 만나 뵐 생각이었습니다.”
강남의 유명 고깃집에서 만난 김재식 단장과 송광철은 종업원이 고기를 구울 때까지 형식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종업원이 문을 닫고 물러나자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했다.
“회장님께서 인터뷰하신 기사는 잘 봤습니다. 화끈하시더라고요.”
“그거 그룹에서 내보낸 보도 자료입니다. 그만큼 회장님도 급하셨던 거죠.”
“하하. 그렇습니까?”
“이번 올림픽에서 박유성 선수 활약하는 모습 감동이었습니다. 아마 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야구팬이 박유성 선수를 보며 벅참을 느꼈을 겁니다.”
“어제 계약해서 이런 얘기 하기 그렇지만 저희 선수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송광철이 씩 웃었다. 시작부터 박유성의 칭찬을 늘어놓는다는 건 스타즈의 마음이 급하다는 의미였다.
김재식 단장도 박유성의 거취를 두고 밀당을 할 생각이 없었다.
“많은 스타즈 팬들이 박유성 선수가 스타즈에 입단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구단주이신 회장님께서도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셨고요.”
“김석률 감독을 선임한 것도 혹시 박유성 선수 때문입니까?”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박유성 선수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이지 않습니까? 그 재능을 온전히 꽃피워 줄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