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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149화 (149/412)

타자 인생 3회차! 149화

21. 우유천!(5)

먼저 방으로 들어가는 신세혁 사무총장을 보며 배연석 과장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혹시 몰라서 한일전을 보는 와중에 틈틈이 보도 자료를 만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연석 과장이 자료 파일을 챙겨 들고 일어나자 서기철 대리가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사무총장 복귀. 이제 곧 결과 나올 듯.]

“후우…….”

사무총장실 안으로 들어가는 배연석 과장을 보며 서기철 대리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과장 정도만 됐다면 신세혁 사무총장에게 직접 커뮤니티의 반응을 전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아쉽기만 했다.

“여기 있습니다.”

“어느 게 트레이드 건입니까?”

“이쪽입니다.”

신세혁 사무총장은 숨 돌릴 새도 없이 트레이드 관련 보도 자료부터 확인했다.

보통은 승인과 보류, 부결, 세 가지를 준비해야 했지만.

배연석 과장이 만들어온 건 승인과 보류, 두 가지뿐이었다.

“부결은 왜 빠진 겁니까?”

“부결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근거는요?”

“과도한 현금 트레이드나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득을 보는 트레이드, 그리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을 수 있는 트레이드에 한해 거부를 할 수 있는데 어느 쪽도 해당 사항이 없었습니다.”

“보류의 근거는요?”

“스타즈 구단만 과하게 이득을 챙긴다는 일부 의견을 반영했습니다.”

“오늘 박유성 선수의 활약상 때문에요?”

“네. 다만 트레이드 요구 시점이 조별 예선 직후였기 때문에 그 점을 문제 삼는다면 논거가 약해집니다. 스타즈에서 20인 이외 선수들만 내준 것도 아니라서요.”

현재 FA 관련 보상 선수는 보호선수 20인 이외에서 고를 수 있다.

이마저도 군복무 중인 선수나 당해 FA 계약을 한 선수, 당해 신인 선수 등은 지명할 수가 없어서 실제로 즉시전력감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스타즈는 20인 이외 선수 2명과 함께 홍형태와 조우진을 내줬다.

홍형태는 어느 팀에 가더라도 선발 한 자리를 꿰찰 영건이고.

조우진도 올해 반등을 통해 20인 선수 안에 충분히 들어갈 만한 투수였다.

“일단 이걸 나눠서 생각해 봅시다. 지명권은 10억에 20인 선수 2명 정도로 보면 되는 거죠?”

“작년 기준으로 따지면 그렇게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송찬우 선수를 받는 조건으로 홍형태 선수와 조우진 선수에 10억을 얹은 건데 이건 말이 안 나오겠어요?”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말해봐요.”

“저라면 홍형태 선수에 10억으로 맞췄을 겁니다. 송찬우 선수는 내년이면 해외로 나갈 가능성이 높지만 홍형태 선수는 해외 진출을 하기에는 좀 애매하거든요.”

“송찬우 선수를 내년까지 쓰는 것보다 홍형태 선수를 FA 때까지 쓰는 게 더 낫단 얘기로군요.”

“거기에 현금 10억을 얹었고 추가로 송찬우 선수의 해외 진출 때 이적료까지 나누기로 했으니까요. 이 정도면 스타즈에서 충분히 배려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조우진 선수는 뭡니까?”

“저도 그게 궁금한데 아마도 파이터즈에서 받을 수밖에 없는 그림을 그린 것 같습니다.”

“홍형태 선수만 준다고 하면 계산기를 두드려 보겠지만 조우진 선수까지 포함되면 파이터즈 쪽이 확실히 이득이라는 말이로군요.”

“한일전 끝나고 시간이 꽤 지났습니다만 파이터즈 쪽에서 트레이드를 무르겠다는 요청은 없었습니다.”

“시간이 늦어서 연락이 없는 거 아닐까요?”

“당장 내일, 아니, 자정이 넘었으니 오늘 아침에 트레이드 결과를 발표해야 하는데 마음이 바뀌었다면 진즉 전화가 왔을 겁니다.”

“흠…….”

“그만큼 파이터즈가 얻는 게 많은 장사입니다. 김경민 단장 입장에서는 전력도 보강하고 운영비도 충당할 수 있는 이 기회를 포기하지 못할 겁니다.”

신세혁 사무총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연석 과장의 말처럼 서로가 원하는 트레이드를 협회 입맛대로 부결시키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부결은 어렵다고 치고 보류는 어때요?”

“여론을 의식하시는 거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배 과장은 승인을 해줘야 한다는 의견인 거죠?”

신세혁 사무총장이 배연석 과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배연석 과장이 크게 숨을 한 번 몰아쉬고는 생각했던 바를 꺼냈다.

“오늘 박유성 선수를 보면서 모처럼 온몸에 닭살이 돋았습니다. 협회 일을 하면서 지금껏 많은 선수들을 봐왔지만 선동연이나 기종범, 채동원, 양준석, 이승협 선수 같은 감동은 거의 받지 못했거든요.”

“이거 송현민 선수가 들으면 엄청 서운해하겠는데요?”

배연석 과장이 트윈스 팬이라는 걸 알고 있는 신세혁 사무총장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하지만 배연석 과장은 표정 변화 없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물론 송현민 선수 야구 잘합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수인데 당연히 잘하죠. 그런데 뭐랄까…… 야구를 기술적으로 잘하는 거지 열정적으로 잘하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요즘은 아무래도 선수 육성 노하우가 좋아졌으니까요.”

“네. 그런데 박유성 선수는 제가 좋아했던 레전드 선수들을 한데 섞어놓은 느낌입니다. 주루나 수비를 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기종범이고 타격은 젊은 시절 양신을 닮았습니다. 임팩트 있는 스윙으로 홈런을 때려내는 건 딱 이승협이고요.”

“평가가 너무 후한 거 아닙니까?”

신세혁 사무총장이 다시 웃었다. 박유성이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을 가진 선수라는 건 인정하지만 대한민국 야구사에서 첫손에 꼽히는 타자들을 전부 가져다 붙이는 건 반칙 같았다.

그러자 배연석 과장이 신세혁 사무총장에게 되물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잖습니까. 총장님께서 고민하시는 이유도 박유성 선수가 그만큼 대단한 재능을 가졌기 때문 아닙니까?”

“그야…….”

“솔직히 오늘 한일전, 박유성 선수 없었다면 졌을 겁니다. 저도 주변에 물어봤는데 한일전이니까 지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이길 수 있을 거라 확신하는 사람은 거의 없더라고요. 다들 한일전이니까 어떻게든 이겨주길 바랐는데 그게 현실이 됐습니다. 그 덕분에 박유성 선수는 병역 혜택을 받은 최연소 야구 선수가 됐고요.”

“그래요. 그게 문제입니다. 운 좋게 병역 혜택을 받게 된 것도 아니고 혼자서 이 악물고 대표팀을 결승전에 올려놓은 게 문제가 되는 겁니다.”

신세혁 사무총장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고교야구 유망주인 박유성이 어느 팀에 가건 상관없지만.

병역 혜택을 받은 박유성은 이야기가 달랐다.

이미 성인 대표팀에서 활약할 만큼 실력이 좋은 선수가 병역 문제까지 해결해 버렸으니 다른 팀들의 반발을 무마시킬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배연석 과장은 순리대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트레이드를 보류시키면 스타즈는 명분을 얻을 겁니다.”

“무슨 명분이요?”

“아시잖습니까. 박유성 선수의 우선 지명권은 스타즈에게 있다는 거. 나현호 선수 건으로 신성고 선수는 우선지명하지 않는 게 관례가 됐습니다만 그렇다고 연고 지역 선수를 다른 구단에게 뺏길 생각은 없을 겁니다. 스타즈 팬들 여론도 그렇고요.”

“우리가 보류를 하면 스타즈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박유성 선수를 지명할 거란 얘기로군요.”

“네. 그건 법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다른 팀들이 불만을 가질 수도 없고요. 오히려 파이터즈만 곤란해질 겁니다. 구단의 연명을 위해 에이스인 송찬우 선수까지 카드로 내놓았는데 엎어지면 존폐 위기에 몰리게 되겠죠.”

“흠…….”

“파이터즈는 해마다 협회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명권 트레이드를 허락해 줬던 거고요. 트레이드를 거부하면 파이터즈에게 지원을 해줘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럼 또 다른 갈등이 생기겠죠.”

“다른 11개 구단들이 반발할 거란 얘기네요.”

“리그 파행을 원치는 않겠지만 파이터즈만 지원을 받는 건 원치 않겠죠. 그러다 보면 불만의 화살은 12개 구단 체제를 강행했던 협회를 향할 겁니다.”

신세혁 사무총장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정이 다소 극단적이긴 했지만 사무처에서만 10년 넘게 일을 해온 배연석 과장의 말을 가볍게 넘길 수가 없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총재님 연임도 힘들어져.’

프로 야구 협회 26대 총재인 장인석 총재의 임기는 연말까지.

전임 총장이 벌였던 12개 구단 체제와 양대 리그 개편을 안정적으로 정착시켰다는 평가 속에서 재임이 유력한 상황이지만.

이번 트레이드에 문제가 생겨서 다른 구단들과 반목할 경우 구단총회에서 연임을 거부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웠다.

“다른 방법은 없겠습니까?”

“협회에서 욕을 먹지 않고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협회만 일방적으로 욕을 먹지 않도록 만들 수는 있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트레이드는 승인하되 스타즈에서 우선 지명으로 박유성 선수를 뽑으면 됩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아까 들어오시면서 직원들 보셨습니까?”

“직원들이요?”

“지금 이 시각까지 퇴근하지 않고 있는 직원 중에 잔업 때문에 남아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

“트레이드 승인 여부만 이틀 정도 유보하시죠. 그럼 아마 자연스럽게 여론이 장작을 때줄 겁니다.”

“그러다 스타즈에서 트레이드를 거절하면요?”

“우선 지명권과 1라운드 지명권으로 스타즈는 김혜성 선수와 박유성 선수를 데려오려 했을 겁니다. 그래서 조우진 선수까지 얹어준 거고요. 스타즈가 박유성 선수를 우선 지명할 경우 드래프트 최대어는 김혜성 선수가 됩니다. 송찬우 선수 해외 진출을 감안했을 때 김혜성 선수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겁니다.”

“흠……. 그럼 스타즈만 손해 아닙니까? 박유성 선수로 값을 치렀을 텐데요.”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겁니다. 김혜성 선수가 대학 최대어이긴 하지만 올해 최고 신인은 누가 뭐래도 박유성 선수이지 않습니까? 박유성 선수를 드래프트로 뽑으면 김혜성 선수 계약금이 걸릴 겁니다. 하지만 그 반대가 된다면…….”

“박유성 선수를 얼마든지 챙겨줄 수 있다는 얘기군요.”

“이미 스타즈 팬들도 신상욱 회장의 언약을 파기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언론이 조금만 부채질해 준다면 스타즈 팬들은 더 똘똘 뭉칠 겁니다. 겸사겸사 스타즈 구단도 자신들이 채운 족쇄를 풀 수 있으니 절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겁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진행하죠.”

신세혁 사무총장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총재실로 향했다.

장인석 총재도 최종 결과를 기다리느라 퇴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이고. 신 총장. 어서 와요. 그렇지 않아도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어요.”

장인석 총재가 신세혁 사무총장과 목소리를 낮춰 대화를 나누는 동안.

배연석 과장은 자리로 돌아와 티 나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요? 트레이드 안 된대요?”

“나도 모르겠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몰라 인마. 여기저기 눈치를 보면서 일을 어떻게 하라는 거야?”

배연석 과장이 짜증을 내자 서기철 대리가 입꼬리를 실룩였다. 그러고는 자신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기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여론을 의식하는 중. 부정적 기사 요망.]

서기철 대리를 필두로 협회 여기저기서 퍼져 나간 소스들이 각 구단 관계자와 기자들에게 전달됐고.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트레이드 관련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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