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152화 (152/412)

타자 인생 3회차! 152화

21. 우유천!(8)

송현민이 2023년에 받은 계약금은 세후 8억 원.

세전 기준으로는 13억이고 여기서 2배면 25억이었다.

추가로 광고료까지 2배로 챙겨 준다면 35억 선.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외야수에게 주기에는 터무니없이 많은 금액이었지만 한용준 비서실장은 물론이고 박원호 과장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똑똑.

문소리에 이어 비서 한소율이 회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회장님. 스타즈 구단에서 올라온 보고서입니다.”

“스타즈에서? 이리 줘 봐.”

신상욱 회장은 서둘러 서류를 살폈다.

아침에 프로 야구 협회와 트레이드 관련 조율을 끝냈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새 보고서가 올라오니까 괜한 불안감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트레이드 관련 사안은 아니었다.

“이거 김 단장이 칼을 제대로 뽑아 들었는데?”

신상욱 회장이 서류를 다시 한용준 비서실장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한용준 비서실장이 빠르게 내용을 살피고는 다시 서류를 내려놓았다.

“어떻게 생각해?”

“저보다는 박 과장의 의견을 참고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자네 의견이 먼저야.”

“제 생각에는 김 단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게 좋겠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던 신상욱 회장이 박원호 과장을 바라봤다.

“박 과장. 우리 팀 감독 말이야. 어떻게 해야 할 거 같아?”

“박흥선 감독의 거취에 대해 물으신 거라면 제가 감히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김 단장은 감독을 바꾸자는데 자네 생각은 어때?”

“박흥선 감독을 교체해야 한다면 올해가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내년에 성적을 낸 다음에는 바꾸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스타즈의 초대 사령탑으로 선임된 박흥선 감독은 올해로 5년째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2024년 부임해 3년 계약을 했고.

2026년 겨울에 추가로 3년 연장 계약에 합의했다.

계약대로라면 내년까지 스타즈를 맡겨야 하는 상황.

하지만 박흥선 감독을 중심으로 한 카르텔을 도려내기로 마음먹은 김재식 단장은 지명권 트레이드에 이어 감독 교체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 말은 교체를 해야 한다는 거지?”

“박흥선 감독은 스타즈가 원하던 감독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감독이 제 잇속만 챙기고 있다면 교체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2023년 겨울 신생 구단 창단을 발표할 때만 해도 신성 그룹은 제법 큰 그림을 그렸다.

연고지를 서울로 두고 신규 구장 건립을 발표하면서 송찬우를 비롯한 대어급 신인 선수들을 발 빠르게 영입하고 마지막으로 프로야구 레전드 출신 감독 선임으로 방점을 찍어 프로야구판에 화려하게 데뷔를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 중에 실현된 건 서울 지역 연고지 하나뿐이었다.

정확하게는 다른 구단들과 야구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고집하면서 모든 그림이 틀어졌다고 봐야 했다.

프로 야구 협회에서 11구단과 12구단의 청사진을 발표하자 기존 구단들은 지역 간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10개 프로 야구 구단 중에 서울에 연고를 둔 팀이 셋.

거기에 인천과 경기도까지 더하면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보니 지방 야구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신생 구단은 지방에 유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그러나 신상욱 회장은 프로 야구 협회 가입금을 더 내는 한이 있더라도 서울에 자리를 잡겠다고 고집했고, 그 뜻을 꺾지 못한 프로 야구 협회에서 서울 입성을 승인하면서 야구계의 반발을 불렀다.

부지를 매입하고 삽을 뜰 준비만 남았던 신규 구장 건축은 기존 구단의 반발로 서울시에서 제동을 걸면서 공사가 반년 넘게 늦어졌고.

신인 지명도 다른 구단의 눈치를 보며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코칭스테프 구성이었다.

앞서 10개 구단 출신 전·현직 야구인들이 공동 성명서를 통해 스타즈의 지방 창설을 촉구한 터라 스타즈의 구애에 전부 난색을 드러낸 것이다.

당장 선수단 구성이 급했던 스타즈는 부랴부랴 동호대학교 감독인 박흥선 감독을 초대 감독으로 선임했고.

박흥선 감독은 자신과 친분이 있는 아마추어 지도자들을 데려와 코치진을 꾸렸다.

주변 야구인들의 비난을 감수하고 스타즈를 위해 와 준 박흥선 감독이 고마웠던 신상욱 회장은 프로 출신 감독을 선임하겠다는 구단의 요청을 거절하고 의리를 지키라며 3년 재계약을 주문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흥선 감독과 스타즈의 아름다운 동행이 계속될 것 같았지만.

박흥선 감독이 신상욱 회장의 신뢰를 악용해 제 잇속만 채우려 했다는 사실이 전부 드러난 이상 어떻게든 마침표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다들 교체는 찬성하는 거 같고. 문제는 차기 감독인데…… 박 과장.”

“네. 회장님.”

“다시 한번 아마추어 지도자로 가는 건 어떻게 생각해?”

“아마추어 지도자라 하시면…….”

“김재식 단장은 신성고 김석률 코치를 추천했어.”

“아, 김석률 코치라면 저도 얘기는 들었습니다. 미국과 일본 연수를 자비로 다녀왔다고 하더라고요.”

“구단의 지원을 받으면 아무래도 그 구단에 빚을 지는 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김석률 코치는 다른 어떤 구단과도 연결 고리가 없다는 얘기로군.”

“연수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여러 프로 팀에서 코치 제안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본인이 밑바닥에서 지도자 경험을 쌓겠다며 고사했고요. 어쩌면 그때 이미 전 소속팀 색을 빼려 했던 것 같습니다.”

“김 코치가 어디 출신이야?”

“주로 수도권 팀에서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베어스에 입단해서 유니콘스를 거쳐 트윈스에서 은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코치 연수를 보내주겠다던 구단은 트윈스였나 보군.”

“그것까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연수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복수의 수도권 팀들이 코치 제안을 해왔다고 들었습니다.”

“흠……. 그럼 일단 특정 팀의 색은 없다고 봐야겠네.”

신상욱 회장이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처음에 김석률이란 이름을 봤을 때 무슨 생각인가 싶었는데.

박원호 과장의 부연 설명을 듣고 나니까 김재식 단장이 무엇을 그리려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박원호 과장도 신상욱 회장의 판단에 동의했다.

“비록 포스트 시즌에는 나가지 못했지만 스타즈의 방향성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이 공과 사를 구분 못 했는데 그런 소리가 나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기본적인 틀은 다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과가 있다고 해서 공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얼씨구? 비서 시켜줬더니 이젠 날 가르치려 드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회장님.”

“아냐. 됐어. 박흥선 감독이 정말로 형편없는 인간이었다면 내가 재계약을 지시하지도 않았겠지. 에잇. 못된 인간 같으니. 아무튼 김석률 코치는 괜찮다는 거지?”

“복수의 후보 중에 이름을 올릴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복수의 후보는 무슨. 박유성이 데려오면 한동안 공공의 적이 될 텐데 또 누가 오려고 하겠어?”

신상욱 회장이 코웃음을 쳤다.

창단 당시 한 차례 겪어 봤지만 현역 지도자들은 여론을 상당히 신경 썼다.

실리와 명분을 따지면서도 여론이 좋지 않으면 슬그머니 발을 빼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다를 거라 생각됩니다. 창단 5년 차에 접어들었고 포스트 시즌을 바라볼 만큼 팀 전력도 탄탄해졌습니다. 무엇보다 내년에는 박유성 선수와 김혜성 선수가 합류할 예정이고요.”

“우승 욕심내고 들어오는 놈들은 뻔해. 가만히 놔둬도 잘 굴러가는 차에 생색을 내겠다고 이걸 건드리고 저걸 손 보다가 고장이나 내겠지. 그런 놈들보다야 김석률 코치가 나아.”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회장님.”

한용준 비서실장이 냉큼 맞장구를 쳤다.

신상욱 회장이 결심을 굳힌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해 봐야 달라질 건 없었다.

박원호 과장도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이번 기회에 이름난 명장을 앉히는 것도 좋을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구단주인 신상욱 회장의 고집을 꺾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 시각.

스타즈 박흥선 감독은 고명환 스카우트 팀장, 김대철 차장과 함께 모처에서 대책 마련에 열심이었다.

“그러니까 트레이드가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언론에서 이 난리를 치는데 되겠습니까? 될 일도 안 되죠.”

“그렇지? 트레이드는 무산되겠지?”

“트레이드가 무산되면 우선 지명으로 박유성을 뽑아야 할지 모릅니다.”

“하아. 그건 곤란한데. 이미 고 교수한테 얘기를 다 했단 말이야.”

구단에서는 감독 교체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박흥선 감독은 고성기 교수와의 인연을 포기하지 못했다.

언제고 감독직에서 물러나면 고성기 교수를 통해 동호 대학교 교수 자리를 받아낼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저도 곤란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현우 부모님께도 얘기 다 해놨는데 이런 식으로 엎어지면 제 체면이 뭐가 됩니까?”

김대철 차장도 앓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우선 지명으로 박유성이 뽑히면 배현우는 1라운드 지명에서 뽑을 수가 없게 된다.

잘해야 2라운드일 텐데 우선 지명에 버금가는 1라운드 지명과 2라운드 지명은 계약금 앞자리부터 달랐다.

“지금 이 와중에 배현우를 밀고 싶어? 고윤식도 못 뽑게 생겼는데?”

“고윤식은 다른 구단에서 1라운드 지명 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아니 대체 얼마를 받아먹었기에 이래?”

“그런 거 아니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현우는 제가 중학생 때부터 눈여겨본 녀석입니다. 올해 성적도 나쁜 편은 아니고요. 뽑아서 잘만 가르치면 송찬우만큼은 성장할 겁니다.”

“송찬우 같은 소리 하지 말고 김 차장도 양보해.”

“팀장님!”

“언성 높이지 말고 내 말 들어. 박유성 우선 지명하게 되면 고윤식을 1라운드에서 뽑고 배현우는 2라운드에서 뽑는 거야. 대신 계약금은 섭섭지 않게 챙겨 볼 테니까 그 정도로 만족하자고.”

“하아……. 이러면 곤란한데.”

“지금 나보다 곤란한 사람 있어? 감독님도 괜찮으시죠?”

“1라운드라. 하하. 이거 내가 고 교수를 볼 면이 없어.”

박흥선 감독과 김대철 차장이 연신 한숨을 내쉬었지만 고명환 팀장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김재식 단장이 자신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터무니없는 트레이드를 준비했는데 고윤식과 배현우를 계속 밀어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차라리 잘 됐어. 고윤식을 우선 지명으로 뽑는 거 부담스러웠는데 1라운드로 밀자. 계약금은 박유성과 비슷하게 주면 될 거니까 상관없겠지. 그럼 김혜성은 앞에서 가져갈 거고 고윤식을 뽑아도 문제 될 거 없어.’

빠르게 견적을 낸 고명환 팀장은 반쯤 남은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고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박흥선 감독과 김대철 차장을 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감독님은 김혜성이 빈볼 트라우마가 신경 쓰였다고 하세요. 다른 말씀은 일절 하지 마시고요.”

“걱정 마. 둘러대는 건 나도 선수니까.”

“김 차장은 당분간 배현우의 배자도 꺼내지 마. 알았어?”

“진짜 계약금 제대로 챙겨 주셔야 합니다?”

“자꾸 입 아프게 할래?”

“알았어요. 그럼 저는 고 팀장님만 믿습니다.”

그때였다.

고명환 팀장의 핸드폰이 지이잉 하고 울렸다.

“뭐야?”

혹시나 구단에서 온 연락일까 봐 냉큼 깨톡을 확인한 고명환 팀장이 눈을 치떴다.

파이터즈 박영천 감독, 전격 사임.

“……!”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도 전에 불씨가 옆집으로 옮겨붙어 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