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102화 (102/412)

타자 인생 3회차! 102화

15. 박유성 선수가 필요합니다(5)

통화를 마친 송기섭 과장은 한참을 웃었다. 그러고는 곧장 김영문 협회장을 찾아갔다.

“협회장님. 방금 박유성 선수한테 전화가 왔는데요. 주말 리그에 참가하고 나서 선수촌에 합류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이번에 신산전이 잡혔는데 박유성 선수도 뛰고 싶은 모양입니다.”

“신산전이요? 그거 안 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지난번에 보고드렸잖습니까. 다른 학교들의 원성이 자자하다고요. 그래서 이번 후반기 때는 보여주기식으로라도 같은 조에 편성을 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기억 안 나십니까?”

“아, 그 얘기가 그 얘기였어요?”

김영문 협회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신산전만 열리면 패배한 쪽 감독이 갈려 나가서 신성 고등학교와 태산 고등학교를 일부러 떨어뜨려 놓았는데.

자신이 잠깐 신경 쓰지 못한 사이에 다시 한 조에 편성됐을 줄은 미처 몰랐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협회장님. 연초 연습 경기 때 신성 고등학교가 이겨서 태산 고등학교 감독이 바뀌었으니까요.”

“그걸 걱정해서 두 학교를 떼놓았던 거 아니었습니까?”

“제아무리 태산 그룹이라 해도 여론이 있는데 한 해에 감독을 연달아 갈지는 못할 겁니다. 박유성 선수까지 출전한다면 언론도 관심을 가질 테고요.”

“그러니까 박유성 선수를 출전시켜서 신성 고등학교가 이기도록 하자는 겁니까?”

“박유성 선수가 없더라도 객관적인 전력은 신성 고등학교가 태산 고등학교에 앞섭니다. 하지만 박유성 선수가 없는 신성 고등학교에 패배한다면 태산 고등학교 감독 자리가 또다시 위태로워질지 모르죠.”

“후우……. 일단 그 얘기는 알겠는데 선수촌 이야기는 뭡니까?”

“신산전이 대표팀 소집일에 열립니다.”

“몇 시에요?”

“오전 경기니까 10시입니다.”

“대표팀 소집 시간은요?”

“11시까지입니다.”

“설마 그걸 허락한 건 아니죠?”

김영문 협회장이 송기섭 과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송기섭 과장이 왜 아니겠냐며 빙글거렸다.

“송 과장님. 이건 아니에요. 아무리 프협이 꼴 보기 싫어도 이러는 건 아니죠.”

“협회장님도 이번에 화가 많이 나셨잖습니까? 그리고 박유성 선수는 대표팀 합류 전까지 우리 협회 소속입니다. 한국 야구 협회 소속 선수가 한국 야구 협회 경기에 출전하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죠.”

“물론 그렇긴 한데…….”

“프협 하는 짓을 보십시오. 사고는 자기들이 쳐놓고 걸핏하면 우릴 걸고넘어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박유성 선수가 어디 소속인지 제대로 알려주시죠.”

김영문 협회장은 박유성을 추천해 달라는 신세혁 사무총장의 요청을 받아줬다.

비록 먼저 추천을 요청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악화된 여론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론을 악화시킨 건 한국 야구 협회가 아니라 프로 야구 협회였다.

프로 야구 협회가 긴급 회의 끝에 선수 추천을 요청했을 때 한국 야구 협회는 미리 준비한 추천서를 지체하지 않고 보냈다.

이 정도면 프로 야구 협회가 머리를 숙여 감사를 해야 하건만.

정작 돌아온 건 책임 떠넘기기였다.

일부 언론에서 한국 야구 협회가 제때 협조하지 않아 박유성의 선발이 늦은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프로 야구 협회가 입을 꾹 다문 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구 관련 양대 협회라 해도 프로 야구 협회의 지원을 받는 처지이다 보니 대놓고 따져 묻지는 못했지만.

운영팀장인 송기섭 과장을 비롯해 한국 야구 협회 직원 대다수가 배신감을 느끼는 상황이었다.

이런 때에 박유성이 멋지게 한 방 먹여주겠다고 나섰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박유성 선수 경기에 나가도 됩니까?”

“협회에서 보낸 휴식 보장은 권고 사안입니다. 협회장님. 이미 대표팀에 선수들을 보낸 다른 학교에서도 연락이 왔고요.”

“그래서 뭐라고 했습니까?”

“선수 출전은 학교 재량이지만 무리는 시키지 말라고 주문했습니다. 대회 끝나고 최소 5일은 쉬었으니까 7일을 채워야 한다고 강요하긴 어려워서요.”

이번 U-18 야구 월드컵은 해외가 아닌 서울에서 열렸다.

선수들에게 익숙한 신성 고교 야구 종합 야구장에서 슈퍼 라운드 일정까지 소화했고.

목동 구장에서 대망의 결승전을 치렀다.

해외 경기였다면 입국 후 시차 적응까지 충분한 휴식 기간을 보장받아야겠지만 국내 경기에 5일을 쉬었으니 주말 리그 페널티를 감안하라고 요청하기가 쉽지 않았다.

“박유성 선수를 염두에 두고 허가한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U-18 야구 월드컵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주말 리그가 열렸습니다. 대표팀에 선수를 보낸 학교는 여러모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은 학교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한 조치였습니다.”

“어쨌거나 박유성 선수가 신산전을 뛰는 데 문제없다는 얘기죠?”

“네. 선수 보호 차원에서 휴식일을 요청했지만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신성 고등학교 입장에서도 박유성 선수가 꼭 필요할 테니까 주말 리그를 소화한 이후 대표팀에 합류하게 됐다는 식으로 기사를 내면 프협에서도 별말 못 할 겁니다.”

“후우……. 이거 괜히 또 시끄러워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협회장님. 제가 이것까지는 말씀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한국 야구 협회는 뭐 하냐는 비판이 상당합니다. 그러니까 뭘 하는지 알려야죠.”

“정확하게 뭘 알리자는 겁니까?”

“협회에서 선수 보호를 위해 휴식을 권고했다는 걸 알려야죠.”

“……?”

“협회 측은 7일 휴식을 요구했습니다. 형평성 문제가 있으니 일선 학교 재량에 따라 주말 리그 참가는 허락했고요. 여기까지는 우리 협회의 영역입니다. 그런 박유성 선수를 대표팀에 강제차출 시킨 건 프협이고요.”

“……!”

“신성고나 우리 협회를 욕하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상황을 찬찬히 뜯어보면 알겠죠. 박유성 선수가 왜 쉬지도 못하고 국대에 차출됐는지를요. 애당초 민찬수 선수가 사고를 치지 않았다면 박유성 선수를 데려갈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평소에는 커피 심부름도 마다하지 않는 성격 좋은 직원이었지만 송기섭 과장도 야구 쪽으로는 잔뼈가 굵었다.

프로 야구 협회 쪽에 이력서를 내도 충분히 채용될 만한 커리어를 쌓아놓고도 박봉에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 한국 야구 협회에서 일하는 건 대한민국 야구의 근간을 지키기 위해서지 프로 야구 협회 뒤치다꺼리를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시끄러운 일은 질색하는 김영문 협회장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땅에 떨어진 한국 야구 협회의 자존심을 세울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송기섭 과장의 계획대로 진행한다면 최소한 체면치레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오후.

[신성 고등학교 박유성. 주말 리그 참가 후 올림픽 대표팀 합류한다.]

베이스볼 패치 공윤경 기자의 기사가 뜨자 베이스볼 파크가 다시 시끄러워졌다.

└박유성 패기 무엇? 국대 소집일에 고교 리그 소화하겠다고? 선배들 다 기다릴 텐데?

└박유성 뭐 있냐? 8촌 이내에 협회 관계자나 레전드 야구 선수 있어? 뭘 믿고 이래?

└짜식이 잘한다 잘한다 했더니 똥오줌 못 가리는 느낌인데?

└기사에 다 나와 있는데 박유성 까는 인간들은 여권 국적란에 뭐라고 적혀 있냐? 진심 궁금하다.

└내 말이 그 말임. 보이콧 한 선수 데려가는 국대가 잘못이지 청대 소집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 경기 뛰겠다는 선수가 잘못임?

└근데 박유성 보이콧 철회함?

└노놉. SNS에 올린 글 그대로 있어요. 그냥 협회가 필요하니까 강제 차출하는 거임.

└강제 차출 드립은 좀 오버 아닌가? 프로도 아닌 아마추어 선수를 올림픽에 데려가겠다면 엎드려 절을 해야 하는 거 아님?

└평양 감사도 싫은 사람은 못 시키는 거 모름?

└님. 평양 아니고 함흥임.

└님이 말하는 건 함흥차사 아님?

└그게 그거 아님?

└그래. 평양 냉면이나 함흥 냉면이나 똑같은 냉면이지. ㅋㅋ

└어디 함흥 냉면을 평양 냉면에 가져다 댑니까?

└내가 꼰대 소리 들을까 봐 참고 참았는데 요즘 베팍에 유입된 젊은 친구들 보면 답답해. 활자만 읽고 행간을 못 읽네.

└활자도 못 읽는 애들 많습니다. U-18 야구 월드컵 기간 동안 주말 리그가 시작됐다는 내용이 있는데도 헛소리하는 애들 보면 세종대왕이 지하에서 통곡할걸요?

└그러니까 상황을 정리하자면 아마협에서는 일주일 쉬라고 했지만 국대에 선수 보낸 학교들만 손해 보는 구조라 주말 리그 참여는 허락했다는 거 같은데…… 이러면 박유성은 조금 늦게 합류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주전도 아니고 민찬수 대체로 들어간 건데 일찍 부를 이유 있나요? 아니면 요즘도 후배가 선배 속옷 빨래합니까?

└이번에도 신성 그룹이 올림픽 야구 지원해서 빨래 직접 안 합니다. 기사로 여러 번 나왔어요.

└그럼 박유성을 왜 빨리 부르는 거야? 배팅볼이라도 던지게 하려나?

└그래도 기왕이면 다 함께 선수촌 입소하는 게 낫죠.

└해외파 선수들은 메이저리그 일정 때문에 미국에서 합류하는데요?

└해외파하고 박유성하고 같음?

└다를 건 뭔가요? 해외파 선수들도 팀 사정 때문에 늦게 합류하는 거고 박유성도 학교 성적 때문에 주말 리그 뛰고 오겠다는 건데.

└여러분.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민찬수가 사고만 치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이럴 이유가 없다는 거죠.

└맞네. 민찬수 때문이네.

└프협 책임도 있죠. 선수 관리를 개판으로 했으니까요.

└이제 프협 쿨이 돌아온 건가. ㄷㄷ

└우리 아들도 고등학교 야구 선수인데 저는 박유성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경기 결과 찾아보니까 박유성 야구 월드컵 치르는 동안 신성고 2승 2패 했습니다. 4위 안에 들어야 청룡기 나갈 수 있는데 박유성이 없어서 힘겨워 보여요.

└신성 고등학교에 선수가 박유성뿐이랍니까?

└박유성 경기 안 봤음? 혼자 멱살 잡고 청대 우승시킨 거?

└박유성 선수가 신성고 주장입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 협회장기 예선도 치러야 하는데 박유성 선수 없이 본선 가긴 어려워 보이고요.

└그러니까 그게 박유성하고 무슨 상관이냐고요. 박유성이 국대 뽑혔으면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거 아님?

└프로 야구는 올림픽 기간 동안 휴식기지만 고교 야구는 아닙니다. 생각해 봐요. 응원하는 팀 에이스가 올림픽 뽑혔는데 리그 강행해서 성적 곤두박질치면 기분이 어떨 거 같아요?

└얘기 듣고 보니까 박유성 대견하네요. 신성고 동료들을 위해 욕먹을 각오하고 주말 리그 소화한다는 거잖아요?

└박유성 선수 사정도 모르고 까고 본 사람들 반성합시다. 일단 저부터 반성함.

└저도요. 박유성 아니었으면 민찬수 빈자리 못 채웠을 텐데 벌써 까먹고 싸가지없다고 욕했음. ㅠ.ㅠ

└젊은 치매가 의심됩니다. 가까운 병원에 가 보세요.

└어휴. 드립도 좀 분위기 봐가면서 쳐라.

국내 최대 야구 커뮤니티인 베이스볼 파크의 여론이 바뀌자 프로 야구 협회도 박유성의 소집일을 월요일로 늦췄다.

“대한 야구 협회에서 일주일 휴식을 권고했는데 우리가 무시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죠.”

그러자 고교 야구 주말 리그를 독점 중계하는 MBS 스포츠 플러스 송익규 PD가 함익중 국장을 찾아갔다.

“국장님! 일요일 경기 신성전으로 바꾸시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국대 소집 연기되어서 박유성 일요일 경기도 뛴답니다.”

“그래? 상대가 누군데?”

“경성고요.”

“뭐 하고 있어? 바로 잡지 않고!”

박유성은 그저 신산전만 치를 생각이었지만.

야구 팬들의 관심은 다음 날 열리는 경성 고등학교와의 경기로 몰렸다.

└고교 야구는 거의 안 봐서 그런데 경성고 잘함?

└현 고교 최강이요.

└누구 맘대로 최강임?

└청소년 국대 3명 배출한 학교가 경성고 말고 또 있나요?

└박유성 아니었으면 4명이었어요.

└그럼 결과는 뻔한 거 아님?

└그래도 모르죠. 박유성이 활약해 주면 신성이 이길지도.

└경성고 선발 강우석이던데 박유성이 감당하겠음?

└??

└???

└박유성은 얼마 전에 끝난 U-18 야구 월드컵에서 MVP로 뽑혔다. 더불어 역대 최초로 타격 6관왕(비공식 8관왕)을 달성했다. 당시 함께 대표팀에 뽑혔던 강우석은…… 고작 3이닝을 소화했다.

토요일에 열린 신성 고등학교와 태산 고등학교의 경기는 라이벌전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신성 고등학교의 완승으로 끝이 났다.

오랜만에 신성 고등학교 톱타자로 복귀한 박유성은 선두타자 홈런을 포함해 1타수 1안타에 3볼넷, 6도루, 4득점을 올리며 팀 타선을 진두지휘했다.

그리고 다음 날 열린 경성 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박유성은 정면 승부를 지시한 염대성 감독의 배려(?) 속에 청소년 대표팀 동기 강우석을 탈탈 털었다.

첫 타석에 중견수 앞 안타로 출루해 2루 도루와 3루 도루를 성공시킨 뒤 오대석의 땅볼 때 홈을 밟았고.

2사 1루 상황에서 맞이한 두 번째 타석 때는 강우석의 초구를 잡아당겨 왼쪽 담장을 살짝 넘기는 동점 홈런을 때려냈다.

세 번째 타석에서는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로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고.

6 대 5로 한 점 앞선 7회 초 네 번째 타석에서는 바뀐 투수의 초구를 공략해 펜스를 직격하는 장타를 때려낸 뒤 빠른 발로 3루까지 파고들며 중계진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보셨습니까? 저 선수가 바로 박유성 선수입니다.

-아마추어 선수가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했다고 해서 얼마나 잘하나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박유성 선수가 보란 듯이 히트 포 더 사이클을 달성해 냅니다.

-경성고 염대성 감독의 표정이 굳어지는데요.

-경기 전에 박유성 선수를 거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했었는데요. 지금도 같은 생각인지 몹시 궁금해지네요.

박유성의 맹활약 속에 거함 경성 고등학교를 무너뜨린 신성 고등학교는 4승을 달성하며 주말 리그 후반기 왕중왕전인 청룡기 본선 진출 가능성을 높였다.

그리고 박유성은.

“유성아. 잘 다녀와.”

“올림픽 가서 잘해라!”

“우리 선물 사오는 거 잊지 말고!”

신성 고등학교 동료들의 격려를 받으며 올림픽 대표팀이 머무는 선수촌에 입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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