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130화
19. 유성이 맛이 어때?(2)
└뭐야? 일본 갑자기 선발이 바뀌었는데?
└오늘 니키타 쇼우 아님?
└니시카와 가즈키로 방금 바뀌었어요.
└헐, 니시카와 가즈키로 베네수엘라 잡을 수 있음?
└힘들걸요. 니시카와 메이저리그 진출 실패했잖아요.
└바뀐 선발 투수, 예전에 포스팅 신청했다가 입찰액으로 99달러 받은 그 선수 맞죠?
└네. 그래서 등번호도 99로 바꿨음.
└그땐 운이 없었죠. 하필 같이 신청한 상대가 마츠다 유이토였으니까.
└그래도 도쿄 베이스타즈에서 FA 대박 터뜨리고 잘 먹고 잘 살고 있을걸요?
└그런데 갑자기 선발 왜 바뀐 거임? 선발 바꾸려면 사유 있어야 하지 않음?
└급성 장염이라는데요.
└갑자기?
└그래서 응급실 감?
└그건 모르겠는데 암튼 갑자기 배가 아팠음. ㅎㅎ
└뭔가 냄새가 나는데.
└저도요.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에인젤스 필드에서 일본과 베네수엘라 간의 B조 예선 3번째 경기가 열렸다.
경기 초반 분위기는 일본이 가져갔다.
-헛스윙 삼진 아웃! 니시카와 가즈키 선수가 오늘 경기 세 개째 탈삼진을 솎아냅니다.
-지금 세 이닝 연속 삼자범퇴인데요. 니키타 쇼우 선수가 갑작스럽게 배탈이 나면서 대체 선발로 올라온 게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일본의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의 말로는 오늘 경기를 원 플러스 원으로 끝낼 생각이었다고 하는데요.
-원 플러스 원이면 니키타 쇼우 선수에게 5이닝을 맡기고 나머지 4이닝을 니시카와 가즈키 선수가 책임지는 건가요?
-이닝 분배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본 쪽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밝혔다고 합니다.
-요즘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포스트 시즌 한정으로 선발 투수 총력전을 펼치곤 하지만 글쎄요. 4강이나 결승도 아니고 예선전에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네요. 일본 대표팀도 이번에 투수를 12명이나 뽑았거든요.
-사실 선발진만 놓고 보자면 일본 대표팀이 미국 대표팀 다음으로 탄탄해 보이는 게 사실인데요. 일본 대표팀의 자체 분석은 다른 것 같습니다.
대체 선발로 등판한 니시카와 가즈키는 6이닝 동안 단 한 점만 내주며 베네수엘라 타선을 꽁꽁 묶었다.
5개의 안타를 허용하는 동안 탈삼진은 무려 9개를 솎아냈는데 특히나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포크볼에 베네수엘라 대표팀 타자들이 맥을 추지 못했다.
마운드에서 니시카와 가즈키가 호투를 펼치는 동안 일본 대표팀은 야금야금 점수를 뽑아냈다.
1회에 간판 타자 곤도 타쿠야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올렸고.
2회에는 선두타자로 나선 가이 호타카가 솔로 홈런을 때려냈으며
5회 2사 만루 기회에서 4번 타자 야마카와 겐스케가 싹쓸이 2루타를 때려내며 경기 분위기를 일본 쪽으로 끌고 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 대표팀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는데.
니시카와 가즈키가 내려간 이후로 일본 야구가 달라졌다.
-볼. 이번에도 공이 빠집니다.
-미야기 하사토 선수. 지금 공이 조금씩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고 있는데요. 영점 조정을 다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선두 타자 로빈손 사바리노가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1루를 밟자 베네수엘라 타자들은 끈질기게 미야기 하사토를 물고 늘어졌다.
6번 타자 로빈손 사바리노는 4구째 슬라이더를 건드려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7번 타자 윌슨 오테로가 2-0에서 몸 쪽으로 밋밋하게 들어오는 포심 패스트 볼을 잡아당겨 2루타를 때려냈고.
이어진 1사 2, 3루 찬스에서 그레고리오 올메도가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적시타를 때려내며 점수 차이를 두 점으로 좁혔다.
“이러다 경기 뒤집히겠는데?”
“그러게. 일본 갑자기 왜 저러냐?”
신성 호텔 휴게실에 모여 일본과 베네수엘라의 경기를 지켜보던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은 하나같이 헛웃음을 흘렸다.
숙적이라 불릴 만큼 일본과 자주 싸워왔고.
그만큼 일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해 왔는데 일본이 맞나 싶을 만큼 허무하게 점수를 내주고 있었다.
“쟤들 단체로 장염 걸린 거 아니야?”
“형 장염 안 걸려봤죠?”
“나 무시하냐 인마? 내가 장 하나는 1등급이야.”
“저도 장 믿고 아무거나 주워 먹다가 지난번에 장염 세게 걸렸잖아요. 진짜 장염 걸리면 저렇게 서 있지도 못해요.”
“그 정도야?”
“장난 아니라니까요? 진짜 나중에 시간 되면 한 번 걸려봐요.”
“싫어 인마. 그걸 왜 걸리냐?”
일부 선수들은 니키타 쇼우처럼 다 같이 배앓이를 하는 걸까 의심했고.
일부 선수들은 토토 충이라고 몰아붙였다.
“토토 맞다니까.”
“일본 애들 연봉이 우리보다 배 이상 많은데 무슨 토토를 해?”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미야기 하사토는 백 퍼임.”
“근데 진짜 사인이 새는 건가? 어떻게 던지는 족족 얻어맞지?”
구석에 앉아 있던 송현민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박유성을 보며 물었다.
“넌 안 이상하냐?”
“뭐가요?”
“일본 애들 말이야. 꼭 지려고 환장하는 거 같은데 나만 그렇게 느끼나 해서.”
회의실에 일본 관계자가 앉아 있었다면 외교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는 선을 넘는 발언이었지만 박유성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죠. 조 1위로 올라가면 미국하고 붙을 가능성이 크잖아요.”
“그렇지? 왠지 미국 피하려고 경기 던지는 느낌이지?”
“애국심 빼고 생각해 봐요. 4강에서 한국하고 미국, 둘 중에 한 팀하고 붙어야 한다면 어딜 고르겠어요?”
“야, 그건 애국심 넣어도 한국이지. 우리도 운 좋게 이긴 미국을 일본이 무슨 수로 이기냐?”
조별 예선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불의의 일격을 허용하긴 했지만 미국 대표팀은 여전히 모두가 기피하는 올림픽 최강팀이었다.
미국 대표팀으로 메이저리그 시즌을 치르면 80퍼센트 이상의 승률도 가능할 거라는 분석이 나왔을 정도였다.
“미국은 결승에서 만나는 게 최선이에요. 그전에 만나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왜 베네수엘라한테 져주는 걸까? 푸에르토리코는 이길 자신이 있는 건가?”
“베네수엘라가 1승을 거뒀잖아요. 오늘 일본 잡으면 캐나다전만 남은 거니까 조 1위 확정이죠. 반대로 일본이 베네수엘라를 잡고 푸에르토리코한테 패배하면 계산이 복잡해져요. 캐나다를 전부 잡는다고 가정했을 때 일본과 베네수엘라, 푸에르토리코가 전부 2승 1패가 되거든요.”
“그럼 TQB로 순위 결정하는 거지? 재수 없으면 2승 하고도 떨어지는 거고.”
“우리야 4강에서 미국을 만날 일은 없으니까 대만 잡고 올라가면 그만이지만 일본은 그게 힘드니까요. 베네수엘라를 조 1위로 만들어놓고 푸에르토리코하고 담판을 지으려는 거 같아요.”
오늘 경기에서 베네수엘라가 일본을 잡는다면 캐나다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지더라도 승자승에 의해 조 1위가 확정된다.
남은 한 자리는 일본과 푸에르토리코 중에 승자가 차지하게 될 텐데 일본 대표팀 입장에서는 TQB까지 가는 복잡한 계산보다 푸에르토리코에게 올인하는 전략이 더 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너무 티가 나. 적당히 해야지.”
“니키타 쇼우도 빼줬는데 베네수엘라가 점수를 못 냈잖아요. 일본도 답답하겠죠.”
“니시카와 가즈키도 공 좋아 인마. 포스팅 신청했다가 물먹어서 좀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포크 볼 하나는 진짜 예술이야. 나중에 한번 봐라. 아마 깜짝 놀랄걸?”
“일본 대표팀 투수들 중에 포크볼 별로인 투수도 있나요?”
“하긴. 그것도 그렇네.”
단번에 판을 엎어버리는 건 부담스러웠던지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이 뒤늦게 투수를 교체했고.
구원 등판한 야부타 슈타가 헤르난 로살레스와 알렉스 카스트로를 삼진과 중견수 뜬공으로 처리하면서 길었던 7회 말을 끝냈다.
그리고 이어진 8회 초.
선두 타자로 나온 4번 타자 야마카와 겐스케가 눈치 없이 볼넷을 골라내자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은 다시 한번 선수 교체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야마카와 겐스케 선수를 대신해 스즈키 지로 선수가 대주자로 출전합니다.
-점수가 두 점 차로 좁혀졌으니까요. 선두타자가 출루한 만큼 추가점을 올릴 기회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중계진은 스즈키 지로를 투입한 이상 작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지만.
-아! 아웃입니다.
-스즈키 지로 선수. 뭐 하나요? 올림픽에서 멍을 때리는 선수는 처음 봤네요.
스즈키 지로는 무리하게 리드를 넓혔다가 견제에 걸려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더그아웃으로 물러났다.
“이야, 대단하다. 대단해. 어떻게 저렇게 죽을 생각을 다 하냐?”
“그렇다고 야마카와 겐스케한테 견제사를 주문할 수는 없잖아요.”
“그건 말이 안 되지. 우리로 치면 하선이 형인데.”
“암튼 저는 먼저 올라가 볼게요.”
“결과 안 보고 가려고?”
“뒤집힌다에 제 검은색 방망이 전부를 걸죠. 형은 뭘 걸래요?”
“야 인마. 그거 내가 준 방망이잖아.”
“쫄리면 알죠?”
“뭐라는 거야. 저 자식이.”
박유성이 먼저 방으로 올라가고 한 시간 뒤.
송현민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제 끝났어요?”
“말도 마라. 막판에 서로 네가 가라 하와이였어.”
“베네수엘라도요?”
“일본만큼은 아닌데 투수가 한복판으로 공을 던지던데?”
“그걸 안 쳤어요?”
“아니. 쳤어. 야수 정면으로. 일본 애들 잘하더라. 아주 재주가 신통방통이야.”
침대에 벌러덩 누우며 송현민이 혀를 찼다.
일본의 입장은 이해가 가지만 7년 만에 치르는 올림픽 야구에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암튼 우리는 저렇게 추해지지 말자. 저게 뭐야? 나중에 자식들한테 뭐라고 할 건데?”
송현민이 박유성을 보며 말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야구에 대한 열정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 보였다.
박유성도 그런 송현민이 싫지 않았다.
“밥상은 제가 차릴 테니까 형은 타점이나 올려요.”
“짜식이 아주 그냥 기특한 말을 건방지게 하네? 너 내 헤드락 안 당해봤지?”
“저 괴롭히면 정후 형하고 백호 형한테 다 이름.”
“야 이 치사한 놈아. 그걸 이르고 싶냐?”
“그렇지 않아도 정후 형이 선물해 준 방망이 안 쓰냐고 은근 압박 주는데 다음 경기 때 개시할까요?”
“알았다. 알았어. 어휴, 치사한 놈. 이제 하다 하다 방망이 가지고 협박이네. 야구라도 못하면 한 대 쥐어박을 텐데.”
“그럼 형한테 쥐어박힐 일은 없겠네요.”
“어휴, 저 주둥이 저거. 정후 형하고 백호 형은 너 이렇게 깐족거리는 줄 아냐?”
“정후 형하고 백호 형은 형이 제일 문제라던데요?”
“암튼 너 대만전 때 못하면 각오해라, 아주 제대로 정신 교육을 시켜줄 테니까.”
“네에. 네에. 기대하겠습니다.”
박유성이 피식 웃었다.
미국과 도미니카 공화국전에서도 안타를 때려냈는데 전력상 한 수 아래라 불리는 대만 대표팀을 상대로 죽을 쑬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가 발생했다.
“유성아. 오늘 미국이 대만 이긴 거 봤지?”
“네. 감독님.”
“대만이 생각보다 약하더라.”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유성아. 우리 한 경기만 쉴까?”
“……네?”
“지금 막내한테 얹혀간다고 난리도 아니더라. 그러니까 대만전만 좀 쉬자. 알겠지?”
“…….”
일부 비판 여론을 의식한 강기태 감독은 그동안 출전하지 못했던 선수들에게 출장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고.
박유성도 어쩔 수 없이 벤치에서 대만전을 준비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