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141화
20. 병 주고 약 주고(7)
3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캐스터 장호영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대한민국 대 일본, 일본 대 대한민국의 LA 올림픽 야구 4강전을 중계해 드리고자 찾아왔습니다. 오늘도 제 옆에는 이선철 해설위원께서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이선철입니다.
-14일에 시작된 LA 올림픽도 어느덧 중반으로 접어들었는데요. 야구는 이제 막 시작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예선 일정이 끝나고 이제 본선이니까요. 아무래도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겠죠.
-이번 올림픽에 출사표를 던진 구기 종목들 가운데 4강에 오른 건 여자 핸드볼과 배드민턴, 여자 배구, 그리고 야구 정도인데요. 오늘 경기를 잡아낸다면 구기 종목들 가운데 가장 먼저 메달을 확정 지을 수 있습니다.
-이미 다 아시겠지만 4강전에서 이기면 결승전에 올라가게 되는 거니까 최소한 은메달은 확보하게 되는 셈입니다.
-이번 LA 올림픽 야구는 모 대회처럼 희한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 4강 단판 승부로 결승 진출팀이 가려진다는 점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순간 채팅창으로 도쿄올림픽을 디스하는 거냐는 글들이 올라왔지만.
때마침 화면으로 A조 조별 예선 결과가 나오자 장호영 캐스터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당초 4강 진출이 쉽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많았습니다만 대한민국 대표팀이 3전 전승으로 4강에 올라왔습니다.
-예선 첫 경기에서 미국을 잡은 게 컸죠. 그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잔여 경기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게릿 벌렌더 선수에게 막혀서 1 대 0으로 끌려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패색이 짙었습니다만 혜성처럼 나타난 박유성 선수가 경기를 뒤집는 투런 포를 때려냈는데요.
-홈런도 홈런이지만 실점을 막는 호수비를 연달아 펼쳐낸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만약에 그 수비 중에 하나만 놓쳤더라도 조 1위를 차지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도미니카 공화국전은 생각보다 쉽게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 경기도 박유성 선수의 활약이 눈부셨죠. 초반에 실책으로 출루해 도루를 성공시켰고 기민한 주루 플레이로 런다운 상황을 이겨내지 않았습니까?
-뒤이어 터진 송현민 선수의 3점 홈런이 결승타가 되긴 했습니다만 박유성 선수의 출루가 없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그리고 사흘 전 있었던 대만전에서도 박유성 선수가 다시 한번 결승타를 때려냈습니다.
-동점으로 이어진 득점도 박유성 선수의 발에서 나왔죠.
-지금도 박유성 선수가 대만전에서 벤치에 대기했던 이유를 궁금해하시는 야구팬들이 많은데요.
-강기태 감독은 본선에 대비해 모든 선수들을 두루 기용하고 싶었다고 했는데요. 아마 4강 진출이 거의 확정된 상황이라 벤치 멤버들에게 기회를 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앞서 미국이 대만을 8 대 0으로 잡아내면서 10점 차 이상으로 패배하지 않으면 4강 진출이 확정인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조 1위와 조 2위는 다른데 박유성 선수 덕분에 조 1위로 올라와서 일본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때 자막이 바뀌고 B조의 예선 결과가 나왔다.
-일본 대표팀은 예선에서 캐나다, 베네수엘라, 푸에르토리코를 차례대로 만났고 그중에 캐나다와 푸에르토리코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습니다.
-일본도 4강에 올라오기까지 쉽지 않았는데요. 베네수엘라에게는 5 대 4로 졌고 푸에르토리코에게는 승부치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10 대 8로 승리했습니다.
-당초 일본 언론에서는 3전 전승으로 B조 1위를 차지할 거란 전망이 우세했는데요.
-일본 대표팀이 이번 대회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만 베네수엘라와 푸에르토리코의 전력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두 팀 모두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대거 합류시키면서 전력이 탄탄해졌으니까요.
-푸에르토리코와의 경기 때는 역전을 당했다가 마지막에 동점을 만들면서 승부치기로 끌고 갔었죠. 그런 점에서 오늘 경기,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예선 성적만 놓고 보자면 대한민국 대표팀의 우세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예선 성적은 어디까지나 예선 성적에 불과하니까요. 경기 막판까지 팽팽한 경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일단 선발 카드는 일본 대표팀이 조금 더 강해 보이긴 합니다.
-일본은 양키즈에서 뛰고 있는 마츠다 유이토 선수를 선발로 내세웠고 우리는 파이터즈의 송찬우 선수가 나왔는데요. 이름값만 놓고 보자면 마츠다 유이토 선수가 우세겠지만 경기는 해봐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참고로 앞서 송찬우 선수가 예선전에서 상대했던 선수가 게릿 벌렌더 선수였습니다.
-역전 투런 홈런을 때려낸 박유성 선수에게 가려지긴 했습니다만 송찬우 선수도 미국 대표팀 타자들을 상대로 1실점으로 잘 틀어막지 않았습니까? 송찬우 선수가 미국전만큼만 던져준다면 일본 대표팀 타자들도 송찬우 선수를 쉽게 공략해 내지 못할 겁니다.
다시 화면이 바뀌고 다저스 파크의 전경이 펼쳐졌다.
대한민국과 일본이 맞붙어서일까.
교포들로 보이는 양국의 응원단들이 1루 쪽과 3루 쪽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오늘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3천 명이 넘는 교민들이 경기장에 찾아왔다고 하는데요. 일본 응원단 규모도 만만치가 않아 보입니다.
-아무래도 일본은 야구가 국기 수준이니까요. 미국에 거주 중인 일본인들이 많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 응원단이 든 플래카드에 낯익은 이름이 보이는데요.
-유성이라는 한자를 보니까 박유성 선수인 것 같습니다.
-땡큐 유성이라는 문구도 보이고요. 무슨 의미일까요?
-아무래도 지난 대만과의 경기 때 박유성 선수가 결승타를 때려내서 고맙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에 그대로 승부치기에 들어갔다가 대만에게 패배했다면 미국과 순위가 바뀌었을 테니까요.
박유성도 문제의 플래카드를 발견했다.
“뭐야, 저게.”
초공이라 대기 타석에 나서기가 무섭게 바로 맞은편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플래카드를 흔들어대는데 보지 않을 방도가 없었다.
“내 덕분에 미국을 피했다고 저러는 건가?”
박유성은 순간 헛웃음이 났다.
올림픽 최강 팀인 미국 대표팀을 피해서 신이 난 것까지는 알겠는데 일본을 만나 할 만해진 건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다고 봐주는 거 없는데.”
타석으로 들어선 박유성이 마운드 쪽을 바라봤다.
저만치 연습 투구를 마친 마츠다 유이토가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오랜만이네.”
마츠다 유이토는 오늘 박유성을 처음 봤겠지만.
박유성은 마츠다 유이토를 상대한 경험이 있었다.
1회차 시절에는 2039 프리미어 12 때 만났고.
2회차 시절에는 2035 프리미어 12와 2037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 붙어봤다.
1회차와 2회차를 통틀어 세 경기뿐이고 타석 수를 전부 더해도 8타석이 전부였지만 국제대회에서 상대에 대한 데이터와 경험이 있다는 건 큰 무기였다.
“초구는 보통 몸 쪽이었지?”
보란 듯이 루틴을 펼친 뒤 박유성은 왼쪽 어깨에 방망이를 걸쳐 들었다.
그러면서 오른발 끝을 살짝 열어 몸쪽 코스에 대비했다.
하지만 일본 대표팀의 포수 구와하라 세이지는 박유성이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슈퍼 루키 소리를 듣는 박유성은 일본 대표팀에 합류한 스즈키 지로와 동갑내기고 그 스즈키 지로는 아직까지 첫 안타조차 신고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박유성이 스즈키 지로보다 조금 더 낫다고 하더라도 메이저리그 최고의 구단 중 하나인 양키즈에서 2선발로 뛰고 있는 마츠다 유이토의 공을 공략해 내지는 못할 터.
‘이 애송이에게 메이저리거의 무서움을 보여주자고.’
구와하라 세이지가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인 뒤에 박유성의 옆구리 쪽으로 미트를 붙였다.
그러자 마츠다 유이토가 곧바로 투구판을 박차고 나왔다.
후앗!
마츠다 유이토의 손끝을 빠져나온 공이 몸 쪽으로 날아들자 박유성도 망설이지 않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따악!
앞선 회차 때 경험했던 빠른 공을 떠올리며 타이밍을 맞췄지만, 방망이 윗부분에 걸린 타구는 백네트 쪽으로 넘어갔다.
아무래도 전성기를 달리던 시기라 공이 더 뻗어온 것이다.
“공 좋은데?”
타석 밖으로 한발 물러선 박유성은 일부러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번에도 같은 공이 들어온다면 타이밍을 맞출 자신이 있지만 마츠다 유이토는 다양한 구종을 던지는 투수였다.
159㎞/h까지 나오는 빠른 공을 시작으로 투심 패스트 볼과 스플리터, 포크 볼, 슬라이더, 체인지업까지 구사하다 보니 노림수를 갖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가장 어리고 아마추어 신분이라는 걸 잘 활용하면 구종을 제한할 수 있었다.
그 예상대로 구와하라 세이지는 또다시 몸 쪽 빠른 공을 주문했고.
사인을 확인한 마츠다 유이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초구와 거의 비슷한 코스로 공을 내던졌다.
‘왔다!’
원하던 공이 들어오자 박유성은 초구 때보다 빨리 방망이를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따악!
스위트 스폿 안쪽 경계선에 공을 얹어 텅 비어 있던 우익선상으로 밀어냈다.
-쳤습니다! 이 타구가 1루수 키를 넘깁니다!
-펜스까지 굴러가겠는데요?
-박유성 1루를 돌아 2루로! 2루에서 멈추지 않고 3루까지 내달립니다. 우익수 곤도 타쿠야 선수가 뒤늦게 공을 잡아 송구합니다만 박유성 선수의 폭풍 질주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코스도 좋았습니다만 박유성 선수의 베이스러닝이 완벽했습니다. 곤도 타쿠야 선수의 수비 위치를 체크한 다음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3루로 돌았거든요. 만약에 중간에 한 번이라도 주춤했다면 3루에서 접전이 펼쳐졌을지 모릅니다.
장호영 캐스터의 샤우팅과 이선철 해설위원의 극찬에 채팅창도 활활 타올랐다.
└역시 박유성! 믿고 쓰는 박유성!
└미쳤다. 미쳤어. 화장실 갔다 왔는데 3루타네.
└진짜 빠르네. 어떻게 저렇게 잘 뛸 수가 있지?
└곤도 타쿠야도 어깨 좋은 편인데 쌩까고 3루 뛰는 판단 최고였음. ㅋㅋㅋ
일본 대표팀의 간판타자 곤도 타쿠야도 한참 동안 박유성을 바라봤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저돌적인데? 아직 어려서 그런가?”
박유성이 타석에 들어섰을 때 곤도 타쿠야는 일부러 센터 쪽으로 수비 위치를 잡았다.
몸쪽 빠른 공 승부를 즐기는 마츠다 유이토의 스타일상 잡아당기는 타구는 전부 파울이 날 터.
라인 수비보다는 우중간 코스를 막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박유성이 2구를 쳐서 라인 선상에 떨어뜨렸을 때도 곤도 타쿠야는 딱히 당황하지 않았다.
세 명의 외야수로 넓은 외야를 커버하기란 한계가 있고 선택과 집중을 하다 보면 빈 공간이 생기게 마련.
그 빈틈으로 떨어진 안타는 불가항력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경기 시작부터 에이스인 마츠다 유이토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 수는 없어서 곤도 타쿠야는 트릭을 썼다.
일부러 타구를 못 찾은 척 굴다가 경험이 부족한 박유성이 2루를 돌아 3루로 달리면 메이저리그에서도 인정받은 강한 어깨로 잡아내려 했는데
“……!”
공을 던지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는 이미 박유성의 등번호가 멀어진 뒤였다.
“운이 좋았다. 루키.”
곤도 타쿠야는 경험이 부족한 박유성이 무작정 3루 베이스만 보고 내달린 거라고 오해했다.
1루를 돌면서 자신의 움직임과 타구의 방향, 타구 처리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 박유성이 가속을 붙였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대형 TV를 통해 박유성의 주루 플레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다저스의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봤어? 봤냐고! 마치 스프린터처럼 3루까지 내달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