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153화
21. 우유천!(9)
5
└단독, 박영천 감독 사임 예정.
└헐, 갑자기요?
└사임입니까? 해임 아니고요?
└파이터즈가 압도적 꼴지이긴 하지만 박영천 감독님은 깔 게 없습니다. 사비 털어서 2군 선수들 장비 사 주시는 분이에요.
└일단 구단 발표는 사임인데 해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박영천 감독이 송찬우 트레이드 소식 듣고 대노했거든요.
└믿을 만한 소스인가요?
└구단 직원으로부터 직접 들었습니다.
└뇌피셜이네요.
└거피셜입니다. 제 지난 글들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적중률 높습니다.
└그런 분이 이번 트레이드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었네요?
└이번 트레이드는 양 구단 단장들이 진행했던 거라 실무자들 빼고는 거의 몰랐다고 합니다. 저도 듣고 충격받았어요.
└그래서 찬성입니까, 반대입니까?
└트레이드 자체는 찬성입니다. 송찬우 선수 유니폼만 3벌이지만 보내줘야죠. 메이저리그 가기 전에 스타즈에서 커리어 하이 찍었으면 좋겠습니다.
└와, 이분 찐팬이시네.
└속지 마요. 지난번에 보니까 홍형태 선수하고 조우진 선수 집어넣고 선발 로테 맞추고 계시더라고요.
└행복회로는 돌릴 수 있잖아요. ㅠ.ㅠ
공식 기사가 뜨기 전에 베이스볼 파크에 박영천 감독의 사임 가능성이 흘러나왔다.
워낙에 온갖 소스들이 나도는 커뮤니티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구단 SNS를 통해 사임 소식이 전해지자 베이스볼 파크가 다시 왁자지껄해졌다.
└박영천 감독 사임한 거 진짜 트레이드 때문임? 그럼 좀 오바인데? 송찬우 내년에 메이저리그 갈 텐데 구단 운영비 받고 좋소구단답게 운영하면 되는 거 아닌가?
└파이터즈 팬 아니라고 막말하시네요.
└까놓고 베팍에 파이터즈 팬이 몇 명이나 있다고요. ㅎ
└말을 싸가지없게 적었지만 일부 공감함. 메이저리그로 갈 송찬우 대신 홍형태에 조우진이면 파이터즈가 남는 장사임. 오히려 내년 우승 노리고 1년 시한부 송찬우 데려오는 스타즈가 정신 나갔음.
└하지만 송찬우가 메이저리그 진출 포기하고 스타즈에 남는다면?
└그럴 가능성이 있겠음? 이번 올림픽에서 개잘던졌는데?
└송찬우 메이저리그 도전 확정인가요?
└확정입니다. 본인이 직접 말했어요.
└송찬우 정도면 한 번 비벼볼 만 하죠.
└국대 우완 에이스인데 메쟈리그 도전해 봐야죠.
└잘 모르시는 분들이 태반이네요. 송찬우 선수 메이저리그 도전은 구단에서 연초에 장기 계약 제안했을 때 나온 얘기입니다. 장기 계약 조건이 터무니없어서 메이저리그 가겠다고 판 엎은 거예요.
└파이터즈에서 얼마 불렀는데요?
└6년에 50억이요.
└앞에 1 빠진 거 아닌가요?
└150억 아니고 100억 아니고 50억이요. 계약금 2억에 연평균 8억이요.
└그것도 연봉 절반은 은퇴 후 5년 간 나눠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함.
└그건 루머입니다. 파이터즈가 돈이 없지 자존심이 없진 않아요. ㅠ.ㅠ
└지명권 장사할 때 보면 자존심 없던데요? ㅋㅋ
└박영천 감독 사임 이유는 지명권 트레이드 때문이랍니다. ㅠ.ㅠ
└?????? └이건 더 오바인데?
└박유성 선수 못 뽑아서 사표 쓴 거라굽쇼?
└트레이드 안 해도 스타즈에서 박유성 우선 지명할 각이던데요?
└그런 걸 떠나서 구단에서 성적을 낼 마음이 없다고 판단한 거겠죠. 3년 내내 1라운드 지명권을 파는 쓰레기 같은 구단이 어디 있어요?
└파이터즈 : 그게 나야~ 빠둠빠두비두비~
└아무튼 박영천 감독님 실망입니다. 트레이드 건으로 가뜩이나 팀 분위기 개판일 텐데 참. 선장이란 분이 제일 먼저 탈출하셨네.
└박영천 감독님도 하다 하다 안 될 거 같으니까 사표 쓰신 거겠죠.
└파이터즈 탈출은 지능순인데 박 감독님은 좀 늦으신 듯. ㅋㅋ
└베이스볼 파크 일원은 박영천 감독님의 현명한 결단을 지지합니다!
박영천 감독의 사임 소식을 들은 김재식 단장은 파이터즈 김경민 단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네. 김경민입니다.
“김재식입니다. 단장님.”
-어이구, 연락 오는 데가 많아서 제가 확인도 안 하고 전화를 받았네요. 별일 없으시죠?
“저희야 아직 별일 없긴 한데 파이터즈에서 일이 생겨서요.”
언론에서는 트레이드 부결을 바라며 열심히 입방아를 찧고 있지만.
김재식 단장과 김경민 단장이 주도한 트레이드는 프로 야구 협회의 최종 승인이 난 상태였다.
결승전 직후 발표하기로 상호 합의를 마친 상황이라 무슨 일이 생겨도 그 이후일 거라 여겼는데 갑작스럽게 박영천 감독이 사임한다고 하니까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김경민 단장은 걱정할 거 없다며 웃었다.
-박 감독님이 지병이 있으십니다. 당뇨에 고혈압인데 아시겠지만 이게 관리를 잘 해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최근 건강 검진에서 심각하다는 진단을 받으셨답니다. 그래서 올스타 브레이크 들어가기 전에 미리 사임하겠다고 하셨고요.
“그럼 이번 트레이드 건과는 무관한 거네요.”
-오히려 고민하시던데요? 송찬우 선수는 보내지만 홍형태 선수에 조우진 선수면 박 감독님의 평생 숙원인 선발 야구가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안 잡으셨습니까?”
-작년에도 지병으로 두 번인가 응급실 가셨거든요. 단장이라고 딱히 해드린 것도 없는데 이러다 사람 잡겠다 싶어서 보내드렸습니다. 대신 올해 잔여 연봉은 지급하기로 했고요.
박영천 감독도 박흥선 감독처럼 창단 때부터 쭉 파이터즈를 이끌어 왔다.
선수 시절 커리어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구단에서 코치 생활을 해온 경력을 높이 사 파이터즈 구단은 3년 계약을 제안했고 작년 겨울 다시 4년 재계약에 합의했다.
누가 파이터즈 감독으로 오더라도 현실적으로 성적을 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 구관이 명관일 거라는 팬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했던 건데 사람 좋은 박영천 감독도 성적에 따른 스트레스를 피하지 못했다.
“그럼 당분간 대행 체제로 가시는 겁니까?”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신임 감독은 시즌 끝나고 찾아보려고요. 가능하면 신체 건강하신 분으로요.
“프로야구 감독 중에 건강한 분이 있을까요?”
-그러니까 건강한 분을 찾아야죠.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버틸 거 아니겠습니까?
김경민 단장이 농담처럼 말했다. 아무래도 최하위 팀에 모기업의 지원을 받기 어려운 형편이다 보니 감독을 까다롭게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참, 우선 지명권으로 박유성 선수를 뽑는다는 게 사실입니까?
“일단은 그렇게 논의가 되고 있습니다. 박유성 선수를 잔류시키려면 저희도 만반의 준비가 필요해서요.”
-하긴. 박유성 선수 정도면 계약금 많이 받아야죠. 제 돈 아니니까 하는 얘기지만 팍팍 써서 꼭 잡으세요. 박유성 선수가 국내에서 뛰어 줘야 관중들이 늘죠.
“회장님 특별 관심 사안이니까 잘 풀릴 겁니다.”
-부럽네요. 회장님이 야구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저희 회장님은 송찬우 선수가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설마요. 국대 에이스인데 모르시겠습니까?”
-정말입니다. 김 단장님께만 하는 말이지만 야구를 별로 안 좋아하세요. 축구 좋아하십니다.
“안타까운 일이네요.”
-그래도 지원 적은 것 빼고는 윗선에서 간섭하는 거 없어서 마음은 편합니다. 아이고. 이거 또 전화가 들어오네요. 아무튼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고 혹시라도 괜찮은 감독님 알고 계시면 추천 좀 해주세요. 좋은 하루 되시고요.
뚝 끊긴 전화를 내려다보며 김재식 단장이 피식 웃었다.
지난번에 트레이드 건으로 만났을 때는 노련한 사업가를 보는 것 같았는데.
막상 일에 치여 정신없는 걸 보니까 동병상련이 들었다.
“그나저나 파이터즈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됐으니 나도 서둘러야겠는데?”
김재식 단장은 핸드폰과 지갑을 챙겨 단장실을 나섰다.
때마침 고명환 팀장이 허겁지겁 다가왔지만 지금은 그를 상대해 줄 시간이 없었다.
“단장님! 어디 가십니까?”
“네. 잠깐 나갑니다.”
“그럼 언제 들어오십니까?”
“글쎄요.”
고명환 팀장을 뒤로하고 김재식 단장은 신성 고등학교로 차를 몰았다.
따악!
“센터!”
신성 고등학교 운동장에서는 자체 청백전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협회장기에서 예선 탈락했다고 들었는데 다들 열심이네.”
박유성이 올림픽 대표팀으로 차출되어 있던 동안.
신성 고등학교는 협회장기 서울 지역 예선을 치렀다.
지난 대통령배 때와 마찬가지로 24강전과 12강전은 뚫고 올라갔지만 6강전에서 덕우 고등학교에게 패배한 뒤 최종 진출전마저 내주면서 협회장기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운이 나빴지. 이관우에 안경호를 연달아 만났으니까.”
박유성이라도 있었다면 어떻게든 활로를 열었겠지만.
눈앞의 신성 고등학교에는 U-18 야구 월드컵을 통해 한층 성장한 이관우와 안경호를 공략해 낼 수 있는 타자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주말 리그 후반기 왕중왕전인 청룡기 출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었다.
“박유성 선수가 경성 고등학교를 잡아 준 게 컸어. 그 경기 아니었다면 아마 4위 자리를 지키지는 못했을 거야.”
잠시 연습 경기를 지켜보던 김재식 단장은 김석률 수석 코치를 발견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김석률 수석 코치도 김재식 단장을 알아보고는 나승균 감독에게 양해를 구했다.
“감독님. 손님이 찾아와서 잠깐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습니다.”
“청백전인데 뭘. 그렇게 해.”
나승균 감독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에서 들려오는 박유성의 활약상에 요즘 들어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하지만 김석률 수석 코치는 애제자인 박유성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진로 고민을 하게 됐다.
“하아……. 몇 년은 더 경험을 쌓으려고 했는데.”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김석률 수석 코치가 운동장 옆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러고는 김재식 단장에게 오지 말고 기다리라고 손짓을 했다.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십니까?”
“통 답을 주지 않으셔서요. 제가 마음이 급합니다, 코치님.”
“회장님 허락은 받고 이러시는 겁니까?”
“네. 받았습니다.”
“……네?”
“오는 길에 회장실에서 연락받았습니다. 이제 코치님 승낙만 남았습니다.”
김재식 단장이 차기 감독으로 김석률 수석 코치를 낙점한 건 사흘 전.
파이터즈로부터 20인 외 선수 명단을 받은 다음이었다.
홍형태와 조우진을 파이터즈로 보내는 이유를 상기하다가 불현듯 박유성과 가까운 지도자 중에서 차기 감독감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김석률 수석 코치로 이어졌다.
하지만 김석률 수석 코치는 갑작스러운 스타즈 감독 제안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저를 뭘 보고 이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감당하기에는 과분한 자리입니다. 지난 번에도 그렇게 말씀드렸고요.”
프로 야구 감독 자리를 가리켜 독이 든 성배라고 한다.
성적이 좋을 때는 명장 소리를 듣지만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야 하는 게 프로 야구 감독이었다.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프로야구 감독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건 프로야구 코치로 경험을 쌓은 다음의 이야기였다.
아마추어 지도자로도 여러모로 부족한 지금은 감히 넘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김재식 단장은 김석률 수석 코치가 적임자라 확신했다.
“코치님. 다른 걸 떠나서 박유성 선수 하나만 생각해 주십시오.”
“유성이요?”
“박유성 선수, 스타즈에서 우선 지명할 겁니다. 회장님께서 최고 대우를 약속하셨으니까 무조건 스타즈 유니폼을 입힐 거고요. 그런데 박유성 선수를 이끌어 줄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될 예정입니다.”
“저보다 좋은 감독님들 많습니다.”
“네. 코치님보다 유명하신 감독님들이야 많죠. 하지만 박유성 선수에 대해 코치님보다 잘 아는 지도자가 또 있을까요?”
“그야…….”
“그렇다고 박유성 선수 하나 때문에 감독 자리를 제안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감독님이라면 박유성 선수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스타즈를 만들어주실 거라 믿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2학년 시절에 이렇다 할 활약조차 없었던 박유성 선수를 대한민국 최고의 톱 타자로 키워내신 게 코치님이시잖습니까.”
“그건 감독님이…….”
“나 감독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의 박유성 선수를 만든 건 김 코치님이시라고요. 그러니까 다시 한번 박유성 선수를 맡아 주십시오. 아시잖습니까. 제아무리 재능 있는 선수라 해도 그릇된 지도자를 만나면 피지 못하고 꺾인다는 것을요.”
“…….”
“박유성 선수를 가리켜 백 년에 한 번 나올 만한 재능이라고 합니다. 그 재능을 온전히 꽃피울 수 있게 코치님께서 도와주십시오.”
“하아…….”
김석률 수석 코치가 길게 탄식했다.
자신이 한 것이라고는 박유성을 믿고 판을 깔아준 게 전부인데 어쩌다 보니 박유성을 키운 지도자가 된 것 같아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김재식 단장의 간곡한 청은 뿌리치기 어려웠다.
박유성처럼 재능 넘치는 선수라면 그 누구라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키우고 싶은 욕심이 날 터.
유명한 지도자가 감독이랍시고 박유성을 쥐고 흔드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자신이 나서서 애제자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 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 유성이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까지만 해보자.’
김재식 단장의 읍소에 넘어간 김석률 수석 코치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고.
덕분에 김재식 단장도 마음 편히 박흥선 감독을 정리할 수 있게 됐다.
“감사합니다. 코치님. 아니, 이제 감독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할까요?”
“아직 정식으로 취임한 건 아니니까 코치라고 불러 주세요.”
“알겠습니다. 코치님. 그럼 가시죠. 제가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식사는 다음에 하죠. 애들하고 같이 결승전 보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