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117화
17. 우리 유성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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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캐스터 장호영입니다. 오늘은 많은 분들이 기다리시던 LA 올림픽 야구 종목 개막전이죠. 대한민국 대 미국, 미국 대 대한민국의 경기를 중계해드릴 예정입니다. 오늘도 제 옆에는 이선철 해설위원께서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이선철입니다.
-LA 올림픽이 시작된 지도 벌써 사흘이 지났는데요. 4일 차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올림픽 야구가 시작됐습니다.
-일정도 일정이지만 지난 21년 도쿄 올림픽 이후로 7년 만의 올림픽 야구인데요. 아직도 많은 분들이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우승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은 감동이었는데요. 애석하게도 2021년 도쿄 올림픽은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12년, 아니, 13년 만에 열리는 올림픽 야구이기도 했고 코로나 여파도 있었으니까요. 개최를 하네 마네 막판까지 말들이 많아서 아마 선수들이 컨디션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2021 도쿄 올림픽 야구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도미니카 공화국에 밀려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6개국이 참가한 도쿄 올림픽 야구는 2개 조로 나뉘어 풀리그를 치른 뒤에 변형된 더블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 방식인 녹아웃 스테이지를 통해 승자를 가리는 식으로 진행이 됐는데 결과적으로 미국과 일본의 벽을 넘지 못하면서 메달 획득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번 LA 올림픽은 어떨까요?
-글쎄요. 일단 지난 도쿄 올림픽에 비해 참가국이 8개국으로 늘어났는데요. A조에 편성된 나라들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지금 자막으로 나가고 있습니다만 주최국인 미국을 비롯해 북중미의 강호 도미니카 공화국, 그리고 대만과 한 조에 편성이 됐는데요. 4강에 가기 위해서는 일단 조 2위를 확보해야만 합니다.
-전력만 놓고 보자면 미국이 무난하게 4강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남은 한 자리를 두고 대한민국과 도미니카 공화국의 쟁탈전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기사를 보니까 벌써부터 다양한 경우의 수가 나와 있더라고요.
-저도 찾아봤는데 3전 전승을 거두는 경우부터 대만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이 2승 1패가 되거나 반대로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이 1승 2패가 되는 경우까지 상세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경우의 수를 놓고 봤을 때 1승 2패를 해도 4강 진출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반대로 2승 1패를 하고도 4강 탈락을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세 팀의 성적이 동률이면 TQB에 따라 순위를 가리게 되니까요.
-이 TQB라는 게 이닝당 평균 득점에서 이닝당 평균 실점을 뺀 값으로 계산을 하는데 어떤 팀이든 큰 점수 차이로 패배하면 TQB에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매 경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건데요. 일단 이번 대회를 앞둔 대한민국 대표팀의 각오가 남다릅니다.
-네. 그렇습니다. 올림픽 직전에 불미스러운 일로 선수 교체가 있었습니다만 일단 연습 경기에서는 전승을 거뒀고요. 강기태 감독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베이징 올림픽 신화를 다시 한번 써보겠다는 의지가 상당합니다.
-특히나 민찬수 선수를 대신해 새롭게 합류한 박유성 선수의 활약이 눈이 부시는데요.
-하하. 그렇습니다.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어린 선수인데요. 얼마 전에 있었던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전무후무한 타격 8관왕을 달성했습니다.
-공식 명칭은 U-18 야구 월드컵입니다만 어쨌거나 박유성 선수가 대한민국 대표팀의 멱살을 잡고 우승을 시켰다는 극찬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오늘 박유성 선수의 출전,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글쎄요. 아직 성인 무대 경험이 부족한 만큼 선발 출전은 어렵지 않을까 싶지만…… 개인적으로는 박유성 선수가 1번 타자로 나와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첫 안타를 때려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선철 해설위원의 말에 실시간 채팅창으로 동조하는 댓글들이 쏟아졌다.
└박유성은 무조건이지.
└1번 타자 박유성이라. 벌써 부터 가슴이 웅장해지네.
└그런데 박유성이 그렇게 잘함?
└연습 경기 안 봤어요?
└박유성=리틀 기종범. 반박시 니 말 맞음.
└조금 이따가 박유성 주루 플레이 하는 거 보세요. 감탄만 절로 나올 겁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유성의 선발 출전을 확신하는 분위기였는데 잠시 후 스타팅 라인업이 발표되자 채팅창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먼저 대한민국 대표팀의 타순을 알려드리겠습니다. 1번 타자 우익수 백영완. 2번 타자 3루수 김하선. 3번 타자 2루수 송현민. 4번 타자 1루수 박준수. 5번 타자 중견수 기정후. 6번 타자 지명타자 감백호. 7번 타자 좌익수 민병규. 8번에 포수 박경호.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찬희 선수가 유격수로 선발 출전합니다.
-감백호 선수를 대신해 민병규 선수가 좌익수로 갔는데요. 감백호 선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심각한 건 아니지만 발목 상태가 좋지 않아서 오늘 경기에서는 지명 타순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기정후 선수와 백영완 선수의 수비 부담이 상당히 커질 것 같은데요. 차라리 박유성 선수를 중견수로 투입하는 게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이선철 해설위원이 정곡을 찌르자 부글거리던 채팅창이 일시에 폭발했다.
└진짜 뭐임? 민병규 좌익수? 지금 장난함?
└민병규 고2 때까지 좌익수로 뛰었어요. 연습 경기 때도 좌익수로 나왔고요.
└그건 기정후하고 감백호가 합류 안 해서 그런 거고요. 선수가 없는 것도 아니고 박유성이 있는데 민병규 좌익이 말이 됨?
└그럼 민병규 빼고 박유성 넣을까?
└민병규를 빼면 점수는 누가 뽑으라고?
└이거 타순 짠 놈 나와봐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따위로 짠 거냐?
└어휴. 방구석 이선철들 나셨네.
중계 카메라가 대한민국 벤치를 비추자 채팅창으로 강기태 감독에 대한 욕들이 쏟아졌다.
-자유롭게 채팅을 치시는 건 좋지만 선을 넘는 욕설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주기적으로 욕설을 하시는 분들은 추후에 형사 고발이 될 수도 있다는 점 참고해 주시고요.
장호영 캐스터가 분위기를 바꾸려 노력했지만 팬들의 불만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고.
그런 반응을 예상한 듯 강기태 감독도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벤치로 밀린 박유성의 얼굴도 불만 가득이었다.
‘이럴 거면 뭐 하러 뽑아? 연습 경기에 내보내질 말든가.’
비록 마음을 비우고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하긴 했지만 연습 경기를 통틀어 가장 잘 쳤는데 벤치로 밀리니까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보다 못한 이병구 타격 코치가 박유성을 살살 달랬다.
“유성아. 출전 못 해서 서운하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솔직히 말해봐. 나가고 싶어 죽겠는데 안 내보내주니까 서운하고 속상하고. 그렇지?”
“아니요.”
“짜식이 아니긴. 그런 얼굴로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게 돼?”
“진짜 괜찮습니다.”
“너 하나도 안 괜찮은 거 알아. 네가 너라도 엄청 서운했을 거야. 그런데 유성아. 감독님 입장도 이해를 해줘.”
“네. 이해합니다.”
“나도 잘 몰랐는데 메이저리그 선수들 차출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더라. 우리가 우리나라 선수 부르겠다는데 무슨 조건이 그렇게 많고 따지는 게 많은지 원. 그냥 국내 선수들끼리 치르자는 말까지 나왔다니까?”
“…….”
“현민이도 그렇고 정후도 쉽지 않았지만 백호는 진짜 힘들게 데려왔어. 백호 발목 상태 안 좋은 거 알지?”
“네. 올 초에 슬라이딩 하다가 다치셨잖아요.”
“그게 원래 작년에 다쳤던 건데 나을 만하니까 또 다친 거야. 의사 말이 앞으로 계속 다칠 거래. 그러다 심해지면 선수 생활 끝내야 하는 거고.”
다소 비약이 심했지만 박유성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정후만큼은 아니지만 평소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선배이다 보니 부상을 두고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게 너도 있고, 또 병규가 연습 경기 때 좌익수를 제법 잘 봤잖아?”
“결국 병규 형 때문이네요.”
“그래. 맞아. 민병규 저 자식 때문이야. 처음에 선수촌 합류했을 때는 뭐라고 했는 줄 아냐? 1루가 아니면 그냥 선수촌 내보내달래.”
“그때 내보내셨어야죠.”
“나도 그러지 못한 게 한이다. 진짜 뺀질뺀질한 게 이름만 비슷해가지고는.”
“그래도 이용구 코치님은 병규 형 좋아하시던데요?”
“용구하고 관상이 비슷하잖아. 둘이 현역 시절에 만났으면 아마 강남 클럽을 주름잡았을걸? 암튼 이 모든 게 병규 때문에 생긴 일이니까 백호 너무 미워하지 마라. 백호가 아까도 그러더라. 자기 대신 너 출전시키라고.”
“그래도 저보다는 백호 선배님이 뛰셔야죠.”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고. 암튼 감독님도 고민이 많으셨으니까 오늘만 이해해 줘라.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같은 현역이었다면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했을 레전드가 직접 와서 달래주니까 박유성도 마음이 조금 풀렸다.
게다가 화를 낼 대상을 정확하게 찍어주니까 복잡했던 머릿속도 정리가 됐다.
“그래. 이게 다 병규 형 때문이야.”
민병규가 연습 경기 때 1루를 고집했다면 최소 좌익수 자리에서 뛸 수 있었을 텐데.
벤치에 앉아 있기 싫다는 이유로 외야 글러브를 끼고 나가서 제법 그럴싸하게 전문 외야수 흉내를 내니까 강기태 감독도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좌익은 되면서 우익은 안 된다는 건 또 뭐야.”
배성 고등학교 시절.
민병규의 타격 재능을 눈여겨본 배성 고등학교 감독은 1학년 때부터 틈만 나면 민병규를 경기에 내보냈다.
그 과정에서 외야 전 포지션을 전부 경험했고.
2학년 때도 좌익수만큼은 아니지만 우익수 포지션을 소화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익수 자리는 자신이 없다고 하니까 박유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렇다고 영완이 형을 밀어낼 수도 없고.’
올림픽 대표팀 타자 중에서 최고참은 김하선이었다.
95년생이지만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 32세.
우리 나이로 34살이었다.
그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게 바로 백영완이었다.
기정후와 98년생 동갑내기지만 생일이 빨라서 백영완은 만 30세인 반면 기정후는 만 29세로 표기가 됐다.
그래서 기정후는 이번 올림픽이 병역 혜택을 노릴 수 있는 마지막 대회였다.
병역법 개정에 따라 만 31세까지 연기가 가능해졌다지만 2년 후 열리는 아시안게임 때는 만 32세가 되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표팀 내에서도 백영완의 간절함을 이해해 주자는 분위기였다.
백영완 입장에서도 나이를 꽉 채워 올림픽에 나갔는데 벤치만 지키고 싶지는 않을 터.
“하아……. 나도 1회차 때 비슷한 처지였으니까 이해해 줘야지.”
박유성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퍼어엉!
묵직한 포구 소리가 박유성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미국 대표팀의 선발 투수인 게릿 벌렌더가 어느새 마운드에 올라와 연습 투구에 들어간 것이다.
‘진짜 헐크네.’
게릿 벌렌더를 위아래로 살핀 박유성이 피식 웃었다.
송현민이 헐크라고 해서 다소 과장한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까 스포츠 종목을 잘못 고른 것 같았다.
야구가 아니라 미식축구나 프로 레슬링 쪽이 어울릴 것 같다고나 할까.
작은 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워낙에 몸이 근육질이다 보니 만화 캐릭터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대한민국 중계석에서도 비슷한 평가가 흘러나왔다.
-오늘 대한민국 대표팀 타자들이 상대해야 할 선수가 바로 이 선수인데요. 몸이 어마어마하네요.
-지금 잠깐 옆모습이 잡혔는데 가슴 두께가 상당하네요. 웨이트를 어느 정도 해야 저런 몸을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데요?
-그런데 몸이 저러면 피칭을 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요?
-일반적으로는 그런 경우가 많은데 게릿 벌렌더 선수는 워낙에 몸이 유연해서요. 별로 지장을 받지 않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