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100화
15. 박유성 선수가 필요합니다(3)
2
고우일과 이동엽이 SNS를 통해 국가대표 차출을 거부했을 때.
베이스볼 파크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이러다 박유성까지 보이콧 하는 거 아님?]
└김현중까지 보이콧하면 박유성도 부담 느끼고 따라 할지도. ㄷㄷ
└그렇게 모든 아마추어 선수들의 국대 보이콧 운동이 일어나는데 ㅋㅋㅋ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박유성까지 보이콧하면 데려갈 선수 없을걸요?
└데려갈 선수야 많죠. 야구팬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느냐가 문제임.
└애당초 기준이 너무 빡세요. 타격 8관왕에 MVP를 어떻게 이깁니까?
└심지어 타율이 10할임. ㅋㅋ
└이런 십할타자 같으니!
└박유성은 나중에 프로 가면 십못쓰 별명 생길지도.
└십할도 못 치는 쓰레기요? 이미 쳤는뎁쇼?
└그런데 협회 발표 왜 이렇게 늦나요? 박유성 말고 대안도 없지 않음?
└그러게요. 이거 괜히 불안한데요?
└불안할 게 뭐가 있습니까? 협회가 미치지 않고서야 박유성 탈락시키겠어요? 아마추어 원톱인데?
└이 와중에 정치질하면 진짜 협회 해체시켜야 합니다.
└네?? 원래 협회는 정치질하라고 만든 곳인데요?
이때까지만 해도 장난스러운 반응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박유성이 정말로 SNS에 국가대표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커뮤니티가 폭발했다.
└아니 X발. 진짜 협회 뭐 하자는 거죠?
└아직 협회 공식 입장 나온 거 아니니까 진정하시죠.
└진정은 무슨 진정이요? 박유성밖에 없는데 박유성이 보이콧하면 뻔한 거 아닙니까?
└새벽에 올라왔던 글들이 사실이었나 보네요.
└새벽에 무슨 글이요?
└지피셜이라면서 각 구단들마다 박유성 대신 다른 선수 데려가려고 계산기 두드린다는 글 올라왔었거든요.
└그 글 어딨나요? 안 보이는데?
└비추 테러 먹고 삭제했을걸요?
└와, X발. 개소리가 현실이 되어버렸어.
프로 야구 구단들의 이기적인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병역 혜택이 주어지는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때는 대표팀에 한 명이라도 더 합류시키려고 안달이지만.
해외 진출의 쇼케이스 무대로 활용되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과 프리미어 12 때는 대표팀 선발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시즌 전후로 열리는 대회이다 보니 부상 위험도가 높고, 만에 하나 부상을 당할 경우 팀 전력에 큰 공백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이번 대회가 올림픽이 아니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었다라도 구단들이 꼼수 부렸을까요?
└그땐 그냥 만장일치로 박유성 선발했을걸요?
└협회는 진짜 뭘 하는지 모르겠네. 선수 관리도 못해 구단 관리도 못해. 잘하는 게 뭐임?
└정치질?
└삽질?
└구단들이 욕심내는 건 이해합니다. 원래 그래 왔으니까요. 그래도 협회가 중간에서 말렸어야죠. 중간에서 뭘 했기에 박유성 선수가 보이콧을 합니까?
└그런데 협회가 무슨 잘못을 하긴 했나요? 아무것도 안 한 거 같은데?
└아무것도 안 한 게 잘못이죠. 일본 봐요. 사무국에서 아마추어 대체 가능하다는 답변받기가 무섭게 스즈키 지로 선발했잖아요.
└정작 급한 거 없는 일본은 협회가 나서서 교통정리 바로 해버리는데 우리나라는 협회가 강 건너 불구경이니 구단들이 욕심을 낼 밖에요.
└협회도 대책 마련 중일 겁니다. 그러니까 다들 진정하세요.
└베팍 할 시간에 일하세요. 총재 씨.
└저도 제가 프로 야구 협회 총재였으면 좋겠습니다. ㅠ.ㅠ
여론이 악화되자 신세혁 사무총장은 김영문 한국 야구 협회장에게 SOS를 요청했다.
-그러니까 한국 야구 협회 쪽에서 박유성 선수를 추천해 달라는 겁니까?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원하는 건 아마도 박유성 선수일 겁니다. 박유성 선수를 콕 찍어서 말하기 어려우니까 아마추어 선수라고 명시한 것 같고요.”
-그렇다면 프로 야구 협회에서 박유성 선수를 선발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박유성 선수의 신분은 아마추어 선수입니다. 아마추어 선수는 한국 야구 협회 소속이고요.”
-재밌네요. 언제부터 프로 야구 협회가 우리 눈치를 봤다고 이럽니까?
“협회장님. 지난 아시안 게임 선수 선발은 개인적으로 유감이었습니다. 저는 원칙대로 가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선수 선발은 제 권한 밖이라서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말에 어폐가 있네요. 선수 선발은 권한 밖이라면서 왜 추천을 요구하는 겁니까?
“협회장님. 지금 시간이 없습니다. 더 늦으면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선수 교체를 불인할지도 모릅니다.”
-신 사무총장. 그냥 솔직히 말하지 그래요? 여론은 박유성 선수를 원하는데 대놓고 나서기에는 다른 구단들 눈치가 보이니까 우리더러 총대 메라는 거 아닙니까?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협회장님.”
-이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지만 참 뻔뻔하네요. 궁한 건 그쪽인데 왜 모든 책임을 우리가 져야 합니까?
“원칙상 한국 야구 협회 쪽의 추천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랬다면 올림픽 조직 위원회에서 공문이 오는 즉시 우리에게 협조를 구했어야죠. 아무 말 안 하고 있다가 일본에서 먼저 선수 치니까 부랴부랴 수습하고 이게 뭐 하자는 겁니까?
김영문 한국 야구 협회장으로부터 한참 동안 잔소리를 들은 끝에 신세혁 사무총장은 한국 야구 협회의 협조를 받아냈다.
“이제 됐습니다. 한국 야구 협회에서 박유성 선수 추천하면 우린 그거 그대로 안건에 올려 통과시킵시다.”
이렇게 계획대로 손 안 대고 코를 풀기 직전이었는데.
-그러니까 민찬수 선수 에이전트가 국대를 포기하라고 했다는 거죠?
-네. 제가 모르는 사정이 있다고 했어요. 파이터즈 몫이라서 파이터즈가 가져가야 한다고요.
-저도 기자 생활을 오래 한 건 아니지만 국대에 구단 몫이 따로 있는 건 처음 알았는데요?
-아니에요? 저는 잘 몰라서요.
-이거 기사로 나가면 또 시끌벅적해지겠는데요?
민찬수와 윤나라 대표가 섣불리 나서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민찬수 선수 연락됐습니까?”
“아뇨. 저녁이라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윤나라 대표는요?”
“전화기가 꺼져 있습니다.”
“파이터즈 구단도 연락 없고요?”
“네.”
“미치겠네.”
신세혁 사무총장을 비롯해 협회 직원들은 현재 비상 근무 중이지만 다른 이들의 사정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어디라고 했죠?”
“베이스볼 패치요.”
“이거 기사 막아야 합니다. 이거 터지면 난리 나요.”
“베이스볼 패치도 전화를 안 받는데 어떻게 하죠?”
“이건 누구한테 받았는데요?”
“야식하고 함께 왔습니다. USB가 담긴 봉투에 베이스볼 패치라고 적혀 있었고요.”
“어떻게든 막아요. 진짜 이 일 터지면 감당 못 합니다.”
신세혁 사무총장은 퇴근도 못 하고 아침이 되길 기다렸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8시 정각에 나영진 기자가 미리 걸어놓은 기사가 올라왔다.
[모 구단 선수와 에이전트, 박유성 선수 회유 정황 포착!]
선수 이름과 구단명을 익명으로 처리했지만.
야구팬들은 정황만으로 민찬수인 걸 알아챘다.
└이거 민찬수 맞죠?
└민X수라는 데 내 왼 손모가지를 겁니다.
└손모가지 받고 X알 한 짝 추가요.
└모자이크 하긴 했지만 실루엣이 딱 봐도 민찬X임.
└근데 저 여자는 누구임? 애인인가?
└윤나라 대표. 파이터즈 민찬수와 에이전트 계약 체결!
└헐, 에이전트였어요?
└기사 대충 보셨네요. 제목에도 나오는데.
└저는 당연히 다른 에이전트가 있는 줄 알았죠.
└윤나라 대표 나름 유명합니다. 송현민하고도 계약할 뻔했고요.
└출근길에 기사를 훑어봐서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데 민찬수가 박유성을 왜 만난 건가요?
└며느리도 모릅니다.
└저도 그 이유가 궁금하네요.
└기사 내용만 보면 민찬수가 박유성을 설득해서 국대 포기시켰다는 건데…… 왜요?
└다른 구단들도 박유성 대신해서 이번에 뽑을 아마추어 선수들 데려가려고 잔머리 굴렸다잖아요. 파이터즈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누구 때문에 이 사달이 났는데 어이가 없네.
└그러게요. 애당초 민찬수가 음주 운전 방조만 하지 않았더라도 아무 일 없었을 텐데.
└협회 반응 아직인가요?
└아직 멀었죠. 회의하고 뭐 하고 하면 오후쯤에나 나올걸요?
└오늘 중에 답변 나오면 빠른 거임.
야구팬들은 협회의 발 빠른 대응을 원했지만 정작 프로 야구 협회도 출근길에 터진 기사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영진 기자는 뭐랍니까?”
“나 기자 말로는 박유성 선수를 인터뷰하기 위해 집에 찾아갔다고 합니다.”
“박유성 선수요?”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인터뷰 도중에 윤나라 대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고 합니다.”
“그걸 나 기자가 듣고 뒤를 밟았다는 겁니까?”
“윤나라 대표가 처음부터 용건을 밝히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노파심에 뒤를 밟았다가 현장 사진을 찍게 됐고요.”
“후우…….”
신세혁 사무총장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녹취 파일을 먼저 보낸 것으로도 모자라 협회가 대응하기도 전에 기사까지 터뜨렸으니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게 뻔한데 모든 게 우연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나 기자가 다른 이야기는 안 합니까?”
“최대한 빨리 대체 선수를 선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누구를요?”
“딱히 누구를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야구팬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선수여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습니다.”
“박유성 선수도 대표팀을 거부한 마당에 지금 야구팬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선수가 누가 있습니까?”
“아, 그래서 그런 얘기를 했나 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싫다면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데려와야 한다고 했거든요.”
“삼고초려요? 협회더러 다 책임지라는 얘기네요.”
신세혁 사무총장은 그저 헛웃음이 났다.
사무총장으로서 협회를 향한 비난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한 야구 협회까지 설득했건만.
돌아가는 분위기상 욕을 먹지 않고서는 이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할 것 같았다.
“대한 야구 협회에서 추천서 왔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연락해 봤는데 박유성 선수가 대표팀 발탁을 거부한 만큼 명분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요? 설마 그 대답만 듣고 온 건 아니죠?”
“저희…… 쪽에서 먼저 요청서를 보내준다면 생각해 보겠다고 합니다.”
“요청서요?”
“박유성 선수를 비롯해 대표팀을 보이콧 한 선수들을 다시 선발하려면 요청서가 먼저라고…….”
박유성이 자의로 대표팀을 포기한 거라면 또 모르겠지만.
사고를 친 민찬수가 에이전트까지 대동해 박유성을 포기시킨 만큼 대한 야구 협회도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악재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사무총장님. LA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공식 메일이 왔습니다.”
“조직위에서요?”
“네. 사흘 안에 대체 선수를 결정하지 않으면 교체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겠다고 합니다.”
“후우…….”
신세혁 사무총장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조금 더 있다면 박유성의 대표팀 차출 거부부터 번복시킬 텐데.
발등에 떨어진 불이 활활 타오르는데 절차를 따질 여유가 없었다.
“일단 팀장들 전부 회의실로 모이라고 하세요.”
점심시간까지 이어진 긴급회의 끝에 프로 야구 협회는 LA 올림픽 대표팀 명단에서 물의를 일으킨 민찬수를 빼고 박유성을 대신 집어넣기로 최종 확정 지었다.
그리고 곧바로 언론을 통해 그 사실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