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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139화 (139/412)

타자 인생 3회차! 139화

20. 병 주고 약 주고(5)

“김경민 단장이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나 현금일 겁니다. 프협이 허락한다면 50억쯤 주는 게 최선이죠.”

“송찬우가 50억이나 한다고? 에이, 그건 좀 오버다.”

“편하게 FA로 데려왔다고 생각해 보세요. 송찬우 선수 정도면 4년 기준 100억이 기본입니다. 경쟁 붙으면 120억 이상도 가능하고요. 거기에 보상 선수 없이 데려오려면 연봉의 3배를 줘야 하는데 올해 송찬우 연봉이 5억이라고 가정하면 15억입니다. 120억 준다고 하면 연평균 30억이고요. 합치면 45억인데 50억이 과연 적을까요?”

“대신 내년 시즌 끝나면 송찬우 메이저리그 가잖아.”

“그때 이적료 챙기잖아요. 그것까지 계산하면 파이터즈가 손해일걸요?”

“어휴, 조 대리 넌 어느 구단 소속이냐?”

최영수 차장이 핀잔을 줬지만 조명욱 대리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단장님께서 철저하게 파이터즈의 입장에서 판을 짜라고 하셨다면서요? 그럼 김경민 단장을 섭섭하게 만들면 안 되죠.”

“그래서 50억을 태우자고?”

“프협에서 받아주겠습니까? 그거 받는 순간 다른 구단들도 앞다투어 돈으로 선수 빼 갈 텐데?”

“송찬우 말고 빼 갈 선수는 있고?”

“그렇긴 한데 어쨌거나 송찬우 선수를 데려오려면 50억에 준하는 카드를 맞춰줘야 한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팀장님. 조 대리 이거 파이터즈 스파이가 확실합니다. 내쫓으시죠.”

구단의 미래를 결정하는 회의치고 분위기가 가벼웠지만.

안재희 운영팀장은 물론이고 임세영 대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조 대리 말이 맞아요. 송찬우 선수를 데려오는데 그 정도 출혈은 감수해야죠.”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다만 송찬우 선수와 맞출 카드가 박준수 선수 뿐이라는 게 문제지만요.”

신생 구단인 스타즈와 파이터즈는 창단 당시 프로야구 각 구단의 20인 외 선수들을 수혈받아 팀을 꾸렸다.

신성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스타즈가 조금 더 그럴싸해 보이긴 하지만 실제 선수단 구성은 파이터즈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냉정하게 따졌을 때 스타즈 1군 선수들 중에 송찬우에 비견될 선수라고는 4번 타자인 박준수뿐이었다.

“에이, 무슨 드라마 찍어? 국대 에이스하고 국대 4번 타자하고 바꾸게? 그리고 그건 파이터즈가 안 받을걸? 박준수 선수도 연봉 많이 줘야 하잖아.”

“게다가 박준수 선수는 해외 진출 안 할지도 몰라. 노모 모시고 있잖아.”

“박준수 선수가 또 효자 중의 효자고요.”

“박 선수 어머니가 진짜 고생고생해서 박 선수 키운 거라잖아. 나 같아도 평생 떠받들고 살겠다.”

“그러니까 골치 아프다고요. 다른 선수들이 눈에나 차겠어요?”

임세영 대리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송찬우를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김경민 단장이 만족하고 프로 야구 협회에서 받아들일 만한 조건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자 최영수 차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 임 대리가 이런 건 처음이구나?”

“트레이드요? 처음이죠. 원래 스카우트 팀 소관이잖아요.”

“보통은 그런데 최종 결정 전에 한 번 더 회의해야 해. 그래서 스카우트 팀 회의에 같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그럼 이럴 땐 어떻게 했어요?”

“윗선에서 서로 얘기가 끝난 트레이드는 구색만 맞추면 되지만 지금처럼 어느 한쪽에서만 원하는 트레이드면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따져야 해.”

“모든 경우의 수요?”

“그렇다고 거창한 건 아니고. 이런 경우에는 1선발끼리 시작해 보는 거지.”

“홍형태 선수요? 농담이시죠?”

“상대는 송찬우인데 홍형태가 아까워? 막말로 송찬우하고 1 대 1로 트레이드 하자면 할 거야 말 거야?”

“그야 해야죠. 하는데…….”

“손해 보지 않겠다는 생각은 집어넣어. 그런 마인드로는 캐롯 마켓에서 천 원짜리 물건 하나 못 파니까.”

“저 캐롯 마켓 최우수회원이거든요?”

홍형태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나왔다.

파이터즈에서 토종 에이스인 송찬우를 데려오려면 우리도 국내 1선발 홍형태를 저울에 올려놓아야 하지 않겠냐는 기본적인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조명욱 대리의 첨언이 안재희 운영팀장의 표정을 굳게 만들었다.

“홍형태 내주면 박 감독님이 가만 안 있을걸요? 홍형태 동호대 출신이잖아요.”

“홍형태가 동호대였어?”

“심지어 박 감독님이 동호대 계실 때 애지중지했던 선수였습니다. 그래서 우선 지명으로 뽑았고요.”

홍형태가 스타즈에 입단한 건 2026년.

박흥선 감독이 부임한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당시 스타즈에는 직전 해에 우선 지명과 1차 지명으로 뽑은 유망주 투수들이 세 명이나 있었지만 박흥선 감독은 홍형태를 5선발로 낙점하고 전폭적으로 밀어주었다.

“홍형태 선수 전에 뽑은 우선 지명 선수가 누구였죠?”

“고우혁 선수하고 신영기 선수입니다.”

“둘 다 지금 군대 갔죠?”

“네. 작년에 박 감독님이 강제로 보냈습니다.”

신생팀 특혜에 따라 스타즈는 2023년(2024드래프트)과 2024년(2025드래프트)에 각 2명의 우선 지명 선수를 선발했다.

창단과 동시에 스타즈가 우선 지명한 선수는 덕우 고등학교의 김정석과 신성 고등학교의 나현호.

당시 고교 최대어라 평가받던 김정석을 선점했기 때문에 좌완 유망주 나현호를 뽑았을 때 팬들도 크게 불만을 갖지 않았지만.

김정석이 토미 존 서저리 수술을 받기 위해 미국으로 향하고 나현호가 음주 운전으로 방출되면서 스타즈 구단은 프로 야구 역사상 최악의 선구안이라는 혹평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이듬해.

스타즈는 선인 고등학교 에이스 고우혁과 충열 고등학교 에이스 신영기를 우선 지명하며 팬들 달래기에 나섰다.

선수층이 얇은 신생 구단을 위해 2년간 용병 선수를 최대 5명까지(투수 최대 3명) 쓸 수 있도록 했는데 남은 두 자리의 선발 자리에 고우혁과 신영기를 고정해 미래의 동냥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정작 박흥선 감독은 눈에 차는 선수가 없다는 핑계로 고우혁과 신영기를 비롯한 모든 국내 선수들의 경쟁을 주도했고.

그 과정에서 고우혁과 신영기는 이렇다 할 기회를 보장받지 못한 채 2군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당시에는 안재희 운영팀장도 박흥선 감독의 무한 경쟁 시스템을 전적으로 지지했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홍형태의 자리를 만들기 위한 거창한 쇼였다는 의심이 들었다.

“고우혁 선수하고 신영기 선수는 올해 제대입니까?”

“네. 작년 봄에 군대 갔으니까 아마 조만간 제대할 겁니다.”

“현역으로 갔나요?”

“경찰청이나 상무에 뽑힐 만한 경력이 없어서요. 둘 다 현역으로 자원 입대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두 선수가 돌아오면 자리는 있습니까?”

안재희 운영팀장이 최영수 차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최영수 차장이 난색을 보였다.

“신영기 선수는 좌완이니까 불펜에서 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우혁 선수는 힘들 겁니다. 박 감독님한테 찍혔거든요.”

“찍혀요?”

“그게…… 고우혁 선수 1군 올리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박 감독님이 랜더스나 트윈스전에 투입했거든요. 그래서 고우혁 선수가 불만이 많았습니다.”

“일부러 그런 겁니까?”

“홍형태 선수가 랜더스와 트윈스에 약하지 않습니까? 홍형태 선수 등판 일정 밀면서 고우혁 선수 테스트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최영수 차장은 고의는 아닐 거라고 두둔했지만 안재희 운영팀장의 귀에는 달리 들렸다.

‘박흥선 감독이 홍형태 선수 신인왕 만들어주려고 엄청 노력했으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비록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스타즈 팬들조차 홍형태가 신인왕이 되면 박흥선 감독에게 부상으로 주어지는 차를 선물해야 한다고 떠들 정도였다.

“만약에 말입니다. 우선 지명으로 김혜성 선수를 뽑는다면 자리가 있습니까?”

안재희 운영팀장의 시선이 다시 최영수 차장과 조명욱 대리에게 향했다.

“김혜성 선수요? 김혜성 선수라면…… 자리를 만들어야죠.”

최영수 차장은 김혜성의 실력을 박흥선 감독이 무시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지만 조명욱 대리의 판단은 달랐다.

“에이, 김혜성이면 박 감독님이 절대 안 쓸걸요? 고윤식이라면 모를까.”

“박 감독님이 설마 그렇게까지 하시려고.”

“내기하실래요? 그 양반 수틀리면 송찬우 선수도 안 쓸 겁니다. 아시잖아요? 자존심 센 거.”

“송찬우는 쓰겠지.”

“제가 100퍼 장담하는데 송찬우 선수하고 홍형태 선수 맞바꾸자고 하면 절대 반대할걸요?”

조우진의 이름은 투수들 중에서 거의 마지막쯤에 거명됐다.

“참, 조우진 선수도 있습니다.”

“조우진은 올해 데려왔잖아. 이제 조금 쓸 만해졌는데 트레이드 하는 건 아깝지.”

“파이터즈에 좌완투수가 부족하잖아요. 조우진 선수 정도면 군침 흘릴 걸요?”

“그런데 조우진 선수 원소속구단이 어디였죠?”

“베어스일 겁니다. 김대철 차장이 적극 추천해서 데려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대철 차장이요?”

“김대철 차장이 베어스에서 일할 때 눈여겨본 선수라고 하더라고요. 1군 경험은 많지 않지만 구위는 2군에서도 손꼽혔다면서요.”

“내년에 김혜성 선수 들어오면 조우진 선수는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홍형태 김혜성에 조우진으로 선발을 가거나 아니면 불펜으로 돌리지 않을까요? 애당초 불펜에서 시작했으니까요.”

장장 이틀에 걸친 회의 끝에 안재희 운영팀장은 송찬우를 데려올 트레이드 카드를 결정했다.

팀 내에서 토종 에이스 소리를 듣고 있는 홍형태.

군필에 선발과 불펜 어느 쪽이든 가능한 좌완 조우진.

두 선수 모두 올 시즌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지만.

새로 합류할 송찬우와 김혜성의 자리를 만들려면 누군가는 자리를 빼야 했다.

보고를 받은 김재식 단장도 처음에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이었다.

“조우진 선수는 몰라도 홍형태 선수는 국내 투수들 중 1선발 아닙니까?”

“국내 선발 투수들 중에서 성적이 가장 나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송찬우 선수에 비할 정도는 아닙니다.”

“송찬우 선수에 김혜성 선수까지 합류한다면 홍형태 선수가 5선발이 되는 건가요?”

“실력만 놓고 따지자면 일단 송찬우 선수가 3선발입니다. 하지만 박흥선 감독이 실력대로 등판시킨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얘기입니까?”

“박흥선 감독이 홍형태 선수를 동호 대학교 시절부터 키웠다고 합니다.”

배경 설명을 들은 김재식 단장은 군말 없이 홍형태의 트레이드를 허락했다.

조우진도 마찬가지였다.

정황 증거상 실력보다 김대철 차장의 입김이 과하게 작용한 영입이다 보니 파이터즈에 내주는 게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여기에 송찬우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 이적료의 절반을 떼주겠다고 하십시오.”

“절반이나요?”

“그 정도는 질러 놔야 김경민 단장도 수긍할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안재희 운영팀장은 성공 가능성보다 실패 가능성을 높게 봤다.

팀 내 송찬우의 입지를 고려했을 때 나중에 받아들이더라도 첫 만남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김재식 단장은 보란 듯이 가계약서를 가져왔다.

“이거 당분간은 비밀로 해야겠죠?”

“그야 당연하지. 괜히 언론에 조건 새어 나갔다간 골치 아파지니까 각별히 조심해.”

“만약에 파이터즈 쪽에서 흘리면요?”

“그럼 우리는 일단 발뺌해야 해. 그렇다고 계약을 엎을 수는 없는 거니까.”

“박유성 선수에 송찬우 선수면 무조건 해야죠. 이건 무조건 해야 하는 거예요.”

“대신에 박준수 선수에게는 미리 메시지를 보내놔.”

“뭐라고요? 박유성 선수 영입한다고요?”

“노골적으로 쓰지 말고. 적당히 잘 알아듣게 쓰라고. 그래야 미리미리 친해지지.”

다음 날 점심 무렵.

파이터즈 구단으로부터 추가 지명할 선수 명단이 넘어오자 임세영 대리는 보고서에 해당 사실을 추가했다.

그리고 안재희 운영팀장이 협회에 보낼 요청서를 수정하는 동안 박준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운영팀 임세영 대리 - 박준수 선수. 개인적인 부탁이 있는데 남는 유니폼에 다른 대표팀 선수들 사인 좀 받아줄 수 있어요?

박준수 – 네. 대리님. 받아드릴게요.

운영팀 임세영 대리 – 대신 박유성 선수하고 송찬우 선수는 빼고 받아주세요.

박준수 – 왜요? 유성이하고 찬우 형 싫어하세요?

운영팀 임세영 대리 – 두 선수한테는 제가 사무실에서 직접 받으려고요.

박준수 – 사무실에서 직접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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