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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136화 (136/412)

타자 인생 3회차! 136화

20. 병 주고 약 주고(2)

계산을 마친 김경민 단장이 다시 김재식 단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김재식 단장이 씩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대신 지명권 트레이드가 틀어진다면 저희도 계획대로 가겠습니다.”

“계획대로요?”

“회장님께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박유성 선수를 영입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파이터즈가 가지고 있는 1라운드 1순위 지명권을 노리고 있습니다만 계획대로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죠.”

“다른 방법이요?”

“네. 마음만 먹으면 참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

“그러니까 김 단장님도 박유성 선수를 파이터즈 선수처럼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순간 김경민 단장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말인즉슨 수틀리면 박유성을 우선 지명으로 뽑겠다는 얘기였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앞서 김재식 단장이 했던 말을 김경민 단장이 앵무새처럼 따라 했다. 그러자 김재식 단장이 텅 빈 물잔에 물을 채우며 말했다.

“언론에서 난리를 치겠죠. 일부 팬들은 말을 바꿨다고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박유성 선수는 좋은 선수입니다. 1번 붙박이로 박유성 선수를 기용하고 3번에 박준수 선수, 4번과 5번에 용병 타자를 배치하면 어떨까요? 스타즈도 한국 시리즈를 노려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다니엘 브리토가 있지 않습니까?”

김경민 단장이 다급히 말을 받았다.

다니엘 브리토는 스타즈 팬들에게 사랑받는 용병 타자였다.

장타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정확도가 좋고 성실하며 팀에 대한 애정이 상당해서 팬들이 먼저 장기 계약을 요구하고 나설 정도였다.

그 다니엘 브리토의 주 포지션이 중견수이니 박유성을 영입한다면 중복 자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의 교통정리 문제는 야구를 잘 모르는 김재식 단장에게도 쉬운 일이었다.

“반대로 여쭤보겠습니다. 모기업에서 박유성 선수를 잡으라고 지원을 해준다면 잡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민찬수 선수가 있다고 포기하시겠습니까?”

“그야…….”

“잡으시겠죠. 일단 잡고 보시겠죠. 민찬수 선수가 FA가 되면 누군가는 민찬수 선수를 대체해야 할 테니까요.”

정곡을 찔린 김경민 단장이 얼굴을 붉혔다. 만약 모기업에서 제대로 지원만 해준다면 박유성을 데려와 키워보고 싶은 게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인정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할 노릇이었다.

“민찬수 선수는 외야 전 포지션이 가능합니다. 다니엘 브리토는 코너 외야로 돌리기 힘들지 않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두 시즌 정도 박유성 선수를 코너로 돌려도 되고 다니엘 브리토를 지명으로 돌려도 되니까요. 그리고 팬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무작정 끌고 갈 만큼 제가 정이 많지 않습니다.”

“그 말씀은……?”

“올 시즌 성적도 솔직히 커트라인에 살짝 걸친 정도입니다. 지금 순위를 지켜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게 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만에 하나 이번에도 가을 잔치를 구경만 하게 된다면 변화를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유성 선수까지 들어오는데 말이죠.”

“…….”

김경민 단장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룹 감사팀 출신이라 야구에 대해 잘 모르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하는 걸 보니까 유명한 야구 드라마 <스토브 리그의 단장>의 백 단장 뺨을 쳤다.

“정말로 박유성 선수를 우선 지명하실 생각이십니까?”

“제가 이 자리에 나온 건 욕심이 많아서입니다. 회장님의 소원을 풀어드리면서 팬들과 했던 약속도 지키고, 겸사겸사 좋은 투수도 확보하기 위해 나온 거죠. 하지만 제 욕심이 너무 많아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가 없다면 저는 딱 하나만 볼 겁니다.”

“하나요?”

“오너.”

“……!”

“아시겠지만 모든 스포츠 구단은 오너의 의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흔히들 팬들이 있어야 구단이 있다고 하는데 천만에요. 구단이 있어야 팬들이 모이는 겁니다. 그 구단을 가진 게 바로 오너고요.”

“이 자리에 기자가 있었다면 난리가 났을 만한 얘기네요.”

“만약에 오늘 있었던 대화가 외부로 새어 나간다면 김 단장님께서 흘리신 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김재식 단장이 미쳤다고 떠드는 소리라면 아는 기자에게 슬쩍 찔러보겠지만.

앞서 박유성의 지명권을 두고 내기를 하자고 농담처럼 권했기 때문에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언론 장악력은 신성 그룹을 낀 스타즈가 파이터즈보다 몇 수 위였다.

‘침착하자. 김경민. 스타즈도 이대로 판을 엎고 싶지는 않을 거야. 상식적인 선에서 거래를 원하겠지.’

김경민 단장은 물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만약 스타즈에서 정말로 우선 지명권으로 박유성을 데려가 버린다면 필요한 운영 자금은커녕 1라운드 1순위 선수의 계약금까지 해결해야 하는 이중고에 빠지게 될 터.

“단도직입적으로 여쭙죠. 얼마까지 가능하십니까?”

김경민 단장이 물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느긋하게 밥을 먹는 사이에 이미 자정이 지나 있었다.

들어오면서 직원에게 물어본 영업시간은 새벽 2시.

괜히 뜸을 들였다간 날을 다시 잡아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주도권을 잡은 김재식 단장이 준비한 패를 먼저 꺼낼 리 없었다.

“반대로 여쭙죠. 얼마가 필요하십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맞춰주실 겁니까?”

“일단 얘기부터 들어보겠습니다.”

“14억입니다. 구단 운영비 10억에 송찬우 선수 연봉 인상분을 고려한 금액입니다.”

“솔직하시네요. 저희 쪽에서 계산한 금액과 거의 일치합니다.”

“그런 것까지 계산하셨습니까?”

“협상을 하려면 상대의 패부터 파악을 해야죠. 제가 야구는 잘 몰라도 그런 건 잘 압니다.”

김재식 단장이 피식 웃었다. 야구에 관한 깊이 있는 토론은 자신 없지만 상대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건 12개 구단 단장들 중에서 최고라 자부했다.

“그럼 14억에 맞춰주시겠습니까?”

당초 목표는 20억이었지만.

김경민 단장은 14억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그러자 김재식 단장이 금액을 올려 불렀다.

“20억에 하시죠.”

“20억이요? 진심이십니까?”

“대신 송찬우 선수를 주십시오.”

“……!”

“어차피 내년에 해외로 떠날 선수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냥 저희 팀에 넘기시죠. 어떻습니까?”

20억이라는 말에 혹했던 김경민 단장이 대번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돈이 급해도 팀의 에이스를 헐값에 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찬우는 파이터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입니다. 고작 6억에 팔 선수가 아닙니다.”

“송찬우 선수를 돈으로 사겠다고 말씀드린 적은 없습니다. 최대 20억 원까지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겠다는 거죠.”

“다른 선수를 얹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송찬우 선수를 대신해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할 만한 선수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구체적으로 누군지 말씀해 주셔야…….”

“홍형태 선수와 조우진 선수 정도면 어떻습니까?”

“……!”

홍형태는 2026년 우선 지명을 받고 입단한 3년 차 우완투수.

선인 고등학교와 동호 대학교를 거쳤으며 지난해부터 스타즈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우진은 올 초에 베어스에서 영입한 좌완 기대주였다.

배성 고등학교 출신으로 베어스에서는 별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올 시즌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홍형태 선수는 팀의 3선발입니다. 토종 에이스라는 표현이 조금 과한 느낌이긴 하지만 스타즈의 국내 투수들 중에서는 첫손에 꼽히죠.”

“그걸 제가 모르겠습니까? 파이터즈 킬러인데요.”

비록 리그는 다르지만 홍형태는 파이터즈를 상대로 통산 6승에 평균 자책점 1.50을 기록 중이었다.

파이터즈만 만나면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어서 파이터즈와의 인터 리그 때 아예 표적 등판을 시킬 정도였다.

“홍형태 선수는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드는 정도가 아니라 고맙죠. 다만 미필이라는 게 문제인데…….”

“다음 아시안 게임이 있으니까요.”

“그렇죠. 아시안게임 때 저희 구단 TO를 쓴다면 문제는 없겠죠.”

“참고로 해외 진출 가능성도 높지 않습니다. 본인 말로는 영어 알레르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파이터즈에 가더라도 송찬우 선수만큼 성적을 내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요.”

“선수가 잘해서 해외 진출을 하는 거라면 저도 말릴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 홍형태 선수는 넘어가고 조우진 선수는 어떠십니까? 참고로 조우진 선수는 군필입니다.”

“군필이었습니까?”

“네. 베어스에서 일찍 군대를 보냈다고 합니다. 1군은 올해가 처음이고요.”

“그렇다면 최소 5년 정도는 잘 활용할 수 있겠네요.”

김경민 단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홍형태가 송찬우의 대체 선수 느낌이라면 조우진은 싸게 잘 써먹을 수 있는 알짜배기 선수였다.

스타즈에서 오래 뛴 것도 아니다 보니 파이터즈로 넘어온다고 해서 태업하지도 않을 터.

송찬우를 주고 홍형태와 조우진에 현금을 받는다면 나쁘지 않은 장사였다.

‘그래도 송찬우 선수 이적료는 아까운데.’

프로 야구 협회와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맺은 규약에 따라 포스팅을 통해 계약한 구단은 원소속 구단에 이적료를 줘야 한다.

보장 금액이 2,500만 달러 이하일 때 해당 금액의 20퍼센트가 이적료로 책정되고 5천만 달러 이하의 초과분에 17.5퍼센트가 가산되는데 송찬우의 경우 언론에서 3천만 달러 수준의 계약을 기대 중이었다.

총계약금이 3천만 달러일 경우 파이터즈 구단에게 떨어지는 이적료는 587만 5천 달러.

한화로 약 88억 원이니 그 돈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김경민 단장의 속내를 읽었을까.

김재식 단장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추가로 송찬우 선수가 포스팅을 통해 해외 진출을 하게 된다면 이적료의 50퍼센트를 지급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50퍼센트요?”

“냉정하게 파이터즈에서 해외로 이적하는 것보다 스타즈를 거쳐 해외로 이적하는 쪽이 더 나을 겁니다.”

김재식 단장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김경민 단장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송찬우는 물론이고 파이터즈의 주전급 선수들은 FA를 통해 팀을 떠날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구단의 지원이 부족하고 팀 성적이 바닥을 기다 보니 민찬수처럼 개인 활동을 보장받는 선수가 아니고서야 파이터즈에 대한 애정 자체가 없었다.

송찬우가 계속 파이터즈에 머무른다면 아마 헐값에라도 해외에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릴 터.

“만약에 해외 진출을 하지 않고 잔류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해외 진출이야 선수 본인의 의지니까요. 그리고 송찬우 선수가 해외 진출을 포기하면 파이터즈는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야…….”

“그러니까 적당히 양보합시다. 송재영 선수 수술받는다고 파이터즈에서 A/S 해주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후우…….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그날.

김재식 단장과 김경민 단장은 송찬우와 올해 1라운드 1순위 지명권을 포함한 대대적인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그 대가로 지급되는 현금은 홍형태와 조우진을 포함한 20억.

거기에 25인 이외 선수 2명이 추가됐다.

“그런데 이거 프협에서 받아줄까요?”

“받아줄 겁니다. 정확하게는 받아주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1차 지명권은 이미 10억이라는 전례가 있고 거기에 송찬우 선수까지 포함됐으니까요.”

“이거 파이터즈 팬들에게 돌 맞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혹시라도 그런 불상사가 생기면 연락 주십시오. 병문안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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