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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164화 (164/412)

타자 인생 3회차! 164화

22. 어메이징 썬(8)

3

작년 봄.

송현민은 은퇴한 선배가 운영하는 고깃집에서 모처럼 김하선을 만났다.

“어째 살이 더 찐 거 같다?”

“형은 살이 빠졌는데요?”

“알잖아. 메이저리그 빡센 거.”

“그러다 진짜 몸 상하겠어요. 쉬엄쉬엄해요.”

“나도 그럴까 생각 중이다.”

서른을 넘기면서 김하선은 국내 복귀에 대해 고민했다.

주전 선수가 나이가 들면 에이징 커브가 찾아오기 전에 후계자를 찾는 게 당연하지만.

조금만 부진해도 신인 선수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언론과 극성맞은 팬들 때문에 마음 편히 야구를 할 수가 없었다.

“형 계약이 언제까지예요?”

“올해가 끝이지.”

“재계약 얘기 안 해요?”

“에이전트 말로 재계약 의사는 있다는데 포지션 변경이 필수래.”

“어디로요? 2루?”

“예전에도 뛰어봤으니 쉬울 거라나.”

“미쳤네. 아니 그거야 한창일 때 얘기죠. 서른 넘어서 골골하는데 누굴 죽이려고요.”

“너냐? 닉네임 쉰하선이?”

“쉰하선은 또 뭐예요?”

“있어. 커뮤니티에서 나만 죽어라 까는 놈. 예전만큼 몸이 안 따라주는 것도 서러운데 뭐만 하면 나이 타령을 하더라.”

“그런데 아예 틀린 얘기는 아니지 않아요?”

“맞네. 너였네.”

“에이. 형. 저는 이렇게 대놓고 면전에서 까잖아요.”

“하긴. 내가 아는 후배들 중에 싸가지 없기로는 네가 최고지.”

“기왕이면 야구도 잘한다고 해주세요.”

가볍게 소주잔을 부딪친 뒤 김하선이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노릇하게 익은 고기를 한 점 집어 들며 물었다.

“그런데 여기 왜 이렇게 손님이 없냐?”

“형도 참. 이 시간까지 영업하는 가게가 몇이나 돼요? 그냥 형하고 편하게 한잔하려고 제가 빌린 거예요.”

“너 돈 많다?”

“계산했다는 얘기는 안 했는데요?”

“이 자식이. 아직 결혼도 안 한 선배를 털어먹으려고 해?”

“그러니까 얼굴 관리 좀 해요. 진짜 야구복 안 입으면 인민군인 줄 알겠어요.”

송현민이 슈퍼 루키 소리를 들으며 트윈스에 입단했을 때 김하선은 이미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을 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서로 접점이 없었는데 지난 아시안 게임 때 송현민과 김하선이 같은 방을 쓰면서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런데 너 왜 나하고 같은 방 쓰려고 했냐?”

“형이 좋으니까요?”

“헛소리 말고.”

“형이 내 롤모델이기도 하고 뭐…….”

“겸사겸사 메이저리그 소스도 좀 듣고?”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그럼 오늘 이건 네가 사라.”

“어휴. 알았어요. 그리고 이미 계산 다 했거든요?”

3인분쯤 담은 고기 접시가 순식간에 비워지자 송현민이 주방으로 들어가 새 고기 접시를 가져왔다.

“이게 다는 아니지?”

“제가 형 식성을 아는데 설마 이것만 준비했겠어요?”

“그래. 오늘 한번 먹고 죽어보자.”

“대신 고기 퀄리티 가지고 뭐라고 하지 마세요. 급하게 빌린 거라서 좋은 고기로 준비 못 했어요.”

“맛있기만 한데 뭘. 자, 한 잔 받아라.”

“넵.”

묻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송현민은 적당히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열심히 고기를 구웠고.

그렇게 배를 채운 김하선이 소화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던지 먼저 화제를 돌렸다.

“내년에 메이저리그 올 거지?”

“가야죠. 갈 수만 있으면.”

“오라는 데 많을 거면서 엄살은.”

“언론에서만 떠드는 거예요. 실제로 직접 연락 온 곳은 없어요.”

“에이전트부터 구하고 말해라. 너 아직도 에이전트 없지?”

“지난번에 계약한 에이전트한테 너무 크게 데여서요. 그런데 에이전트가 꼭 필요해요?”

송현민이 김하선의 빈 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그러자 김하선이 당연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필요하지. 미국에서 너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냐?”

“그야…… 거의 없겠죠?”

“그래. 나도 메이저리그 진출할 때는 미국 전역에서 주목을 받는 줄 알았는데 아냐. 아는 사람들만 알아. 그 수는 예상보다 훨씬 적고.”

“그렇겠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나 올림픽 결승에서 활약해야 알까 말까야. 그런데 에이전트도 없이 메이저리그에 오겠다고? 야구밖에 모르는 놈이?”

“크흠.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죠.”

“암튼 최대한 빨리 구해. 구단에 양해 구하고 미리미리 움직여. 그래야 좋은 구단 간다.”

“파드레스는 어때요?”

“오지 마. 연락 와도 받지 말고. 네 자리도 없지만 가려면 빅마켓 가.”

“넵. 명심하겠습니다.”

취기가 오르자 김하선은 술기운을 빌어 자신이 보고 겪은 메이저리그에 대해 이야기해 줬다.

그중 상당수는 김하선과 같은 방을 쓰면서 들은 거였지만.

송현민은 마치 처음 듣는 얘기처럼 부지런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경청했다.

“그리고 말이야. 너 땅볼 타구 좀 신경 써.”

“땅볼 타구요? 저 땅볼 잘 잡는데?”

“네 앞으로 굴러오는 타구 잡는 거 말고. 빗맞은 타구를 처리하는 연습을 하라고.”

“빗맞은 타구요?”

“메이저리그 하면 흔히들 강습 타구가 넘쳐날 것 같지만 아니야. 의외로 빗맞은 타구들이 많이 나와. 그래서 집요하게 수비하는 선수들이 사랑받는 거고.”

“형도 초반에 수비 요정이었잖아요?”

“그땐 타격이 생각만큼 되지 않았으니까 진짜 이 악물고 수비했어. 경기 끝나면 온몸이 욱신거려서 잠을 못 잘 정도였다. 아무튼 투수 좌우로 빠지는 땅볼 타구를 빨리 처리해서 제대로 송구하는 연습을 많이 해 둬야 해. 메이저리그 애들은 덩치가 산만 해도 잘 뛰어. 이 정도면 잡았겠지 생각하고 송구하면 벌써 베이스 밟고 있더라.”

국내에서 유격수로 뛰었던 김하선은 파드레스에서 3루수로 뛰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초반에는 가끔 2루수 자리도 봤지만.

주전 자리를 못 박은 이후로는 거의 대부분의 경기에 3루수로 출전했다.

그렇다 보니 같은 내야수인 송현민에게 해줄 말이 많았다.

“메이저리그 가면 악착같이 해. 아마 처음에는 타격이 잘 안 될 거야. 그럼 기죽지 말고 수비라도 잘해야 해. 타격은 언제든 올라올 수 있지만 수비를 못 하는 선수는 경기에 내보낼 수가 없어.”

“형이 보기에 제 수비는 어때요?”

“내 기준에서는 나쁘지 않은데 그렇다고 메이저리그에서 극찬받을 정도는 아니야.”

“너무 평가가 박한 거 아니에요?”

“현민아. 메이저리그는 아직도 인종차별이 심해. 아시아 선수로서 인정받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그나마 투수들은 해볼 만한데 타자들은 진짜 죽어난다. 너도 와서 고생해 보면 알 거야.”

송현민은 김하선의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그래서 스프링 캠프 때부터 빗맞은 타구에 대한 대처 능력을 높였고 그 노력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눈에 들어왔다.

“쏭 말이야. 수비가 확실히 좋아진 것 같지 않아?”

“캠프에서 엄청 고생했다던데?”

“확실히 타구 처리 범위기 넓어졌어. 타구 판단 능력도 좋아진 거 같고.”

“이렇게만 해주면 빅마켓 구단들이 욕심을 내겠는걸?”

“한 방을 때려낼 수 있는 좌타 내야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귀하잖아. 특히나 2루수니까 찾는 구단이 많을 거야.”

결국 송현민은 박찬오와 추신우가 활약했던 레인저스와 4년 6천만 달러에 계약을 마쳤다.

“형. 고마워요. 형 덕분에 레인저스 가게 됐어요.”

-내 덕분은 무슨. 아무튼 미국 가서 잘해라. 텃세 부려도 기죽지 말고.

“제 성격 아시잖아요.”

-오히려 그래서 더 걱정이야. 국내에서야 최고지만 메이저리그는 다르니까. 아무튼 잘하고…… 아마 리그 초반에 빗맞은 타구 엄청 나올 거다. 그럼 인상 쓰지 말고 죽어라 달려. 그중에 몇 개만 건져도 타율이 달라질 거다.

레인저스 데뷔 첫해에 3할 타율을 치게 된 건 박유성의 조언 덕분이었지만.

타석에 들어선 송현민은 김하선의 조언을 되새겼다.

‘억지로 빗맞은 타구를 만들 필요는 없어. 크리스 반스의 구위가 좋으니까 맞기만 해도 땅볼이 날 거야. 그다음에는 전력을 다해 뛰어야 해. 그래야 유성이가 잡히더라도 뒤를 볼 수 있어.’

솔직히 할 수만 있다면 박유성을 홈까지 걸어 들어오게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지난해 아메리칸 리그 사이영 상 투수의 공을 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송현민은 단 하나의 공만 생각했다.

크리스 반스가 좌타자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던져대는 바깥쪽으로 파고드는 슬라이더.

스트라이크와 볼이 번갈아 들어와서 히팅 포인트를 잡기가 쉽지 않았지만 방망이 중심에 맞추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건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발 초구에 슬라이더. 초구에 슬라이더.’

그런 송현민의 간절함이 통했을까.

후앗!

크리스 반스의 손끝을 빠져나간 공이 한복판을 지나 바깥쪽으로 꺾여 나갔고.

송현민은 어깨에 힘을 뺀 채로 가볍게 방망이를 휘둘러 공을 맞혀내는 데 성공했다.

“됐다!”

송현민은 그대로 1루를 향해 내달렸다.

타격을 하면서 잠깐 박유성의 모습이 겹쳐 보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번 대회에서 보여 준 박유성의 센스라면 아마 어떻게든 득점을 만들어 낼 터.

지금은 1루에 들어가는 게 먼저였다.

그리고 그런 송현민의 전력 질주가 또 다른 변수를 만들었다.

미국 대표팀의 유격수 케빈 모랄이 타구를 집어 든 그 순간 사방에서 전혀 다른 목소리가 들려 온 것이다.

“홈! 홈으로!”

“늦었어! 1루!”

“1루로 던져!”

“빨리! 서둘러!”

케빈 모랄은 일단 홈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박유성이 투구와 동시에 스타트를 끊는 걸 두 눈으로 보고 있던 조이 페런트는 홈 승부를 포기한 상태였다.

“젠장할!”

케빈 모랄이 다시 1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미친 듯이 내달리는 송현민을 보고는 다급히 공을 내던졌다.

만약에 그 공이 1루수 마크 스테리의 미트에 걸려들었다면 아슬아슬하게 아웃을 시킬 수 있던 상황.

하지만 제대로 채지 못한 공은 마크 스테리의 오른쪽으로 빠져 버렸고.

“돌아! 돌아!”

송현민은 그대로 2루까지 살아 들어가 버렸다.

“허…….”

그 모든 장면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봤던 미국 대표팀의 에릭 지터 감독은 헛웃음밖에 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서 20년 동안 2,900경기 이상을 뛰며 수많은 상황들을 겪어봤지만 이번처럼 기운이 빠지는 실점은 오랜만이었다.

아마도 이 장면은 유격수 땅볼과 송구 실책으로 인한 득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그 뻔한 기록 내용만으로는 이 상황을 전부 담을 수가 없었다.

박유성과 송현민의 합작 플레이에 농락당하다 못해 터무니없는 실수까지 저질렀으니 오늘 경기를 이기는 건 이제 불가능해 보였다.

“마크.”

“네. 감독님.”

“지금 불펜에 누가 있죠?”

“설마 투수를 바꾸실 생각이십니까?”

“바꿔줘야죠. 크리스는 할 수 있는 걸 다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결과에 대한 책임은 다 함께 지는 겁니다.”

마크 코헤인 수석 코치의 말을 일축한 뒤 에릭 지터 감독은 그대로 더그아웃을 박차고 나갔다.

그러고는 구심에게 새 공을 받아든 뒤에 마운드 위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그때까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크리스 반스가 이내 표정을 굳혔다.

비록 또 한 점을 내줬지만 이제 겨우 6회 말이었다.

아직 한두 이닝 정도는 더 던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에릭 지터 감독은 아직 어린 크리스 반스에게 모든 걸 떠안기고 싶지 않았다.

“크리스. 고생 많았어.”

“감독님.”

“한국이 불펜을 가동했는데 우리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그러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던지자. 앞으로도 썬을 상대할 기회는 많이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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