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112화 (112/412)

타자 인생 3회차! 112화

16. 슬기로운 국대생활(10)

“지금 다들 신성고 지명 금지 철회하라고 난리입니다.”

“하아. 박승철. 지금 여기서 그걸 모르는 사람 있어?”

“저 운영팀 들어왔을 때 팀장님이 그러셨잖아요. 팬심은 천심이라고. 그러니까 팬들의 의견은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말고 보고하라고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스카우트 팀이 계속 저러면…… 운영팀 입장이라도 회장님께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야! 박승철!”

임세영 대리가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신입이라고 하지만 해도 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었다.

방금 전 박승철이 내뱉은 말은 스카우트 팀 전체를 무시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단장도 사장도 건너뛰고 회장을 찾다니.

눈치 없고 개념이 부족한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쯤 되면 사회생활이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스카우트 팀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안재희 운영팀장은 박승철의 철없는 소리를 마냥 넘길 수가 없었다.

“박승철 씨.”

“네. 팀장님.”

“뭐 아는 거 있어요?”

“네?”

“그런 판단을 하는 근거가 있는지 묻는 겁니다.”

“에이, 팀장님. 신입한테 근거 같은 게 어디 있겠어요? 야, 박승철. 가서 커피나 타 와. 빨리!”

괜히 일이 커질 것 같자 임세영 대리가 냉큼 나섰다.

그러면서 박승철에게 잠깐 피해 있으라고 시그널을 줬지만 박승철은 겁도 없이 안재희 운영팀장을 똑바로 바라봤다.

“회의실에서 따로 말씀드려도 됩니까?”

“야! 박승철! 적당히 하랬지!”

“됐어. 임 대리도 적당히 해. 승철 씨도 우리 스타즈 직원인데 자기 의견 정도는 말할 수 있는 거지.”

“시키는 일도 못 하는데 자기 의견이 어디 있겠어요? 팀장님. 제가 따끔하게 혼낼 테니까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주세요. 야! 박승철! 따라와 짜샤!”

“됐다니까 그러네. 아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끼리 허심탄회하게 얘기 좀 해보자. 지금 회의실 비었지?”

“팀장니이임.”

“괜찮아. 승철 씨는 다른 팀 회의 일정 있나 확인해 봐.”

“방금 전에 확인했는데 없습니다.”

“그럼 회의장으로 옮기자고.”

부서마다 분리가 되어 있긴 하지만.

민감한 사안을 공공연하게 떠들어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최 차장하고 조 대리한테도 연락해 봐.”

“우리끼리 얘기하자면서요?”

“그래도 최 차장하고 조 대리는 껴야지. 안 그래?”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일이 커지자 임세영 대리가 박승철을 죽일 듯이 노려봤고.

박승철은 슬그머니 핸드폰을 잡아 들고 그라운드에 나가 있는 최영수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차장님. 잠깐 미팅 괜찮으세요? 네. 조 대리님도요. 네. 2회의실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박승철이 안재희 운영팀장에게 보고했다.

“바로 올라오신답니다.”

“그럼 승철 씨가 차 좀 준비해 줘요.”

“네. 팀장님.”

박승철을 탕비실로 피신시킨 뒤 안재희 운영팀장은 임세영 대리와 함께 먼저 제2 회의실로 향했다.

“팀장님. 제가 아까 팬들 의견 말한 것 때문에 그러세요?”

“그것도 있고. 겸사겸사지 뭐. 승철 씨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승철이 저 녀석, 아무것도 모르고 떠드는 거라니까요?”

“임 대리, 아니, 세영아.”

“네. 팀장님.”

“너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 신입, 눈치 빨라. 그 말머리 만든다고 했을 때 고 팀장이 난리 친 거 알지?”

“알죠. 언제부터 스카우트 팀이 홈페이지 신경 썼다고 진짜 웃겨 죽는 줄 알았어요.”

“그때 단장님도 일단 보류하라고 하셨거든?”

“단장님이요? 정말요?”

“고 팀장이 난리 치니까 다시 재고해 보자고 하셨는데 그사이에 승철 씨가 말머리 만들어버렸잖아.”

“그야 뭐 시키니까 한 거 아닐까요?”

“고 팀장 난리 칠 때 승철 씨도 자리에 있었어. 그런데도 만들었지.”

“그건 개념 없는 거죠.”

“만약에 팬들 여론까지 수렴해 놓고 말머리를 안 만들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만 욕먹지 않았을까?”

“그야…….”

임세영 대리가 말끝을 흐렸다.

그땐 박승철이 박승철 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는데 안재희 운영팀장 말처럼 말머리 추가가 늦었다면 팬들의 분노가 운영 팀을 향했을 것 같았다.

“우리 구단에는 크게 7개의 부서가 있어.”

“6개 아니라요?”

“사장님과 단장님을 서포트 하는 비서실도 별도의 부서로 봐야 해. 우리 운영팀에 딸려 있긴 하지만 대외협력팀은 단장님 직속이나 다름없고.”

“안 차장님이 들으시면 엄청 섭섭해하시겠는데요?”

“섭섭해도 어쩔 수 없어. 사실이니까. 그 외에도 전략분석팀이 있고 마케팅팀이 있지. 홍보팀과 지원팀이 있고.”

“문제의 스카우트 팀도 있고요.”

“그래. 하지만 팬들은 구단 하면 보통 운영팀만 생각해. 운영팀이 다 알아서 할 것 같거든.”

“다른 부서에 전화해서 운영팀장 바꾸라는 사람들 아직도 많잖아요. 홈페이지에서 조직도만 찾아봐도 알 텐데 참.”

임세영 대리가 혀를 찼다. 조직도상 6개 부서는 단장 밑으로 수평한 구조였지만 그 사실을 아는 팬들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그때 박승철이 쟁반에 커피를 들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왜 4잔뿐이야?”

“저는 안 마시려고요.”

“손이 부족해서 안 탄 거 아니고?”

“진지한 얘기 하는데 신입인 제가 커피를 홀짝거릴 수는 없잖아요.”

“얼씨구? 그걸 아는 녀석이 아깐 그랬냐?”

임세영 대리가 다시 발끈하자 안재희 운영팀장이 손을 뻗어 말렸다.

“임 대리. 1절만 하랬지? 한 번만 더 그러면 경고야.”

“팀장니임.”

“됐으니까 앉자고. 어, 저기 최 차장 오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최영수 차장과 조명욱 대리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최 차장. 더운데 고생이 많아.”

“어이구. 고생은요. 에어컨 쌩쌩 나오는데요.”

“그런데 무슨 일 있습니까?”

최영수 차장을 따라 자리에 앉으며 조명욱 대리가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안재희 운영팀장이 박승철을 보며 말했다.

“승철 씨. 블라인드 좀 쳐요.”

“아, 네. 알겠습니다.”

박승철이 요란스럽게 창문 블라인드를 내리자 최영수 차장과 조명욱 대리의 표정이 달라졌다.

“뭡니까? 진짜 무슨 일 있습니까?”

“별일 아니니까 긴장할 거 없어요. 그냥 최 차장하고 조 대리 의견이 궁금해서 오라고 했어요.”

“저희 의견이요? 어떤……?”

“우선 지명 건이요.”

“……네?”

“올해 우선 지명에 대한 두 사람의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어요.”

안재희 운영팀장이 웃으며 운을 뗐지만 최영수 차장과 조명욱 대리는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문제 앞으로 안재희 운영팀장이 끌어다 앉혔기 때문이다.

“팀장님. 우선 지명 건은 스카우트 팀 의견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제 생각도 같습니다. 우선 지명과 관련해서 저희에게 의결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얘기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최영수 차장과 조명욱 대리가 발을 빼려고 하자 임세영 대리가 박승철에게 눈총을 쐈다.

“야! 박승철! 너 때문에 이게 뭐야? 네가 원한 게 이런 거야?”

“저는 그냥 제 의견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아직도 네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지?”

임세영 대리는 차라리 이대로 회의가 끝나길 바랐다.

안재희 운영팀장과 죽이 잘 맞는 최영수 차장은 물론이고 운영팀 일이라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조명욱 대리까지 몸을 사리는데 여기서 더 얘기해 봐야 서로 감정만 상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안재희 운영팀장의 생각은 달랐다.

“최 차장. 우리 작년에는 우선 지명이 누가 될지를 두고 내기도 하고 그랬는데 잊었어?”

“저희가 그랬나요?”

“조 대리도 다른 구단 정보 들을 때마다 알려주곤 했잖아. 그 열정과 열의는 어디로 간 거야?”

“그야…….”

“우리 부담 갖지 말고 그때처럼 편하게 얘기하자. 아까 조 대리가 말했지? 우리에겐 의결권이 없다고. 그러니까 부담 가질 필요 없어. 안 그래? 승철 씨?”

안재희 운영팀장이 박승철을 바라봤다. 그러자 박승철이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냈다.

“제가 아직 신입이라 일은 서툴지만 그래도 구단 돌아가는 사정은 알고 있습니다.”

“구단 돌아가는 사정? 네가 뭘 아는데?”

“스카우트 팀에서 고윤식하고 배현우를 두고 저울질 중이라고 합니다.”

“뭐? 누가 그런 말을 해?”

“화장실에서 똥 싸다가 들었습니다.”

“……뭐?”

“제가 있는 줄도 모르고 크게 대화하시더라고요.”

순간 임세영 대리가 고개를 돌려 안재희 운영팀장을 바라봤다.

동호 대학교 고윤식이야 작년까지 성적이 좋았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선인 고등학교 원투 펀치인 김영진과 나해준을 두고 배성 고등학교 배현우를 검토하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배현우?”

“걔 요즘 죽 쑤지 않나요?”

최영수 차장과 조명욱 대리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우선 지명을 비롯해 드래프트와 관련된 사안은 스카우트 팀의 고유 업무라지만 스타즈라는 구단을 운영해야 하는 측면에서 봤을 때 마냥 이해해 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팀장님. 신입 말이 사실이에요?”

“그래. 사실이야.”

“설마요오. 고윤식은 이해해도 배현우는 말이 안 되잖아요.”

“그 말이 안 되는 짓을 스카우트 팀에서 하고 있어.”

“대체 왜요?”

“새로 온 김대철 차장이 배성고 출신이거든.”

“……!”

초대 단장이었던 김윤태 단장이 배임 행위로 조용히 사직하고 젊은 김재식 단장이 스타즈에 부임하면서 적잖은 이들이 구단을 떠났다.

소위 말하는 김윤태 단장 라인이 눈치껏 사표를 낸 건데 빈자리를 채우는 과정에서 베어스에서 지원 팀장을 했었던 김대철 차장이 스카우트 팀에 새로 합류하게 됐다.

처음에는 깐깐해 보이는 김대철 차장이 고명환 팀장을 제대로 서포트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잠깐 사이에 고명환 팀장과 형님 동생 하는 걸 보며 다들 마음을 놓았었는데 설마하니 뒤에서 이런 짓이나 벌이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김 차장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네.”

“그러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배현우는 좀 아니지 않아요?”

최영수 차장과 조명욱 대리가 한마디씩 했다.

박유성은 어렵더라도 동호 대학교 원투 펀치인 고윤식이나 김혜성, 둘 중에 한 명이 우선 지명을 받을 거라 예상했는데 느닷없이 배현우라니.

이건 해단 행위나 다름없었다.

“두 분 진정하세요. 최종 후보 중에 한 명일 뿐이잖아요.”

임세영 대리가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김대철 차장이 배성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후배인 배현우를 우선 지명 후보로 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거니와 동호 대학교 고윤식과 비교했을 때 우선 지명을 받을 가능성도 없으니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그러자 조명욱 대리가 답답하다는 투로 말했다.

“진정하긴 뭘 진정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어?”

“왜 몰라요? 다 같이 들었는데.”

“하아. 임 대리. 우선 지명으로 고윤식이 뽑히면 다 끝날 거 같지? 아니야. 이대로 가다간 1라운드 때 배현우 지명할 거야.”

“예에? 그건 말도 안 돼요!”

“말이 안 되긴 뭐가 안 돼? 우선 지명 선수들 빼고 1라운드 지명 순서대로 빼봐. 김혜성하고 김영진, 나해준이 남아 있을 거 같아?”

“그야…….”

“없어. 다 빠져나갈 거라고. 지금도 우리 구단 매물들 두고 자기들끼리 계산기 두드리느라 정신없는데 우리 몫을 남겨놓을 것 같아?”

“조 대리 말이 맞아. 고윤식을 우선 지명으로 뽑으면 1라운드 때 배현우 호명할 거야.”

“말도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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