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171화 (171/412)

타자 인생 3회차! 171화

23. 라이징 스타(3)

“저희 고등학교 수석 코치님이요.”

“신성 고등학교 수석 코치님?”

“김석률 코치님이라고 아마 모르실 거예요.”

슬쩍 운을 떼면서 박유성이 박준수와 송찬우의 표정을 살폈다.

그래도 현역 시절에 나름 유명했다고 해서 내심 기대를 했는데 박준수와 송찬우는 정말 모르는 눈치였다.

“그분 스타일이 어때? 무한 경쟁 추구하고 그러시니?”

“프로에서 경쟁은 피할 수가 없죠. 그래도 잘하는 선수는 존중해 주세요. 저도 학교에서 거의 터치 안 함.”

“오호, 진짜?”

“투수 쪽 운영은 어때? 수석 코치니까 전체 다 보시는 거지?”

“방금 말했잖아요. 잘하는 선수는 존중해 주신다고. 고등학교하고 프로 구단은 다르니까 조금 엄하게 하실 것 같긴 한데 일단 형들은 걱정할 필요 없을 겁니다. 누가 잔소리 안 해도 알아서들 잘하잖아요?”

박유성만큼은 아니지만 박준수는 프로에서 16년간 활약했다.

송찬우도 마찬가지.

메이저리그에서 10년을 꼬박 채운 뒤에 박준수보다 1년 앞서 은퇴를 선언했다.

둘 다 전성기가 끝나고 에이징 커브에 접어들 무렵에 미련 없이 옷을 벗었다.

그걸 뒤집어 말하자면 오랜 전성기를 유지할 만큼 자기 관리에 철저했다는 의미.

김석률 수석 코치가 약간 시어머니 같은 스타일이라 하더라도 박준수와 송찬우를 들들 볶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박준수와 송찬우는 그 정도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비록 프로 야구 팬들에게는 아마추어 감독 소리를 듣긴 했지만.

박준수는 1년 차 때부터 자신을 붙박이 주전으로 써준 박흥선 감독을 은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송찬우도 사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바로 연락했을 만큼 박영천 감독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렇다 보니 새로 부임하는 김석률 수석 코치의 스타일이 신경 쓰였다.

“감독님이 싫어하시는 건 뭐야?”

“그냥 연습 안 하고 게으름 피우는 거요?”

“그건 당연한 거지. 게으름 피우는 걸 좋아하는 감독이 어디 있냐?”

“흠……. 그리고 염색을 과하게 하거나 문신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세요. 피어싱도요.”

“많이 보수적이셔?”

“피어싱 한 선수 중에 공 맞고 귀 찢어진 선수 있다면서요?”

“아, 그거? 정확하게는 견제구 맞았지.”

“야구하다 다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뭐. 문신도 안 보이는 데 하면 괜찮은데 요즘 선수들은 일부러 과시용으로 하니까요.”

“그래. 찬우 같은 놈이 팔뚝에 문신하면 딱 조폭이지. 누가 야구 선수로 보겠냐?”

“사돈 남 말 하네. 네 얼굴이 더 불량하거든?”

“그리고…….”

박유성은 1회차 시절과 2회차 시절의 기억을 쥐어짜 내 김석률 수석 코치에 대해 알려주었고.

박준수와 송찬우는 송현민이 올 때까지 나란히 앉아 박유성의 말에 부지런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다음 날.

[스타즈, 박흥식 감독 후임으로 신성 고등학교 김석률 수석 코치 선임!]

[스타즈 김석률 감독 선임. 박흥선 감독에 이어 다시 한번 아마추어 지도자로.]

후임 감독에 대한 기사가 발표됐다.

└김석률이 누구야?

└75년생. 배대고 출신. 94년에 베어스 5라운드 픽으로 입단. 계약금은 5천만 원이었고 95년부터 1군에서 활약. 2001년까지 베어스에서 뛰다가 유니콘즈, 트윈스 거쳐 은퇴. 통산 타율 0.285 홈런 75개. 중장거리 타자로 외야 전 포지션 수비 가능했다고 함.

└나우위키 긁어오셨나요? ㅋㅋ

└나우위키는 이렇게 요약 안 되어 있죠.

└스타즈는 무슨 생각으로 아마추어 코치를 감독에 앉힌 걸까?

└아마추어 지도자이긴 한데 일본과 미국에서 자비로 연수받았으니까 쌩아마추어는 아닙니다.

└어디서 연수받았는데요?

└도쿄 자이언츠에서 5년, 메츠 산하 더블 A와 트리플 A 구단에서 5년 코치 생활 함.

└헐, 총 10년임? 그런데 왜 아마추어 지도자로 간 거임?

└미국에서 마이너리그 선수들 가르치다가 뭔가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프로 구단 오퍼 거절하고 일부러 초등학교 야구부부터 시작하셨대요.

└이력 보니까 신성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전부 다 가르쳤네요. ㄷㄷ

└혹시 신성에서 연수 지원해 준 거임?

└그건 아니고 워낙에 평이 좋아서 신성 재단에서 계속 계약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들 아마추어 지도자라는 것에 꽂힌 거 같은데 프로에서 한가락 하셨던 분이고 해외 연수만 10년을 하신 분입니다.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주세요.

└레전드 감독 아니라 서운한 건 저뿐인가요?

└저도 레전드 감독 기대했는데 ㅠ.ㅠ

└감독이 레전드 출신이면 뭘 합니까. 팀이 잘해야죠.

└프로야구 명장 중에 레전드 출신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레전드 출신일수록 성적을 못 냈죠. 스타즈 구단에서도 심사숙고해서 결정을 내렸을 테니까 믿어봅시다.

처음 기사가 났을 때만 해도 커뮤니티에는 아쉽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파이터즈에서 송찬우를 데려왔고 박유성의 우선 지명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또다시 아마추어 지도자 체제를 유지하려는 스타즈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상당했다.

하지만 베이스볼 패치 기사가 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박유성을 각성시킨 진짜 지도자, 김석률.]

[스타즈 박흥선 감독이 갑작스럽게 사임하면서 스타즈의 차기 감독 자리를 두고 많은 야구인들이 관심을 표명했다.

스타즈 팬들도 우승 경력이 있는 감독이나 레전드 출신 감독을 영입할 때라며 차기 감독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스타즈의 선택은 신성 고등학교 김석률 수석 코치였다.

구단의 발표 후 스타즈 공식 홈페이지 소통 창구인 반짝반짝에는 김석률 수석 코치에 대해 의문을 품는 글들이 쏟아졌다.

스타즈가 프로 야구판에 확실히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또다시 아마추어 지도자를, 그것도 감독이 아닌 수석 코치를 선임한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 기자도 같은 의문을 가지고 스타즈 김재식 단장을 찾아갔다.

최근 이루어진 트레이드와 시즌 재개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 시간을 내준 김재식 단장은 김석률 수석 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한 이유를 단 한마디로 정리했다.

“김석률 감독님이 키워낸 선수가 박유성 선수입니다. 스타즈에는 박유성 선수처럼 재능 있는 유망주들이 많고요.”

올해 혜성처럼 나타나 전 세계 야구팬을 깜짝 놀라게 만든 박유성은 신성 고등학교 선수다. 그리고 그런 박유성을 입학 때부터 가르쳤던 게 바로 김석률 수석 코치였다.

김석률 수석 코치에 대한 고교 야구 현장의 평가는 한결같았다.

“진정한 지도자죠. 선수들을 허투루 가르치는 법이 없습니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김선근 감독님이 직접 펑고를 치며 수비 연습을 시키셨잖아요? 김석률 코치님이 그런 스타일입니다. 선수들과 직접 부딪치세요.”

“김석률 코치님은 정말 겸손하십니다. 새까만 후배들에게도 먼저 찾아가 손을 내미시고 인사를 해주세요. 조언을 구하면 마다하지 않으시고요.”

“다들 김석률 코치님은 아마추어 야구계에 있을 분이 아니라고 생각할 겁니다. 일본과 미국에서 10년간 자비로 공부를 하고 오신 분이에요. 그 열정을 썩히면 안 되죠.”

참된 지도자.

열정적인 지도자.

프로 야구만큼이나 성적 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아마추어 야구계에서 김석률 수석 코치만큼 모두에게 인정받는 지도자는 손에 꼽혔다.

하지만 정작 김석률 수석 코치는 박유성을 키워냈다는 평가에 손사래를 쳤다.

“유성이는 원래 잘하던 녀석입니다. 집중력과 끈기가 조금 아쉬웠는데 작년 겨울에 그 벽을 허물더라고요. 아무래도 선발로 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실한 동기 부여가 됐던 것 같습니다. 정말이에요. 제가 특별히 뭘 더 가르치거나 한 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김석률 수석 코치는 선수 육성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프로 경력은 없지만 지도자로 25년간 경험을 쌓았습니다. 구단이 원하고 선수들이 원한다면 제 노하우를 전부 전수해 줄 생각입니다.”

조금 더 이름값 있는 감독을 원했던 스타즈 팬들에게 김석률 수석 코치는 최고의 대안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유성을 필두로 조금 더 성장해야 하는 스타즈에게 김석률 수석 코치는 좋은 대안이 될 거라 확신한다.]

[베이스볼 패치 나영진 기자]

기사가 나가자 반짝반짝 게시판의 여론이 180도 바뀌었다.

[15123. 구단의 결정을 적극 지지합니다 (21)]

[15124. 김석률 감독님. 환영합니다! (123)]

[15125. 김석률 감독님. 제2의 박유성, 제3의 박유성 기대합니다! (42)]

[15126. 프로 감독이면 어떻고 아마추어 감독이면 어떻습니까? 팀만 잘 이끌면 되는 거죠. (14)]

[15127. 솔직히 레전드 선수 출신 감독 기대했는데 아직은 이른 것 같습니다. (21)]

[15128. 김석률 감독님. 박유성 선수를 프로 야구 최고의 선수로 만들어주세요! (63)]

베이스볼 파크 분위기도 덩달아 달라졌다.

└박유성 키운 게 진짜 김석률 감독임?

└김석률 감독이 말만 수석 코치지 실질적인 감독임.

└그럼 감독은 뭐 함?

└나승균 감독은 총괄 느낌이고 선수들 지도하는 건 김석률 수코가 다 했다고 하더라고요.

└내 조카가 신성 고등학교 다니는데 박유성이 사람 만들겠다고 김석률 감독이 그렇게 펑고를 때렸다고 합니다.

└펑고가 사람을 만든다. by 김선근

└그런데 펑고 때리는 게 특별한 건가요?

└김석률 수코 펑고를 지옥의 펑코라고 부른답니다. 장난 아니래요.

└연수 이력을 보세요. 도쿄 자이언츠에서만 5년입니다. 육성군 선수들 굴리던 실력이 어디 가겠습니까?

└참고로 그 지옥의 펑고를 올클리어한 선수가 딱 1명이라고 함.

└설마 제가 아는 그 선수인가요?

└갓유성!

└박유성 선수 수비 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났는데 괜히 수비를 잘하는 게 아니었네요.

베이스볼 패치 이후로 김석률 수석 코치에 대한 우호적인 기사가 줄을 잇자 김석률 수석 코치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자신에 대한 평가가 높아질수록 나승균 감독의 꼴이 우스워졌기 때문이다.

“감독님.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가 있어? 틀린 말은 하나도 없던데.”

“아닙니다. 감독님. 감독님이 안 계셨으면 제가 어떻게 수석 코치 노릇을 했겠습니까?”

“괜찮다니까 그러네. 김 코치, 아니, 김 감독.”

“감독님.”

“그 마음이면 됐어. 내가 자네를 하루 이틀 봐?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더 잘 알아. 그러니까 괜한 거 신경 쓰지 말고 가서 잘해. 그리고 이 정도는 깔고 가야 선수들이 무시를 못 하지. 안 그래?”

나승균 감독은 신경 쓰지 말라며 김석률 수석 코치를 달랬다.

처음에는 자신을 허수아비 취급하는 언론의 행태가 괘씸했지만.

자신의 밑에 있던 김석률 수석 코치가 12명뿐인 프로 야구 감독이 된다는데 이 정도쯤은 감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 코치하고 배 코치는 시즌 끝나고 데려갈 거라며?”

“네. 아직 시즌이 남아 있어서요. 잔여 시즌 동안에는 지금의 코치진을 끌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자네도 프로 생활을 했으니까 잘 알겠지만 어차피 코치들은 라인 따라 움직이는 거야. 듣자 하니 박흥선 감독이 내년에 파이터즈에 갈지도 모른다면서?”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런 얘기가 나도는 것 같습니다.”

“박흥선 감독이 코치들에게 얼마나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떠나겠다는 사람한테 괜히 정 주지 마. 자네는 자네 사람을 키워. 그게 맞아.”

“네. 감독님.”

“암튼 내년부터는 나도 스타즈 좀 응원해야겠어.”

“감독님 베어스 아니셨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자네하고 유성이가 있는데 스타즈 응원해야지. 안 그래?”

나승균 감독이 껄껄 웃었다. 신성 재단과 스타즈는 별개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자신이 아끼는 후배와 애제자가 스타즈에 간 이상 최애팀을 갈아타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틀 후.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선수들이 올림픽 선수단과 함께 김포 공항으로 입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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