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151화
21. 우유천!(7)
“아직 구체적인 금액이 나오진 않았습니다만 역대 신인 최고 계약금은 넘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현 프로 야구 신인 최고 계약금은 2006년에 함기주가 받은 10억이었다.
이후 수많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탄생했지만 10억이라는 함기주의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었다.
10억 갱신이 유력하다던 송현민도 8억에 사인을 했고.
박유성과 함께 대표팀의 미래라 불리는 박준수와 민병규는 1라운드 지명이라 5억에 그쳤다.
“우리 구단에서 계약금을 제일 많이 준 게 누구야?”
“김정석하고 나현호입니다. 둘 다 5억 2천만 원을 받았습니다.”
“그렇게나 많이 줬어?”
“1라운드에서 뽑힌 박준수 선수가 5억을 받아서요. 그것보다 조금 더 챙겨 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그냥 송찬우를 살 걸 그랬어.”
2024 드래프트는 역대급 풍년이라는 말이 많았다.
국가대표 좌우 원투 펀치로 성장한 송찬우와 임찬기를 시작으로 박준수 민병규에 이르기까지 실력 있는 선수들을 다수 배출해 냈다.
송찬우와 임찬기를 두고 저울질하던 타이거즈에서 임찬기를 선택하면서 스타즈도 송찬우를 우선 지명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당시 타이거즈의 결정에 크게 실망한 송찬우는 메이저리그행을 선언했고.
자칫 잘못했다가 우선 지명권을 날릴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스타즈는 송찬우 대신 나현호를 지명했다.
나머지 한 장은 당시 투수 빅 5로 꼽혔던 덕우 고등학교 에이스 김정석.
서울에 연고를 둔 구단에서 서울 지역 프랜차이즈를 육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상당해서 송찬우보다 앞서 후보에 올린 건데 결과적으로 창단 첫 우선 지명은 실패로 돌아갔다.
나현호는 음주 운전으로 영구 제명됐고.
김정석도 입단 직후 팔꿈치 인대 손상이 발견되어 토미 존 서저리 수술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김정석은 복귀해 팀의 마무리 투수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나현호와 김정석에게 5억 2천만 원이나 퍼줬다고 생각하니까 신상욱 회장은 속이 쓰렸다.
“송찬우는 얼마를 받았지?”
“5억 받았을 겁니다.”
“파이터즈에서 그렇게나 줬어?”
“당시에 메이저리그 간다던 송찬우 선수를 겨우겨우 설득했으니까요. 계약금이라도 다른 구단과 맞춰줘야 했을 겁니다.”
“가장 많이 받은 건?”
“전 구단 통틀어 임찬기 선수가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5억 5천만 원이었고요.”
“대충 그 수준에 맞추기로 한 거야?”
“직전 해에 송현민 선수가 나와서요.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된 감이 없지 않습니다.”
2023년 송현민을 우선 지명한 트윈스에서 진통 끝에 8억이라는 계약금을 책정하자 우려 섞인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해외 진출과 FA 연한이 짧아졌고 실력에 맞춰 연봉이 나가는 상황에서 신인에게 과도한 계약금을 주는 건 프로야구 모든 구단들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송현민 때문에 다들 손해를 본 거네?”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2023년에는 송현민 선수가 최대어였습니다. 반면 2024년에는 빅 4가 있었죠.”
“그럼 올해는?”
“올해는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어떻게?”
“시즌 초반에는 김신우 선수와 이관우 선수, 안경호 선수, 김영진 선수, 나해준 선수를 묶어서 고교 투수 빅 5라고 불렀습니다. 대학 선수들 중에서는 고윤식 선수가 최대어로 꼽혔고 타자 쪽에서는 강준혁 선수와 이동엽 선수, 김현중 선수를 최고로 쳤습니다.”
“김현중이? 그 김경진 협회장 아들?”
“네. 2학년 때 성적이 좋았습니다.”
“계속 해봐.”
“그러다 김혜성 선수가 활약하면서 투수 쪽은 빅 7이 됐고 거기에 대통령배 이후 박유성 선수의 이름이 추가됐습니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
“이때는 시즌 초반이라 선수 간에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U-18 야구 월드컵이 끝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투수 쪽에는 김혜성 선수와 김신우 선수, 이관우 선수가 톱 3로 압축됐고 타자 쪽은 박유성 선수 혼자 남았습니다.”
“그렇게 빅 4야?”
“네. 빅 4였습니다. 올림픽 전까지는요.”
“그 얘기는 지금은 아니라는 거야?”
“지금은 압도적으로 박유성 선수가 최고입니다.”
“압도적이야?”
“네. 압도적입니다. 언론에서 제2의 송현민이라 부르는 게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신상욱 회장이 피식 웃었다.
자신의 곁을 20년 넘게 지켜 온 한용준 비서실장이 이렇게나 흥분해서 말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한 실장 자네가 스타즈 사장이라면 박유성이한테 얼마를 주겠어?”
“저라면 일단 메이저리그 쪽 오퍼를 체크하겠습니다.”
“메이저리그?”
“최소한 그 수준에 맞추거나 그보다는 더 줘야 박유성 선수가 국내에 남지 않겠습니까?”
“옳거니. 우문현답이네.”
신상욱 회장은 곧바로 박원호 과장을 호출했다.
잠시 후.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이제는 아예 회장실 산하 비서실로 자리를 옮긴 박원호 과장이 멀끔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나타났다.
“그렇게 입고 다니니까 신수가 훤하네.”
“다 회장님 덕분입니다.”
“그런 입에 발린 말은 됐고. 박유성이 말이야. 메이저리그에서 얼마쯤 주고 꼬실 거 같아?”
신상욱 회장의 노골적인 질문에 박원호 과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일단 500만 달러는 넘기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유는?”
“메이저리그 구단들마다 해외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쓸 수 있는 돈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가장 많은 구단이 650만 달러고, 가장 적은 구단이 550만 달러인데 계약금 한도액의 최대 50퍼센트까지 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트레이드 금액까지 더하면 가장 많이 쓸 수 있는 구단은 1천만 달러 정도로군.”
“네. 정확하십니다. 회장님. 그래서 최대 500만 달러를 잡았습니다. 구단마다 가계약한 선수들이 많아서 1천만 달러를 박유성 선수에게 전부 투자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무엇보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에게 아시아 시장은 후순위라서요.”
“이유가 뭐야?”
“프로 리그가 활성화된 게 가장 큽니다. 중남미 국가들은 프로 선수가 된다 해도 큰돈을 벌기 어렵지만, 우리나라만 해도 100억 대 FA 계약이 줄을 잇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 우리나라도 많이 좋아졌지.”
“거기다 미국과 우리나라는 구단 지원이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2군도 숙식을 제공하고 장비까지 챙겨 주지만 미국은 메이저리그로 올라가기 전까지 얄짤 없습니다. 전부 개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문제는 중남미 선수들은 그런 환경에 익숙하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시아 국가 선수들은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야구를 해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국의 아마추어 선수들은 마이너리그 생존력이 떨어져서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후순위로 뽑는다는 말이로군.”
“정확하십니다. 회장님. 물론 제가 말씀드린 이유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송현민 선수의 예만 들더라도 언론의 기대치보다 한참 낮은 오퍼가 들어왔습니다.”
“얼마였는데?”
“200만 달러 선이었다는 게 정설인데 옵션이 과하게 포함되어서 송현민 선수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트윈스하고 8억에 계약한 거야?”
200만 달러면 현 환율로 28억 정도.
트윈스에서 8억에 계약했으니 무려 20억을 포기한 셈이었다.
그러자 박원호 과장이 냉큼 설명을 붙였다.
“구단 측에서 세금 보전을 해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추가로 광고도 찍었고요.”
“그럼 그렇게 말해야지. 날도둑놈들이라고 할 뻔했잖아.”
8억의 계약금에 부과되는 세금은 3억이 넘었다.
세금을 전액 선수가 부담한다면 실수령액은 5억에 못 미치겠지만 그 세금을 구단에서 대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세후 8억을 수령하려면 실제로 13억원을 받아야 했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송현민의 계약금은 8억이지만 실제로는 10억을 받은 함기주의 신인 최고 계약금을 갈아치운 셈이었다.
반면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제안받은 200만 달러는 세전 금액.
세금과 에이전트 비용 등으로 절반쯤 뗀다고 가정하면 금액 차이는 5억 정도로 좁혀지게 된다.
거기에 트윈스 구단은 송현민의 기를 살려주겠다며 그룹 계열사 광고 두 편을 보장했다.
그 금액만 세후 5억에 달하니 결국 송현민은 미국에서 받을 수 있는 돈 전부를 트윈스에 받아낸 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기회비용도 따져야 합니다.”
“기회 비용?”
“송현민 선수는 프로 데뷔와 동시에 1군에서 활약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으로 건너갔다면 최소 3년 정도는 마이너리그에서 뛰어야 했을 겁니다.”
“송현민이 정도가 3년이나 마이너리그에서 굴러야 해?”
“그 당시에 송현민 선수는 보여준 게 없었으니까요. 중남미에서 데려오는 선수들도 대부분 3년 이상 마이너리그에서 적응기를 갖는 편이고요.”
마이너리그의 주급은 한화로 60만 원 정도.
월에 240만 원에 비시즌에는 월급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1년에 2천만 원 남짓한 돈으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메이저리그 승격이 될 때까지 버텨야 한다.
하지만 송현민은 트윈스에 입단해 3년 차 때 그 10배가 넘는 연봉을 받았다.
“그 전에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면 계산이 달라지는 거 아냐?”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도 풀타임으로 3시즌을 채우기 전까지는 연봉조정 신청 자격이 없습니다. 구단에서 주는 대로 받아야 해서 거의 최소 연봉을 받고 뛰어야 합니다. 게다가 단순 계산으로 FA가 되려면 마이너리그 포함 9년 이상을 고생해야 하는데 송현민 선수는 5년간 한국에서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로 활약하다가 FA에 준하는 조건으로 레인저스로 이적했습니다. 단순히 금전적으로만 따졌을 때 무조건 국내 리그를 거치고 가는 게 이득입니다.”
“그런데 왜 다들 송현민을 미국에 못 보내서 안달이었던 거야?”
“송현민 선수라면 마이너리그 생활을 1년 만에 마치고 곧바로 메이저리그에 올라가 주전 자리를 꿰찰 거라고 떠들어대는 언론들이 문제죠. 그런 식으로 미국에 갔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선수들이 한 트럭인데 언론들의 설레발은 변하질 않습니다.”
“그렇게 됐을 가능성은 없어?”
“1년 차 초반에 송현민 선수는 고교 야구 투수들과는 다른 프로 야구 투수들의 구위에 눌려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송현민 선수를 붙박이 주전으로 키워야 한다던 팬들조차 2군행을 바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타격 스타일을 바꿔 생존에 성공했습니다만 마이너리그로 갔다면 지금의 스타일을 완성하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 모릅니다.”
“마이너리그 투수들 두들기고 재미 좀 보다가 나중에야 벽에 부딪칠 거다?”
“네.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박원호 과장이 냉정하게 말했다. 그러자 신상욱 회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박유성이는? 박유성이도 별반 다를 바 없는 거야?”
“아닙니다. 회장님. 박유성 선수는 올림픽에서 보여 주지 않았습니까? 게릿 벌렌더와 마츠다 유이토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투수입니다. 그들을 상대로 안타를 때려냈으니 6년 전 송현민 선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송현민을 가리켜 기정후와 감백호를 잇는 최고의 재능이라 평가하는 야구인들이 많았지만 그런 송현민도 박유성 나이 때 박유성처럼 잘하지는 못했다.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한 것도 앞서 열린 U-18 야구 월드컵에서 타격 8관왕에 MVP를 휩쓸었기 때문이다.
올림픽에 나가서도 연일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며 대한민국 대표팀을 결승에 올려놓았으니, 고교 유망주 송현민이 아니라 2023년 MVP 송현민 정도는 데려다 놓아야 키가 맞을 것 같았다.
“아까 한 실장이 그러더라고. 제2의 송현민이란 별명이 어처구니없다고. 박 과장 생각은 어때?”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냉정하게 따져서 박유성 선수 나이 때 송현민 선수는 박유성 선수 반도 못했습니다.”
“그럼 계약금을 송현민이 두 배는 줘야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