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88화
13. 박유성은 못 말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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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라운드 2일 차 경기에서 미국 대표팀이 일본에게 덜미를 잡혔을 때.
대다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미국 대표팀의 결승 진출 실패를 예상했다.
“한국은 강팀이야. 미국이 이기긴 쉽지 않을 거야.”
“그야 당연하지. 우리를 꺾은 일본을 한국은 가볍게 제압했잖아?”
“하아. 당초 계획대로 선수 선발이 이루어졌다면 일본을 이겼을 텐데 말이야.”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해봐야 아무 의미 없어. 이번 대표팀이 역대 최약체인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라고.”
“솔직히 말해서 뽑으려던 멤버들을 데려왔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야. 우린 초반에 2패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조 1위로 슈퍼 라운드에 올라왔잖아.”
“하긴. 선수가 보강되어도 타선 쪽이지 투수 쪽은 아니니까.”
“그런데 어쩌다가 괜찮은 투수들이 씨가 마른 거야?”
“메이저리그 구단들 잘못이지. 빠른 공을 던지는 북중미 유망주들을 수집하듯 사들이는데 누가 투수를 하고 싶겠어?”
“그것도 다 핑계야. 타자가 투수보다 돈을 더 많이 버니까 타자를 선호하는 것뿐이라고.”
미국 대표팀은 출범부터 시끄러웠다.
당초 내정됐던 감독이 건강을 핑계로 감독 제안을 고사하고 기존에 고집스러운 선수단 운영으로 하차했던 토니 스크럭스 감독이 다시 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면서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토니 스크럭스 감독의 악명을 전해 들은 일부 선수들은 청소년 대표팀보다 모교와 리그를 선택했고.
결원을 추가 선발하는 과정에서까지 잡음이 나오자 청소년 대표팀에 대한 기대감도 뚝 떨어졌다.
“그런데 그 얘기 진짜야?”
“무슨 얘기?”
“제레미 라이트가 토니 스크럭스 감독의…….”
“숨겨놓은 아들이라고? 그건 헛소리잖아.”
“아니. 그거 말고. 토니 스크럭스 감독과 함께 야구를 했던 동료의 아들이라고 하던데?”
“설사 그렇다 해도 상관없을 거 같은데? 기존에 선발했던 선수들이 먼저 대표팀 합류를 거부했잖아. 토니 스크럭스 감독도 팀을 꾸려야 하니까 자신과 맞는 선수를 찾은 거겠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너야말로 이상하게만 생각하는 거 아니고? 제레미 라이트는 100mile/h(≒160.9㎞/h)의 공을 던지는 투수야. 이번에 선발된 미국 대표팀 투수들은 물론이고 또래의 투수들을 통틀어 첫손에 꼽힐걸?”
“공만 빠르면 뭐 해. 제구가 들쑥날쑥인데.”
“정확하게는 제구의 문제가 아니라 메이크 업의 문제야. 마운드 위에서 집중을 하지 못한다고.”
토니 스크럭스 감독이 제레미 라이트를 발탁했을 때 대다수 언론들은 환영의 뜻을 전했다.
100mile/h이라는 빠른 공을 던지는 제레미 라이트가 미국 대표팀의 뒷문을 책임져 줄 거라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성적은 2블론 세이브에 그쳤다.
잘 던지다가도 갑자기 나사가 풀린 로봇처럼 삐거덕거리는 제레미 라이트를 보며 토니 스크럭스 감독도 고집을 꺾어야 했다.
“제레미 라이트까지 갈 필요도 없어. 내일 선발은 마르쿠스 고든이라고.”
“뭐? 말도 안 돼. 거짓말하지 마!”
“정말이야. 조이 베런트 코치를 붙잡고 한참을 캐물어서 겨우 얻어낸 정보라고.”
“만약 그렇다면 최악인데?”
“마르쿠스 고든을 내느니 차라리 로버트 줄리안이 낫겠어.”
“로버트나 마르쿠스나 똑같아.”
“하아. 미국 대표팀 마운드는 왜 이 모양인 거야?”
미국 대표팀의 현실 앞에서 무겁게 한숨을 내쉬던 기자들은 이내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한국의 썬 말이야. 제법이지 않아?”
“제법? 아직도 썬을 깔보는 놈이 있었네?”
“깔보다니? 나는 칭찬을 한 거라고.”
“그런 칭찬은 제레미 라이트에게나 해. 썬은 네가 그런 식으로 칭찬해도 되는 레벨의 선수가 아니니까.”
처음 박유성이 히트 포 더 사이클을 쳤을 때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기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대만전에서는 3연타석 홈런을 때려냈고.
일본을 상대로 홈스틸을 포함해 6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스틸 포 더 사이클을 기록했으며.
비록 실책으로 더럽혀졌지만, 모두를 경악하게 만든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까지 때려냈다.
게다가 매 경기 환상적인 호수비를 곁들이며 공수주에 걸쳐 완벽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다 보니 미국 대표팀의 간판타자 타일러 브릭스와 일본의 미래라 불리는 스즈키 지로의 활약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썬은 확실히 잘해.”
“보통 잘하는 정도가 아니야. 또래 선수들과 레벨이 다르다고.”
“썬은 타석에서 승부를 즐길 줄 알아. 볼은 쳐다보지도 않다가 또 어떨 때는 일부러 볼을 건드리기도 해.”
“베이스 러닝은 완벽하고 필드에 나가면 냉철하게 수비 라인을 조정하지. 마치 메이저리그 10년 차 베테랑 외야수를 보는 기분이야.”
“그런데 썬은 정말로 약물을 하지 않았을까?”
“또 그 소리야? 썬은 이번 대회에서만 몇 차례 도핑 검사를 받았어.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도핑 검사에 걸리지 않는 약물을 복용했을지도 모르잖아.”
“만약에 그렇다면 메이저리그 타자들부터 전수조사해야 할걸? 분명 메이저리그 쪽에서 넘어온 것일 테니까.”
“썬은 그저 전성기가 일찍 찾아온 것뿐이야. 메이저리그에도 그런 선수가 있잖아? 한두 해 반짝하다 사라지는. 아시아 선수들은 보통 전성기가 빠른 편이니까 썬도 그런 부류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할 거야.”
야구 월드컵을 취재해 온 기자들은 박유성이 이번 대회 최고의 스타라는 걸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박유성의 메이저리그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썬은 전형적인 리드오프야. 아시아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메이저리그에서는 힘들 거야.”
“내 생각은 달라. 메이저리그에는 지금 썬처럼 플레이하는 선수가 거의 없다고.”
“맞아. 말만 1번 타자지 전부 홈런을 치려고 혈안이 되어 있지.”
“그건 어쩔 수 없어. 홈런을 많이 쳐야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잖아.”
“아시아와 메이저리그는 경기 스타일이 달라. 아시아는 스몰 볼이잖아. 썬이 메이저리그에서 돋보이기는 힘들 거야.”
“스즈키 이치이로나 추(신우)와 비교하면 어떨까?”
“장난해? 스즈키 이치이로는 메이저리그 MVP 출신이라고.”
“추도 출루 머신이었어. 펀치력과 빠른 발을 가지고 있었지.”
“그 추가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게 몇 년 차였지?”
“5년 차였을걸? 결국 매리너스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인디언즈로 넘어갔잖아.”
“썬은 어떨까? 썬도 5년쯤 걸릴까?”
“글쎄.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추와 지금의 썬을 비교한다면 추가 낫겠지만 추가 막 메이저리그로 넘어갔을 때와 비교한다면 난 썬의 손을 들어주고 싶어.”
“나도 썬. 추도 야구 월드컵 때 잘하긴 했지만 썬만큼은 아니었어.”
“썬은 모든 야구 월드컵을 통틀어 최고의 타자라고. 애당초 10할이라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슈퍼 라운드가 끝난 현재 박유성은 비공식 타격 6관왕을 달리고 있었다.
1.000인 타율을 포함해 16개의 안타와 25득점, 19도루로 타격 4관왕을 일찌감치 예약했고.
추가로 별도의 시상이 없는 장타율과 출루율도 만화 같은 수치를 찍어버렸다.
7개의 홈런과 10개의 타점 역시 톱5 성적.
지금껏 U-18 야구 월드컵을 통해 수많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탄생했지만 이처럼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건 박유성이 처음이었다.
“만약 이대로 썬이 메이저리그에 간다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글쎄. 적어도 추보다는 많이 받지 않을까?”
“추가 매리너스에 갈 때 얼마를 받았지?”
“130만 달러 정도였을걸?”
“그것밖에 못 받았어? 추가?”
“당시에는 큰돈이었어. 요즘 북중미 선수들이 받는 계약금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추가 미국으로 넘어간 게 2000년 초반이었으니까 두 배 정도면 어때?”
“2배면 260만 달러?”
“너무 적은가?”
“글쎄. 그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지 않을까?”
“난 200만 달러면 충분하다고 봐. 썬은 재능 있는 선수지만 솔직히 메이저리그에서 꾸준히 잘할 느낌은 아니야.”
“메이저리그에서 꾸준히 잘할 느낌이 아닌 선수에게 200만 달러를 쓰자고? 농담이지?”
“어쩔 수 없잖아. 이번 대회 최고의 스타인걸.”
“그런 식으로 따지면 그 누구도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지 못할걸? 전부 썬의 기록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잖아.”
“그래서? 너는 얼마가 적당하다고 보는데?”
“적어도 300만 달러는 줘야지. 최소 2년에서 3년은 마이너리그에서 고생할 텐데 그 정도를 손에 쥐지 않고서는 버티기 어려울 거야.”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평가는 기자들보다 조금 더 후했다.
“썬은 빼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야. 썬 앞에서는 다른 선수들의 재능이 평범해진다고.”
“썬은 정확도와 빠른 발을 가진 훌륭한 외야수지. 수비도 잘하고 홈런도 잘 쳐. 그리고 베이스 위에서 투수를 미치게 만드는 재주도 가지고 있어.”
“그건 가르친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야. 타고나야 해.”
현장에서 지켜본 박유성의 퍼포먼스는 기자들의 기사 몇 줄로 형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특히나 박유성의 지능적인 플레이는 야구에 대해 깊은 지식과 경험이 없이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만약에 올겨울에 썬이 메이저리그에 온다면…… 빅 마켓 구단보다는 스몰 마켓이 낫겠지?”
“내가 썬이라면 주전 경쟁이 가능한 팀을 선택할 거야.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을 테니까.”
“빅마켓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썬에게 많은 돈을 쓰지 못할 거라고.”
“보너스 풀을 트레이드 하는 것도 쉽지 않을 거야. 썬의 몸값이 오르면 오를수록 경쟁이 붙겠지.”
“문제는 빅마켓에서 그만큼 썬을 원하느냐는 건데…… 솔직히 이건 예상이 어려워. 구단마다 사정은 다른 거니까.”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단언할 수 있어. 아마 지금쯤 메이저리그 모든 단장의 책상 위에 썬에 대한 스카우팅 리포트가 올라가 있을 거야.”
“그건 당연하지. 우리 팀장도 메일로 보내면 놓칠까 봐 직접 보고를 들고 단장을 찾아간다고 했어.”
박유성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일본 대표팀은 골치가 아팠다.
승리를 위해서는 박유성을 잡아야 하는데 뾰족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유성과의 정면승부는 위험합니다. 철저하게 피해야 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박유성은 좌투수와 우투수를 가리지 않고 인코스와 아웃코스에 상관없이 잘 칩니다. 심지어 빠른 공은 물론이고 변화구 대응 능력도 좋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박유성을 거르자고? 그러다 지난 경기 때처럼 지면? 그땐 누가 책임질 건데?”
지난 한국과의 예선전 이후.
나가타 유이 감독은 일본 언론의 질타를 받아야 했다.
박유성의 타격을 봉쇄하기 위해 펼친 볼넷 작전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패배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치들 중 누구도 나가타 유이 감독과 책임을 나눠서 지려 하지 않았다.
다들 높은 보수를 보장받는 국가대표 코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입을 꾹 다문 채 언론의 눈치만 봤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다시 박유성을 걸러야 한다니.
마음 같아서는 전부 사표를 받아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무튼 지난번 작전은 안 돼. 실패한 작전을 다시 쓸 순 없어!”
“지난번에는 박유성의 빠른 발에 당했지만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맞습니다. 도루만 주지 않으면 박유성의 공격력을 묶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도루를 주면? 박유성이 루상에 나가면 투수들이 견딜 수가 없어!”
“요시다는 다를 겁니다.”
“요시다 코헤이는 주자 견제 능력이 좋습니다. 미즈시마 게이도 박유성의 스타일을 파악했을 테니 두 번 당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모르겠으니까 그렇게 경원 작전을 쓰고 싶으면 커미셔너의 허락이라도 받아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