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116화
17. 우리 유성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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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부터 17일간 진행되는 LA 올림픽에서 야구 종목은 딱 한가운데 배치됐다.
7월 17일 월요일부터 26일 수요일까지.
풀리그로 치러지는 조별 예선을 포함해 결승전까지 고작 16경기가 전부였지만.
LA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대거 출전하는 야구 경기가 상당한 관중 수입을 벌어다 줄 것이라 기대하며 일정을 잡았고.
메이저리그 사무국도 선수들의 보호를 위해 LA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결정을 반겼다.
하지만 정작 국제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야구가 메인 이벤트처럼 치러지는 걸 경계했다.
“원래는 말이야. 거의 월드컵 수준으로 판을 키우려고 했어.”
“월드컵이요? 지금 월드컵은 48개국인데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인마. 암튼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구상했던 건 16개국 참가였어. 4개국씩 4개 조로 나눈 다음에 풀리그 치르고 8강으로 넘어가는 거지.”
“그렇게 하면 일정이 엄청 길어졌겠는데요?”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그냥 경기장 두 개 더 섭외해서 조별 예선 치르면 6일 만에 끝나니까 8강전 일정에 휴식일까지 해서 사흘인가 더 늘어나.”
정확하게는 앞뒤로 휴식일이 들어가면서 지금보다 4일이 늘어나는 일정이었지만.
박유성은 룸메이트인 송현민의 설명에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만약 8강부터 시작했으면 진짜 볼 만했을 거야. 지금처럼 조가 빡세지는 않을 테니까 조별 리그는 쉽게 통과하겠지만 8강에서 누굴 만날지 모르잖아?”
“그렇죠. 재수 없게 미국이나 메이저리그 선수들 많은 나라를 만나면 4강은 구경도 못 할 테니까요.”
“야 인마. 우리가 이길 수도 있는 거지.”
“솔직히 전력상 열세는 인정해야죠. 일본도 목표를 하향 조정하고 있잖아요.”
올림픽 개막 전까지 올림픽 야구 2연패를 외치던 일본 언론은 미국을 비롯해 도미니카 공화국과 베네수엘라, 푸에르토리코의 화려한 라인업을 보고 목표를 수정했다.
금메달에서 동메달 이상으로.
안방에서 열리는 프리미어 12였다면 죽어도 우승을 고집했겠지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이상의 초호화 전력을 구축한 북중미 국가들 앞에서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막내가 패기가 있어야지.”
“저도 이기고는 싶죠.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게 문제지만.”
“야구공은 둥글고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거야. 암튼 미국인들도 야구판이 커지는 걸 찬성했거든? 그런데 국제 올림픽 위원회에서 제동을 건 거야.”
“왜요?”
“왜겠냐. 올림픽보다 올림픽 야구가 주목받는 게 싫어서 그런 거지. 예전에 월드컵 2년 주기로 바꾸자는 얘기 나왔을 때도 국제 올림픽 위원회에서 난리 쳤잖아. 선 지키라고.”
“올림픽이 세계적인 스포츠이긴 하지만 솔직히 월드컵은 빡세죠.”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축구를 하니까. 선진국이라고 해서 무조건 축구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야구는 귀족 스포츠다?”
“짜식이 얘기가 왜 그렇게 가? 암튼 그래서 8개국 참가로 변경된 거야. 그 덕분에 우리는 조별 예선부터 이를 악물고 뛰게 됐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구상대로 16개국이 참가했다면 조 2위 확보가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8개국 체제로 바뀌면서 본선 진출 난이도가 대폭 올라갔다.
물론 4강전을 기준으로 한다면 큰 차이는 없겠지만.
송현민은 자신의 생에 마지막일지 모르는 올림픽 야구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게 될까 봐 전전긍긍이었다.
“형. 그냥 내려놔요.”
“뭘 내려놓아? 넌 다음 올림픽도 나갈 수 있겠지만 난 장담 못 해. 4년 계약 끝나면 팀을 옮기게 될지도 모르는데 어느 구단에서 좋아하겠냐?”
“그때 하선 선배님처럼 과감하게 유턴을 하는 거죠.”
“고작 4년 뛰고? 차라리 망하라고 악담을 해라.”
“메이저리그 3할 타자가 망하란다고 망하겠어요?”
“이 자식이 아주 병 주고 약 주네?”
경쟁 팀의 집중 견제를 받으면서 송현민의 시즌 타율은 소폭 하락한 상태였다.
여전히 팀 내에서 유일한 3할을 치고 있지만.
다른 타자들이 살아나 주지 않는다면 프로 데뷔 때부터 이어왔던 3할 기록이 깨지게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송현민은 개인 성적보다 이번 LA 올림픽에 진심이었다.
“암튼 너 잘해야 해. 내가 대충 들어보니까 너 1번이나 2번으로 나갈 거 같거든? 그러니까 밥상 잘 차려. 알았지?”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송현민은 3번 타순에 고정 배치됐다.
높은 정확도에 결정적일 때 한 방을 때려줄 수 있는 장타력과 평균 이상의 주력, 거기에 찬스를 연결해 줄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박준수와 민병규가 송현민의 빈자리를 두고 경쟁 중이지만.
현재 대한민국 대표팀 최고의 거포는 누가 뭐래도 송현민이었다.
“밥상 차리면 형이 책임지고 쓸어 담나요?”
“그럼. 당연하지.”
“밥상 엎는 거 아니죠?”
“짜식이. 내가 병규냐? 밥상을 엎게.”
“그런데 형은 왜 그렇게 병규 형을 싫어해요?”
“병규 놈 별명이 제2의 송현민이잖아. 누구 맘대로 내 이름을 가져다 써? 제2의 송현민은 따로 있는데.”
송현민이 맞은편 침대에 걸터앉은 박유성을 바라봤다.
실력과 플레이 스타일을 통틀어 제2의 송현민이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은 박유성 한 명뿐이었다.
“부담 좀 주지 마요. 형이 그러니까 형 팬들도 부담 주잖아요.”
“내 팬들이? 아니야. 내 팬들 착해.”
“착하긴요. 저더러 메이저리그 갈 때까지 여자 멀리하고 술 멀리하고 숨만 쉬고 야구만 하라던데요?”
“걔들은 내 팬 아냐. 나한테도 그랬어.”
송현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가끔 애정이 지나쳐 집착하고 간섭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냉정하게 팬이라고 불러주기 어려웠다.
“암튼 무조건 멀티 출루해라. 알았지?”
“미국 선발이 누구인지 알고 말하는 거죠?”
“게릿 벌렌더? 걔 별거 아냐. 나도 리그에서 붙어봤는데 그냥 공 조금 빠른 게 전부야.”
“그래서 몇 타수 몇 안타?”
“글쎄다. 3타수 1안타던가? 아마 시원하게 안타 하나 때렸을걸?”
“8타수 1안타에 삼진 5개 배부르게 드셨던데요?”
“야! 앞에 두 경기는 빼야지. 내가 베스트 컨디션이 아니었잖아.”
게릿 벌렌더는 현재 아메리칸 리그 서부 지구 선두를 달리고 있는 애스트로스의 에이스였다.
2000년생 우완투수로 192㎝에 110㎏의 우람한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빠른 공은 다른 투수들과 무게감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애스트로스가 레인저스와 같은 지구 소속이다 보니 송현민도 벌써 세 번이나 게릿 벌렌더를 만났다.
타격감이 올라오기 전에 맞붙었던 두 경기에서는 6타수 무안타에 삼진 5개를 당했지만.
최근 경기에서는 3타수 1안타를 치며 게릿 벌렌더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상태였다.
“게릿 벌렌더 투심이 그렇게 좋다면서요?”
“에이. 별거 아니라니까. 너도 직접 보면 알겠지만 게릿이 걔가 약간 헐크 스타일이야.”
“헐크요?”
“마벨 영화 안 봤어? 거기 나오는 헐크 축소판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거야.”
“우리 팀에도 코리안 헐크 있는데요?”
“야, 찬우는 게릿이한테 비비지도 못해. 찬우 걔는 한국인치고 골격이 큰 거고. 게릿이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용가리 통뼈다.”
“만져봤어요?”
“지난 경기에서 마지막 타석 때 1루수 앞 땅볼이 나왔거든. 백업 들어오는 게릿 벌렌더하고 살짝 부딪쳤는데 코뿔소에 치인 줄 알았다.”
“무슨 코뿔소까지 가요? 코뿔소에 치여보긴 했어요?”
“짜식이 아주 형이 말하는데 자꾸 태클 걸지? 척하면 척하고 들어. 그래도 내가 미국 가서 벌크 업 좀 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나자빠질 뻔했다.”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송현민은 5㎏ 정도 증량을 한 상태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티가 나지 않았지만.
국내에서 뛸 때보다 스윙이 묵직해 진 게 증량의 효과를 보는 것 같았다.
‘나도 미리미리 살 좀 찌워야 하나?’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적이 없는 박유성에게 가장 이상적인 체형은 다름 아닌 송현민이었다.
민병규보다는 탄탄하고 박준수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날렵해 보이는 느낌이 야구 하기 딱 좋은 몸이었다.
그래서 송현민을 목표로 근육량을 늘리고 있었는데 거기서 5㎏을 더 찌운 송현민이 게릿 벌렌더에게 밀렸다고 하니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너 지금 몸 키울 생각 하고 있지?”
“어떻게 알았어요?”
“척하면 척이지 인마. 근데 벌써부터 그럴 필요 없어. 넌 아직 성장판이 열려 있으니까 키 크는 것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체중을 늘리는 게 좋아.”
“그래도 지금은 좀 찌워야 하지 않을까요?”
“너 키가 얼마야?”
“이번에 선수촌 들어가서 쟀을 때는 184.4였어요.”
“0.4 떼 인마.”
“싫어요. 0.1㎝만 더 크면 반올림할 수 있는데 그걸 왜 떼요.”
“어차피 더 클 건데 뭘. 너 작년 겨울에는 얼마였냐?”
“그때는 183 정도?”
“뭐야? 지금까지 1㎝밖에 안 컸어?”
“저도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예요.”
1회차 시절 박유성의 키는 185㎝였다.
그리고 2회차 시절에는 그보다 1㎝ 더 자랐다.
2회차를 시작하고 나서 성장에 좋다는 영양제를 부지런히 사 먹었지만 투자 대비 효과는 크지 않았다.
오죽하면 발바닥에 살이 쪄서 1㎝가 커진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형은 키가 얼마예요?”
“나? 187.4㎝.”
“형은 왜 0.4 안 떼요?”
“야 인마. 우린 피트로 따지잖아.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 가져가는 거야.”
“핑계 한번 그럴싸하네요.”
“시끄럽고 몸무게는 얼마야?”
“이제 80㎏ 정도요?”
“흠……. 184㎝에 80㎏이라. 좀 가벼운 느낌이긴 하네.”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을 키 순서대로 세웠을 때 박유성은 중간 키였다.
투수들이 키가 커서 전체로 따지면 중간에서도 앞쪽이겠지만.
야수들만 놓고 따졌을 때는 절대 작은 키가 아니었다.
하지만 체격은 대표팀에서 가장 키가 작은 박찬희(178㎝/84㎏)보다도 작아 보였다.
“괜찮아, 인마. 누군가 말했어. 야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거라고.”
“그거 농구 아니에요?”
“뭔 소리야. 농구는 당연히 신장으로 하는 거지.”
“그 말 한 사람 유명한 농구 선수인 걸로 아는데?”
“어휴. 유성아. 어디 가서 무식하단 소리 듣고 싶지 않으면 공부 좀 해라.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농구 선수가 그런 말을 했겠니?”
“그래서 더 유명해진 거 아니에요?”
“우리 유성이 다 좋은데 상식은 좀 챙겨야겠다. 야구만 잘하는 선수는 매력 없어. 나처럼 지적인 면도 있어야지.”
“…….”
손에 핸드폰을 두고도 진실을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송현민을 보며 박유성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요. 형. 형은 그냥 야구만 해요.’
그때였다.
똑똑.
문소리와 함께 추신우 수석 코치가 고개를 내밀었다.
“유성아. 아직 안 자지?”
“네. 코치님.”
“감독님이 찾으신다.”
“저를요?”
“이야, 유성이 너는 좋겠다. 감독님이 따로 불러도 주시고.”
송현민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보나 마나 강기태 감독이 박유성을 미국전 주전 중견수로 내보내려고 부른 거라 여겼다.
박유성은 한술 더 떠서 1번 타순에 배치되길 바랐다.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붙을 수 있는 기회인데 한 타석이라도 더 들어가야지.’
하지만 정작 강기태 감독의 입에서 나온 말은 송현민과 박유성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유성아. 컨디션은 어때?”
“네. 좋습니다.”
“그래. 언제든 경기에 나갈 수 있도록 컨디션 관리 잘해라. 알았지?”
“네! 감독님.”
“그리고 미국전은 일단 벤치에서 시작하자.”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