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99화
15. 박유성 선수가 필요합니다(2)
박유성이 SNS에 글을 업로드하기가 무섭게 곧바로 기사가 올라갔고.
그 기사가 다시 베이스볼 파크에 전해졌다.
당연하게도 베이스볼 파크는 난리가 났지만 윤나라 대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재율이만 국대에 넣으면 돼.’
어쩌다 보니 박유성에게 가려지긴 했지만 성강 대학교 4번 타자 성재율은 올해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이상을 목표로 하는 선수였다.
성강 대학교는 대학 리그 우승을 다투는 강호 중의 강호.
그런 팀에서 4번 타자로 활약하고 있으니 성재율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포지션도 우익수였다.
중견수 수비는 불가능하지만, 좌익수로도 몇 차례 출전한 경험이 있는 만큼 백업 수비수 역할은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일찌감치 성재율의 재능을 알아본 윤나라 대표는 작년 겨울 성재율과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성재율은 내심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고 있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힘들어 보였다.
에이전트로서 윤나라 대표가 생각하는 최선은 외야수 쪽에 즉시 전력감이 필요한 구단의 호명을 받는 것.
그렇게만 된다면 FA까지 제대로 서포트 할 계획이었는데 올림픽에 합류할 기회까지 생겼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김경민 단장이 재율이 원한 거 확실하지?”
“그렇다니까요? 그래서 내가 누님한테 바로 연락한 거잖아요.”
“김 단장도 참 머리가 좋아. 어떻게 재율이 생각을 다 했지?”
“제가 말했잖아요. 우리 단장님 보통 아니라고. 누님도 누님이지만 단장님 앞에서는 거짓말을 못 하겠어요. 목소리 내리깔면서 말하는 거 존X 카리스마 있어요.”
윤나라 대표는 민찬수의 너스레보다 김경민 단장을 더 높이 평가했다.
지난 시즌 트윈스에게 1차 지명권을 양도하면서 파이터즈는 선수 두 명과 10억, 그리고 이번 시즌 트윈스의 2차 지명권을 얻었다.
당시에는 트윈스가 이득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파이터즈에 중복 자원 두 명에 웃돈을 얹어 주는 대가로 1라운드 지명권을 얻어 대학 리그 최대어인 한성대학교의 에이스 송재영을 영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트레이드를 재평가한다면 파이터즈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메이저리그를 가겠다며 배짱을 부리며 5억을 받아낸 송재영은 스프링캠프 때 팔꿈치 인대가 다치면서 수술대에 오른 반면 파이터즈는 구단 운영 자금 10억에 2차 1순위 지명권으로 숙원이었던 외야 보강에 나설 수 있게 됐으니 계획대로만 일이 풀린다면 파이터즈가 남는 장사였다.
“그런데 재율이요. 2라운드에서 뽑는 건 좀 위험하지 않아요?”
“그럼? 1라운드에서 뽑자고?”
“어차피 저 자식은 못 데려오잖아요. 그럼 그냥 재율이 뽑는 게 낫지 않아요?”
민찬수가 가게 안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볼일이 끝나 먼저 일어난 자리에는 박유성이 홀로 남아 감자튀김 먹방을 찍고 있었다.
“파이터즈는 올해도 1라운드 지명권 거래할 거야. 그리고 작년처럼 2차 지명권을 받겠지.”
“돈이 없으니까요?”
“맞아. 운영비도 운영비지만 그렇게 해야 계약금을 줄일 수가 있거든.”
“1라를 안 뽑고 2라만 2명 뽑아서요?”
민찬수가 코웃음을 쳤다. 파이터즈 소속이지만 돈 앞에서 약해지는 구단을 볼 때마다 정이 뚝뚝 떨어졌다.
그러자 윤나라 대표가 민찬수의 말을 정정했다.
“정확하게는 1라운드 선수를 2라운드에 뽑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예요?”
“1라운드에 뽑힐 수 있는 선수가 다 해서 몇 명이야?”
“그야 12명이죠. 12개 구단이니까.”
“그래. 그럼 13번째로 뽑힌 선수는 12번째로 뽑힌 선수와 실력 차이가 클까?”
“별 차이 없지 않을까요? 한 끗 차이인데.”
“맞아. 별 차이 없어.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구단 취향 차이로 갈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그런 선수를 파이터즈는 2라운드 픽으로 뽑는 거야.”
“오호. 그래서 1라운드 선수를 2라운드에 뽑는다는 거예요?”
“드래프트는 스네이크 방식으로 진행돼. 1라운드 첫 번째 픽을 가진 파이터즈는 2라운드에서 가장 마지막 픽을 가지게 되는 거지. 문제는 2라운드 중반으로 넘어가면 선수들의 기량이 떨어진다는 거야. 2라운드 초반까지는 아까 말한 대로 구단 취향 차이지만 중반 이후로는 실력이 아쉽거든.”
“1라운드 1픽은 계약금을 많이 줘야 해서 부담스러운데 그렇다고 2라운드 꼴픽부터 뽑으면 선수 수급 자체가 되지 않으니까 1라운드 1픽을 주고 2라운드 상위 픽을 가져온다는 거네요?”
“맞아. 그렇게 하면 수준급 선수를 데려오면서 계약금도 줄일 수 있어. 1라운드급 선수라 해도 2라운드에서 뽑혔으니까 타구단 2라운드보다 조금 덜 줘도 할 말 없는 거지.”
“그러면서 현금 장사로 운영비도 채우고요?”
“그래서 김경민 단장이 장사꾼인 줄로만 알았는데 재율이 얘기하는 거 보고 놀랐어. 재율이가 올림픽으로 병역 면제 받으면 파이터즈 입장에서는 한동안 외야 고민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중견은 제가 보고 코너 한 자리에 재율이 들어가면 나머지 한 자리는 용병으로 채우겠네요.”
“바로 그거야.”
“그런데 재율이 갑자기 메이저리그 간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병역 먹튀하면요?”
“재율이 실력에 메이저리그는 무리야. 간은 볼 수 있겠지만 아마 금방 접을걸?”
윤나라 대표가 피식 웃었다. 성재율이 들었다면 엄청 서운해하겠지만 송현민급이 아니라면 FA 대박을 노리는 편이 현명했다.
“그보다 너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저요? 저야 뭐…… 쥐 죽은 듯 조용히 지내야죠.”
“계속 야구 할 거야?”
“그럼요? 야구 때려치우고 배우 하라고요? 싫어요.”
“언제는 야구 재미없다며?”
“그래도 평생 해왔던 건데 계속해야죠. 배우는 뭐 아무나 합니까?”
주차장 쪽으로 발을 돌리며 민찬수가 투덜거렸다.
윤나라 대표는 얼굴이 아깝다며 배우를 권하지만.
자신보다 잘생기고 예쁜 연예인들 옆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보다 제법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야구에 전념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때 나란히 걷던 윤나라 대표가 발을 멈췄다.
“하아. 또 뭐니.”
“왜요?”
“저기.”
윤나라 대표가 짜증스럽게 턱짓을 했다.
그곳에는 나영진 기자가 차에 등을 기댄 채 서 있었다.
“나 기자님 아니에요?”
“너. 괜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알았어?”
“저 지금 근신 중이잖아요.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가 없어요.”
“암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입 다물고 있어.”
윤나라 대표가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나영진 기자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나영진 기자가 씩 웃으며 손을 들었다.
“어이구, 윤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여기서 뭐 하세요? 설마 저 기다리신 거 아니죠?”
“그냥요. 지나가던 길에 배가 고파서 햄버거나 씹을까 했는데…… 윤 대표님하고 민찬수 선수가 보이더라고요?”
“……햄버거요?”
“그런데 박유성 선수는 왜 만나신 거예요?”
“…….”
순간 윤나라 대표는 말문이 막혔다.
근신 중인 민찬수로 시비를 걸면 따끔하게 한마디 쏘아붙이려 했는데.
박유성을 만나는 걸 봤을 줄은 미처 몰랐다.
“대답 안 해주시면 오랜만에 소설 씁니다? 음주 파문 민찬수, 에이전트 대동해 심야에 박유성 불러낸 이유는? 어때요? 그럴싸하지 않아요?”
나영진 기자가 윤나라 대표와 민찬수를 압박하던 그 시각.
“유성아. 안녕~”
“어떻게 오셨어요?”
“어떻게 오긴. 사수 놈 전화받고 왔지. 그래도 화장 지우기 직전에 전화받아서 나온 거야. 아니었으면 전화 무시했을걸?”
박유성의 앞에 공윤경 기자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걸 혼자 다 먹은 거야? 이게 다 들어가?”
“그냥 별생각 없이 먹다 보니까 먹게 되던데요?”
“운동 선수 위는 일반 사람들하고 다르다더니 정말인가 보네. 그래서 배는 좀 찼어?”
“네. 배불러요. 감튀 드실래요?”
“고맙네. 누나도 생각해 주고.”
3회차로 넘어와 나영진 기자를 만난 건 처음이지만 공윤경 기자와는 안면이 있었다.
공윤경 기자가 몇 번 신성 고등학교로 찾아와 인터뷰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앞선 회차 때도 서로 안부를 묻고 지내던 사이라 금세 친해졌고.
지금은 스스럼없이 누나라 부르게 됐다.
“감튀 먹으니까 햄버거 먹고 싶어지네.”
“제가 사드릴까요?”
“아니야. 이 시간에 먹으면 살쪄.”
“누나는 살 좀 쪄도 될 거 같은데요?”
“어머, 우리 유성이 말 예쁘게 하는 거 봐. 타격 8관왕에 MVP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니까?”
“역시 누나가 뭘 좀 아시네요.”
“그리고 누나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여자들한테 함부로 햄버거 사주고 그러지 마. 내가 아무리 박봉이어도 그렇지 고등학생한테 햄버거 얻어먹겠니?”
“누나니까 사드린다는 거였는데요?”
“너 어디 학원 다니니? 어떻게 여자들이 좋아할 말만 골라서 하지?”
박유성을 대견한 눈으로 바라보던 공윤경 기자가 이내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박유성이 보는 앞에서 녹음 어플을 켰다.
“인터뷰 하시게요?”
“응. 사수 놈이 보험 들어오래.”
“보험이요?”
“물어보니까 협회 청구용이래. 협회에서 딴소리할 수도 있거든.”
“그럼 녹취라도 할 걸 그랬네요.”
“네가 녹취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암튼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드는 보험이라고 하니까 편하게 하자.”
“무슨 얘기 하면 되는데요?”
“그냥 아까 있었던 일들을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돼. 대신에 절대 앞서가지 말고 약간 뜸 좀 들여. 나한테 붙잡혀서 억지로 인터뷰하는 컨셉으로. 알겠니?”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
“사수 놈이 꼭 그렇게 따오래. 아니면 딴소리 나올지도 모른다고.”
오밤중에 불러낸 나영진 기자를 씹듯 감자튀김을 씹어대던 공윤경 기자는 성에 차지 않았던지 결국 햄버거 세트를 두 개 더 시켰다.
“유성아. 하나 더 먹을 수 있지?”
“저 배부른데요.”
“그러지 말고 먹자. 나 혼자 먹으면 좀 그렇잖아.”
햄버거와 감자튀김에 음료까지 싹싹 비우고 나서야 인터뷰가 시작됐다.
“박유성 선수. 갑자기 SNS에 메시지를 올렸는데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그냥요. 제가 욕심낼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아까 민찬수 선수하고 민찬수 선수 에이전트 만나던데? 무슨 이야기 했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그게…….”
“그냥 솔직히 말해줘요. 그래야 나도 오해를 안 하죠.”
“별 얘기 안 했습니다.”
“민찬수 선수하고 친해요?”
“네?”
“이 시간에 찾아와서 불러낼 정도면 엄청 친한 거 같은데? 어떻게 알고 지내는 사이예요?”
콘셉트를 잡은 대로 공윤경 기자는 박유성을 일부러 몰아붙였고.
박유성도 적당히 말을 얼버무리며 장단을 맞췄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이게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이게 뭡니까?”
“베이스볼 패치 쪽에서 보낸 인터뷰 파일인데 한번 들어보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인터뷰 파일이요?”
“네. 민찬수 선수가 에이전트를 대동하고 박유성 선수를 따로 만난 모양입니다.”
“누가 누굴 만났다고요?”
“그게 민찬수 선수가…….”
“환장하겠네. 근신 중인 선수가 박유성 선수를 왜 만납니까!”
프로 야구 협회가 발칵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