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133화 (133/412)

타자 인생 3회차! 133화

19. 유성이 맛이 어때?(5)

3

-대한민국 대표팀의 스타팅 라인업입니다. 1번 타자 우익수 백영완. 2번 타자 3루수 이종률. 3번 타자 2루수 송현민. 4번 타자 지명타자 김하선. 5번 타자 중견수 기정후. 6번 타자 좌익수 감백호. 7번 타자 1루수 민병규. 8번 타자 포수 나경석. 그리고 9번 타순에 유격수 박찬희 선수가 출전합니다.

-강기태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밝혔던 것처럼 그동안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던 선수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습니다.

-지난 두 경기에서 MVP급 활약을 펼쳤던 슈퍼 루키, 박유성 선수는 오늘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하게 됐는데요.

-박유성 선수가 아직 아마추어 선수인 만큼 체력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지난 미국전 때처럼 경기 후반에 박유성 선수가 출전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경기 후반에 수비를 보강하려면 아무래도 박유성 선수가 중견수로 나와줘야 할 테니까요.

-지금도 채팅창에는 박유성 선수가 스타팅 라인업에서 빠져서 아쉽다는 의견들이 많은데요. 오늘 나온 선수들까지 모두가 대한민국 대표팀이니까요. 이제 하나 된 마음으로 응원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강기태 감독의 선수 기용을 성토하는 채팅들이 줄을 이어 올라왔지만 장호영 캐스터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3회쯤 지나면 아마 대만 대표팀을 상대로 서너 점 앞서가게 될 터.

그때가 되면 야구팬들도 알아서 진정될 거라 여겼다.

-대만의 선발 투수는 천지아런 선수입니다. 2005년생으로 신장 191㎝에 체중은 98kg. 화면으로 보시는 바와 같이 상당히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2의 천신위라 불리는 선수죠. 천신위 선수가 몸담았던 타이난 라이온즈에서 뛰고 있습니다.

-포심 패스트 볼의 최고 구속은 156㎞/h. 그 외 투심과 싱커,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을 구사한다고 하는데요. 포심과 싱커, 슬라이더 비율이 전체의 80퍼센트에 달합니다.

-올 시즌 투심 패스트 볼을 새로 장착하고 나왔다고 하는데 딱히 신경 쓸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천신위 선수에게 직접 전수받았다는 싱커가 문제인데요. 이 싱커가 속된 말로 제대로 긁히는 날에는 포수조차 제대로 포구를 하지 못할 정도라고 하니까요. 대한민국 대표팀 타자들이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이선철 해설위원이 싱커 경계령을 내렸지만.

대한민국 타자들은 천지아런을 쉬운 상대로 봤다.

전날 미국전에 선발 등판했던 왕쥔린이 미국 대표팀 타자들에게 난타당하는 걸 두 눈으로 지켜봤기 때문이다.

대만 대표팀의 2선발 왕쥔린은 천지아런과 유사한 스타일의 투수였다.

체격 조건은 물론 포심 패스트 볼과 슬라이더, 싱커를 주로 던지는 것과 공격적인 피칭을 선호한다는 점까지 빼닮았다.

게다가 투구폼까지 비슷해서 등번호가 없는 유니폼을 입으면 대만 대표팀 선수들조차 누가 누구인지 헷갈릴 정도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였다.

“그래도 천지아런보다는 왕쥔린이지?”

“왕쥔린은 2년간 파이어리츠에서 뛰었잖아요. 천지아런은 올해 메이저리그 도전이고요.”

“망하긴 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뛴 게 어디야?”

“솔직히 심하게 망한 것도 아니에요. 그냥 천신위 때문에 기대치가 높았던 거죠.”

천신위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2025년.

17승 6패 2.44라는 성적으로 리그 MVP를 차지한 왕쥔린은 천신위의 뒤를 따라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국가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했던 천신위와 달리 국제 대회에서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왕쥔린을 원하는 구단은 많지 않았고.

파이어리츠가 제안한 2+2년 계약(총액 3천만 달러)에 사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메이저리그 첫 시즌 성적은 7승 9패에 4.55.

리그 하위권인 팀 전력을 고려했을 때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지만 파이어리츠 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고.

이듬해 시즌 중반 손톱이 깨지는 부상을 당하자 파이어리츠 구단은 왕쥔린을 40인 로스터에서 빼고 지명 할당 처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왕쥔린은 끝났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올해 초 본 소속팀인 타이난 라이온즈에 복귀한 왕쥔린은 11승 3패 2.34라는 성적으로 대만 리그 MVP 2연패에 도전한 천지아런을 바짝 위협하는 중이었다.

그 왕쥔린도 미국 대표팀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으니 왕쥔린과 비슷한 실력에 메이저리그 경험이 없는 천지아런이 만만해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만 대표팀의 4강 진출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어깨에 짊어진 천지아런의 공은 상상 이상이었다.

-헛스윙 삼진 아웃! 천지아런 선수가 오늘 경기 6번째 삼진을 잡아냅니다.

-이번에도 싱커였는데요. 민병규 선수가 전혀 타이밍을 잡지 못했습니다.

-천지아런 선수가 지금 계속해서 좌타자 바깥쪽으로 싱커를 던지고 있는데요.

-경기를 보시는 시청자분들은 저렇게 뻔한 공에 왜 속는지 이해가 되지 않으시겠지만, 저 공을 타석에서 보면 거의 한복판으로 날아드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그래서 타자들도 계속 방망이를 휘두를 수밖에 없고요.

-5회까지 천지아런 선수를 상대로 안타 하나와 볼넷 하나밖에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데요. 타자들이 타석에서 조금 더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중계석만큼이나 대표팀 타자들도 답답함을 토로했다.

“야, 저걸 어떻게 치냐?”

“분명 한복판으로 들어왔는데 막상 치려고 하니까 사라지던데요?”

“그러니까 공을 끝까지 보고 쳐야지. 눈을 떼니까 공이 빠져나가는 줄도 모르잖아.”

“그만큼 천지아런 싱커가 좋다는 거죠. 그리고 형도 삼진 먹었잖아요.”

“크흠. 난 슬라이더에 당했거든?”

전략분석 자료를 통해 본 천지아런의 싱커는 마지막 순간에 살짝 가라앉는 느낌이었지만 오늘 경기에서 보여준 싱커는 천신위의 싱커처럼 좌타자의 바깥쪽으로 크게 도망치듯 움직였다.

“천지아런 싱커가 저렇게 좋았어?”

“원래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번에 대표팀 합숙하면서 천신위에게 요령을 전수받은 것 같습니다. 싱커의 무브먼트가 천신위와 비슷합니다.”

“그게 며칠 잡고 알려준다고 배울 수 있는 거야?”

“투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천지아런이 원래 던지던 싱커도 천신위에게 배운 거라서요. 교정하기가 쉬웠을지 모릅니다.”

“하아……. 이러면 곤란해지는데.”

강기태 감독도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천지아런의 싱커는 빠른 공 타이밍으로 얼마든지 걷어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선발 출전 명단에 손을 댄 건데 타자들이 점수는커녕 안타조차 때려내지 못하고 있으니 속이 타들어 갔다.

그나마 다행히도 선발로 나선 김일웅이 천지아런 못지않은 호투를 펼치고 있지만 이대로 가다간 대만 대표팀에게 종종 발목 잡히던 흐름으로 이어질 것 같았다.

“지금 불펜에 누가 있지?”

“우현이하고 성찬이가 대기 중입니다.”

“일단 바로 우현이 올리자고. 어떻게든 이 흐름을 끊어야 해.”

5회 말 공격이 득점 없이 끝나자 강기태 감독은 먼저 승부수를 꺼내 들었다.

-선발 투수 김일웅 선수가 물러나고 신우현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김일웅의 바통을 물려받은 신우현은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선 1번 타자 장즈상을 3루수 앞 땅볼로 잡아낸 뒤에 2번 타자 천용지와 3번 타자 니즈셩을 연속 삼진으로 솎아내며 강기태 감독의 기대에 십분 부응했다.

하지만 이어진 7회 초에서.

따악!

4번 타자 린즈시엔에게 성급히 승부를 걸었다가 완쪽 폴대 안으로 넘어가는 솔로 홈런을 얻어맞고 말았다.

“에라이!”

“어우, 신우현 저 미친 새끼. 홈런을 처맞고 있네.”

“내가 저럴 줄 알았다. 신우현 삼진 욕심낼 때부터 알아봤어.”

“나경석은 뭐 하냐 진짜.”

“신우현도 답이 없지만 포수도 문제야. 박경호였으면 절대 저렇게 승부 안 했을걸?”

“하아. 이러다 진짜 대만한테 지는 거 아냐?”

“한 점 차로 져도 4강은 올라갈 수 있어요. 괜찮아요.”

“지금 4강이 문제야? 미국, 도미니카 잡아놓고 대만한테 지는 게 맞아?”

“이게 다 창우 형 때문이잖아!”

“뭔 소리야 갑자기?”

“형 아까 토토 대만에 건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그건 그냥 역배라서 건 거지! 원래 토토는 역배인 거 모르냐?”

“그래도 역배를 갈 걸 가야지! 형이 사람이야?”

“홈런 처맞은 건 신우현인데 왜 나한테 난리야? 나라고 이렇게 될 줄 알았냐?”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의 전승 4강 진출을 응원하기 위해 모였던 사회인 야구팀 야생남(야구에 사는 남자들)의 멤버들은 저마다 짜증을 쏟아냈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 내내 안타가 나오지 않아서 답답해 돌아가실 지경이었는데 홈런을 쳐도 모자랄 판에 홈런을 얻어맞았으니 술맛이 뚝 떨어졌다.

하지만 집주인인 배종우는 연신 병맥주를 들이켰다.

“종우 형. 그만 마셔요. 아직 경기 안 끝났어요.”

“X발. 저걸 보고도 그딴 소리가 나오냐?”

“아까 선철이 형이 그랬잖아요. 10점 차 이상으로 지지 않으면 4강 진출 확정이라고.”

“그게 져도 된다는 얘기였겠냐? 그만큼 여유로우니까 마음 편히 보란 소리잖아.”

“어이구. 이러다 또 뻗겠네. 형수 어디 갔어요? 형수! 형수!”

“친정 간 너희 형수를 왜 찾아?”

“헐. 형수 친정 갔어요?”

“그럼? 마누라 있었으면 네놈들이 내 집에서 이렇게 퍼질러 마실 수 있었겠냐?”

사회인 야구를 즐기는 인구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지만.

아내들에게 사회인 야구 하는 남편은 주말마다 낚시 가는 남편보다 최악으로 꼽혔다.

낚시는 가끔 뭐라도 낚아 오지만.

야구는 흙먼지만 잔뜩 묻혀 오기 때문이었다.

배종우의 아내 김은경도 야생남 얘기만 나오면 쌍심지부터 켰다.

그런 아내를 친정 식구들과 함께 외식하라고 용돈까지 두둑이 챙겨서 친정에 곱게 모셔다드리고 단체 응원을 준비했건만.

1 대 0으로 뒤진 스코어를 보고 있으니까 속에서 열불이 치밀었다.

“야, 종우 형 말려! 술병 뺏으라고!”

“종우 형. 가요. 담배 한 대 피우고 옵시다.”

“놔 인마. 나 담배 끊었어.”

“담배를 끊는 게 어디 있어요? 잠깐 쉬는 거지. 가요. 얼른요.”

넉살 좋은 조일우에게 끌려 베란다로 나간 배종우는 오랜만에 담배를 입에 물었다.

금연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서 담배를 태우면 역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속이 뻥 뚫리는 게 헛웃음만 났다.

“오늘 지면 4강 상대 누구냐?”

“베네수엘라가 유력하지 않아요?”

“하아. 베네수엘라 빡센데.”

“일본하고 하나 베네수엘라하고 하나 별 차이 없을걸요?”

“그래도 일본이 낫지. 일본하고 하면 일단 선수들 눈빛부터 달라지잖아.”

“그건 일본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일본 떨어지고 푸에르토리코 올라올지도 몰라요.”

“지금 하는 꼬라지로 봐서는 차라리 그게 낫겠다.”

“진짜 아까 6회에 점수 뽑았어야 했는데.”

“백영완이 백만 년 만에 안타 치면 뭐 하냐. 후속타가 안 터지는데.”

담배를 필터까지 빨아대던 배종우는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리자 다급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왜? 뭐야?”

“형! 안타요!”

“누구?”

“백호가 하나 쌔림!”

“크으. 역시 백호. 믿고 있었다. 우리 백호.”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은 배종우는 길게 숨을 골랐다.

비록 하위 타순이긴 하지만 안타가 없던 감백호가 살아났으니 경기 후반을 볼 용기가 생겼다.

그때 1루 베이스에 나간 감백호에게 누군가가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뭐야? 대주자야?”

“오올! 박유성이다!”

“진짜? 박유성 확실해?”

“등번호 7번이잖아. 종범이 형 등번호.”

잠시 후 선수 교체 자막이 뜨자 야생남 멤버들이 전부 TV 앞으로 붙어 앉았다.

“유성아! 일단 도루부터 하나 하자.”

“바로 뛰어. 바로!”

야생남 멤버들의 목소리를 들었을까.

박유성은 천자이런이 왼발을 들어 올리기가 무섭게 2루 베이스를 향해 내달렸다. 그러고는.

촤라라라랏!

레그 벤트 슬라이딩으로 여유롭게 도루를 성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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