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173화 (173/412)

타자 인생 3회차! 173화

23. 라이징 스타(5)

송광철은 본래 송현민의 에이전트를 오래 할 마음이 없었다.

자신을 따라 야구를 한 조카가 최상규라는 사기꾼 같은 놈하고 계약한 게 신경이 쓰여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까지만 도와주고 그다음에는 전문 에이전시와 연결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하려다 보니 에이전시에서 뜯어가는 게 너무 많았다.

한국에서는 수수료를 거의 안 받아도 좋으니 맡겨만 달라던 에이전트들이 넘쳐났는데 나름 이름난 에이전시들은 송현민을 흔하디흔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취급했다.

그렇다고 눈을 낮추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 이 돈을 주고 이 정도 케어밖에 못 받으면 그냥 내가 하고 말지. 내가 하는 것하고 다를 게 없잖아?”

송현민이 시즌 초반 삽을 푸면서 배로 고생을 한 송광철은 이내 본격적으로 에이전트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넘어온 괜찮은 마이너리그 선수가 없나 찾아보는 중이었는데…… 초특급 대어가 웃으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얘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송광철이 송현민을 바라봤다. 어쩌면 둘이 짜고 자신을 놀리는 건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송현민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야, 내가 언제 완벽하다 그랬어? 잔소리만 많고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니까?”

“뭐 인마?”

“암튼 이건 아니야. 보관료 안 내도 되니까 헛소리 마. 어디 인생을 망치려 들어?”

“이놈의 자식. 그게 처자식도 버리고 너 따라서 미국 간 삼촌한테 할 소리냐?”

“뭐래요. 미국 와서 살이 5㎏나 쪄놓고.”

“그건 미국 음식이 고칼로리라 그런 거고!”

서로 아웅다웅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박유성이 피식 웃었다.

삼촌과 조카 사이니까 가족적인 분위기야 당연하겠지만 자신의 제안을 냉큼 받아들이지 않는 게 더 마음에 들었다.

“일단 두 분 진정하시고요. 저 스타즈 들어갈 거예요. 메이저리그는 빨라야 4년 후일 거고요.”

6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단한 선수가 FA 자격을 획득하려면 풀타임으로 9시즌을 뛰어야 했다.

대학 졸업 선수의 경우는 8시즌.

그마저도 해외 진출은 구분 없이 7시즌을 소화해야 가능했다.

하지만 FA 계약 대신 장기 계약을 하는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2023년 시즌부터 FA 자격 연한이 1년 단축됐고.

2024년 시즌 양대 리그 체제로 재편되면서 해외 진출 자격 연한도 1년이 줄어들었다.

그러다 2026년, 프로 야구의 경기력 저하를 염려한 프로 야구 협회에서 3명이었던 외국인 선수 보유 제한을 4명으로 늘리는 작업을 추진하자 프로 야구 선수 협회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프로 야구 선수 협회 소속 선수들 백여 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시즌 보이콧을 선언하자 전임 총재는 사태 해결에 자신의 자리까지 걸어야 했고.

결국 FA 자격 연한을 추가로 1년 더 줄이는 데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해외 진출 자격 조건도 5시즌까지 줄어들었다.

“4년이 아니라 5년 아니야?”

규정대로 5시즌을 꽉 채우고 레인저스에 입단한 송현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송광철이 냉큼 말을 받았다.

“유성이는 지금처럼만 하면 국대 점수로 1년 줄일 수 있어. 이번에 올림픽 금메달 딴 것만으로도 며칠인데?”

“그건 알죠. 그런데 그렇게 되면…….”

“국제 아마추어 계약을 해야 한다는 거지? 그거 조만간 21세로 낮춰질 거야.”

“네? 왜요? 누구 맘대로요?”

“이미 작년 노사 단체 협약 때 나왔던 얘기야. 2년 유예 기간을 가진 뒤에 적용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는데 지금 분위기상으로는 적용될 가능성이 유력해.”

2023년에 트윈스에 입단한 송현민도 국가대표로 벌어놓은 점수가 상당했다.

2024년 U-23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20점.

2025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8강에 진출하며 20점.

2026년 아시안 게임과 U-23 월드컵 우승으로 50점.

2027년 프리미어 12 준우승으로 40점을 얻었다.

5년간 국내에서 뛰며 벌어들인 총 점수는 130점.

풀타임 한 시즌 기준이 145일이고 1점을 1일로 계산해 보상이 이루어지는 만큼 자잘한 국제 대회에 참가해 15점만 더 따내도 해외 진출 1년 단축이 가능했지만 송현민은 무리하지 않았다.

만 23세 이하의 선수가 메이저리그로 넘어올 경우 국제 아마추어 규정에 따라 계약을 하는데 그렇게 되면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실제 오타니 쇼헤도 입단 당시 만 25세로 높아진 허들에 걸려 1억 달러 이상의 대박을 칠 기회를 날려 버렸다.

231만 5천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해 4년간 고작 450만 달러 정도의 연봉을 수령했다.

반면 1년을 더 기다린 송현민은 레인저스와 4년간 6천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그래서 박유성에게도 국내에서 뛰다가 5년을 채우고 메이저리그로 넘어오라고 조언을 했던 건데 국제 아마추어 계약 기준 연령이 21세로 낮아진다니!

“삼촌.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전화번호 알죠?”

“알겠냐?”

“좀 알아봐 줘요.”

“전화해서 뭐 하려고? 너 때는 왜 그랬냐고 따지려고?”

“억울하잖아요!”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막말로 개정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게 다름 아닌 넌데.”

송광철의 말처럼 송현민은 FA 개정 직후 프로에 들어왔다.

이후 프로 야구 선수 협회 보이콧 파동 덕분에 해외 진출 기간을 1년 더 줄였으니 앓는 소리를 할 자격이 없었다.

“그리고 유성이는 바짝 하면 3년으로 줄일 수도 있어.”

“3년이요? FA 개정 또 해요?”

“개정을 한 지 얼마나 했다고 또 해? 여기서 더 줄이면 구단들이 가만있을 거 같아?”

“그럼 무슨 수로요?”

“국제 아마추어 계약 조건이 완화되면 프로 야구 협회에서도 길을 만들어줄 거야. 지금으로서는 국대 포인트 활용성을 높이는 게 유력하고.”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알아듣게 좀 설명해 줘요.”

“그러니까 지금은 국대 포인트로 1년 단축이 최선이잖아? 그걸 2년까지 가능하게 늘려준다고.”

“포인트는 그대로 가고요?”

“그것도 조금씩 올린다고 하더라. 개정되면 바로 적용될 예정이고.”

송광철의 시선이 박유성에게 향했다.

송현민이 놀라는 만큼 박유성도 놀라워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앞서 1회차와 2회차를 겪은 박유성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올 연말이 되면 2027년 노사 단체 협약 조건부 조항이었던 국제 아마추어 계약 연령이 21세로 낮춰진다.

약간의 진통을 겪긴 하지만 슈퍼 2 조항과 최저 연봉 인상 등을 통해 마이너리그 및 메이저리그 저연차 선수들의 처우 개선이 상당 부분 이루어진 터라 메이저리그 선수 노조도 마냥 반대하지 못했다.

아마추어 계약 연령 개정이 발표되면 송광철의 예상대로 프로 야구 협회에서 국가 대표 포인트 제도 개선에 나선다.

메이저리그에서 허들을 낮췄다고 해서 프로 구단들에게 무조건적인 양보를 강요할 수는 없는 일.

심지어 일본은 구단이 허락하면 언제든 해외 진출이 가능하고 대만도 해외 진출 자격 조건이 3년이라 어떻게든 형평성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제가 2년이나 줄일 수 있을까요?”

이번 LA 올림픽 야구 우승으로 박유성이 얻은 점수는 60점.

내년에 있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쉽지 않겠지만 U-23 야구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 프리미어 12, 그리고 호주 올림픽까지 참가하면 85점 정도는 충분히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2년도 가능하다고 하니까 귀가 솔깃해졌다.

그러자 송현민이 보란 듯이 핀잔을 줬다.

“와, 이놈 봐라? 1년도 감지덕지지 무슨 2년이나 욕심내?”

“유성이 정도면 욕심낼 만하지. 일단 포인트 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부터 체크해야겠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그리고 가능성이 있다면 부딪쳐 보는 게 낫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송광철의 말에 박유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1회차 시절에는 10년 만에 태극 마크를 달았고.

2회차 시절에는 4년 빨리 국가 대표 선수가 됐다.

그리고 이번 3회차 때는 프로에 가기도 전에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예전에는 해외 진출은 꿈도 못 꿨지만 이번에는 달라. 기왕 마음먹은 거 한번 죽어라 해보자.’

앞으로 3년간 국가대표 포인트가 걸린 모든 국제 대회에 나가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3회차 인생을 사는 만큼 목표를 빡빡하게 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저기, 박유성 선수?”

저만치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민찬수의 에이전트였던 윤나라 대표가 웃으며 다가왔다.

“나 기억하죠?”

“네. 윤나라 대표님이시잖아요.”

“기억해 주니까 고맙네요. 픽업 온 사람 없죠? 괜찮으면 나하고 같이 이동할래요?”

“대표님하고요?”

“가는 길에 박유성 선수하고 할 얘기도 있고요.”

윤나라 대표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송현민이 박유성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무슨 얘기를 하시려고요?”

“그건 비밀인데요? 궁금하면 송현민 선수도 제 차로 같이 가든가요.”

민병규였다면 윤나라 대표의 말에 홀딱 넘어가 박유성의 손을 잡아끌었겠지만 송현민은 달랐다.

“대표님. 유성이 미성년자입니다. 이런 식으로 영업하시면 안 돼요.”

“이런 식으로라니요? 송현민 선수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 기분 나쁘게 만드는 재주가 있네요?”

“시상식 참석하는 배우도 아니고 옷차림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송현민 선수야말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요. 헐리우드 안 봤어요? 에이전트라고 수수하게 입고 다니면 오히려 욕먹어요. 이렇게 신경 써서 입는 게 매너라고요.”

앞서 송현민에게 거절을 당했던 한을 풀듯 윤나라 대표가 언성을 높였다.

그렇게 하면 다른 선수들처럼 박유성도 자신에게 마음이 기울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박유성은 자신을 꾸미는 게 먼저인 에이전트보다 자신의 선수를 위해 땀 흘리는 에이전트를 원했다.

“저기, 대표님?”

“네. 박유성 선수.”

“혹시 에이전트 계약 때문에 오신 거라면 죄송합니다. 이미 계약한 곳이 있어서요.”

“그래요? 경기 치르느라 정신없었던 우리 박유성 선수가 누구하고 계약을 했을까요?”

윤나라 대표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박유성이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적당히 둘러댄 말이라 여겼다.

하지만 박유성이 송광철을 바라보자 윤나라 대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서, 설마?”

“오랜만입니다. 윤 대표님. 잘 지내셨죠?”

“정말이에요? 정말 박유성 선수하고 계약했어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우리 박유성 선수에게 따로 볼일이 있으십니까?”

송광철이 여유롭게 되묻자 윤나라 대표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박유성과 계약하기 위해서 S급 연예인들만 받는다는 강남 헤어숍까지 다녀왔는데 이렇게 물을 먹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하필 계약 상대가 자신을 물먹였던 송현민의 삼촌이라니.

“하아, 진짜 X같네.”

자신도 모르게 속의 말을 내뱉은 윤나라 대표가 홱 하니 몸을 돌려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고.

그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던 송현민이 박유성에게 조언하듯 말했다.

“유성아. 저런 여자 조심해라. 여자는 외모가 전부가 아니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