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98화 (98/412)

타자 인생 3회차! 98화

15. 박유성 선수가 필요합니다(1)

1

“내 얘기는 들었니?”

“네?”

“음주 건 말이야.”

“네. 기사로 봤습니다.”

“어떤 기사를 봤는지 모르지만 고의로 음주 운전을 방조하거나 했던 건 아니야. 술이 너무 취했고 집에 데려다준다고 해서 차에 탄 것뿐이거든. 그런데 그 형도 취했는지 몰랐어.”

“아. 네에.”

민찬수의 변명을 박유성은 건성으로 넘겼다.

기사를 통해 민찬수가 사고 당시 담당 경찰을 매수하려 했고 기자들이 몰려오자 구급차를 타고 사고 현장을 빠져나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적당히 장단을 맞춰줘야 하는 상황이라 굳이 따지지 않았다.

하지만 민찬수는 박유성의 반응을 달리 해석했다.

‘이 녀석. 잘 모르네.’

기사를 꼼꼼히 살펴봤다면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 텐데 박유성은 곧이곧대로 믿는 것 같았다.

‘어차피 보이콧만 시키면 그만이니까.’

민찬수는 실룩거리는 입꼬리를 꾹 억눌렀다. 그리고 계속해서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솔직히 내가 잘못한 게 맞아. 지인이 부른다고 해서 무작정 나가는 게 아니었는데 막상 가 보니까 뺄 타이밍이 안 나오더라. 그렇게 한 잔 두 잔 주는 걸 받아 마시다 보니까 취해 버렸고. 더 있다간 정말 사고 칠 거 같아서 억지로 집에 가려고 했던 건데 참…….”

“네에.”

“암튼 나도 반성 많이 하고 있어. 구단에서 근신 처분도 받았고. 협회 상벌 위원회 결과가 아직 안 나왔지만 어떤 결과라도 달게 받으려고.”

“힘드시겠어요.”

“힘들긴. 내 잘못인데. 그런데 나 때문에 구단이 피해를 보게 되어서 그게 마음에 걸려.”

“구단에서요?”

“사실 나 말고도 대표팀에 뽑힐 선수들은 많거든. 그런데 내가 어리고 아직 병역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서 나한테 기회를 줬던 거야.”

“아, 네에.”

“구단 입장에서는 내가 올림픽 가서 잘하길 바랐을 텐데 불미스러운 일로 하차를 하게 되니까 단장님과 프런트 볼 면목이 없더라. 그래서 말인데…… 유성이 네가 양보 한번 해주면 안 되겠니?”

“제가요?”

“사실 내 자리는 야구 선수 민찬수의 자리가 아니라 파이터즈 선수 자리거든. 그런데 언론들이 설레발을 치는 바람에 지금 구단 입장이 난처해졌어.”

민찬수의 설명이 답답했던지 옆에 앉아 있던 윤나라 대표가 끼어들었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설명할게요.”

“누나. 제가 할게요.”

“이런 건 에이전트인 내가 하는 게 맞아.”

“대신 살살 좀 하세요. 우리 유성이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요.”

“그래. 알았으니까 넌 가서 햄버거나 주문해.”

민찬수가 눈치껏 자리를 피하자 윤나라 대표가 조금 더 노골적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박유성 선수도 올림픽 메달을 따면 병역 혜택을 받는 거 알고 있죠?”

“네. 동메달 이상 따면 병역 면제라고 들었습니다.”

“물론 아시안 게임도 있지만 올림픽에서 뛸 수 있는 기회는 귀하거든요. 베이징 올림픽 이후로 13년간 정식 종목에서 빠졌고 이번에도 한 대회 쉬고 다시 들어온 거고요. 이번 대회 결과에 따라 다음 대회 유지 여부가 결정된다고 하는데 또 빠질 수도 있는 거니까요.”

“네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넘어가고요. 병역 혜택이 걸린 대회는 원래 각 구단마다 미필 선수들을 한 명씩 미는 게 관례예요. 파이터즈에서는 민찬수 선수였고요. 그런데 민찬수 선수가 빠져 버렸죠. 그 자리를 지금 박유성 선수가 들어가려고 하는 거고요.”

“그건…….”

“알아요. 본인 의지가 아니라는 거. 물론 야구 선수로서 욕심은 나겠죠. 일찍 병역 혜택을 받게 된다면 선수 생활 중단 없이 쭉 갈 수 있으니까요. 박유성 선수 정도 되는 실력이라면 해외 진출도 가능하겠죠? 혹시 에이전트는 구했어요?”

“네? 아니요. 아직이요.”

“이런. 내가 아직 명함도 안 줬네요.”

윤나라 대표가 명품 핸드백에서 명함 지갑을 하나 꺼냈다. 그러고는 분홍빛이 감도는 명함을 하나 내밀었다.

“오늘 이런 자리가 아니었다면 박유성 선수와 에이전트 계약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아쉽네요. 명함 버리지 말고 잘 가지고 있어요. 나하고 계약 안 해도 되니까 혹시라도 에이전트 계약에 대해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고요.”

“네. 감사합니다.”

“난 솔직히 이번 올림픽이 아니더라도 박유성 선수는 금방 기회를 잡을 거라고 봐요. 아마추어 대회라고 해도 야구 월드컵 타격 8관왕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잖아요?”

“아닙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생각보다 겸손하네요? 아무튼 에이전트가 아니라 업계 관계자로서, 박유성 선수가 친동생 같아서 해주는 말이니까 잘 들어요.”

“네.”

“이 판에서 빠져요. 더 시간 끌면 박유성 선수도 다쳐요. 아까 말했죠? 구단끼리 암묵적으로 합의한 룰이 있다고. 민찬수 선수가 빠지면 파이터즈에서 다른 선수를 데려가는 게 맞아요. 그런데 박유성 선수는 스타즈 쪽이잖아요?”

“네. 아마 그럴 겁니다.”

“스타즈 쪽에서 신성 고등학교 선수를 상위 라운드에 지명하지 않는 거 저도 알아요. 근데 그건 상위 라운드에 뽑힐 만한 선수가 없어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박유성 선수는 다르죠. 지금 스타즈 홈페이지 난리 난 거 모르죠?”

“스타즈 홈페이지요?”

“스타즈 팬들이 이례적으로 박유성 선수를 데려와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팬들이 철저하게 모기업의 중립을 요구했거든요.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죠.”

윤나라 대표가 핸드폰으로 미리 스캔해 놓은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13534 박유성 선수 우리가 데려와야 합니다. (23)]

[13535 프런트야. 진짜 박유성 놓치는 병신 짓거리 하려는 거 아니지? (14)]

[13536 박유성 우선 지명 기원 10일 차. 원기옥을 모아봅시다. (164)]

[13537 우선지명 문제는 구단에 맡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92)]

└13538 우선지명은 우리 지역 학교 선수들 중에 가장 잘하는 선수를 데려오라고 준 권리입니다. (23)

└13539 이 양반 또 시작이네. 혹시 신성 고등학교 지나가다 돈 뜯겼나요? (6)

└13540 야구 월드컵 타격 8관왕에 MVP입니다. 메이저리그에 뺏기는 거라면 몰라도 우리 지역 선수를 다른 구단에 뺏기는 건 말도 안 됩니다. (15)

“봤죠? 이게 스타즈 팬들 민심이에요. 혹시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 알아요?”

“들어는 봤어요.”

“처음에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가 쑥 들어갔어요. 솔직히 나현호 선수 건도 그래요. 당시에는 환영하는 팬들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실수 한 번 했다고 지금까지 난리 치는 거 봐요. 팬들도 똑같이 실수하는 인간들인데 선수들에게만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어이없지 않아요?”

윤나라 대표는 스타즈 팬들을 비난했지만.

당시 스타즈 팬들이 분개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현호의 음주 운전 사건이 터지고 신성 그룹 관계자의 입에서 나온 말 때문이었다.

‘야구단을 만드는 건 회장님의 평생 숙원이셨습니다. 회장님이 아니었다면 스타즈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얘깁니다. 그런데 고작 선수 하나 가지고 회장님과 그룹을 비난하는 게 가당키나 합니까?’

추후에 신성 그룹 직원의 말이 와전되어 기사화됐다는 게 알려졌지만 당시에는 불난 여론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신상욱 회장은 보이콧 운동까지 벌이는 팬들을 달래기 위해 스타즈 운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혀야 했고.

스타즈 구단 역시 신성 고등학교 출신 선수들은 우선 지명을 하지 말라는 별도의 지시가 내려왔다는 사실까지 언급하며 등 돌린 팬들을 달래려 노력했다.

만약 그때 신상욱 회장이 구단주로서의 권한을 내려놓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성적은 몰라도 아마 지금처럼 빠르게 자리를 잡지는 못했을 거야.’

박유성은 애써 말을 아꼈다.

1회차 시절 FA를 통해 스타즈에서 뛰었던 터라 구단의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윤나라 대표와 입씨름을 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윤나라 대표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아무튼 이런 분위기라면 스타즈에서 박유성 선수를 우선 지명할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다른 구단들도 동요하고 있고요.”

“동요요?”

“민찬수 선수 없으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스타즈와 파이터즈. 국내에 남는다면 둘 중에 어디로 가고 싶어요?”

“그야…….”

“백 번 물어도 스타즈겠죠. 아마 스타즈라면 메이저리그 오퍼보다 더 챙겨줄걸요? 하지만 파이터즈는 그렇게 못 해요. 알죠? 파이터즈 돈 없는 거. 모기업에서 투자 자체를 안 해요. 파이터즈에서 1라운드 지명을 받아도 다른 구단 3라운드 지명 선수보다 계약금을 못 받게 될 수도 있어요.”

윤나라 대표가 심각하게 말하지 않아도 박유성 역시 파이터즈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1회차와 2회차 모두 파이터즈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2회차 때는 파이터즈에서만 16년을 뛰었다.

‘그깟 영구 결번이 뭐라고 참…….’

박유성의 입가로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 그러자 윤나라 대표가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박유성 선수가 올림픽 포기하면 스타즈에 갈 수 있어요. 하지만 박유성 선수가 올림픽에 가면 스타즈는 박유성 선수 우선 지명 못 해요. 박유성 선수를 영입하면 파이터즈의 권리를 침해한 셈이니까요. 물론 파이터즈에서 1차 지명권을 스타즈에 팔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박유성 선수 데려오면 부담이 크지 않겠어요?”

“그렇겠죠.”

“그러니까 박유성 선수도 현실적으로 생각해요. 이대로 올 시즌만 잘 마쳐도 1차 지명 이상은 떼놓은 당상인데 뭐 하러 도박을 해요? 올림픽 나갔다가 부진하기라도 해봐요. 만에 하나 메달 못 따면 박유성 선수 탓하는 사람 많을걸요?”

“…….”

“그러니까 이번 판은 빠져요. 만약에 박유성 선수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내가 책임지고 스타즈 보내줄게요. 어때요?”

순간 박유성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1회차 시절과 2회차 시절을 겪으며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파이터즈라 이번 3회차 때도 파이터즈에 가면 운명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이건 못 참겠는데?’

프로 야구 12개 구단 중에 가장 돈을 잘 쓰는 스타즈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하니까 마음이 흔들렸다.

그때 민찬수가 양손에 쟁반을 들고 돌아왔다.

“무슨 햄버거를 이렇게 많이 샀어? 저녁 안 먹었어?”

“누나도 참. 야구 선수들은 이 정도가 기본이에요. 유성이 너 햄최몇이니?”

“저 별로 많이 못 먹는데요.”

“그래서 몇 개?”

“일곱 개쯤이요?”

“봤죠? 밤늦게 불러냈는데 햄버거까지 부족해 봐요. 유성이가 저를 뭐로 보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출출했던 박유성은 민찬수와 윤나라 대표가 보는 앞에서 햄버거를 야무지게 먹어 치웠다.

그리고 햄버거값으로 SNS에 글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박유성입니다. 일단 부족한 제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다만 대학 리그에서 뛰는 선배님들도 많은데 고등학생인 제가 올림픽에 출전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보다 더 좋은 선수가 올림픽에 나가 대한민국 대표팀이 꼭 금메달을 땄으면 좋겠습니다. @ YS_Park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