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170화
23. 라이징 스타(2)
2회차 시절 박유신이 다저스에 입단하면서 받은 금액은 총 1억 달러.
6년 계약으로 연평균 1,667만 달러 정도였다.
물론 달성 가능한 옵션들이 주렁주렁 붙어서 해마다 2천만 달러 이상을 수령하긴 했지만.
연평균 계약만 놓고 봤을 때 16년 앞서 레인저스와 계약한 송현민과 큰 차이가 없었다.
“유신이가 좀 운이 없는 케이스이긴 했어. 현민이 형 이후로 메이저리그에 가서 성공한 선수가 없었으니까.”
현재 레인저스에서 팀 내 타율 1위를 질주 중인 송현민도 앞선 회차 때는 이만큼 잘하지 못했다.
초반에 삽을 푸다가 겨우 밥값을 할 때쯤 코인 사건이 터지면서 불명예스러운 은퇴를 결정해야 했고.
덕분에 이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린 한국 타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아닌가? 현민이 형하고 나이 차이가 좀 나서 그나마 계약을 잘 받은 편인가? 암튼 이번 3회차 때는 나를 우러러보게 만들어야겠어.”
이미 박유신을 야구 선수로 키우겠다는 목표는 달성했다.
2회차 시절까지 야구 선수는 하나로 족하다던 아버지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야구 쪽으로 마음을 돌렸고.
어머니도 첫 번째가 어렵지 두 번째는 쉬울 거라며 박유신 메이저리그 보내기 프로젝트에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
“유선이는 뭐 같은 구기 종목인 걸로 만족해야지.”
여자 축구처럼 여자 야구가 활성화됐다면 박유선에게도 야구를 권해보겠지만.
박유신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던 시기에도 여자 야구 쪽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야구 바람이 불 때마다 해오던 여자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야구를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그때까지도 인기였을 정도.
“암튼 박유신. 이 형님이 허들을 확 올릴 테니까 각오 단단히 해라.”
LA 올림픽 금메달을 어루만지며 박유성이 씩 웃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야구 종목 최연소 국가대표 금메달리스트 기록은 박유신이 쉽게 깨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 문이 열리고 박준수와 송찬우가 들어왔다.
“또 왜 왔어요?”
박유성이 싫은 기색을 내자 두 사람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 찬우야. 언제부터 대표팀 막내가 침대에 누워서 선배들한테 인상 썼냐?”
“괜히 막내 온 탑이 아니야. 박유성 인성질 대단해.”
“무슨 이게 인성질이에요? 쉴 만하면 허락도 없이 찾아오는 형들이 갑질인 거지.”
“와, 박유성 말 잘하는 거 봐. 그렇게 말을 잘하면 정치를 하지 야구를 왜 했대?”
“모르지. 야구 은퇴할 때쯤 정치하겠다고 나설지도.”
“하긴. 이젠 야구 선수 중에서도 국회의원이 나올 때가 됐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던 박준수와 송찬우가 의자를 끌고 와 박유성의 앞쪽에 앉았다. 그러고는 박유성을 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유성아. 스타즈 입단할 거지?”
“형도 스타즈 가는데 몇 년만 같이 하자.”
“겨우 그 얘기 하려고 온 거예요?”
“겨우라니. 지금 언론에서 난리도 아니야.”
박준수가 핸드폰으로 쏟아지는 기사들을 보여주었다.
김석률 수석 코치와 통화하기 전에 훑어봤는데 그사이에 몇 개가 더 올라온 것 같았다.
“유성아. 솔직히 내가 낫냐 병규가 낫냐?”
“갑자기요?”
“갑자기가 아니라 누가 더 낫냐고.”
“성적만 놓고 보자면 형이 살짝 더 낫긴 하죠? 팀 공헌도는 형이 확실히 위고요.”
“그렇지? 내가 낫지? 그런데 나 작년에 병규한테 골글 밀렸다. 알지?”
2024년 양대 리그로 개편된 이후 나눔 리그 1루수 골든 글러브는 3년 연속 외국인 타자들이 수상했다.
2024년에는 스타즈의 마이크 부시가 차지했는데 신생 구단 특혜로 외국인 선수를 4명까지 보유할 수 있었던 스타즈에서 메이저리그에서 퇴물 소리를 듣던 마이크 부시를 영입하면서 클린업 보강에 나섰고 마이크 부시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며 스타즈 첫 골든 글러브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런 스타즈의 행보에 자극을 받은 타이거즈는 이듬해 해롤드 데이비스를 영입해 8년 만의 통합 우승을 차지했고.
팀 우승에 크게 기여한 해롤드 데이비스는 성적이 비슷했던 마이크 부시에게서 골든 글러브 트로피를 빼앗았다.
2026년.
신생팀에게 주어지던 2년간의 특혜가 끝이 나고 모든 구단이 4명의 외국인 선수를 보유할 수 있게 되자 대다수 구단에서 투수 보강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자이언츠는 메이저리그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치던 에릭 호머가 시장에 나오자 일단 영입부터 하고 봤고.
투수 2명 타자 2명으로 시즌을 시작하게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자이언츠 팬들은 구단의 바보 같은 행태를 맹비난했지만 에릭 호머가 연일 홈런포를 쏘아내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리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에 에릭 호머의 결승 홈런으로 랜더스를 밀어내고 나눔 리그 1위에 오르자 부산 전역이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비록 지역 라이벌인 다이노스에게 패배하면서 사상 첫 통합 우승의 꿈은 미뤄졌지만 에릭 호머를 비롯한 자이언츠 선수들이 골든 글러브 시상식을 휩쓸며 준우승의 아쉬움을 달랬다.
시즌 직후 자이언츠 구단과 장기 계약을 맺은 에릭 호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이언츠의 통합 우승과 MVP 2연패를 목표로 내걸었다.
그러나 준우승 직후 단행된 리빌딩의 여파로 팀 성적이 추락하면서 MVP는커녕 골든 글러브 수상도 실패로 돌아갔다.
그런 에릭 호머를 대신해 골든 글러브 유력 수상자로 거론된 게 랜더스의 민병규와 스타즈의 박준수.
고교 시절부터 라이벌이라 누가 골든 글러브를 탈 것인가를 두고 베이스볼 파크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는데 결국 민병규가 국내 선수로는 처음으로 나눔 리그 1루수 골든 글러브를 받게 됐다.
엇비슷하던 시즌 성적이 막판에 확 갈려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병규가 받을 거라고 예상은 했어. 타율도 나보다 2푼 더 높았고 타점도 조금 더 많았으니까. 팀 성적까지 고려하면 병규가 받는 게 맞지. 그런데 너 투표 결과 봤냐?”
“아뇨. 그것까지는…….”
“더블스코어 정도였으면 말도 안 한다. 거의 5배 차이 났어.”
“헐, 그 정도나요?”
“나 아는 기자님이 그러더라. 개인 성적이 비슷하면 팀 인지도와 성적 따라가게 마련인데 랜더스는 넘사라고. 나 이러다 평생 골글 못 탈지도 몰라.”
박준수의 푸념에 송찬우가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송찬우도 해마다 골든 글러브 투수 부분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성적에 비해 득표수는 저조한 편이었다.
“그러니까 형 골글 타게 스타즈 오라는 거죠?”
“너는 참 말을 서운하게 한다. 네가 오면 나도 골글을 탈 수 있다는 거지. 내가 설마 골글 때문에 이러겠니?”
진심으로 서운해하는 박준수를 보며 박유성이 피식 웃었다.
앞선 회자에서는 박준수와 이렇게 따로 얘기를 해본 적이 거의 없어서 잘 몰랐는데 말하는 게 꼭 신성 고등학교 동료인 김병욱을 보는 것 같았다.
“형. 병욱이 알아요?”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병욱이가 누구인데?”
“있어요. 형하고 똑같이 말하는 동기요.”
“그래? 걔 야구 잘해?”
“장타력은 있는데 약간 공갈포 느낌?”
“그럼 나 아니네.”
공갈포라는 말에 박준수가 선을 그었다. 하지만 송찬우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딱 너 맞는데.”
“내가 공갈포라고?”
“너 고등학교 땐 공갈포였어. 하나만 걸려라 하고 무식하게 방망이 휘둘렀잖아.”
“그건 병규고.”
“그래도 병규는 가져다 맞힐 줄은 알았지. 그리고 너, 프로 통산 타율 병규한테 밀리잖아?”
“홈런은 내가 더 많이 쳤거든?”
“그러니까. 병규 기준으로 보면 넌 공갈포라고. 상대적인 공갈포.”
“네. 만년 꼴찌팀 에이스 씨. 잘나셨네요.”
“나 이적했거든?”
“그래요. 전 만년 꼴찌팀 에이스 씨.”
박준수가 비아냥거리자 송찬우가 얼굴을 구겼다. 그러고는 박유성을 보며 말했다.
“유성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3연패만 하고 가라.”
“3연패요?”
“그래. 3연패. 나 솔직히 딱히 미국 가고 싶은 마음 없거든? 파이터즈는 떠나야겠으니까 일단 해외 진출하겠다고 마음먹은 건데 미국에서 잘 먹고 잘살 자신이 없다.”
“그래도 이번 올림픽 때 잘했잖아요?”
과거와 달리 송찬우는 이번 올림픽에서 2승을 거두며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의 눈도장을 제대로 받았다.
그것도 미국 대표팀과 일본 대표팀을 연달아 잡아냈으니 과거보다는 더 좋은 조건을 받을 터.
상황이 좋아진 만큼 송찬우도 분명 욕심을 낼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자 옆에 앉은 박준수가 넌지시 말을 이었다.
“찬우 폐소공포증 있어.”
“헐, 진짜요?”
“미국 올 때도 수면제 먹고 잤잖아. 몰랐어?”
“난 그냥 피곤해서 자는 줄 알았죠.”
“야. 곰도 아니고 무슨 열몇 시간을 자냐?”
“사람보고 곰이라니?”
“뭐래. 별명이 코리안 헐크인 놈이.”
박준수도 체격이 건장한 편이지만 송찬우는 언더 셔츠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몸이 좋았다.
송찬우의 벗은 몸을 보고 여자 연예인들과 인플루언서들이 꾸준히 연락해 올 정도였다.
“얘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 그런데 자기가 폐소공포증인 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운동만 하다 이렇게 된 거야. 한마디로 무식한 짓을 한 거지?”
“그 무식한 놈한테 한번 맞아볼래?”
“깽값 물 자신 있으면 때려보시든가. 참고로 내 연봉이 너보다 훨씬 더 많은 거 알지?”
송찬우가 죽일 듯이 박준수를 노려봤고.
그런 송찬우를 박유성은 감탄하듯 바라봤다.
‘그러니까 폐소공포증인데도 메이저리그에서 그만큼 했던 거야? 이 형도 괴물이었네.’
한국보다 100배나 넓은 미국은 구단 버스를 타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가까운 거리든 먼 거리든 무조건 구단 전세기를 타고 움직이는데 휴식일도 거의 없다 보니 송찬우 입장에서는 죽을 맛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찬우 형.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뭐?”
“만약에 형이 계속 파이터즈 소속이에요.”
“끔찍한 소리 마라.”
“만약에요. 그래서 내년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고 쳐요. 그럼 어떻게 할 거 같아요?”
“어떻게 하긴. 이 악물고 버텨야지.”
“폐소공포증은 어떻게 하고요?”
“유성아. 너 폐소공포증보다 더 무서운 게 뭔 줄 아니?”
“파이터즈?”
“그래. 잘 아네. 폐소공포증은 질병이니까 감내할 수 있는데 파이터즈는 아냐. 그건 내 인생을 포기하는 기분이라고.”
박유성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1회차와 2회차를 통틀어 파이터즈에서만 26년(2군 시절 포함)을 뛰었으니 송찬우의 심정이 누구보다 이해가 됐다.
‘찬우 형 메이저리그 가고 받은 이적료로 구단 살림이 한동안 좋아졌는데도 그 모양이었으니까 말 다 한 거지.’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송찬우는 국내에 복귀하면 무조건 파이터즈로 돌아와야 했다.
어쩌면 자신이 있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파이터즈를 보며 국내 복귀의 꿈을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
“그래요. 형. 형도 행복해질 자격이 있어요.”
“그래. 찬우 녀석도 행복해지고 나도 좀 행복해지자.”
“많이 바라는 것도 아니야. 딱 3연패만 하자. 알았지?”
“메이저리그에서 1억1달러쯤 준다면 모를까 그 이하로는 당장 갈 생각 없으니까 걱정 마요.”
박유성이 속내를 털어놓자 박준수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 이 자식 욕심 봐라? 포스팅도 아닌데 1억? 그런데 1달러는 뭐야? 팁이냐?”
“그런 게 있어요. 그보다 형들. 새 감독님 누군 줄 알아요?”
“누군데?”
“너 뭐 아는 거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