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167화 (167/412)

타자 인생 3회차! 167화

22. 어메이징 썬(11)

“회장님. 그렇게 좋으십니까?”

“그럼, 좋지. 좋아. 박유성이 한마디에 이렇게 기사가 쏟아지잖아?”

신성 그룹과 신상욱 회장에 대한 언급은 짧디짧았지만,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박유성을 다루는 기사들마다 인터뷰 내용을 덧붙였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껏 야구판에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부었는지 한 실장도 알지?”

“물론입니다. 회장님.”

“야구에 쓸 돈 있으면 회사 복지에 신경 쓰라는 직원들 불만도 엄청났어.”

“저희 그룹 사내 복지는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 회장님.”

“직원들이라고 그걸 모를까? 요즘은 익명 커뮤니티 들어가면 그 회사 내부 분위기까지 전부 다 알 수 있잖아?”

“그렇습니다. 그래서 타 그룹 이직률이나 퇴사율이 계속 줄어드는 추세고요.”

“그런데도 왜 그런 불만들이 나왔다고 생각해?”

“그야…… 헛돈을 쓴다고 생각해서이지 않을까요?”

“그래. 돈은 쓰는데 뭔가 얻는 게 없잖아. 국가대표 팀을 3년 넘게 지원해 주면 뭘 해? 고작 야구 좋아하는 영감탱이 돈지랄한다는 소리나 듣는데.”

“감히 누가 그런 얘기를 하겠습니까.”

“이 친구야. 나도 포털 사이트에 내 이름 쳐 넣을 수 있어. 내가 설마 그걸 모를까 봐?”

신상욱 회장이 쓰게 웃었다.

11번째 구단인 스타즈를 창단한 이후 지금껏 사재를 포함해 적잖은 돈을 쏟아부었지만 막상 돌아오는 건 많지 않았다.

“한 실장도 커뮤니티 반응 체크하고 있지?”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보고 있습니다.”

“처음 창단했을 때는 돈으로 야구한다는 소리를 하더니 요즘에는 돈을 그렇게 쓰고도 포스트 시즌에 못 간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올해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회장님.”

올림픽 브레이크 직전까지 스타즈는 리그 3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초반에 치고 나갈 때보다 뒷심이 빠지긴 했지만 선수들이 합심해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창단 첫 포스트 시즌 진출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신상욱 회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능성은 무슨. 올해도 텄어. 랜더스하고 트윈스 상대로 힘을 못 쓰잖아. 그 둘하고 잔여 경기가 많이 남았지?”

“그래도 송찬우 선수가 합류하면 좀 낫지 않을까요?”

“송찬우를 전 경기 등판시키게? 바닥까지 추락했던 트윈스가 야금야금 승리 챙기는 거 봐. 우리하고 두 경기 차이인가?”

“한 경기 반 차이입니다. 회장님.”

“그 정도면 눈 깜짝할 사이에 뒤집혀. 그리고 감독 교체하려면 포스트 시즌 진출 안 하는 게 낫지.”

아직 공식 발표가 난 건 아니지만 신상욱 회장은 구단주로서 스타즈 감독 교체를 승인했다.

일단 사유는 해단 행위였지만 가능하면 성적 부진에 따른 자진 사퇴 쪽으로 가는 게 그림이 좋아 보였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어. 올해까진 준비 기간으로 잡고 내년에 박유성이하고 송찬우에 김혜성이 합류하면 그때 제대로 해보자고.”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때 문소리와 함께 비서 한가율이 들어왔다.

“회장님. 프로 야구 협회에서 기자회견 장소 대관 관련 협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기자회견?”

“네. 야구 대표팀 기자회견을 신성 호텔에서 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주면 우리야 좋지. 안 그래, 한 실장?”

“홍보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에 신성 호텔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단순히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호텔 체인과 20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건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기자회견을 했던 호텔 체인은 느낌부터가 달랐다.

겸사겸사 야구 대표팀 선수들이 SNS를 통해 신성 호텔을 홍보해 준다면 금상첨화일 터.

“야구 대표팀 선수들에게 무료 숙박권을 주는 게 어때?”

“좋은 생각이십니다. 회장님. 오랜만에 보는 가족들과 함께 머무를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기왕 생색내는 거 제대로 내자고. 막내인 박유성이도 감사 인사를 하는데 다른 녀석들도 염치는 있겠지.”

거침없이 말을 내뱉던 신상욱 회장이 고개를 돌려 한가율을 바라봤다.

“한 비서. 잘나가는 스포츠 선수들에게 왜 스폰서가 붙는다고 생각해?”

“그만큼 광고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기대만큼 광고 효과를 누리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폰서 계약을 취소하기 이전에 광고 효과를 볼 수 있는 방안을 찾아봐야 합니다.”

“그래. 내가 뭘 원하는지 알겠지?”

“네. 회장님. 선수들에게 따로 연락해서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언론 보도는?”

“이미 박유성 선수 인터뷰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과도한 언론 보도는 반감을 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늘 해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신성 그룹의 지원에 대한 관심이 뜸해질 때쯤 미담 사례로 알려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진행해 봐.”

똑소리 나는 한가율의 대답에 신상욱 회장이 씩 웃었다. 그러고는 한가율이 방을 나가기가 무섭게 한용준 비서실장을 바라봤다.

“역시 한 실장 딸이야.”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회장님.”

“부족하기는. 저 나이에 저 정도면 차고도 넘치지. 암튼 우리 집안에 시집보내기로 했던 약속 잊지 마.”

“회장님.”

“잔말 말고 그렇게 해. 한 비서 신성 장학생인 거 알지? 장학금 준 게 아까워서라도 무조건 손자며느리 삼을 거야. 그러니까 딴소리 마.”

신상욱 회장이 억지를 부리자 한용준 비서실장이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때는 그저 말을 아끼는 게 최선이었다.

“참. 박유성이 저 녀석, 여자친구는 있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슨 대답이 그래? 따로 조사 안 해봤어?”

“기본적인 주변 조사는 했습니다만 따로 이성을 만나고 있다는 보고는 없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뒤에서 몰래 호박씨 까고 있을지도 모르는 거라고.”

“제대로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알아보고 나한테 바로 보고해. 현민이하고 현준이 귀에 들어가지 않게 신경 쓰고.”

“네. 회장님.”

신상욱 회장이 말을 아꼈지만.

한용준 비서실장은 박유성을 손녀사위 삼고 싶어 하는 신상욱 회장의 속내를 눈치챘다.

손녀들 중에 누구와 맺어줄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똑 부러진다는 이유만으로 딸아이를 손자며느리 삼겠다고 선언했던 것처럼 박유성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거라 여겼다.

다만 박유성이 정말로 신성가의 일원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재벌가의 일원이 된다는 게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박유성 선수가 신성가와 엮여준다면 고맙겠지.’

한용준 비서실장은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박유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는다면 한가율을 손자며느리 삼겠다는 얘기도 쏙 들어갈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을 먹은 건 어떻게든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신상욱 회장은 박유성은 물론이고 한가율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때 다시 문소리가 울리고.

박원호 과장이 들어왔다.

“회장님. 프로 야구 협회에서 공문이 왔습니다.”

“기자회견 협조해 달라고 공문씩이나 보냈어?”

“트레이드 관련 공문입니다.”

“그래? 이리 줘봐.”

신상욱 회장은 박원호 과장이 들고 온 서류를 살폈다.

스타즈 구단주 앞으로 보낸 공문에는 파이터즈와의 트레이드를 승인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별것도 아닌 일이 오래 걸렸네.”

“협회 입장에서는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박 과장. 자네 월급 주는 건 나지 프로 야구 협회가 아니야.”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아무튼 승인이 떨어졌으니까 송찬우는 스타즈로 합류하는 거지?”

“귀국일 바로 다음 날부터 시즌이 재개되니까요. 송찬우 선수도 스타즈에 바로 합류해야 합니다.”

이번 파이터즈와의 트레이드 속에는 2029 1라운드 지명권 거래와 함께 송찬우와 홍형태를 중심으로 한 1 대 4 트레이드가 포함되어 있었다.

송찬우가 신인급 선수라면 일단 숙소를 제공하겠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2승을 거둔 대한민국 대표팀 우완 에이스에게 숙소 생활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

“야구장 주변에 괜찮은 아파트 하나 찾아봐.”

“송찬우 선수 자택으로 말씀이십니까?”

“그럼? 당장 시즌 치러야 하는데 집을 언제 구할 거야? 그럴 시간에 한 경기 더 나갈 생각을 해야지.”

“회장님. 송찬우 선수는 내년 시즌이 끝나면…….”

“메이저리그 간다고? 그게 뭐 어때서? 실력 있는 선수가 큰물에서 놀겠다면 당연히 보내줘야지. 구단주라는 사람이 쩨쩨하게 굴어야 해?”

“아닙니다. 회장님.”

“기왕이면 가족들과 같이 지낼 수 있도록 큰 평수로 알아봐. 쓸데없는 데 돈 아끼지 말고.”

신상욱 회장의 핀잔에 박원호 과장이 멋쩍게 웃었다.

송찬우가 대단한 투수인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FA 계약을 한 것도 아니고 내년에 메이저리그로 떠나는 선수에게 지나치게 잘해줄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러자 신상욱 회장이 하나밖에 모른다며 혀를 찼다.

“박 과장. 내년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할지도 모르는 선수에게 이만큼 신경 써주는 구단이 또 있을까?”

“계약을 도와주는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아예 집을 구해주는 구단은 없을 겁니다.”

“그렇지? 이런 구단주가 흔치 않겠지?”

“제 생각에 회장님 한 분뿐일 거라 생각합니다.”

“송찬우 얘기를 들으면 박유성이도 쓸데없이 미국 갈 생각은 안 할 거야. 그렇지?”

“……!”

“이 친구야. 내가 뭐 송찬우 예뻐서 이러는 줄 알아? 박유성이만 챙겨주면 또 주변에서 얼마나 난리를 치겠어? 그러니까 미리미리 좋은 선례들을 만들어놔. 내 말 무슨 뜻인지 이해했어?”

“네. 회장님.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그래도 잘 모르겠거든 한 실장에게 물어봐.”

“넵. 회장님.”

“그런데…… 그건 뭐야?”

신상욱 회장이 박원호 과장의 손에 들린 다른 보고서를 바라봤다. 그러자 박원호 과장이 냉큼 보고서를 내밀었다.

“이건 한국 야구 협회에서 온 공문입니다.”

“한국 야구 협회?”

“박유성 선수가 아직 아마추어 신분이라서요. 귀국하면 한국 야구 협회에서 별도의 기자회견을 진행하겠다고 합니다.”

“그걸 왜 우리한테 보내?”

“박유성 선수를 스타즈 선수라고 생각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 같습니다.”

“프협 쪽에도 보내고 우리한테도 보냈다는 이야기인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신상욱 회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마추어 신분인 박유성이 올림픽 야구 MVP를 탔으니 한국 야구 협회에서 생색을 내려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야구 대표팀에서 박유성이 빠져 버리면 프로 야구 협회에서 진행할 기자회견은 앙금 없는 찐빵이 될 게 뻔했다.

“협회들끼리 알아서 조율을 해야지 이게 뭐야?”

“조율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어쩌면 그래서 회장님께 공문을 보낸 건지도 모릅니다.”

“나더러 뭘 어떻게 하라고? 중재라도 하라고?”

어이없다는 얼굴로 되묻던 신상욱 회장이 갑자기 테이블을 탁 하고 내려쳤다.

생각해 보니 신성 호텔에서 프로 야구 협회만 기자회견을 하라는 법은 없었다.

“그러지 말고 한국 야구 협회도 오라고 해.”

“기자회견 때 말씀이십니까?”

“박유성이만 데려가서 뭐 할 거야? 박유성이 혼자 야구했어?”

“야구팬들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긴 합니다.”

“이 친구가? 야구가 언제부터 혼자 할 수 있는 스포츠가 됐어? 박유성이가 잘했지만, 정말 잘했지만 그래도 다 함께 있어야 빛이 나지. 안 그래?”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회장님.”

“장소는 우리가 빌려줄 테니까 둘 다 오라고 해. 선수가 하나인데 쪼개서 데려갈 거야 어쩔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