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168화 (168/412)

타자 인생 3회차! 168화

22. 어메이징 썬(12)

신상욱 회장의 중재안이 전달되자 프로 야구 협회 장인석 총재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무슨 기자회견을 아마협하고 같이 합니까?”

“일단 박유성 선수가 아마추어 선수 신분이라서요.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애당초 올림픽 야구 대표팀만의 별도 기자회견을 진행하겠다고 결정한 건 들러리를 서지 않기 위해서였다.

대통령과 문화체육부 장관이 오는 자리에 프로 야구 협회 총재가 껴봐야 병풍 노릇이나 하게 될 터.

그보다는 따로 기자회견을 진행해야 체면도 서고 생색도 낼 수 있었다.

문제는 박유성의 신분이었다.

올림픽 선수단 전체 기자회견장으로 들어가면 상관없지만 프로 야구 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주도하면 한국 야구 협회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한 다음에 따로 날을 잡으면 되는 일 아닙니까?”

“그렇게 하기에는 저쪽도 사정이 급한 모양입니다.”

“급해요?”

“김영문 협회장도 연임을 준비 중입니다. 박유성 선수를 앞세워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다음번 선거 때 밀릴지도 모릅니다.”

“하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던 장인석 총재가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저 이름만 올린 선수였다면 한국 야구 협회에서 데려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겠지만.

야구 종목을 넘어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 중에 최고의 활약을 펼친 박유성을 빼고 기자회견을 여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장소를 협찬해 주는 신성 그룹에서 중재를 해왔으니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합시다. 대신에 플래카드는 무조건 우리 이름이 먼저 들어가야 합니다.”

“그럼요. 그건 절대 양보 못 합니다.”

“자리 배치도 신경 써달라고 요청하세요.”

“저희가 문 쪽 자리에 앉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장인석 총재를 어르고 달랜 뒤 신세혁 사무총장은 자리로 돌아와 배연석 과장을 불렀다.

“이번에는 우리가 제대로 한 방 먹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설마하니 신성 그룹 쪽에 직접 요청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아닙니다. 아마협 사정도 있을 텐데 헤아리지 못한 내 잘못입니다. 그보다 언론 브리핑 준비는 다 됐습니까?”

“네. 주요 언론사에 연락 돌렸습니다.”

“분위기는 어때요?”

“결승전 전까지만 해도 반반이었는데 박유성 선수가 MVP까지 받았으니까 스타즈에서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농협식 드래프트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농협하고 우리는 구조 자체가 다른데 농협 방식을 따라 할 수는 없죠.”

“트레이드 발표 나면 또 시끄러워질 테니까 배 과장이 신경 좀 써줘요.”

“그렇지 않아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방식을 참고한 보도 자료를 만드는 중입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역시 배 과장이에요.”

신세혁 사무총장이 쓰린 속을 달래며 언론 대응을 논의하던 그 시각.

김영문 협회장과 송기섭 과장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잘했습니다. 송 과장.”

“아닙니다. 협회장님. 순리대로 됐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신성 그룹에 공문을 넣을 생각을 했습니까?”

“프협 하는 꼴을 보니까 차일피일 답을 미루다가 대충 넘어가려는 속셈인 거 같아서 눈 딱 감고 질렀습니다. 신성 그룹도 반쪽짜리 기자회견을 하고 싶지는 않을 테고요.”

“단독 기자회견을 못 한 건 아쉽지만 그래도 프협과 같이하는 게 낫겠죠?”

“그럼요. 협회장님. 프협에서 저희를 뭐라고 부릅니까? 아마협이라 부르지 않습니까? 프로와 아마추어는 다르다고 말하는데 기자회견장에 함께 앉아 있으면 얼마나 보기 좋겠습니까?”

“아무튼 내가 무사히 연임을 하게 되면 송 과장이 사무처장 좀 맡아줘요.”

“아이고. 아닙니다. 협회장님. 그러자고 한 일이 아닙니다.”

“알아요. 아는데 송 과장도 힘이 있어야 나를 확실히 도와주죠.”

현 한국 야구 협회 사무처장 자리는 공석이었다.

당초 사무처장은 김경진 서울시 야구 협회장의 최측근이었는데 지난 협회장 선거에서 김영문 협회장이 당선되자 김경진 서울시 야구 협회장을 위해 자리를 던지고 나갔다.

당연하게도 차기 사무처장으로 김경진 서울시 야구 협회장이 유력하게 점쳐졌지만, 김영문 협회장이 결사반대하면서 지금까지 공석으로 남아 있었다.

“김경진 협회장도 송 과장은 절대 반대 못 할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큰일을 맡아줘요.”

“후우…….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한번 분골쇄신해 보겠습니다.”

“그래요. 나는 송 과장만 믿습니다.”

그때 문소리와 함께 노영운 대리가 들어왔다.

“말씀 중이신데 죄송합니다. 급하게 공문이 와서요.”

“공문?”

“어디서? 설마 프협이야?”

“아뇨. 방송국입니다.”

“방송국?”

“SBX에서 LA 올림픽 특집으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인데 박유성 선수 출연 요청 들어왔습니다.”

“특집 프로그램이라니?”

“LA 올림픽 막내들만 모아놓고 토크 쇼 같은 걸 하려나 봅니다. 그래서 야구 대표팀에서는 박유성 선수만 참가하는 것 같고요.”

“그래요?”

김영문 협회장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올림픽이 끝나면 이곳저곳에서 메달리스트들을 불러 방송을 하니 특별할 게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송기섭 과장의 생각은 달랐다.

“노 대리. 그거 주변 인터뷰 같은 것도 해?”

“글쎄요. 아직 자세한 포맷까지는 못 들었는데 아마 하지 않을까요?”

“협회장님 인터뷰 하면 허락한다고 해.”

“아,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명심해! 박유성 선수 우리 협회 소속이야. 다른 선수들이 인터뷰하는 건 상관없지만 프협은 안 돼.”

“넵. 출연 계약서에 아예 명시를 해놓겠습니다.”

젊은 피인 노영운 대리는 송기섭 과장의 생각을 금세 캐치했지만 김영문 협회장의 반응은 느렸다.

“그러니까 나더러 인터뷰를 하란 말이죠?”

“협회장님. 박유성 선수를 누가 키웠습니까?”

“……?”

“물론 박유성 선수 부모님이 잘 낳아주셨고 신성 고등학교에서 잘 가르쳤겠죠. 하지만 큰 틀에서 놓고 보자면 우리 협회에서 키운 겁니다. 그러니 협회장님이 생색내셔야죠.”

“아하! 무슨 얘기인지 알겠습니다.”

“대신 협회장님도 미리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자료 보고 말씀하지 마시고요. 박유성 선수에게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져왔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셔야 합니다.”

“걱정하지 마요.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암기 하나는 자신 있습니다.”

“분량이나 재미 같은 건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전에 박유성 선수하고 식사 한번 같이하시면 더 좋을 것 같고요.”

“그래야죠. 다른 선수도 아니고 우리 협회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는데 당연히 식사해야죠. 협회 차원의 포상금도 마련해야 하고요.”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아무튼 박유성 선수 덕분에 참 기분이 좋습니다. 하하. 작년까지만 해도 협회장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일이 이렇게 풀리네요.”

“이게 다 연초에 U-18 야구 월드컵을 받아오신 결단 덕분입니다. 만약에 그때 야구 월드컵 유치 포기하셨으면 박유성 선수가 올림픽에서 활약할 기회도 없었을 겁니다.”

“그게 또 그렇게 되는 겁니까?”

“그럼요. 그때 대회를 연기하자는 의견이 많았잖습니까? 대회를 올림픽 이후로 연기했으면 박유성 선수가 올림픽 대표팀에 뽑혔겠습니까?”

“하긴. 듣고 보니 그렇네요.”

“협회장님께서 지금껏 해오신 일들에 대한 결실을 보시는 거로 생각하십시오. 제가 단언하는데 절대 운만 따른 게 아닙니다.”

“하하. 그래요. 알았어요. 송 과장 얘기 듣고 나니까 협회장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영문 협회장은 말이 나온 김에 한국 야구 협회 후원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박유성이 올림픽에서 활약해 준 덕분에 손대지도 않고 코를 풀게 생겼으니 이대로 가만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어이구, 최 회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그렇게 김영문 협회장이 팔자에도 없던 포상금을 마련하던 그 시각.

스타즈 구단 단장실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김재식 단장이 고명환 팀장과 김대철 차장을 불러 다짜고짜 해고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아니 단장님! 갑자기 그만두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납득할 만한 이유를 설명해 주십시오.”

설마하니 자신들을 자를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고명환 팀장과 김대철 차장이 테이블까지 내려치며 화를 냈지만 김재식 단장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좋게 물러나시면 최대한 조용히 마무리 짓겠습니다. 하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본사 감사팀이 움직일 겁니다.”

감사팀이라는 말에 김대철 차장이 흠칫 놀랐다.

앞서 베어스에 있을 때도 비슷한 말로를 겪었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PTSD가 온 것이다.

하지만 스타즈의 창단 때부터 함께해 왔던 고명환 팀장은 달랐다.

“감사팀 부르십시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겁낼 줄 아셨습니까?”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전임 단장님 계실 때 전부 다 털었습니다. 그리고 전 아무것도 안 나왔고요.”

김윤태 단장이 배임 행위로 감사팀의 조사를 받았을 때 구단 모든 직원들의 추가 조사도 함께 이루어졌다.

그 당시 걸리는 게 많은 직원들은 전부 퇴사 통보를 받았지만 고명환 팀장은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당시 스타즈의 내부 감사를 진두지휘했던 건 다름 아닌 김재식 단장이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정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습니까?”

“저도 사람이니까 이런저런 잘못을 했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문제가 됐다면 그때 저도 잘렸을 겁니다.”

“재밌네요. 고 팀장님은 잘못이 없어서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남겼던 건데 그런 식으로 착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착각이요?”

고명환 팀장과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지 김재식 단장이 미리 준비해 놓은 서류 파일을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그 안의 내용들이 공개되어도 좋은지 검토 바랍니다.”

“……!”

고명환 팀장은 서류의 두께를 보며 멈칫했다.

만약 김재식 단장이 블러핑을 하는 게 아니라면.

운영비로 밥 먹고 술 먹은 것들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담겨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순순히 물러날 수도 없는 노릇.

“어디 뭐가 있나 봅시다.”

고명환 팀장이 이를 악물며 서류를 펼쳤다. 그리고 첫 장에 나온 입금 내역을 보고는 냉큼 서류를 덮었다.

“단장님. 이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단장님. 그런 거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이미 당사자들의 진술도 받았는데 계속 이렇게 나오시겠다는 겁니까?”

“단장니임.”

스타즈의 스카우트 팀장으로 일하면서 드래프트에 대한 전권을 부여받다 보니 이곳저곳에서 불법적인 제안을 해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고명환 팀장은 절대 돈을 받고 누군가를 뽑지 않았다.

드래프트 이후에 해당 선수들로부터 감사의 마음(?)을 받은 적은 있지만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관례를 만들고 뒤에서 이득을 챙겨왔다는 사실이 추가 조사를 통해 전부 드러난 이상 고명환 팀장의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고 팀장님은 벌주를 받겠다고 하셨으니까 조만간 감사팀에서 연락이 갈 겁니다. 사직서는 쓰지 않으셔도 되니까 이만 나가보십시오.”

“제가 없으면 스카우트 팀은 멈춥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요. 김 차장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큰소리 떵떵 치던 고명환 팀장이 단번에 무너지자 김대철 차장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사표 쓰면 실업 급여는 받게 해주십니까?”

“김 차장님 자료도 여기 있는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단장님. 사직서는 바로 제출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고명환 팀장과 김대철 차장에 이어 박흥선 감독이 불려갔다.

“단장님. 팀을 먼저 생각해 주십시오. 지금 제가 물러나면 우리 포스트 시즌 못 갑니다.”

박흥선 감독은 성적을 운운하며 매달렸지만 감독 교체 건은 일찌감치 신상욱 회장의 허락이 떨어진 뒤였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독님.”

“그럼 저는 해임으로 처리가 되는 겁니까?”

박흥선 감독의 임기는 올해까지지만 아직 잔여 연봉이 남아 있었다.

감독이 자진 사퇴를 할 경우 잔여 연봉은 지급되지 않지만 구단에서 일방적으로 해고할 경우에는 잔여 연봉 보장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김재식 단장은 팀을 망치는 데 일조한 박흥선 감독에게 남은 연봉을 줄 생각이 없었다.

“파이터즈 감독 자리가 비었다고 합니다. 김경민 단장이 적당히 팀을 이끌어줄 감독을 물색하고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시즌이 끝나고 감독님을 따르는 코치들 데려가셔도 좋습니다. 단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 이탈은 없어야 합니다.”

“어이구, 그럼요. 그렇게 해야죠.”

“파이터즈에서 바로 감독님을 선임할 수도 있으니까 자진 사임이 낫겠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단장님.”

훗날 이날의 일을 떠올리며 김재식 단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박유성이라는 대단한 선수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라고.

그렇게 스타즈도 새로운 슈퍼스타를 맞이할 기본적인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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