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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94화 (94/412)

타자 인생 3회차! 94화

14. 성인 국대라굽쇼?(3)

고우일과 이동엽이 눈치껏 발을 빼자 김현중도 버티기가 부담스러워졌다.

“아버지. 저도 국대 포기할게요.”

“뭘 포기한다고?”

“국대요.”

“포기는 김장할 때나 쓰는 거다. 사내놈이 포기라니. 그게 지금 이 아비 앞에서 할 소리냐?”

난을 닦던 김경진 서울시 협회장이 혀를 찼다.

아버지인 자신은 아들을 국가대표로 만들기 위해 이렇게 노력 중인데 아들 녀석은 속 편한 소리나 내뱉고 있으니 한심스럽기만 했다.

“너는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다. 아마추어 선수들 중에서 실력 있는 선수들만 들어간 게 청소년 국가대표고. 그래서 언급되는 것뿐이야.”

김경진 서울시 협회장은 아들인 김현중도 국가 대표에 도전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청소년 대표면 다 똑같은 청소년 대표다.

대회 중에 성적이 조금 더 잘나왔다고 해서 급이 다르다고 떠들어대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실제로 청소년 대표 시절 날고 기던 선수 중에 프로에 와서 잘한 선수가 몇이나 되는가.

잘하는 선수들의 이력 중에 청소년 대표 타이틀을 거론하니까 많아 보일 뿐이지 청소년 대표를 거치지 않고도 프로 생활을 하는 수가 훨씬 더 많았다.

“하나 물어보자. 너는 성열이가 너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니?”

“아뇨. 제가 타율은 앞서지만 타점이나 홈런은 성열이가 더 낫죠.”

“하지만 성열이는 청소년 국대에서 탈락했고 너는 붙었지. 그럼 네가 성열이보다 나은 거냐?”

“아니요.”

“그래. 내가 보더라도 성열이는 이번 실패를 교훈 삼아 프로에 가서 잘할 녀석이다. 어쩌면 프로에 가서는 너보다 더 잘할 수도 있고.”

비록 박유성의 합류로 청소년 국가대표에서 최종 탈락하긴 했지만 경성 고등학교 4번 타자 배성열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애당초 방용택 감독도 배성열이 아니라 고우일과 김현중 중 한 명을 빼고 갈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테스트 때 배성열이 가장 부진했고.

결과적으로 20년 만의 U-18 야구 월드컵 우승 멤버에 들지 못했다.

“10년쯤 지나면 너희들은 야구 월드컵 우승 멤버라고 모여서 웃고 떠들고 할지 모르지. 성열이는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부러운 눈으로 지켜봐야 할 테고. 그렇다고 성열이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지라는 건 아니다. 나도 전해 들었지만 정당한 테스트였고 결과가 그렇게 나왔으니 어쩔 수 없는 셈이지. 그러니까 너도 최소한 테스트라도 볼 각오를 했으면 좋겠다.”

“테스트요?”

“그래. 테스트. 지금 올림픽 국대에는 단순히 잘하는 선수가 필요한 게 아니야. 그랬다면 대학 선수들 중에서 최고라는 김혜성을 데려가겠지.”

“그럼요?”

“민찬수의 빈자리를 채울 선수가 필요한 거다. 민찬수는 외야 멀티 플레이어고.”

“……아.”

“너와 박유성이. 둘 중에 누가 외야 멀티 포지션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김현중은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고 그 정도면 설명이 됐다고 생각한 김경진 서울 협회장은 다시 난을 닦았다.

시간을 보내는 데 난을 치는 것보다 좋은 게 없었다.

하지만 김현중은 김경진 서울 협회장의 생각처럼 국가 대표를 포기하겠다는 마음을 접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을 단단히 굳힐 수 있게 됐다.

‘아버지가 왜 저렇게 욕심을 내시나 했는데 겨우 멀티 포지션 때문이었다니. 더 충격인데.’

이번 U-18 야구 월드컵에서 김현중은 고우일과 번갈아가며 좌익수와 우익수 수비를 맡았다.

우익수로 선발 출전하는 홍상철이 후반에 수비 강화를 위해 빠지면 그 빈 자리는 자신이나 고우일 중 선발 출전하지 않은 선수의 몫이었다.

그에 비해 박유성은 붙박이 중견수로 뛰었으니 사정을 모르는 김경진 서울 협회장의 눈에는 중견수밖에 보지 못하는 선수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중견수만큼은 아니지만 박유성은 좌익수나 우익수 포지션도 능숙한 편이었다.

김현중은 대표팀 합류가 늦어 얘기로만 전해 들었지만.

첫 수비 테스트 때 방용택 감독과 전근우 수석 코치가 박유성의 좌익수 선발 출전을 두고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타구의 방향이 달라서 애를 먹어야 정상인데 마치 제 포지션처럼 소화해 냈기 때문이다.

다만 박유성이 좌익수나 우익수 수비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였고 박유성의 빠르고 터무니없이 넓은 수비 범위를 활용하려면 중견수가 낫다는 결론이 나와서 주전 중견수로 뛰게 된 거지 박유성이 코너 외야수 수비가 불가능한 건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청소년 국대에서는 유성이가 최고였으니까.’

무겁게 한숨을 내쉰 김현중은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미리 작성해 놓은 글을 살폈다.

아버지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알려준다면 조금 더 지켜보려고 했지만.

억지를 부린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더는 망설이고 싶지 않았다.

타닥탁. 타닥탁. 딸깍.

메모장에 쓴 글을 SNS에 옮겨붙이고.

마지막으로 완료 버튼을 누른 뒤 김현중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게 맞아.”

아마 한동안 아버지로부터 용돈 받기가 쉽지 않겠지만.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진 않았다.

2

[안녕하세요. 경성 고등학교 김현중입니다. 이번 U-18 야구 월드컵 때 성원해 주신 많은 야구 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 드립니다. 이번 우승 때 제가 한 일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승한 것만으로도 기쁘고 가슴이 벅찬데 많은 분들이 올림픽 아마추어 선수 선발에 언급해 주시더라고요. 개인적으로 감사하고 더 열심히 야구해야겠다는 동기 부여가 됐습니다. 다만 저도 동엽이와 같은 생각입니다. 여러 자리가 비어 있다면 되든 안 되든 한번 도전해 보겠지만 한 자리라면 저는 유성이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유성이가 얼마나 잘하는지는 다들 잘 아시죠? 여러분들이 모르시는 팁을 하나 드리자면 유성이는 좌익수도 우익수도 잘 봅니다. 다 잘하는데 중견수를 너무 잘해서 중견수로 출전한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멀티 외야수라는 이유만으로 저를 언급하지는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HyuJoong_K]

고우일과 이동엽에 이어 김현중까지 SNS를 통해 국가대표 선발을 고사하자 베이스볼 파크가 떠들썩해졌다.

└뭔가 기분이 쎄한데?

└그러게. 요즘 애들 촉 좋잖아. 이번 올림픽 때 성적 내기 힘드니까 알아서 몸 사리는 거 아냐?

└솔직히 이번 올림픽은 메달만 따도 다행이죠. 우승은 어림도 없고.

└빼애애애액! 그래도 우린 지난 도쿄 올림픽 때 아쉽게 동메달을 놓쳤다고요오!

└6개국 참가해서 4등 한 대회 말하는 거죠?

└하아. 베이징 올림픽 전승 우승의 신화를 썼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

└그때는 대한민국 야구 전성기였고요. 지금은 바닥 찍고 올라가는 상황이니까 어쩔 수 없죠.

7월 14일부터 시작되는 LA 올림픽 야구에 참가하는 나라는 총 8개국.

7년 전 도쿄 올림픽보다 2개국이 늘어났다.

먼저 개최국 자격으로 미국이 이름을 올렸고.

2027 프리미어 12 4강팀인 대한민국과 일본, 베네수엘라가 나머지 자리를 채웠다.

대한민국과 일본이 빠진 아시아/오세아니아 티켓은 대만의 차지였다.

호주가 오세아니아 지역 전승을 거두고 대만에 도전했지만 대만의 유일한 메이저리그 투수 천신위의 벽을 넘지 못했다.

유럽/아프리카 예선에서 네덜란드와 혈전을 치른 끝에 올라온 이스라엘도 캐나다와의 대륙 간 최종 예선에서 탈락했다.

신흥 야구 강국 푸에르토리코와 도미니카 공화국은 아메리카 전체 예선을 뚫고 합류.

최종 8개국의 면면만 놓고 봤을 때 대한민국 대표팀이 손쉬운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상대는 하나도 없었다.

└4개국씩 풀리그 치르고 4강이죠?

└네. 무조건 2위 안에 들어야 하는데 그것부터가 빡세요.

└이스라엘이 살아서 우리 조에 들어왔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이스라엘도 유럽 예선 치르는 거 보면 만만치 않아요. 지난번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처럼 덜미 잡힐 수도 있고요.

└ㄷㄷㄷ 10년도 더 지난 경기를 아직까지 우려먹는다고요?

└축구에서 브라질하고 독일 어쩌다 한 번 잡은 걸로 사골 끓일 분임

└솔직히 말해봅시다. 우리 4강 진출 가능성 몇퍼임?

└냉정하게 50퍼센트 봅니다.

└오오, 반반?

└그냥 하늘의 뜻에 맡긴다고요.

└하늘한테 던지지 말고 의견을 말해보라고요 ㅠ.ㅠ

└저는 가능성 크다고 봅니다. 미국은 어렵지만 대만하고 도미니카 공화국은 충분히 할 만해 보여요.

이미 끝난 조편성에서 대한민국은 주최국 미국, 대만, 도미니카 공화국과 A조를 이뤘다.

B조는 일본과 캐나다, 베네수엘라, 푸에르토리코.

A조에 비해 B조가 힘겨워 보인다는 의견이 많지만 조 추첨 초반 분위기는 그 반대였다.

└이쯤 되면 우리도 죽음의 조 아님? 어떻게 만만한 팀이 하나도 없냐?

└죽음의 조는 B조죠. B조에 비하면 해볼 만함.

└진짜 처음에 조편성 했을 때는 다들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ㅋㅋㅋ

└조편성 생중계 보셨나요? 그때 분위기 어땠어요?

└일본하고 미국이 시드를 나눠 가졌잖아요. 동대륙 팀은 분리 배치가 원칙이었고요. 대만이 없었으면 우리는 무조건 A조인데 대만이 있으니까 다들 B조를 외쳤죠.

└진짜 채팅창에서 한목소리로 울부짖었는데 A 떠버림. ㅋㅋㅋ

└근데 왜 B조로 가려던 거에요? 일본이 만만해서?

└일본이 만만한 건 아니지만 우린 일본 상대로 120퍼센트 풀전력 가능하잖아요.

└일본보다 캐나다 때문이에요. 북미는 미국과 캐나다뿐이라 캐나다는 B조 고정이거든요.

└아하, 캐나다 깔고 가자는 거였네요.

└만약에 대만이 B조 나왔으면 진짜 A조가 죽음의 조였을 텐데 대만이 A조 떠서 진짜 다행이었음.

└그때 누가 1ch 반응 가져왔는데 순간 정전이더니 다들 말도 안 된다 주작이다 울부짖더라고요.

└일본은 미국도 잡겠다는 마인드 아니었어요?

└대만이 7번째로 나왔거든요 한미도 / 일캐베 나온 다음에 뽑은 거라서 일본이 개같이 멸망해 버림.

└중남미 팀 3개라서 어느 한 조에 2팀 들어가야 했는데 최약체라 불리는 도미니카 공화국이 A조에 붙고 메이저리그 풀전력 도핑 가능한 베네수엘라하고 푸에르토리코가 B조로 떨어졌으니 죽을 맛이었겠죠.

└그래서 지금 정배는 누굽니까?

└토토충이세요?

└넵. 토토충입니다.

└헐. 너무 대놓고 인정하니까 할 말이 없네. ㅎㅎㅎ

└토토충은 베팍하면 안 됩니까? 난 베팍하면 안 돼요?

└갑자기 민식이 형 목소리가 들리는 이유는 뭘까 ㅋㅋㅋ

└정배는 미국 도박사이트 가서 찾는 게 빠르지 않을까요? 여기서 물어본들 애국심과 개인 감정을 배제 못 할 텐데요?

└솔직히 A조는 미국 1위고 나머지는 모름. 고만고만해서. B조는 캐나다 탈락에 나머지는 모름. 고만고만해서.

└A조는 1위 확정이고 B조는 꼴등 확정임? ㅋㅋㅋ

└그런데 캐나다도 메이저리그 선수들 많지 않아요?

└생각보다 없더라고요. 캐나다에서도 선수 차출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고.

└메이저리그 이번에 올스타전 끝나고 올림픽 브레이크 들어가는 거 아니었음?

└올림픽 브레이크는 맞는데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올림픽 참여는 선수 자율에 맡긴다고 했대요.

└그거 알아서 뽑아가란 소리 아니었나요?

└캐나다는 분위기가 다른가 보더라고요.

└분위기가 다른 게 아니라 마땅히 뽑을 선수가 없어서 그래요.

└ㅇㅂㅇ. 맞음 메이저리그에서 이름 알 만한 캐나다 선수는 별로 없음.

└그럼 한국은요?

└송현민 기정후 감백호 끗…….

└뭐야. 우리가 최약체잖아. ㅠ.ㅠ

└괜찮아요. 메이저리거가 1명뿐인 대만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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