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110화 (110/412)

타자 인생 3회차! 110화

16. 슬기로운 국대생활(8)

추신우 수석 코치가 외야 구석구석 때린 펑고는 총 20개.

그중 박유성은 무려 19개를 깔끔하게 처리했다.

하나 놓친 것도 박유성의 실수라기보다는 추신우 수석 코치가 힘 조절을 잘못해 타구가 수비 범위 밖으로 벗어난 것.

그마저도 다이빙 캐치까지 시도하며 최선을 다해 쫓아갔으니 선수들도 다들 혀를 내둘렀다.

“와, 미친! 저것도 잡네.”

“아까 놓친 것도 거의 다 잡을 뻔했잖아요. 저 정도는 껌이죠.”

“그때 추 코치님 표정 봤냐?”

“왜? 어땠는데?”

“두 번 당황하시던데?”

“두 번?”

“펑고 잘못 쳐서 한 번. 그걸 유성이가 잡을 뻔해서 또 한 번.”

“그걸 보고 있었냐?”

“처음에나 유성이 신경 썼지 나중에는 다들 추 코치님 반응 봤을걸?”

“추 코치님 은근 표정 맛집임.”

민찬수가 빠지면서 주전 우익수 자리를 꿰찬 줄 알았던 백영완은 아예 발작을 했다.

“저 자식 뭐야? 저 자식 뭐냐고오!”

“영완이 형. 릴렉스. 어차피 유성이 메인 포지션은 중견수예요. 형하고 안 겹쳐요.”

“유성이가 들어가면 어차피 내가 밀리는 거잖아아!”

“에이. 그건 모르는 거죠. 정후 선배님이나 백호 선배님이 지명으로 들어갈지도.”

“그렇지? 정후나 백호 고생시키느니 날 내보내겠지?”

“근데 형. 정후 선배님하고 백호 선배님이 왜 고생을 해요? 어차피 미국에서 합류하는 건데?”

“닥쳐! 메이저리거는 대표팀 합류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생이야. 어디 감히 그딴 불경한 소리를 해?”

박유성의 수비 테스트를 끝내고 강기태 감독은 코치들을 불러 모았다.

“유성이 어때? 내일 경기에 투입해도 되겠지?”

“외야수가 영완이뿐이니까 유성이도 뛰어야죠.”

“그럼 좌익수는 어떻게 할까?”

“원래 이 코치가 들어가기로 했는데 유성이 하는 거 보니까 병규 넣어도 될 거 같습니다.”

올림픽 대표팀 24인 엔트리에서 외야수는 단 4명.

인디언스의 감백호와 오리올스의 기정후, 자이언츠 소속 백영완, 그리고 민찬수의 대체 선수로 들어온 박유성뿐이었다.

이 중 메이저리거인 감백호와 기정후는 미국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강기태 감독은 선수촌 입촌 후 팀워크를 다지길 바랐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올림픽 브레이크 일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LA 올림픽 직전까지 경기를 잡은 탓에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불러들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훈련만 할 수는 없어서 대학 팀들과의 평가전 때 이용구 주루 코치가 수비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는데 박유성의 넓은 수비 범위를 보니까 생각이 달라졌다.

“병규가 좌익수가 가능해?”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1루수와 좌익수를 번갈아 봤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프로에 와서는 계속 1루수로 출전했고요.”

“그래도 했던 게 있으니까 기본은 해줄 겁니다.”

“좋아. 외야에도 플랜 B가 있으면 좋은 거니까. 이번 대회 기간 동안만 병규 좀 굴리자고.”

박유성에게 올림픽 국가대표 적응 기간을 줄까 했던 강기태 감독은 다음 날 열린 동호 대학교와의 더블 헤더 평가전 때 박유성을 9번 중견수로 선발 출전시켰다.

동호 대학교에서 준비한 투수는 원투 펀치인 김혜성과 고윤식.

“너 이 새끼, 잘 만났다.”

지난겨울 박유성에게 망신을 당했던 고윤식은 박유성이 타석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얼굴 옆으로 위협구를 붙였다.

그렇게 하면 박유성이 함부로 덤벼들지 못할 줄 알았는데 대표팀 더그아웃에서 곧바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야! 뭐 하는 거야?”

“어디 연습 경기에서 빈볼을 던져?”

고윤식은 박유성을 그저 운 좋게 국가대표에 합류한 고교 야구 선수라 생각했지만.

어제 하루 동안 보여준 박유성의 퍼포먼스에 홀딱 반해 버린 대표팀 선배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박유성 보호에 나섰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동호 대학교 천영수 감독이 직접 나서서 사과를 했을 정도.

“영배야. 사인 네가 냈어?”

“네? 아닙니다.”

“그럼? 윤식이 네가 맘대로 던진 거야?”

“그게…… 공이 빠졌습니다.”

“빠진 거 확실해?”

“……네.”

“잘 던지다가 갑자기 왜 그래? 벌써 힘들어? 쉬고 싶어?”

“아닙니다. 감독님.”

“잘 좀 하자. 저기 저 선수들, 다 네 선배들이다. 너 내년에 프로 안 갈 거야?”

“……가야죠.”

“그러니까 잘 좀 해 인마. 괜히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지 말고.”

보는 눈들을 의식한 천영수 감독은 한참 동안 잔소리를 늘어놓았고.

기가 죽은 고윤식은 연거푸 볼을 던지다 박유성에게 볼넷을 주고 말았다.

2사 이후 박유성이 나가자 강기태 감독은 곧바로 도루를 주문했다.

“이 코치.”

“네. 감독님.”

“유성이 뛰는 것 좀 잘 봐봐.”

“네. 눈 크게 뜨고 지켜보겠습니다. 감독님.”

U-18 야구 월드컵 당시 박유성의 경기 영상은 확인했지만.

이용구 주루 코치는 물론이고 강기태 감독도 박유성의 주루 능력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아마추어 선수와 프로 선수는 주자 견제 능력부터 다르기 때문이었다.

서울 지역 전후반기 주말 리그를 다 더해야 28경기.

추가로 전국 대회에서 전부 결승을 간다 쳐도 1년에 50경기 남짓 치르는 게 고교 야구였다.

실제 평균치는 그보다 더 적다고 감안했을 때 1년에 150경기씩 치르는 프로 선수들과는 경험치부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용구 주루 코치는 박유성에게 그린 라이트를 주는 게 어떻겠냐는 이병구 타격 코치의 의견에 제동을 걸었다.

‘일단 내일 경기 때 한번 뛰게 해보죠. 뛰는 거 보고 결정해도 될 거 같습니다.’

비록 상대도 아마추어 팀이긴 하지만.

동호 대학교는 이번 시즌 대학 리그 조 1위를 질주 중인 강호 중의 강호였다.

게다가 동호 대학교 주전 포수인 김영배는 고교 시절부터 어깨가 좋기로 유명했다.

“합격 기준이 어떻게 돼?”

“3구 이내에 뛰어서 여유롭게 살면 합격입니다.”

“조건이 너무 빡센 거 아냐?”

“올림픽이잖아요. 만에 하나 유성이가 뛰다가 죽으면 욕을 배로 먹을 겁니다.”

이용구 주루 코치는 통산 400개의 도루를 성공시켰다.

프로 야구 통산 도루 5위.

도루 성공률은 무려 73퍼센트에 달했다.

추신우 수석 코치와 이병구 타격 코치도 소싯적에 도루 좀 하긴 했지만 이용구 주루 코치에게는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이미 박유성의 주루 능력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이용구 주루 코치의 평가를 따르기로 얘기가 끝난 상황.

그래서 이용구 주루 코치도 최대한 까다롭게 박유성의 주루 플레이를 평가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용구 주루 코치가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박유성이 자신의 도루 기록을 이미 뛰어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1회차 시절 박유성이 훔쳐낸 베이스는 522개.

도루 성공률도 이용구 주루 코치보다 조금 높은 74.5퍼센트였다.

2회차 시절에도 자주 뛰지는 않았지만 139개의 도루와 83.2퍼센트라는 성공률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번 3회차에 접어들어서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잡힌 적이 없었다.

스으윽. 스으윽.

또다시 테스트가 시작됐다는 걸 알아챈 박유성은 적극적으로 리드를 벌렸다.

고윤식이 발작하듯 연거푸 견제구를 던졌지만 주눅 들지 않았다.

자고로 도루는 기 싸움이 생명이었다.

투수에게 지고 들어가는 순간 스타트가 늦어지고.

스타트를 제때 끊지 못하면 살아남을 확률이 뚝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저 새끼가!”

박유성이 자꾸 등 뒤에서 얼쩡거리자 고윤식이 입술을 깨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공으로 귀루하는 박유성의 머리통을 맞혀 버리고 싶었지만

견제구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눈을 부릅뜨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눈치 보여 참을 수밖에 없었다.

“도루는 절대 안 줘.”

고윤식은 공을 꼭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바깥쪽으로 빼라는 김영배의 사인을 무시하고 타자가 칠 만한 코스로 공을 찔러 넣었다.

박유성에게 도루를 내주느니 차라리 타자의 타격을 유도해 땅볼을 이끌어내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선두 타자로 나선 백영완은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공을 그대로 흘려보냈고.

그사이 스타트를 끊은 박유성은 포수 김영배가 미트에서 공을 뽑아 들기도 전에 2루 베이스를 향해 미끄러져 들어갔다.

촤라라랏!

흙먼지를 일으키던 오른발이 베이스에 닿은 순간.

박유성은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켜 세워 베이스 위에 안착했다.

팝업 슬라이딩이라고 본래 도루 이후의 주루 플레이를 이어갈 때 자주 쓰는 스킬이지만.

지금처럼 빠르게 베이스를 훔친 뒤에 연속 동작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면 훨씬 더 여유롭게 비칠 수 있었다.

“와, 진짜 저 녀석 때문에 백업으로 밀리겠네.”

프로 선수들처럼 양손 검지를 들어 타임을 요청한 뒤에 장갑을 바꿔 끼는 박유성을 보며 백영완은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스타팅 라인업이 발표됐을 때 박유성에게 1번 자리를 뺏기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겼건만.

왠지 오후 경기는 박유성에게 밀려 2번이나 9번으로 내려갈 것만 같았다.

“합격입니다.”

이용구 주루 코치도 박유성의 군더더기 하나 없는 도루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마추어니까 이런저런 단점들이 눈에 들어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자신의 전성기 때보다 더 잘 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박유성의 질주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볼카운트 원 볼 원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고윤식의 공이 백영완의 몸쪽으로 향하자 망설이지 않고 스타트를 끊어 3루까지 훔쳐낸 것이다.

“어딜!”

포수 김영배가 포구를 하기가 무섭게 3루로 공을 뿌렸지만.

살짝 빠진 송구를 잡기 위해 3루수 김대윤이 몸을 비튼 사이 박유성은 또다시 팝업 슬라이딩으로 3루 베이스에 안착했다.

김대윤이 다급히 팔을 뻗어 박유성의 가슴을 태그했을 때는 이미 3루심이 양팔을 벌린 뒤였다.

“저 새끼가 진짜!”

볼넷으로 나간 박유성이 연달아 베이스를 훔치자 고윤식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영배가 자신의 잘못이라며 진정하라는 사인을 보냈지만 소용없었다.

“볼!”

결국 백영완도 볼넷을 골라 나갔고.

따악!

뒤이어 타석에 들어선 김하선이 한복판으로 몰리듯 들어오는 공을 가볍게 잡아당겨 루상의 주자들을 전부 홈으로 불러들였다.

“젠장할!”

1회 위기 상황을 잘 넘겼던 고윤식은 2회에만 5실점을 한 뒤에 강판, 패전의 멍에를 썼다.

반면 박유성은 볼넷 두 개 포함 3타수 2안타 1타점 4득점에 도루 5개를 곁들이며 U-18 야구 월드컵에서 보여줬던 퍼포먼스를 그대로 재현해 냈다.

“동호대로는 연습이 안 될 거 같은데?”

“그래도 오후 경기에는 김혜성이 나오니까 조금 나을 겁니다.”

2시간의 휴식 시간을 가진 뒤 동호 대학교와의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됐다.

선발은 지난겨울 이후 대학 리그 최고의 투수로 거듭난 좌완 김혜성.

아마추어 대체 얘기가 나왔을 때 외야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박유성과 함께 언급이 됐을 만큼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박유성 대 김혜성이라. 최강 아마추어들의 전쟁인가?”

“요즘 혜성이 공 장난 아니던데 유성이가 감당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유성이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하세요. 오전 경기에서 안타 못 친 건 너밖에 없는 거 알지?”

“두고 봐. 오후 경기 때 멀티 히트 칠 거니까.”

김혜성의 기세가 워낙 좋다 보니 박유성이 밀릴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따악!

1번 타자로 타석에 선 박유성은 김혜성이 자랑하는 157㎞/h짜리 포심 패스트 볼을 가볍게 잡아당겨 포문을 열었다.

“하아. 저 얄미운 녀석.”

여유롭게 장갑을 고쳐 끼는 박유성을 보며 김혜성이 쓴웃음을 흘렸다.

이제 대학 리그에서는 적수가 없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지만.

박유성은 여전히 벽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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