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124화
18. 슈퍼 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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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LA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은 압도적인 1위를 천명했다.
단순히 5개 대회 연속 종합 우승이 아니라 경쟁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감히 범접할 수 없도록 확실한 격차를 보여주는 게 목표였다.
그 계획대로 미국은 초반에 메달을 쓸어 담으며 종합 순위 1위를 질주했다.
대회 4일 차인 오늘도 금메달 3개를 포함해 13개의 메달을 획득하며 2위 중국과의 메달 합산 개수를 더블 스코어로 벌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대다수 미국인들은 SNS를 통해 우울한 감정을 토해냈다.
미국의 4대 스포츠라 불리는 야구 경기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패배했기 때문이다.
└미국 1 : 2 한국. 이거 전산 오류지? 그렇지? @Dodgers SN
└나도 설마 한국에 졌을까 하고 경기 기사를 찾아봤다가 충격먹었어. @CappDrop34
└이건 말이 안 돼. 어떻게 일본도 아닌 한국에게 2 대 1로 패배할 수가 있는 거지? 이래놓고 세계 최강 운운한 거야? @MomsOopsBaby
└경기 내내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 내가 알던 메이저리그 스타 플레이어들이 아니었다고. @Bleacher7
└한국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야구를 잘하는 나라야. 무시할 상대는 절대 아니야. @Ban Scott
└한국 팀의 총연봉은 우리의 10퍼센트도 되지 않을걸? @ajn42
└어쩔 수 없잖아. 한국 대표팀에는 메이저리그 선수가 세 명뿐이었어. 반면 우리는 감독까지 메이저리그 레전드 출신이었지. @gorangers43
└그래. 야구공은 둥그니까 경기에서 질 수도 있어. 하지만 오늘 보여준 경기력은 최악이었어. @Rawliell
└전적으로 동감해. 이대로는 올림픽 2연패는커녕 내년에 있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도 장담하기 어렵다고. @Raul R.
└바빠서 경기를 보지 못했는데 대체 어떻게 진 거야? 오리올스의 키와 레인저스의 쏭에게 홈런을 얻어맞은 거야? @V-angers
└둘은 오늘 경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정작 코리안 슈퍼 루키에게 당했다고. @Patrick76
└슈퍼 루키? 이름이 뭔데? @brbuers1
└썬. @David BeKim
└그냥 썬이 아니야. 슈퍼 썬이라고. @Domini
└그 별명은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었던 송흔민의 별명 아니야? @ilovefootball
└알게 뭐야. 암튼 그 정도로 썬은 잘했어. 게릿 벌렌더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때려냈다고. @Will77
└뭐? 그게 정말이야? @Bretti
└게릿 벌렌더가 썬을 너무 우습게 봤어. 한복판에 빠른 공을 던졌는데 치지 못할 이유가 없지. @YKgogo
└뭔지 알겠어. 리그에서도 그러다 종종 얻어맞곤 했잖아. @Coco75448
└게릿 벌렌더의 피칭은 무모했지만 썬이 잘 노렸어. 게릿 벌렌더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alexis
└젠장할. 전승으로 우승을 하겠다는 계획이 벌써 틀어진 거야? @Cleon299
└우승이 문제가 아니야. 지금 4강도 불안하다고. @Marc_3272
└우리 4강은 갈 수 있는 거지? @GSDStax42
└아직 기회는 남았어. 도미니카 공화국과 대만을 전부 잡으면 돼. @Bul052
└만약에 도미니카 공화국에게 발목을 잡히면? @Pieter K.
└그런 끔찍한 소리는 하지 마! @Braveboys
미국의 주요 스포츠 매체들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미국 대표팀이 손쉽게 승리를 거둘 거라 예상하고 초호화 라인업으로 구성된 미국 대표팀에 대한 스페셜 영상을 준비했는데 막상 틀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메이저리그 투데이의 베테랑 진행자 조쉬 베이너는 기존의 대본을 그대로 폐기해 버렸다.
대신 일본과 캐나다전의 리뷰를 위해 특별히 초대했던 일본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와 1 대 1 토크를 진행했다.
“오타니.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냈죠?”
“네. 잘 지냈습니다.”
“못 본 사이에 몸이 더 커진 느낌인데요?”
“하하. 그럴 리가요. 오히려 살이 좀 빠졌습니다.”
“그럼 양복이 큰 건가요?”
“아무래도 유니폼 입은 모습이 익숙해서 그런가 봅니다.”
오타니 쇼헤가 멋쩍게 웃었다. 그러자 오프닝은 이쯤 하면 됐다고 생각했던지 조쉬 베이너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 다저스 파크와 에인젤스 필드에서 올림픽 야구 경기가 열렸습니다. 혹시 알고 있나요?”
“그럼요. 다저스 파크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경기가 있었고 제 홈구장이죠. 에인젤스 필드에서는 제 조국인 일본이 캐나다와 붙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북미 국가와 아시아 국가 간의 맞대결이었는데요. 아시아 국가가 전부 승리를 거뒀습니다. 혹시 한국과 미국의 경기를 봤나요?”
“네. 봤습니다. 일본과 캐나다의 경기보다 5시간 일찍 시작했잖아요. 그래서 끝까지 다 볼 수 있었습니다.”
LA 올림픽 야구 종목 유치를 두고 미국 전역의 구단들이 신청서를 냈지만 LA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LA 올림픽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지역을 대표하는 다저스와 에인젤스의 홈구장에서 경기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본래 경기 시간까지 동일하게 맞추기로 했지만 미국이 포함된 A조 유치에 실패한 에인젤스 구단 측에서 시간 변경을 요청하면서 일본과 캐나다전은 오후 4시부터 경기가 진행됐다.
“그럼 먼저 한국과 미국의 경기부터 얘기해 볼까요?”
“한국 대표팀과는 저도 여러 차례 맞붙어봤는데요.”
“어땠나요?”
“매번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베이징 올림픽과 프리미어 12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준우승도 했으니까요.”
“최근 들어 국제대회 성적이 아쉽긴 하지만 만만하게 볼 팀은 절대 아니라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특히나 한국은 일본만큼이나 조직력이 끈끈한 팀인데요. 오늘 경기에서도 그 조직력이 잘 발휘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럼 일단 오늘 경기의 하이라이트 영상부터 보겠습니다.”
뒤쪽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영상이 나오자 조쉬 베이너는 스태프를 바라봤다.
그러자 스태프가 웃으며 오케이 사인을 냈다.
조쉬 베이너의 생각대로 같은 아시아 선수인 오타니 쇼헤가 대한민국 대표팀의 전력을 추켜세운 게 먹힌 모양이었다.
다른 일본 출신 패널을 초대했다면 한국을 깎아내리는 발언이 나왔을지 모르지만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지금껏 언행을 각별히 조심해 왔던 오타니 쇼헤는 조쉬 베이너가 원하는 대답을 정확하게 해주었다.
그렇게 5분짜리 하이라이트 영상이 끝나고.
조쉬 베이너와 오타니 쇼헤는 본격적인 경기 분석에 들어갔다.
“미국의 선발 투수는 게릿 벌렌더였습니다.”
“네.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이죠.”
“오타니도 자주 붙어봤죠?”
“그렇죠. 아무래도 같은 아메리칸 리그고 또 같은 지구니까요.”
2023년 겨울.
오타니 쇼헤는 에인젤스와 8년 총액 2억 8천만 달러에 FA 계약을 맺었다.
일본 언론이 기대했던 사상 첫 총액 4억 달러는 불발됐지만 연평균 3,500만 달러로 팀 동료인 마이크 트라우스에 이어 에인젤스에서 두 번째로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됐다.
아시아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8년이라는 장기 계약을 제안해 준 에인젤스 구단에게 고마워서 오타니 쇼헤는 LA 올림픽 불참을 선언했다.
발목과 어깨 상태가 좋지 않아 타자로만 뛰고 있는데 올림픽 욕심을 부릴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본 내 스포츠 스타 선호도 조사에서 오타니 쇼헤의 지지율이 10퍼센트 가까이 빠졌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덕분에 메이저리그 투데이와 조쉬 베이너는 오늘 경기를 가장 잘 설명해 줄 적임자를 스튜디오로 초대할 수 있게 됐다.
“제가 따로 조사를 해봤는데요. 게릿 벌렌더를 상대로 상대 타율이 높지 않았습니다.”
“아마 3할이 안 될 겁니다.”
“정확하게는 0.278인데요. 아직까지 홈런을 때려내지 못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게릿 벌렌더 선수는 투심 패스트 볼이 좋은 투수입니다. 특히나 좌타자의 몸쪽으로 파고드는 투심 빠른 볼의 무브먼트가 어마어마합니다. 빠른 공에 타이밍을 맞추고 있다가 투심 패스트 볼이 들어오면 저도 모르게 헛스윙을 하게 되더라고요.”
“오늘 경기에서도 경기 중반 이후 투심 패스트 볼을 적극적으로 구사하며 한국 타자들을 쓰러뜨렸는데요. 한국의 슈퍼 루키에게 투런 홈런을 맞았습니다.”
“저도 그 장면을 TV로 지켜봤습니다. 놀랍더라고요.”
“맞는 순간 홈런이라는 걸 직감했나요?”
“아뇨. 전혀요. 솔직히 우익수 플라이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타구가 끝까지 뻗어 나갔어요. 이런 식으로요.”
오타니 쇼헤가 손으로 빠르고 낮은 포물선을 그려 보였다.
흔히들 라이너성 타구라고 표현하지만 오타니 쇼헤는 그런 용어보다 박유성이 게릿 벌렌더의 공을 제대로 때려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
“그런 타구를 만들어내려면 힘이 좋아야 하지 않나요?”
“힘보다는 타이밍이 완벽해야 합니다. 스위트 스폿에 정확하게 공을 맞혀야 하고 무리해서 공의 방향을 꺾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의 슈퍼 루키가 완벽한 타격을 보여줬다는 얘기로군요?”
“맞아요. 요즘에는 타자들이 각도를 만들어서 홈런성 타구를 만들어내잖아요? 하지만 박유성 선수는 달랐습니다. 욕심부리지 않고 한복판으로 들어오는 빠른 공을 정확하게 가격했어요. 만약에 그 타이밍이 조금만 늦거나 빨랐더라도 홈런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군요.”
조쉬 베이너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타니 쇼헤는 메이저리그에 넘어와 연평균 3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내고 있는 강타자였다.
2021년에는 46개의 타구를 담장 밖으로 날리며(아메리칸 리그 홈런 3위) MVP를 거머쥐었고.
시즌 15승을 거두며 에인젤스의 에이스로 거듭난 이듬해에도 34개의 홈런을 때려낼 만큼 홈런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런 오타니 쇼헤가 완벽한 타격이었다고 극찬을 하니까 게릿 벌렌더의 실투가 맞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많은 팬들은 게릿 벌렌더가 한복판으로 공을 던진 게 잘못이라고 지적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바로 직전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고요. 박찬희 선수를 상대로 던진 투심 패스트 볼이 빠지면서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삼진을 잡으려던 공이었는데 실수를 한 거죠. 그다음에 대주자로 들어온 박유성 선수가 타석에 들어왔습니다. 게릿 벌렌더 선수 입장에서는 꼭 잡고 싶었겠죠.”
“그래서 포심 패스트 볼을 선택했다는 겁니까?”
“네. 방금 투심을 실수했으니까요. 한복판에 던진 것도 컨트롤에 대한 자신감을 찾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릅니다. 일단 스트라이크 존에 포심 패스트 볼을 꽂아 넣으면 찝찝했던 기분이 사라질 테니까요.”
“애스트로스 팬들은 게릿 벌렌더가 종종 한복판으로 공을 던지는 버릇이 있다고 하던데요?”
“한복판으로 던져도 스트라이크입니다. 게다가 게릿 벌렌더의 포심 패스트 볼은 98mile/h(≒157.7km/h)까지 나옵니다. 그 공을 공략한다는 게 과연 쉬운 일일까요?”
“그렇다면 슈퍼 루키가 친 홈런은…….”
“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박유성 선수가 잘 쳤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과 미국의 리뷰가 끝나고.
곧바로 일본과 캐나다의 경기 분석이 이어졌다.
“제 모국이라서가 아니라 일본 대표팀은 확실히 강합니다. 처음에 조편성을 보고 4강 진출이 쉽지 않을 거로 생각했지만 오늘 캐나다를 상대로 보여준 모습은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오타니 쇼헤는 침까지 튀겨가며 일본 대표팀의 경기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일본 대표팀이 조 1위로 4강전에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정작 일본의 야구팬들은 오타니 쇼헤의 예상이 전혀 달갑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