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115화 (115/412)

타자 인생 3회차! 115화

17. 우리 유성이~(2)

“고윤식 선수를 우선 지명으로 미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렸지만 고명환 팀장의 조카 고영준 선수가 동호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현재 동호대는 대학 야구 최강팀으로 불리고 있고 김혜성 선수와 고윤식 선수가 졸업하더라도 당분간 성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팀에서 고영준 선수가 주전급으로 활약을 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4년 후 드래프트 때 스타즈에서 지명을 할 거라는 얘기입니까?”

“동호 대학교에서 주전급으로 뛴다면 스타즈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프로의 지명을 받게 될 겁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선수 출전은 감독 재량이죠. 전임 감독인 박흥선 감독이 후배인 천영수 감독을 추천했다고 해서 천영수 감독이 무조건 고영준 선수를 밀어주기는 어려울 거라는 겁니다. 하지만 고윤식 선수가 우선 지명 선수로 뽑히고 거액의 계약금을 받아 동호 대학교가 아마추어 지원금을 받게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죠.”

프로 야구 협회와 대한 야구 협회가 맺은 아마추어 선수 지원 규약에 따라 아마추어 선수를 지명한 구단은 계약금의 10퍼센트를 해당 선수의 모교에 나눠 지원해야 한다.

2025년에 개정된 바에 따르면 출신 초등학교에 1퍼센트, 중학교 2퍼센트,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똑같이 3.5퍼센트의 지원을 받는다.

대학교를 졸업한 선수가 우선 지명을 받아 5억 원의 계약금을 받았다면 해당 선수를 배출해 낸 대학교는 1,750만 원 상당의 야구용품을 지원받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스타즈의 경우 신성 그룹에서도 별도의 후원을 해오고 있지 않습니까?”

“잠깐만요. 고윤식 선수라면 우선 지명이 아니더라도 1라운드에서 충분히 뽑힐 선수 아닙니까?”

김재식 단장이 이의를 제기했다.

김혜성이 확 치고 올라오기 전까지 대학 선수 중 최대어는 고윤식이었다.

올해 성적도 김혜성에 밀리고 있을 뿐이지 상위 지명을 받지 못할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맞습니다. 고윤식 선수가 드래프트에 나온다고 가정했을 때 1라운드 후반, 혹은 2라운드 초반 지명을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우선지명 선수와 1라운드 지명 선수는 계약금이 다르고 우선지명 선수에 한해서 신성 스포츠에서 별도 계약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호대학교 입장에서도 1차 지명보다는 우선지명 선수를 배출해 내는 게 체면이 설 테고요.”

“그러니까…… 결국 돈 때문에 이 일을 벌였다는 겁니까?”

“1라운드 지명 선수로 배성 고등학교 배현우 선수를 미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작년에 입사한 김대철 차장은 배성 고등학교 출신입니다. 베어스에서 근무할 때도 배성 고등학교 후배들을 열심히 홍보했던 것으로 유명하고요. 물론 배현우 선수도 드래프트에 나온다면 2라운드 지명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선수입니다. 그래서 단장님께는 배현우 선수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이고요.”

“그게 무슨……?”

“우선 지명으로 고윤식 선수를 뽑으면 김혜성 선수와 김영진 선수, 나해준 선수는 드래프트 때 먼저 뽑히게 될 겁니다. 올해 저희 구단의 1라운드 지명 순위는 6번째입니다. 그리고 김혜성 선수와 김영진 선수, 나해준 선수는 앞선 5번의 호명에 무조건 불리게 될 테고요.”

“……!”

김재식 단장은 불현듯 고명환 스카우트 팀장이 얼버무렸던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 1라운드부터는 계획대로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그때는 형식적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박원호 과장의 얘기를 듣고 나니까 어떻게든 배현우를 뽑으려고 작정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제가 겪어본 야구판은 좁았습니다. 몇 다리 걸치면 다 아는 사이였죠. 그래서 아직도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한국 야구계의 고유 문화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학연 지연 혈연을 따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공동체의 이익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우게 되더라고요.”

박원호 과장의 지적은 비단 야구계에 국한된 게 아니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스타즈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 왔던 김재식 단장은 자신의 등 뒤에서 진행된 이 일들을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우선 지명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겠습니다. 아울러 이 사안에 대한 본사 차원의 감사를 요청하겠습니다.”

김재식 단장이 신상욱 회장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신상욱 회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좀 김 단장답네.”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회장님.”

“알면 됐어. 그런데 말이야. 아직 얘기가 다 끝난 게 아닌데 어떻게 하지?”

김재식 단장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지금까지는 서론에 불과했다.

그리고 본론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박유성 선수 말씀이십니까?”

김재식 단장이 곧바로 되물었다. 하지만 신상욱 회장은 마저 들으라며 박원호 과장에게 눈을 돌렸다.

“김재식 단장님. 앞서 제가 자문위원 20명에게 우선지명 선수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고 말씀드렸는데 기억하십니까.”

“기억합니다.”

“그때는 자문위원들에게 우선지명 최종 5인 중에 한 명을 골라달라고 요청했던 겁니다. 그래서 만장일치로 김혜성 선수가 나왔고요. 하지만 스타즈 팜 내에서 한 명을 추천해 달라는 질문에는 다른 답이 나왔습니다.”

“박유성 선수입니까?”

“네. 만장일치였습니다. 그리고 이유도 같았습니다. 박유성은 레벨이 다른 선수다. 저렇게 잘하는데 무조건 뽑아야 한다. 뽑지 않는 게 바보짓이다.”

“…….”

“이상입니다. 회장님.”

준비한 내용은 더 남아 있었지만.

박원호 과장은 이쯤에서 말을 멈췄다.

박유성이 얼마나 잘하는지는 김재식 단장도 충분히 들어 알고 있을 터.

뻔한 얘기를 늘어놓느니보다 생산적인 논의가 오가도록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왜 얘기를 하다 말아?”

신상욱 회장이 핀잔을 줬지만 박원호 과장은 멋쩍게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저것도 능구렁이라니까.”

박원호 과장을 한 번 흘겨본 뒤 신상욱 회장은 김재식 단장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사이 생각을 정리했던지 김재식 단장의 표정이 한결 차분해져 있었다.

“어떻게 할 거야?”

“우선지명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원점에서 재논의하겠습니다.”

“그 논의 속에 박유성이도 들어가는 거야?”

“그건 확답을 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렵다니?”

신상욱 회장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박원호 과장을 통해 서론을 길게 늘어놓은 건 김재식 단장이 스카우트 팀의 의견에 의존하지 말고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길 바라서였다.

구단의 업무가 나뉘어 있는 만큼 부서마다 역할도 존중받아야겠지만 결국 최종 결정은 단장이 내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재식 단장이라면 기존의 틀에 구애받지 않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1년 넘게 전임 단장이 싸질러 놓은 똥을 치우며 김재식 단장이 얻은 교훈이 바로 ‘선을 잘 지키자’였다.

김윤태 단장도 초창기에는 스타즈를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다만 단장으로서 선을 지키지 못했고.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손으로 스타즈를 한국 시리즈 정상에 올려놓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김재식 단장은 김윤태 단장의 과는 경계하되 공은 이어받으려고 노력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신성 고등학교 지명 금지였다.

신성 고등학교 선수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증명하는 데 이보다 확실한 해법은 없었다.

“나현호 선수 사건은 회장님께서 구단주로 계실 때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구단주로서 책임을 통감하시고 신성 고등학교 선수들의 상위 라운드 지명을 금지하셨고요.”

“그래. 내가 지시한 일이야. 지금도 드래프트 참가 안 하고 메이저리그 가면 5년간 지원이 끊기잖아?”

“정확히는 전체 지원의 50퍼센트가 줄어듭니다. 회장님.”

“아예 안 주는 거 아니었어?”

“2025년에 개정이 됐습니다.”

프로 야구 협회와 한국 야구 협회 간 상생안에는 프로야구 구단의 신인 선수 모교 지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신인 선수 모교 지원은 말 그대로 프로야구의 근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

다시 말해 드래프트를 통한 안정적인 선수 수급을 유지하기 위해 금전적으로 지원을 하는 셈인데 정작 드래프트에 참가해야 하는 선수가 드래프트를 포기하고 메이저리그로 가버리면 프로 구단만 손해를 보게 된다.

그래서 나온 게 해외 진출 시 5년간 지원 금지 조항이었다.

본래는 5년 동안 단 한 푼의 지원금을 받지 못했지만 선수의 의지를 학교에서 꺾기 어렵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50퍼센트 삭감으로 변경이 됐다.

동시에 2명의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 추가로 50퍼센트가 더 삭감되며.

그 수가 5명을 넘어가게 되면 기존대로 지원금을 단 한 푼도 받을 수 없게 된다.

신상욱 회장이 신성 고등학교 우선지명 금지를 지시한 것도 이 조항을 참고한 것이었다.

다만 당시에 팬들의 눈치를 보느라 기간을 정하지 않았는데 여론에서 무기한이라고 단정 지으면서 영구 지명 금지로 왜곡되어 버린 것이다.

“나현호가 언제였지?”

“2024년이었습니다. 회장님.”

“그럼 5년 지난 거지?”

“올해까지가 5년입니다.”

“그래? 아직 5년 안 됐어?”

문제의 조항과 적당히 끼워 맞추려 했던 신상욱 회장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다 해당 조항이 개정됐다는 걸 떠올리고는 김재식 단장을 보며 말했다.

“작년까지 신성고 출신 중에 3라운드 안에 지명한 선수가 있어?”

“없습니다. 회장님.”

“그럼 됐네. 그만큼 했으면 됐어.”

“아닙니다. 회장님. 3라운드 안에 지명한 선수가 없었던 건 그만한 실력을 갖춘 선수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신성 고등학교 출신 선수들은 하위 라운드에서 자주 뽑았습니다.”

“그러니까 뭐야? 보상심리로 뽑아줬다는 거야?”

“신성 고등학교 선수들에게는 역차별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팬들도 하위 라운드 지명에 대해서는 별말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박유성 선수는 다릅니다. 이미 언론을 통해 나간 게 있는데 박유성 선수를 우선 지명해 버리면 분명 말이 나올 겁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나? 아니면 뭐? 고윤식을 뽑자는 거야?”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회장님. 회장님께서 나현호 선수 지명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뜻으로 내리신 결단입니다. 그걸 이렇게 깨버리시면 실망하는 팬들이 생길 겁니다.”

“그럼 게시판 반응은 뭐야? 박유성이 사달라며?”

신상욱 회장이 되물었다.

팬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아서 신성 고등학교 우선지명 금지를 철회하고 박유성을 데려오겠다는데 다른 얘기를 하는 김재식 단장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김재식 단장은 자신이 맡고 있는 구단을 선수 하나 때문에 말을 바꾸는 구단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박유성 선수를 우선 지명하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이번 기회로 우선 지명 금지 철회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도 아니고 박유성이 놓치고 철회하면 무슨 의미야?”

“회장님. 저는 우선지명이 어렵다고 말씀드렸지 박유성 선수 지명 자체를 반대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구단주이신 회장님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우선지명은 반대입니다. 하지만 드래프트를 통한 지명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드래프트? 지금 1라운드 지명을 말하는 거야?”

“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이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이게 지금 가능한 얘기야?”

신상욱 회장의 시선이 다시 박원호 과장에게 향했다. 그러자 박원호 과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예전에는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1라운드 지명권 트레이드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올해 1라운드 첫 번째 지명권은 파이터즈가 가지고 있습니다.”

“파이터즈?”

“네. 참고로 파이터즈는 지난 2년간 이 첫 번째 지명권을 팔아서 구단 운영비를 마련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돈을 주고 그 1라운드 첫 번째 지명권을 사라는 말이지?”

“대신에 저희 1라운드 지명권 순서와 맞바꿔야 합니다. 1라운드 지명은 구단마다 한 명으로 제한되어서요.”

“그래서 얼마가 필요한 거야?”

“재작년에는 다이노스에게 현금 10억에 선수 2명을 받아냈습니다. 작년에는 트윈스 상대로 현금 10억에 선수 2명과 2라운드 지명권을 받았고요.”

“현금은 최대 10억인 거야?”

“그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박유성 선수가 드래프트 시장에 나온다면 모든 구단에서 욕심을 낼 겁니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값이 오를 거라는 얘기로군.”

“네. 회장님. 만에 하나 이번 올림픽 대표팀이 메달을 따게 된다면 프로 야구 협회에서도 파이터즈의 현금 트레이드를 막지 못할 겁니다.”

파이터즈가 1라운드 1순위 지명권으로 장사를 할 때마다 프로 야구 협회는 우려의 뜻을 내비쳤다.

구단 간 원활한 트레이드를 위해 허용한 지명권 트레이드가 악용될 소지가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 야구 협회도 12개 구단 체제와 양대 리그 체제를 강행한 터라 파이터즈를 제지할 명분이 없었다.

“김 단장. 들었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까 1라운드 지명권 가져와.”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렇게 프로야구 12개 구단 중에 가장 돈을 잘 쓰기로 유명한 스타즈까지 박유성 영입 전쟁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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