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176화 (176/412)

타자 인생 3회차! 176화

23. 라이징 스타(8)

3

세 시간 동안 이어진 기자회견이 끝이 나자 기자들은 다시 박유성에게 몰려들었다.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올림픽 외적으로 박유성에게 물어볼 것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박유성 선수. 메이저리그 가는 겁니까?”

“스타즈에서 우선 지명 하겠다는 얘기 들었어요?”

“만약에 드래프트 시장에 나온다면 어느 팀에 가고 싶어요?”

“박유성 선수. 여자 친구 있나요?”

만약 혼자였다면 기자들 사이를 빠져나오는 게 쉽지 않았겠지만, 다행히도 송현민과 송광철이 박유성의 좌우를 든든하게 지켜주었다.

“죄송한데 개인적인 질문은 조만간 따로 받도록 하겠습니다.”

“기자님들. 유성이 아직 미성년자입니다. 부모님들 기다리고 계시는데 좀 쉬게 해주세요.”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한껏 몸을 키운 송현민과 전직 야구 선수 출신인 송광철이 길을 열자 기자들도 어쩌지 못하고 물러섰다.

“든든한데요?”

“너 나한테는 경호비 내놔라.”

“그래서 아까 형 얘기 엄청 했잖아요.”

“엄청 하긴 뭘 엄청 해? 다른 선수들 얘기 다 해놓고. 내가 다른 건 그러려니 하겠는데 뭐? 경호하고 경석이한테 뭘 배워?”

“그럼 포수라서 별로 얘기 못 했다고 할까요? 그리고 경호 형하고 경석이 형이 볼배합에 대한 얘기 해줬거든요?”

“됐어 인마.”

“에이, 뭘 그런 걸로 삐치고 그래요? 그리고 아까 얘기 못 들었어요? 저 조만간 예능 출연한다잖아요. 그때 알죠?”

“알긴 뭘 알아? 난 바로 메이저리그 돌아가야 하는데.”

“내가 형하고 제일 친하다고 말할 거예요. 그럼 방송국에서 형 찾아가지 않을까요?”

“그래놓고 또 다 친하다고 하려고?”

“에이, 그래도 형하고 제일 친하죠. 저를 제일 먼저 찾아낸 것도 형이잖아요.”

“그걸 아는 놈이 그랬냐?”

서운한 척 굴면서도 송현민은 박유성이 대견했다.

박유성이 모든 선수들을 챙겨준 덕분에 이후의 기자회견이 화기애애했기 때문이다.

후반에 다시 마이크를 잡았을 때는 강기태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들과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프로 야구 협회 장인석 총재, 한국 야구 협회 김영문 협회장까지 언급하며 만점짜리 인터뷰를 보여주었다.

그것도 단순히 언급만 하는 게 아니라 적당한 에피소드를 덧붙이면서 억지로 언급한 것 같은 느낌을 줄였다.

“오늘 인터뷰 잘했어, 유성아. 그래도 다음부터는 기자하고 싸우지 마. 기자들이 지금은 다 웃고 넘어갔지만 어떨 때는 또 한통속이거든?”

“네. 주의할게요.”

“혹시라도 오늘 같은 일이 있으면 대답을 하지 마. 뒤처리는 내가 할테니까.”

“그래, 맞아. 지금은 네가 야구 잘하니까 넘어가는데 나중에 조금이라도 부진하거나 하면 오늘 일을 가지고 또 난리 친다. 나도 홍민호 그 인간 경멸하지만 억지로 적을 만들 필요는 없어.”

송광철과 송현민의 당부에 박유성이 피식 웃었다.

40년간 언론을 겪을 대로 겪어서 이골이 난 상태지만 자신을 걱정해 주는 두 사람의 마음만큼은 고마웠다.

“일단 오늘은 푹 쉬고 계약 관련해서는 내일 얘기하자.”

“내일 언제쯤이요?”

“아침 먹고 해야지.”

“그럼 제가 가서 말해놓을게요.”

“그래주면 고맙고.”

“현민이 형은 언제 미국 가요?”

“나? 내일 하루 더 있다가 다음 날 갈 거야. 가기 전에 대표팀 회식 있을 거 같으니까 너도 빠지지 말고 와라.”

“저 끼면 술 못 마시는 거 아니에요?”

“술 안 마셔도 돼 인마. 무슨 우리가 술고래인 줄 아나.”

송광철과 송현민을 뒤로하고 박유성은 신성 호텔에서 마련해 준 방으로 들어갔다.

부모님만 와 있을 줄 알았는데 박유선과 박유신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오빠 왔어?”

“형아아아아~”

“뭐야? 어색하게 왜들 이래?”

“뭐래. 반겨줘도 난리야. 근데…… 빈손이야?”

“형아아. 내 선물은? 응? 내 선물은?”

“하아……. 그러면 그렇지. 에라이, 먹고 떨어져라.”

박유성이 따로 빼놓은 선물용 쇼핑백을 던져주자 박유선과 박유신이 선물만 챙겨 사라졌고.

그 둘을 대신해 이선영이 박유성의 캐리어를 받아주었다.

“우리 아들. 고생했어.”

“고생은요.”

“밥은 먹었니?”

“그렇지 않아도 뭐 좀 먹으려고요.”

“그래? 그럼 나가서 먹을까?”

“에이. 뭐 하러 그래요. 룸서비스 시켜요. 호텔 관계자가 그러는데 오늘 식사는 공짜래요. 회장님이 쏘시는 거라니까 여기서 먹어요.”

“유선이하고 유신이까지 있는데 그래도 되려나 모르겠네.”

이선영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박유성이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쟤들이 먹어봐야 얼마나 먹는다고요. 그리고 다른 형들도 엄청 잘 먹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때 방문이 열리고 박명철이 나왔다.

“뭐 하다 이제 나오세요?”

“뭐 하긴 이놈아. 너 때문에 핸드폰에 불이 난다. 불이 나.”

“쓸데없는 전화는 받지 마시라니까요.”

“됐으니까 그 송현민이 에이전트 연락처나 줘봐.”

“바로 계약하시게요?”

“어차피 얘기 다 끝났다며? 그리고 호텔에서 고급 와인도 넣어줬다. 이거 마셔야지.”

“그건 엄마하고 마시면 되잖아요.”

“이놈아. 너희 엄마까지 술 마시면 너희는 누가 챙겨? 시답잖은 소리 말고 괜찮으면 여기로 오라고 해. 아니면 밖에서 만나도 상관없고.”

“엄마는 괜찮으니까 그렇게 해. 유성아. 너희 아버지 지금 핸드폰 번호도 바꾼다고 난리도 아니셔.”

“그 정도예요?”

“그래, 이놈아. 내가 말은 안 했는데 너 때문에 거래처 전화도 못 받고 있어. 그러니까 빨리 처리하자. 빨리. 기사라도 나가야 좀 잠잠해질 거 아냐?”

박유성은 어쩔 수 없이 송광철에게 전화를 걸었고.

송광철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몇몇 기자들이 눈치채고 연락 왔는데 잘됐다. 내가 너희 방으로 갈게.

5분 후.

송광철과 송현민이 방으로 찾아왔다.

“어이구, 송현민 선수!”

“안녕하십니까. 아버님. 송현민입니다. 편하게 이름 불러주세요.”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유성이 아버님이면 저한테도 아버님이죠. 하하. 아시죠? 제가 유성이하고 엄청 친한 거.”

“그럼요. 알다마다요. 내가 골수 베어스 팬인데 송현민 선수는 인정합니다.”

“어이구, 이거 베어스 팬에게 인정을 받으니까 감개무량인데요?”

송현민이 제 발로 찾아와 준 덕분에 계약은 일사천리로 끝이 났다.

박명철이 당장에라도 도장을 찍으려는 걸 이선영이 대신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박유성도 그 옆에서 혹여나 있을지 모를 독소 조항을 찾아봤는데 다행히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계약 기간이나 수수료가 통상적인 계약보다 훨씬 좋았다.

“그런데 2년은 너무 짧지 않아요?”

“그만큼 열심히 하겠다는 얘기야. 마음 같아선 현민이 때처럼 1년 계약으로 하고 싶은데 나도 미국과 한국을 오가야 하니까. 자리 잡고 하려면 2년은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그럼 수수료라도 올리세요.”

“수수료는 현민이한테 왕창 떼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아마 당분간은 내가 너한테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거야. 대신 최대한 빨리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도록 준비하마. 내 노력에 대한 보상은 그때 받을게.”

송광철의 말에 이선영도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최종적으로 박명철이 지장을 찍으면서 에이전트 계약이 완료됐다.

“그럼 우리 유성이는 스타즈 가는 겁니까?”

“스타즈에서 우선 지명권과 1라운드 1차 지명권을 전부 가지고 있어서요. 이변이 없는 한 스타즈에서 뛰게 될 것 같습니다.”

“흠……. 스타즈라.”

“베어스가 아니라서 서운하십니까?”

“에이, 아무리 그래도 베어스는 아니죠. 팬심은 팬심인 거고 베어스 사정 뻔히 아는데 유성이 계약금이나 제대로 맞춰주겠어요?”

양대 리그로 접어든 이후에도 베어스는 화수분 야구를 유지하고 있었다.

재능 있는 신인들을 키워 올려 성적을 내고 FA로 선수들이 떠나면 그 빈자리를 다시 신인들로 채우는 시스템에 이제는 대다수 베어스 팬들이 적응을 한 상태였다.

그러자 옆에 앉은 송현민이 한마디 거들었다.

“베어스보다는 스타즈가 나을 겁니다. 물론 유성이 실력이라면 어느 팀에 가더라도 주전 자리를 꿰차겠지만 이게 팀에서 밀어주는 것과 자리를 보장해 주는 게 다르거든요.”

“똑같은 얘기 아니야?”

“어떤 팀은 밀어준다고 하면서 은근히 경쟁을 붙입니다. 신인이 잘해서 기존 선수를 대체하길 바라면서도 만약을 대비하는 거죠. 하지만 스타즈라면 아마 교통정리까지 해줄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유성이를 무조건 쓰게 만든다는 거지?”

“아버지도 박준수 아시죠?”

“알지. 스타즈 간판이잖아.”

“준수도 스타즈 입단하자마자 붙박이 1루수로 뛰었어요. 초반에 삽질하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계속 출전했죠. 왜냐? 1루 볼 선수가 없었거든요.”

“1루수가 한 명도 없었어?”

“백업으로 데려온 선수가 있는데 다른 팀에서도 1군과 2군을 오가던 선수라 그 선수에게 기회를 주느니 준수를 키우는 게 낫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진 거죠. 스타즈라면 아마 유성이도 그렇게 키울 거예요.”

“그런데 그 스타즈에 외국인 선수 있지 않아?”

“다니엘 브리토요? 아버지. 외국인 용병은 오히려 더 쉬워요. 계약 해지하면 그만이니까요. 그리고 유성이 올림픽 때 하는 거 보셨잖아요. 다니엘 브리토도 메이저리그에서 게릿 벌렌더나 크리스 반스 상대로 홈런 못 쳐봤을걸요?”

“걔들이 그렇게 잘 던진다면서?”

“어휴, 아버지. 걔네 둘이 메이저리그 최고예요. 저도 열 번 만나면 안타 한두 개밖에 못 쳐요.”

박명철과 송현민은 쿵짝이 잘 맞았다.

게다가 둘 다 술을 좋아해서 계약이 끝나기가 무섭게 송현민의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사이 룸서비스가 도착했고.

박유성과 박유선, 박유신은 테이블에 모여 앉아 부지런히 스테이크를 썰었다.

“유신아. 그거 줘봐. 형이 썰어줄게.”

“시러어. 내가 할 거야.”

“너 인마 지금 다 튀기고 있잖아.”

“나도 할 수 이써어어.”

고집부리는 박유신의 접시를 뺏어서 스테이크를 잘게 썰었다.

박유신은 혹시라도 자신의 스테이크를 뺏어갈까 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지켜봤지만 여분으로 시킨 스테이크만 두 접시가 더 있었다.

“유선이 너도 썰어줄까?”

“나중에 오빠 여자 친구한테나 해줘.”

“역시 박유선. 내가 제대로 키웠다.”

“오빠가 뭘 키워?”

“앞으로 너 운동하는 데 들어가는 돈은 다 내 주머니에서 나갈 텐데?”

“그럼 그때 가서 생색내든가.”

“그보다 배구는 좀 어때? 할 만해?”

“뭐 그럭저럭.”

“혹시라도 선배랍시고 괴롭히거나 하는 애들 있으면 말해.”

“말하면? 방망이 들고 찾아오려고?”

“내가 야구 선수지 조폭이냐? 방망이를 왜 들고 가? 그리고 그렇게 안 해도 다 방법이 있어요.”

박유성이 씩 웃었다. 1회차와 2회차 시절에도 야구 선수 박유성 하면 어느 정도 알아줬으니 이번 3회차는 입 아프게 자기 소개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자 이선영이 뭔가를 떠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참, 유성아. 혹시 신화여중이라고 알아?”

“알죠. 거기 배구 명문이잖아요. 왜요? 유선이 거기서 연락 왔어요?”

“운동을 늦게 시작해서 너처럼 신성 중학교 보내려고 했는데 신화여중에서 테스트 보러 오라더라. 처음에는 유성이 너 때문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거 같아서.”

“오호, 박유선? 너 쫌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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