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114화 (114/412)

타자 인생 3회차! 114화

17. 우리 유성이~(1)

1

서울 시민들 중에 강남 한복판에 우뚝 솟은 스타즈 타워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실제 스타즈 타워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김재식 단장님?”

“네.”

“여기 출입증 있습니다. 패용하시고 저를 따라오세요.”

로비로 들어선 김재식 단장은 마중 나온 비서를 따라 곧바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스타즈 타워를 방문한 게 이번이 다섯 번째.

다음번에 찾아오면 조금 느긋하게 내부 경관을 살펴보려 했는데 오늘도 여지없이 비서에게 붙들려 회장실로 끌려가는 신세가 됐다.

“회장님. 손님 모시고 왔습니다.”

스타즈 타워 꼭대기 층에 위치한 회장실 안에는 신상욱 회장과 한용준 비서실장, 그리고 못마땅한 사내가 한 명 앉아 있었다.

‘박원호 과장.’

김재식 단장의 시선을 받은 박원호 과장이 가볍게 목례를 했다.

예전 같으면 엘리트 코스를 밟은 김재식 단장과 감히 겸상조차 하지 못했겠지만.

어쩌다 보니 지금은 신상욱 회장의 특별 비서 노릇을 하는 중이었다.

“김 단장 왔는가?”

“네. 회장님.”

“일단 앉지. 한 비서는 김 단장 차 한잔 내주고.”

“어떤 차로 준비해 드릴까요?”

“녹차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김재식 단장을 데려왔던 한가율이 방을 나가자 한용준 비서실장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또 왜?”

“아닙니다.”

“잘하고 있는데 왜 그래?”

“아직 부족한 것투성입니다.”

신상욱 회장의 특별 지시로 비서실에 들이긴 했지만.

한용준 비서실장은 딸인 한가율을 볼 때마다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정식으로 시험을 보고 입사해 비서실 채용 기준을 통과해서 비서가 된 것이다 보니 아빠 찬스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신성 그룹의 문고리 권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보니 딸이 혹시라도 실수를 하지 않을까 늘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불안하면 우리 집에 시집 보내라니까?”

“회장님. 지금도 충분히 과분합니다.”

“과분하긴 뭐가 과분해? 한국대 나온 인재를 비서로 쓰고 있는 내가 더 과분하지. 안 그래?”

신상욱 회장이 김재식 단장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김재식 단장이 냉큼 고개를 숙였다.

“신성 그룹에 걸맞은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어디 가서 저렇게 똑 부러지는 비서를 구하겠어. 안 그래?”

신상욱 회장이 껄껄 웃었다.

한용준 비서실장의 눈에는 부족해 보일지 몰라도 지금껏 비서실에서 근무한 이들 중에서 제일 일을 잘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눈앞에 앉아 있는 김재식 단장은 일하는 게 영 시원찮았다.

“김 단장.”

“네. 회장님.”

“내가 김 단장을 왜 불렀는지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회장님.”

“잘 모른다라. 하하. 내가 자네에게 너무 큰 기대를 했나 보구만.”

그때 한용준 비서실장이 서류 파일 하나를 김재식 단장에게 내밀었다.

“직접 보시죠.”

김재식 단장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 파일 안에 담긴 서류 때문에 본사로 불려왔다고 생각하니까 손이 다 떨렸다.

‘설마 또 누가 배임 행위를 저지른 건 아니겠지?’

전임자였던 김윤태 단장은 스타즈 팬들에게 스타즈의 반석을 다진 인물로 기억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김윤태 단장이 박명우 사장 몰래 이리저리 해 먹은 돈만 백억여 원.

거기에 사돈에 팔촌까지 불법 채용하며 단장의 권한을 멋대로 휘둘렀다.

당시 감사팀에서 근무했던 김재식 단장은 김윤태 단장의 배임 행위들을 살피며 할 말을 잃었다.

신상욱 회장의 평생소원이라던 야구단의 초석을 다지라고 보내놨는데 이 꼴로 헤집어놨으니 신상욱 회장이 야구단을 없애 버린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야구 사랑이 각별했던 신상욱 회장은 김재식 단장을 단장으로 보내어 스타즈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김재식 단장도 하마터면 옷을 벗을 뻔했던 박명우 사장과 의기투합해 스타즈의 정상화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 왔는데 갑자기 이렇게 불려오고 나니까 허탈함이 밀려들었다.

“뭐 해? 빨리 보라니까.”

신상욱 회장의 채근에 김재식 단장은 조심스럽게 파일 뚜껑을 열었다.

[2029 신인 선수 지명 관련 내부 자료.]

“……?”

예상치 못한 제목을 발견한 김재식 단장은 빠르게 서류를 훑었다.

처음에는 걱정했던 일은 아니라며 다행스러워했지만.

보고서의 내용이 이어질수록 차라리 횡령이 나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봤어?”

“네. 회장님.”

“어떻게 생각해?”

“그보다 이 보고서가 어디에서 올라왔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김재식 단장이 신상욱 회장을 똑바로 바라봤다.

책임을 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고 옷을 벗으라면 옷을 벗겠지만 제대로 된 보고인지는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자 신상욱 회장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역시 김 단장이야.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

“죄송합니다. 회장님.”

“죄송할 거 없어. 내가 이래서 김 단장을 스타즈로 보낸 거니까. 그런데 말이야, 그걸 나한테 묻는 이유가 뭐야?”

“네?”

“아직도 사실 파악을 못 한 거야? 아니면 사실이 아닌데 누군가가 허위 보고를 올렸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게…….”

순간 김재식 단장은 말문이 막혔다.

이틀 전 자신이 받았던 보고와 내용이 달라서 어느 라인을 통해 올라온 보고인지 알아보려고 했는데 신상욱 회장의 싸늘한 눈빛을 대하고 나니까 자신의 판단이 틀렸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이틀 전에 보고받기로 우선 지명은 동호 대학교 고윤식 선수고 1차 지명은 선인 고등학교 김영진 선수나 나해준 선수였습니다. 배성 고등학교 배현우 선수 얘기는 없었습니다.”

“그래? 그 보고를 누가 했는데?”

“고명환 스카우트 팀장이 했습니다.”

“자네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고?”

“……죄송합니다.”

“하아. 이 사람아. 믿을 놈을 믿어야지! 내가 자네 처음에 스타즈로 보낼 때 했던 말 기억해?”

“아무도 믿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철저하게 의심하라고 하셨고요.”

김윤태 전임 단장의 배임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신상욱 회장은 일주일간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오죽하면 기자들이 신변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니냐며 자택 주변에 진을 쳤을 정도.

그렇게 겨우겨우 화를 가라앉힌 신상욱 회장이 김재식 단장에게 썩은 뿌리를 뽑으라고 지시를 내렸던 건데 정작 김재식 단장은 고름까지 다 떠안고 가려고 하고 있었다.

“지난번 조사 때 고명환이는 어땠어? 아무것도 없었어?”

“아닙니다. 선수 학부형들에게 몇 차례 향응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고작 그것뿐일까? 자네가 그때 제대로 팠다면 더 나오지 않았을까?”

“그건……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런 놈을 왜 믿는 거야? 왜 의심을 안 해? 김대철인지 뭔지 하는 놈 때문에 그래?”

“그게…….”

“김대철이 그놈도 그 나물에 그 밥이야. 그놈이 베어스를 왜 나왔는지 알아봤어?”

“……!”

“똑같은 놈들을 묶어놨으니 구단이 제대로 운영될 리가 있나.”

신상욱 회장이 혀를 찼다. 그러고는 저만치 떨어져 앉은 박원호 과장을 보며 말했다.

“박 과장이 설명해 봐.”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순간 김재식 단장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아직 야구에 대해 많은 걸 알지는 못하지만 그동안 스타즈를 정상화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운 좋게 신상욱 회장의 눈에 들어 이 자리에 껴 있는 박원호 과장에게 훈계를 들으라니.

욱하는 심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박원호 과장도 김재식 단장의 사정을 봐줄 처지가 아니었다.

신상욱 회장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신성 스포츠에서 일하던 시절도 나쁘지 않았지만.

신상욱 회장의 특별 비서로서 일하는 지금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럴 수야 없지.’

박원호 과장은 마음을 단단히 다잡았다. 그러고는 김재식 단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회장님의 지시로 현장 경험이 있는 자문위원 20명에게 물었습니다. 스타즈의 우선 지명 선수로 누가 적합한지에 관한 질문에 20명 전원이 김혜성 선수를 꼽았습니다. 그다음이 김영진 선수. 그리고 나해준 선수 순서였습니다.”

“김혜성 선수가 잘하고 있다는 건 저도 보고받았습니다. 다만 김혜성 선수는 사구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올 시즌 성적이 좋아진 건 사구 트라우마를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몸쪽 승부를 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5개의 사구를 내준 이후에도 멘탈이 무너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원하신다면 자문위원들의 의견서를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재식 단장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말끝마다 자문위원 타령을 해대는데 뭐라고 따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 자문위원이 누구냐고 되묻기도 어려웠다.

누굴 언급하던 비전문가인 자신보다는 나을 터.

“죄송합니다. 회장님.”

김재식 단장이 고개를 돌려 신상욱 회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신상욱 회장이 코웃음을 쳤다.

“이제 시작인데 뭘 자꾸 죄송하대? 끝까지 들어.”

김재식 단장의 굳은 얼굴이 다시 박원호 과장을 향했다.

그 표정이 제법 서늘했지만 박원호 과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다음으로 스타즈에 가장 필요한 선수를 묻는 질문에 자문위원 전원이 좌완투수를 꼽았습니다. 현재 스타즈 1군에서 뛰고 있는 좌완 투수는 두 명뿐이고 선발 투수는 한 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두 명의 외국인 투수를 전부 좌완으로 쓰고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좌우를 가리지 않고 실력 있는 선수를 선발하기로 내부 방침을 세웠습니다. 외국인 선수로 대체가 가능하니까요.”

“단장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좌완투수는 우완투수보다 가치가 높습니다. 올 시즌 스타즈에서 뛰고 있는 좌완 용병 투수들도 실력 대비 많은 연봉을 받고 있고요.”

“그야 밸런스를 맞추려다 보니까…….”

뭔가 변명을 하려던 김재식 단장이 이내 입을 다물었다.

좌우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실력이 떨어지는 좌완투수에게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좌완인 김혜성이 아니라 우완인 고윤식을 우선 지명하자는 의견을 군말 없이 받아들였으니 넌센스나 다름없었다.

“그럼 다음으로 스카우트 팀과 현장에서 고윤식 선수를 원하는 이유를 설명드리겠습니다. 현 박흥선 감독은 스타즈 부임 전 동호대 감독이었습니다. 그리고 박흥선 감독을 동호대 감독으로 추천한 게 고윤식 선수의 큰아버지인 동호 대학교 고성기 교수고요.”

“박흥선 감독은 신인 선수 지명에 대해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명환 팀장의 조카인 고영준은 작년에 동호대학교에 합격했습니다. 참고로 동호대학교 테스트에 탈락했는데 박흥선 감독이 추천을 해줬다고 합니다.”

“……!”

순간 김재식 단장의 눈이 커졌다.

박흥선 감독과 고성기 교수에 대한 이야기는 고명환 팀장에게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때도 고명환 팀장은 스카우트 팀 내부적으로 고윤식에 대한 평가가 가장 좋다며 같은 고씨라 밀어주는 게 절대 아니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늘어놓았다.

그런데 조카 건이 걸려 있었다니.

고명환 팀장에게 완전히 놀아난 기분이었다.

“제가 모르는 게 더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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