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131화 (131/412)

타자 인생 3회차! 131화

19. 유성이 맛이 어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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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전을 앞두고 강기태 감독이 모든 선수를 고루 기용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베이스볼 파크가 시끄러워졌다.

└이게 뭔 소리임? 그러니까 주전 빼고 벤치 멤버들 쓰겠다는 얘기임?

└그냥 박유성 뺀다는 얘기예요.

└강기태 제정신임? 박유성을 뺀다고?

└언론에서 하도 뭐라고 하니까 강기태 감독이 선수들 자존심 챙겨주려는 거 같네요.

└솔직히 나쁘지 않은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4강전과 결승전 변수 생각하면 벡업 선수들도 컨디션 좀 끌어 올려야 해요.

└그런데 타자 중에 출전 못 한 선수가 있음?

└이종률 빼고 다 나왔을걸요?

└헐, 이종률 못 나옴?

└그 자리 김하선 자리라…….

└하선킹은 킹정이죠. 메이저리그에서도 수비 요정이었음.

└그럼 백영완 다시 1번 들어가고 민병규 1루 선발 출전인가?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박준수는 대만전 쉬거나 지명으로 나갈 거 같고요.

└백영완 우익 선발 출전이면 기정후나 감백호를 쉬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맞긴 한데 사실 박유성 때문에 난리가 난 거라서요.

└박유성 때문이라니? 그게 무슨 말임?

└그냥 박유성으로 기사 한 번 검색해 보세요. 그럼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게 됨.

“뭔 소리야?”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손에 쥔 박명철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가뜩이나 취기가 가시지 않아서 골이 지끈거리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 놓고 있었다.

“일어났어요?”

“나 물 좀.”

“꿀물로 드려요?”

“괜찮아. 그냥 냉수 줘.”

“잠깐 기다리세요.”

아침부터 아내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박명철과 벌써 십 년 넘게 살고 있는 이선영은 군말 없이 꿀물을 타주었다.

“괜찮다니까.”

“얼른 쭉 들이켜고 밥 먹어요. 북엇국 끓였어요.”

“북엇국 좋지.”

박명철은 이선영이 시키는 대로 꿀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하지만 소파에 붙은 그의 엉덩이는 좀처럼 떨어질 줄 몰랐다.

베이스볼 파크에서 떠드는 대로 기사들을 찾아봤는데 정말로 엉뚱한 소리를 해댔기 때문이다.

[야구 대기자의 시선] 대만전 앞둔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이대로 괜찮을까?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의 기세가 무섭다.

첫 경기에서 세계 최강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미국 대표팀을 2 대 1로 꺾은 데 이어 어제 경기에서는 또 다른 우승 후보인 도미니카 공화국을 9 대 3으로 대파하며 4강 진출을 사실상 확정 지었다.

아직 대만과의 일전이 남아 있지만 객관적인 전력을 놓고 봤을 때 대한민국 대표팀의 무난한 승리가 점쳐지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상승세를 이끄는 건 단연 박유성이다.

이제 만 18세.

민찬수의 음주 운전 방조 사건으로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박유성이 이렇게 잘해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박유성은 대수비로 출전한 미국전에서 실점을 막는 호수비와 경기를 뒤집는 투런 홈런을 때려내며 승리의 1등 공신이 됐다.

도미니카 공화국전에서는 장기인 빠른 발을 앞세워 상대 실책을 유발했고 송현민의 선제 3점포를 끌어내며 만점 활약을 펼쳤다.

대표팀의 모든 선수들이 입을 모아 박유성을 칭찬하는 것도 박유성이 실력으로 증명해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림픽 대표팀의 모든 선수들이 다 제 몫을 해주고 있는 건 아니다.

올해 병역 문제가 급한 백영완은 미국전 초반 출장 이후로 벤치를 지키고 있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린다는 이종률도 아직 단 한 번도 그라운드에 서지 못한 상태였다.

중복 포지션 논란에도 불구하고 선발된 민병규는 미국전 연이은 수비 실책 이후로 지명타순에 묶여 있고 타석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메이저리그에서 유턴한 김하선과 메이저리그 3인방이 아니었다면 도미니카 공화국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현장의 관계자들은 세대교체를 핑계로 경험 많은 선수들을 전부 탈락시킨 협회의 안일한 판단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레전드 출신 전직 야구 선수는 일본 대표팀의 예를 들며 신구조화를 제대로 갖췄다고 부러워했다.

‘일본의 정신적 지주라 불리는 야마카와 겐스케 선수는 국가대표만 10년 이상을 한 베테랑 중의 베테랑입니다. 일본도 이번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었지만, 지금까지 잘해왔던 야마카와 겐스케는 빼지 않았죠. 오히려 4번에 배치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젊은 선수들과 베테랑 선수들이 함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도미니카 공화국전도 답답했지만, 미국전은 정말 운 좋게 이긴 겁니다. 그렇게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필요한 게 베테랑이고요.’

4강전 이후를 걱정하는 야구 전문가도 많았다.

‘이미 우리에 대한 분석이 끝났을 겁니다. 박유성부터 시작해 김하선과 송현민, 기정후, 감백호만 묶으면 끝이죠. 선발진이 탄탄하다고는 하지만 그건 국내 기준이고요. 세계 기준에서 봤을 때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없잖아요? 해줄 선수들이 해준다면 좋겠지만 상대도 바보는 아닐 테니까요. 상대로 누굴 만나더라도 상당히 어려운 경기가 예상됩니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2승으로 조 1위가 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4강 대진표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B조에서는 베네수엘라가 2승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고 일본과 푸에르토리코 중에 한 팀이 조 2위로 우리와 만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변수가 큰 푸에르토리코보다 일본과 만나는 게 낫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소수의 선수들에게 의존하는 플레이가 이어진다면 목표였던 올림픽 메달 획득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경인스포츠 야구대기자 최덕수

“야구대기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야구장에 줄 서서 입장 대기나 해라 이놈아.”

박명철이 짜증을 내자 이선영이 주방에서 나왔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 기자란 놈들이 말이야. 우리 유성이 야구 잘하는 거 가지고 지랄들을 하잖아.”

“또 뭐라는데요?”

“세대교체를 해서 베테랑들 다 뺐는데 유성이만 잘하니까 세대교체가 잘못됐다는 거지.”

“세대교체를 해서 유성이가 들어갈 수 있었던 거 아니에요?”

“그렇지. 당신이 이 야구소기자 놈보다 낫네. 베테랑들이 빠져줬으니까 우리 유성이 자리도 나는 건데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알았으니까 그만 역정 내고 밥 먹어요. 출근해야죠.”

“김 부장 있으니까 괜찮아.”

“그래도 사장님이 자리를 비워서 되나요.”

이선영은 박명철을 살살 달래 식탁에 앉혔다. 그리고 억지로 옷까지 입힌 뒤에 출근시키기에 성공했다.

“아무튼 다 큰 애가 따로 없다니까.”

집 안이 조용해지자 이선영은 늦은 아침을 먹었다.

토스트기에 노릇하게 구운 식빵에 절반쯤 잼을 바르고.

아메리카노 한 잔을 내려 커피 향과 함께 느긋하게 즐기는 아침 식사는 이선영이 즐기는 유일한 취미였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이선영은 안방에 놓아둔 노트북을 가져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베이스볼 파크에 들어갔다.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박유성이 올림픽 대표팀에 뽑힌 이후 박명철은 베이스볼 파크에 빠져들었다.

틈만 나면 핸드폰으로 베이스볼 파크를 들여다보는 건 물론이고 자고 일어나서도 뉴스보다 베이스볼 파크에 들어가 박유성 관련 게시글을 먼저 찾을 정도니 이쯤 되면 베팍 중독이라고 봐야 했다.

하지만 이선영은 그런 남편을 나무라지 않았다.

야구 관련 커뮤니티는 자신이 훨씬 먼저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박유성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을 얻기 위해 시작했지만.

어쩌다 보니 지금은 박유신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베이스볼 파크를 정독할 정도가 됐다.

“어디 보자.”

박유성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고 게시글들을 정독한 이선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남편이 흥분해서 떠들 때는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협회의 독선적인 국가대표 선발에 불만이 많았던 언론에서 갈등을 부추기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아들이 야구를 잘해도 문제네.”

그나마 다행히도 박유성에 대한 비난은 거의 없었지만.

박유성을 끼고 까는 글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그래서 백영완은 뭐 했음? 박유성 백업하려고 올림픽 감?

└이간질 ㄴㄴ요. 유성이는 민찬수 백업으로 들어간 거고 주포지션 중견수임. 기정후한테 밀린 거지 박유성이 백영완 밀어낸 거 아님.

└그렇게 따지면 기정후는 박유성한테 밀린 거야? ㅋㅋ

└민찬수가 들어갔더라도 백영완이 밀릴 가능성이 높았음. 기정후도 팀에서 주로 우익으로 뛰고 있잖아요.

└그건 아니죠. 감백호 발목 상태 별로라고 기사까지 떴는데 당연히 민찬수는 좌익수로 들어갔겠죠.

└근데 감백호도 웃기네. 백영완 우익 뛸 때는 발목이 아프고 기정후 우익 들어가면 발목이 괜찮나?

└진짜 경기 안 보고 지껄이는 ㅂㅅ들 많네. 박유성 수비하는 거 안 봤냐? 좌중간은 물론이고 우중간까지 다 커버하잖아. 덕분에 기정후하고 감백호 수비 부담 반으로 줄었는데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댕댕이 비하하지 마세요. 개들도 저런 쌉소리는 안 합니다.

└다들 흥분하지 마시고 진정하세요. 백영완 선발 출전해도 박유성 못 뺍니다. 막말로 박유성 빼면 수비는 누가 해요?

└기정후 좌익에 감백호 지명, 박준수 대신 민병규 1루 선발이 정배임.

└가 정도면 괜찮지. 기정후야 원래 외야 전 포지션 가능하니까.

└난 차라리 김하선 송현민 기정후 감백호 한 경기 쉬게 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그렇게는 어렵겠죠?

└그럼 안타는 누가 침?

└박유성 3루 지박령 만들고 싶으면 무슨 소릴 못 할까. ㅋㅋ

“유성이 출전 못 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아직 확실한 건 아니네.”

이선영이 안도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기태 감독의 인터뷰 때문에 박유성이 빠질 거란 글들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는데 이어지는 글들을 보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날.

[속보] 박유성, 대만전 선발 명단 제외!

내용도 없는 기사를 발견한 이선영은 곧바로 프로 야구 협회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러고는 직통 전화번호를 찾아내 전화를 걸었다.

-네. 프로 야구 협회입니다.

무려 20분간의 대기 시간 끝에 통화가 연결됐다.

박유성의 선발 제외 건으로 항의를 많이 받았는지 직원의 목소리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분노 게이지가 차오른 이선영은 직원의 사정을 봐줄 만큼 이성적이지 못했다.

“박유성 선수 명단에서 빠진 거 정말인가요?”

-하아. 그게요. 선발 출전 결정은 대표팀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거라서요. 저희하고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정말이에요.

“요즘 협회 관련 기사들이 많아서 그것 때문에 강기태 감독님이 인터뷰까지 했는데 협회하고 아무 상관 없다는 말을 믿으라고요?”

-정말 죄송한데 대만전 스타팅 라인업 관련해서는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도 박유성 선수 좋아해요. 저도 박유성 선수가 왜 빠졌는지 이해를 못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코웃음을 치며 더 몰아붙였겠지만.

이선영은 거기서 화가 가라앉았다.

“정말 박유성 선수 좋아해요?”

-그럼요. 조만간 둘째 나오는데 이름을 유성이라고 지을 생각입니다. 지금 다른 직원들은 전화 일부러 안 받고 있거든요? 그런데 전 그냥 받아요. 저도 답답한데 팬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서요.

“하아. 죄송합니다. 제가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했어요.”

-아닙니다. 항상 팬들의 의견을 귀담아듣겠다고 했는데 좋은 소리만 가려들을 수는 없죠. 오히려 잘 전화하셨습니다. 협회도 이번에 뜨끔했을 테니까 4강전이나 결승전 때는 박유성 선수 절대 못 뺄 겁니다.

“그 말씀은……?”

-아이고, 이거 제가 말이 헛나왔네요. 그럼 또 전화가 걸려와서요. 이만 끊겠습니다.

서둘러 전화를 끊는 직원을 보며 이선영은 쓰게 웃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협회 게시판에 글을 올릴까 했지만.

항의 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하니까 더 나서기도 그랬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박유신이 눈을 비비며 나왔다.

“엄마. 나 왜 안 깨워써요오!”

“어머, 내 정신 좀 봐. 얼른 씻자.”

박유성에게 정신이 팔려 박유신의 등교를 깜빡한 이선영은 서둘러 박유신을 씻고 입히고 먹였다.

그러면서 박유성에게 힘내라는 메시지를 보내라고 말했다.

“뭐라고 보내요?”

“경기 못 나와도 괜찮으니까 형아가 최고라고 해.”

“알았어요.”

케첩을 듬뿍 찍은 계란말이를 오물거리며 박유신이 앙증맞은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런데 중간에 오류가 생긴 건지 박유성에게 엉뚱한 메시지가 도착했다.

[미래의 메이저리거 – 형아. 오늘 경기 못 나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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