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174화 (174/412)

타자 인생 3회차! 174화

23. 라이징 스타(6)

다른 사람이 저런 말을 했다면 코웃음을 쳤겠지만.

송현민은 적어도 여자 문제로 시끄러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박유신에게도 송현민처럼 야구만 해야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다고 세뇌하곤 했다.

“그런데 형. 형은 여자 만나보긴 했어요?”

박유성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송현민이 살짝 당황했다. 그러자 송광철이 대신 입을 열었다.

“현민이 저 녀석 연애 못 해봤다. 솔직히 남들 하는 거 다 하면 그 성적 못 내.”

“아니거든요? 저도 연애해 봤거든요?”

“팬들하고 꽁냥거리는 게 연애가 아니야 이놈아. 너 진짜 연애할 거면 그 팬클럽 없애라. 걔들 때문에 더 못 하는 거 같아.”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무슨 수로 없애요? 그리고 팬클럽 회원 숫자가 몇 명인 줄 알기나 해요? 50만이 넘어요. 50만이.”

“그래서? 나중에 걔들 중에 한 명하고 결혼하시게?”

“못 할 것도 없죠 뭐.”

실제로 송현민은 은퇴 후 오랫동안 자신을 좋아해 준 십년지기 팬과 결혼을 했다.

코인 사건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는 터라 여자를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그 팬은 팬 사인회 때 송현민이 나중에 자신이 아프면 치료해 달라는 말을 듣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의대에 들어갔을 정도로 열성팬이었다.

결혼 소식까지만 들어서 이후에 어떻게 지냈는지는 모르지만, 이번 3회차 때는 송현민이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인 엔딩은 막았으니까. 그 팬한테는 미안하지만 현민이 형도 연애 좀 해야지. 그러다 그 팬을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는 거고.’

송현민처럼 메이저리그는 못 갔지만.

그래도 알게 모르게 연애는 끊이지 않고 해온 입장에서 송현민의 연애를 응원해 주고 싶었다.

“아무튼 이제 가자. 늦겠다.”

박유성과 송현민은 송광철의 차를 타고 신성 호텔로 향했다.

“유성아. 너 정말 후회 안 하지?”

“저 현민이 형 믿고 계약한 거 아니고 아저씨 믿고 계약한 거예요. 그러니까 잘 부탁드려요.”

“야! 아까는 나 때문이라며?”

“야 인마. 널 뭘 믿고 나하고 계약하겠냐? 아무튼 네 뜻은 알았고 내일 중으로 부모님 만나 뵙고 얘기하마. 그럼 됐지?”

“네. 부모님한테도 미리 언질은 해놨으니까 계약서만 잘 준비하시면 될 것 같아요.”

“벌써?”

송광철은 박유성의 부모를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박유성이 올림픽에서 활약하면서 박명철에게 에이전트랍시고 수많은 사람이 찾아온다는 이선영의 말에 송현민을 언급하며 미리 약을 쳐놨기 때문이다.

미국 초대형 에이전시라 해도 박명철에게는 작년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송현민이라는 이름보다 앞서지 못했다.

게다가 고집은 세도 제 욕심에 자식들의 앞길을 막는 성격은 아니다 보니 다른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술 잘하세요?”

“술? 아버님이 술 좋아하시냐?”

“아버지는 좋아하시죠. 어머니는 싫어하시고.”

“하하. 그럼 가끔 좋은 술로 마셔야겠구나.”

“아버지는 같이 대작만 해주셔도 아저씨 좋아할 거예요.”

“그래도 능력으로 인정받아야지. 내가 이번에 현민이 계약하면서 노하우가 생겼거든? 그러니까 기대해라. 스타즈 기둥뿌리 하나 뽑아올 테니까.”

“그렇다고 진짜 기둥뿌리 뽑지는 마시고요. 저는 옵션도 좋아요.”

“충분히 달성 가능한 옵션이 차라리 편하다는 거지?”

“그래야 동기 부여도 되고요.”

박유성의 말에 송광철이 기특하다는 눈으로 룸미러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옆에 앉은 송현민에게 한마디 했다.

“현민아. 너도 좀 배워라. 얼마나 보기 좋냐?”

“왜 또 가만히 있는 날 건드려요?”

“넌 인마 레인저스에서 옵션 넣자는 거 결사반대했잖아.”

“그거 정후 형하고 백호 형이 받지 말라고 했거든요? 하나 받아주면 그 핑계로 계속 넣는다고?”

툴툴거리던 송현민이 고개를 돌려 뒷자리에 앉은 박유성을 째려봤다. 그러고는 악담하듯 말했다.

“너도 인마 적당히 까불어. 동기 부여? 너 그러다 4할에 옵션 걸리면 어쩔래?”

“치든 못 치든 노력은 해보는 거죠.”

“그래. 너 잘났다 인마. 아예 5할에도 옵션 걸고 100홈런에도 옵션 거세요.”

송현민이 코웃음을 쳤지만 박유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5할에 100홈런은 솔직히 자신 없지만 요즘 치는 거라면…… 4할은 한번 도전해 볼 만할 듯?’

낯선 투수들이 가득했던 올림픽에서도 7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했다.

하물며 이미 겪을 대로 겪어본 투수들을 상대로 안타를 때려내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런 박유성의 표정을 룸미러로 확인한 송광철이 피식 웃었다.

‘유성이 녀석. 진짜 자신 있나 본데? 그럼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신성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다른 선수들이 전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혼자서 늦었다면 엄청 눈치가 보였겠지만.

“죄송합니다. 차가 좀 막혀서요.”

송현민이 고개를 숙이며 앞장서자 자리하고 있던 기자들도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박유성이는 송현민이 껌딱지네.”

“몰랐어? 송현민이 박유성이 따로 스폰도 해주잖아.”

“스폰? 아, 장비 챙겨주는 거? 그게 무슨 스폰이야?”

“자기 스폰 받는 곳에서 글러브에 스파이크, 방망이, 보호장구까지 전부 챙겨주는데?”

“그런데 거긴 이제 박유성한테 따로 스폰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에이, 아무리 그래도 아직 고등학생인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지금 대한민국에서 박유성 모르는 사람 있어?”

기자들의 쑥덕거림을 뒤로하고 박유성은 자연스럽게 구석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러자 프로 야구 협회 직원이 다급히 다가오더니 귓속말을 전했다.

“박유성 선수는 가운데 앉아요.”

“네? 제가요?”

“아마협 관계자들도 올 겁니다. 합동 기자회견이라서요. 박유성 선수가 가운데 앉아야 해요.”

“아, 네. 알겠습니다.”

박유성이 가운데로 자리를 옮기고 잠시 후.

프로 야구 협회 장인석 총재와 한국 야구 협회 김영문 협회장이 동시에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왔다.

“아마협은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여길 온 거야?”

“왜 오긴. 박유성 때문에 온 거지.”

“에이, 그건 좀 염치없지 않나?”

“김 기자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막말로 아마협에서 박유성 데려가 봐. 그럼 여기 뭐가 남아?”

“하긴. 그것도 그렇네. 사진에서 박유성 빠지면 앙꼬 없는 찐빵이잖아?”

“그런 걸 떠나 기사 못 쓴다고. 올리면 비추만 잔뜩 찍힐걸?”

“그래도 프협하고 아마협이 사이좋게 악수하는 모습은 보기 좋네. 이것도 박유성 효과인가?”

“박유성 효과는 무슨. 기승전박유성이야 뭐야?”

“틀린 말은 아니지 뭐.”

상당수 기자들은 벌써부터 박유성을 인정하는 분위기였지만.

오선 스포츠 홍민호 기자는 달랐다.

아직 고등학생인 주제에 선배들 제치고 가운데 자리에 떡하니 앉아 있는 꼴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거 미튜브 생방 중이지?”

“아마 그럴걸?”

“나 잠깐 담배 한 대 태우고 올게.”

핑계를 대고 기자회견장을 빠져나온 홍민호 기자는 부계정으로 미튜브에 들어가 한국 프로 야구 협회 채널로 들어갔다.

[(생방송)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단 합동 기자회견]

방송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벌써 3천 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홍석철: 이제 시작인가요?

-야구사랑72: 기대기대 ㅋㅋㅋ

-최민용: 그런데 이거 화질이 왜 이래요? 원래 이렇게 구린가?

-한석귤: 하단에 화질 설정해 보세요.

-김혜영: 꺄앗! 병규 오빠아아~

-죽어도자이언츠: 영완이 형 해맑은 거 보니까 가슴이 아프다. 영완이 형! 고생했어! 형은 이제 자유야!

-손유정: 우윳빛깔 민병규! 사랑해요 민병규!

-국방부: 백영완 님. 입대 통지서 반송됐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ㅠ.ㅠ

-손아석: 영완 이즈 프리! ㅋㅋㅋㅋ

-사야인92: 채팅창 어질어질하네 ㅋㅋㅋㅋ

-고광열: 그런데 왜 금메달은 안 함?

-황윤철: 빨리빨리 시작해라. 이러다 날 새겠네.

-김재호: 금메달 나중에 단체 사진 찍을 때 보여주지 않을까요?

아직 기자회견 전이라서일까.

접속자에 비해 채팅이 올라오는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그래서 홍민호 기자도 냉큼 채팅을 올렸다.

-야구9단: 그런데 왜 박유성이 가운데 앉아 있지? 관종인가?

순간 수많은 물음표들이 올라왔지만 홍민호 기자는 느긋했다.

이 세상에 안티 없는 스포츠 선수는 없는 법.

일부라도 자신의 불만에 동조해 줄 거라 여겼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원하는 채팅은 올라오지 않았다.

-장윤경: ????

-황진욱: 채팅창 관리 좀 해야 할 듯. 일본 놈이 들어왔어.

-송인하: 아무튼 방구석 이선철들이 문제예요. 까면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앎.

-고윤태: 그 이선철도 못 까는 게 박유성임. 알고 말하세요.

-하연주: 박유성 선수 이번에 제일 잘한 선수 아니에요?

-김일호: 박유성 없었으면 금메달은커녕 4강 탈락했을 거라는 게 학계의 정설입니다.

-박인정: 인정 받고 인정이요~

-장태식: 솔까 박유성이 멱살 잡고 우승시킨 거임.

“아니 누가 박유성이 못했대? 태도가 문제라는 거잖아. 태도가.”

채팅창 반응에 짜증이 난 홍민호 기자는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야구9단: 박유성 혼자 야구했나요? 모두가 노력해서 우승한 겁니다.

이렇게 하면 분위기에 휩쓸려 동조를 못 한 이들이 냉큼 달려들 줄 알았건만.

-최인철: 너 님 신고요.

-황재민: 그냥 관종입니다. 무시하세요.

-송이현: 야알못인 저도 박유성 선수 덕분에 우승한 거 아는데 저보다 더 야알못인 분이 계신 듯?

-299: ㅋㅋㅋㅋ 진짜 왜 저러지?

오히려 비난 채팅만 쏟아졌다.

심지어는 홍민호 기자의 별명을 따라 한 이들까지 나타났다.

-야구10단: 9단아. 단수도 낮은데 왜 깝치니? 짜져 있으렴.

-야구8단: 형님. 정신 차리십쇼. 언제까지 박유성 안티짓 하고 다닐 겁니까? 처자식이 부끄럽지 않으세요?

-야구1단: 저분이 야구판에서 제명당한 그분인가요? ㄷㄷㄷ

-아구9단: 아구찜 시키신 분!

“이것들이 진짜?”

화가 난 홍민호 기자가 다시 채팅을 치려 했지만.

[미튜브 규정 위반으로 채팅이 금지됐습니다.]

신고 누적으로 인해 채팅 자체가 막혀 버렸다.

그때 저만치서 한 야구 관련 미튜버가 방송을 켠 채로 다가왔다.

“저기요. 기자회견장이 어디인가요?”

“뭐요?”

“야구 대표팀 기자회견장이요.”

“거기 아무나 못 들어가는데?”

“저 출입증 받았는데요?”

미튜버의 목에 걸린 출입증을 확인한 홍민호 기자가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1인 미디어 시대라지만 개나 소나 하는 미튜버에게 출입증을 발급해 준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그런 홍민호 기자의 표정을 읽은 미튜버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피했다.

그런데 갑자기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김재율: 엌 야구9단이다!

-황이나: 현장 검거 ㅅㅅㅅㅅㅅㅅ

-조윤호: 애나 님! 빨리 가서 이름 물어보세요! 빨리!

-홍윤철: 아까 이름 못 봤어요?

“이름이요? 홍민호 기자라고 써 있던데요?”

자신의 방송용 핸드폰에 홍민호 기자의 핸드폰 화면이 잠시 노출됐다는 사실을 모르던 미튜버는 별생각 없이 이름을 말해 버렸고.

그 소스가 야구 관련 커뮤니티로 퍼지면서 홍민호 기자의 치졸함이 전부 밝혀졌다.

└홍민호면 오선 스포츠 아님?

└맞아요. 작년에 송현민 MVP 못 받을 거라고 까던 인간.

└그 인간은 대체 정체가 뭐임?

└그냥 자신이 대단하다고 착각하는 인간임. 실제로 포시 예측 거의 다 틀림. ㅋㅋ

└랜더스는 잘 맞히던데요?

└랜더스는 고정이잖아요. ㅋㅋ

뒤늦게 커뮤니티 반응을 확인한 오선 스포츠 쪽에서 홍민호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다시 기자회견장으로 들어간 홍민호 기자는 핸드폰을 매너 모드로 돌려놓았다.

그러고는 질의응답이 시작되자 가장 먼저 손을 들어 마이크를 잡았다.

“박유성 선수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야구 커뮤니티들마다 박유성 선수 혼자서 멱살 잡고 우승시켰다는 얘기가 많은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