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85화 (85/412)

타자 인생 3회차! 85화

13. 박유성은 못 말려(4)

└젠장. 미국의 7회 말 공격이 끝났어. (B7A5SR123W)

└이렇게 되면 남은 공격 기회는 8회뿐인가? (W16EW7T9S0)

└무슨 소리야? 야구는 9회까지라고. (W6Q3V1T77T)

└미국이 말 공격이라 9회 초까지 리드를 지키면 9회 말은 사라져. 설마 그런 상식도 모르고 야구를 보는 건 아니겠지? (W16EW7T9S0)

└8회에 2점을 뽑아낼 수 있을까? (U692ES5F7G)

└무리 (N5S7F2G66H)

└절대 무리 (W1ER6W7D44)

└오늘 경기에서 미국의 하위 타선은 식물 타선이나 다름없어. 단 한 명도 출루하지 못했다고. (O11I5J77QD)

└한국도 총력전을 펼칠 거야. 추가 득점은 쉽지 않다고. (B7A5SR123W)

└그런데 말이야. 한국과 미국은 이대로 경기가 끝나도 상관없지 않을까? (I1E52A7S66D)

└젠장할! 끔찍한 소리 하지 마! (E23RH6UT04)

└그게 무슨 소리야? (Y45W62QD6S)

└이대로 한 점 차이로 경기가 끝나면 한국과 미국이 결승에서 맞붙게 돼. 서로 힘 뺄 필요가 없지. (I1E52A7S66D)

└그건 말도 안 돼. 스포츠맨십에 어긋난다고! (F11W4Q2D8G)

└한국에게 스포츠맨십을 기대하는 거야? 한국은 늘 야비하게 야구를 해왔다고. (J14Q44W6DF)

└네 말에 동조하는 건 아니지만 한국은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하지 않을까? (DFS231AD23)

└우리가 결승전 파트너로 한국 대신 미국을 원하는 것처럼 한국도 결승전 파트너로 우리 대신 미국을 원할 가능성이 높아. 한국인들은 우리를 이유도 없이 증오하니까. (JKQ214RY44)

“이대로 끝나서는 안 돼.”

사사키 코지는 일본과 쿠바의 경기도 뒤로하고 미친 듯이 새로고침을 눌렀다.

그 간절함이 통했던지 8회 초.

선두 타자로 나온 이동엽이 미국의 바뀐 투수 제레미 라이트를 상대로 2루타를 때려내며 역전의 발판을 만들어냈다.

“좋아! 이대로 점수를 뽑아내라고!”

사사키 코지는 미국이 추가 득점을 하는 것보다 대한민국이 경기를 뒤집는 게 빠를 거라 여겼다.

하지만 쉴 새 없이 아웃을 울부짖는 극우 유저들의 저주 때문일까.

강준혁과 홍상철, 홍우진이 전부 삼진을 당해 버렸다.

-지금 한국과 미국의 경기 소식이 들어왔는데요. 미국이 한국을 한 점 차로 앞서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TQB에 따라 일본이 3, 4위전으로 밀리게 될 텐데요.

-미국 대표팀이 8회 말 공격에서 두 점 이상을 뽑아내지 못한다면 결승 진출이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일본과 쿠바전을 중계하던 일본의 중계석에서도 비관 섞인 전망을 내놓았지만 분위기 파악 못 하는 극우 유저들은 무작정 미국의 승리만 부르짖었다.

└걱정하지 마. 멍청이들아. 이번 공격 때 미국이 만루 홈런을 때릴 테니까. (DK351KAB55)

└만루홈런도 필요 없어. 두 점이면 된다고. (SAR32GQ525)

└하긴. 한국이 추가 점수를 낼 리가 없으니까. 8회 말에 두 점을 뽑고 9회를 셧아웃 시키면 되는 거잖아. 안 그래? (DK351KAB55)

그러나 미국의 8회 말 공격은 삼자범퇴로 끝이 났고.

대한민국 대표팀의 정규 이닝 마지막 공격만이 남자 참았던 유저들의 분노가 쏟아졌다.

└이 멍청이들아! 너희들 때문에 망했잖아! (K32NFT2G45)

└하아. 다 틀렸어. 한국은 9회를 버릴 거라고. (M14R56E7WD)

└한국 감독은 이대로 경기를 끝내고 미국 감독과 악수를 나눌 생각만 하고 있을걸? (B152VE3W5D)

└대체 뭐야. 쿠바를 겨우 이겼는데 왜 상황이 이렇게 된 거야? (DFS231AD23)

└쿠바를 이겼어? (J1E4Q66W7D)

└방금 경기 끝났어. 4 대 3으로 이겼다고. (RQ32W1E45T)

└젠장. 그럼 너무 아쉽잖아! (Z12W5D34QF)

└박유성은? 9회에 나올 수 있는 거야? (IEJ534A6D2)

└힘들 거야. 7번 타자부터 시작인데 누구든 출루를 해줘야 해. (W534E6D7FG)

└설사 박유성의 차례까지 간다고 해도 미국에서 승부를 해줄까? (RQ32W1E45T)

└오늘 박유성은 2타수 2안타에 볼넷 2개야. 마르쿠스 고든의 빠른 공을 아무렇지도 않게 때려냈다고. (P145EI6D7K)

└만약에 일본이 결승 진출 못 하면 위에서 떠들던 두 녀석. 내가 무조건 찾아가서 죽여 버릴 거야. (N2T46WF11H)

└농담으로 하는 말 아니야. 일본이 결승 진출에 실패하면 진짜 두 놈 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N2T46WF11H)

└꺼져, 멍청아. 네가 무슨 수로 우리를 찾아올 건데? (DK351KAB55)

└일본은 한국보다 열 배는 큰 나라야. 넌 주소를 알려줘도 못 올걸? (SAR32GQ525)

└두 놈 다 오사카에 사는 놈들이로군. (N2T46WF11H)

└아닌데? 나는 후쿠오카에 사는데? (DK351KAB55)

└나는 큐슈다. 어쩔래? (SAR32GQ525)

└경기가 끝나는 대로 오사카로 넘어갈 테니까 각오해. (N2T46WF11H)

“어? 이 아이디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던 사사키 코지는 갑자기 튀어나온 아이디를 보며 눈을 똥그랗게 떴다.

대부분 이름 없이 익명으로 활동하는 1ch에서 알파벳과 숫자를 조합해 총 10자리 랜덤으로 만들어지는 아이디는 유저를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물론 커뮤니티 자체적으로 아이디를 통한 검색을 막아놓았지만.

오래전부터 1ch에서 활동해 온 사사키 코지는 나름 유명한 아이피들을 따로 정리해 놓았다.

“잠깐만. 어, 여기 있다. 맞네. 이 사람.”

유명인이라는 메모장을 검색하던 사사키 코지는 문제의 아이디를 찾아냈다.

-XX 폭주족 연합회 행동대장. 상대 찾아가 집단 폭행.

“생각났다. 그래. 이 사람. 아키라라고 했던가?”

요즘 1ch을 놀이터처럼 여기고 까불어대는 유저들은 모르겠지만.

한때 아키라는 폭주족들이 장악한 바이크 게시판에서 제법 유명세를 떨쳤다.

유명세만큼이나 연관된 굵직한 사건들도 많았다.

그중 몇 가지를 떠올린 사사키 코지는 빠르게 경고의 댓글을 남겼다.

└너희 둘. 잘못 걸렸어. 저 사람 유명한 폭주족이라고. (C2J3A56S7L)

└폭주족?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폭주족 타령이야? (DK351KAB55)

└나도 이 사람 기억해. 무슨 유명한 폭주족 행동대장인가 그랬던 거 같아. (W244Q5D6FG)

└나도. 실제로 본 적도 있는데 얼굴에 큰 칼자국이 나 있다고. (N1W46Q7F8E)

└어디 올 테면 와보라지. 경찰을 부르면 그만이야. (SAR32GQ525)

└과연 경찰이 널 24시간 지켜줄 수 있을까? (N2T46WF11H)

└그만해! 너도 춍이야? 왜 이러는 거야? (SAR32GQ525)

└나한테 춍이라고 하는 걸 보니 넌 죽어도 할 말이 없겠다. 참고로 일본의 결승 진출에 100만 엔을 걸었어. 만약에 그 돈을 날리게 된다면 너희 둘이서 배상해야 할 거야. 물론 두 배로 말이지. (N2T46WF11H)

└200만 엔이라고? 장난하지 마! (DK351KAB55)

└과연 장난일까? 그리고 만약에 너희들이 모두가 알 만한 유명인이라면 그 5배를 준비해야 할 거야. 내 입은 생각보다 비싸거든. (N2T46WF11H)

└젠장할. 왜 일이 이렇게 되는 거야? (SAR32GQ525)

뒤이어 아키라의 폭주족 동료들이 나타나자 함부로 입을 놀리던 극우 유저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한국! 제발 이겨라! (DK351KAB55)

└뭐? 이제 와서? 너 제정신이야? (BE42Q5D67G)

└어이! 일본인의 자긍심을 지키라고. 설마 고작 2백만 엔에 변절자가 될 거야? (B41W4Q6D7F)

└한국 이겨라! 한국 이겨라! (SAR32GQ525)

└ㅋㅋㅋ 진짜 춍이 여기 있었네. (Y343W6E7DG)

└저런 녀석들은 일본의 수치야. 정말 다른 나라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U34E5D87QW)

└다 필요 없어! 한국! 이겨줘! (DK351KAB55)

└제발! 힘내 한국! (SAR32GQ525)

9회 초.

선두 타자 송산아와 8번 타자 김현중이 연속 삼진을 당할 때까지만 해도 극우 유저들의 희망은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 첫 세이브 기회에 흥분한 원조 마무리 투수 제레미 라이트가 고우일을 맞히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고우일 선수. 유니폼에 공이 스쳤습니다.

-제레미 라이트 선수는 아니라며 손을 흔들고 있는데 구심이 정확하게 봤어요. 히트 바이 피치드 볼입니다.

발 빠른 주자 고우일이 나가자 미국 대표팀은 투수를 바꿨다.

조별 예선 때 연이은 방화를 저질렀던 제레미 라이트에게 명예 회복할 기회를 주고 싶었던 토니 스크럭스 감독도 박유성의 타석 앞에서는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 제레미 라이트 선수가 내려가고 미국 대표팀의 마무리 투수 조이 켈러 선수가 올라옵니다.

-원래 제레미 라이트 선수가 마무리 투수였었는데요. 마지막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잡아내지 못했네요.

-조이 켈러 선수. 조별 예선 포함 4경기에 등판해 1실점을 기록 중입니다.

-도미니카 공화국과 쿠바를 상대로 연속 세이브를 기록했네요. 대만전과 일본전에도 등판했고요.

-제레미 라이트 선수의 별명이 100마일의 사나이인데요. 조이 켈러 선수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포심 최고 구속이 158㎞/h까지 나오고 슬라이더와 커브가 좋으니까요. 제레미 라이트 선수보다는 조금 더 까다로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타석에는 박유성 선수거든요.

-박유성 선수. 오늘 홈런 포함 안타 두 개에 볼넷 두 개로 100퍼센트 출루에 성공하고 있는데요. 타격감이 바짝 오른 상태입니다.

-관건은 조이 켈러 선수가 승부를 하느냐는 점일 텐데요.

-아마 승부를 할 것 같습니다. 박유성 선수를 거를 거였으면 제레미 라이트 선수에게 고의4구를 지시했을 테니까요.

루틴을 마친 박유성이 가볍게 왼 어깨 위로 방망이를 걸쳤다.

2사 주자 1루.

동점을 만들려면 고우일이 2루로 가는 게 나았지만 방용택 감독과 전근우 수석 코치는 모든 걸 박유성에게 맡기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괜히 2루 도루를 했다가 거를 수도 있으니까.’

투수를 바꿨다 해도 주자가 1루에 있는 것과 1루가 비워진 건 차이가 컸다.

여기서 또다시 볼넷 작전을 쓰면 도망치는 꼴이지만.

고우일이 2루에 간 다음에 1루를 채우는 건 용이한 수비를 위한 작전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방용택 감독은 고우일에게 베이스에 붙어 있으라고 지시했다.

미국 대표팀의 새로운 마무리 투수인 조이 켈러를 상대로 안타를 때려낼 수 있는 건 박유성뿐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기대에 부응해 드려야지.’

타격 준비를 마친 박유성이 조이 켈러를 매섭게 노려봤다. 그러자 조이 켈러가 기다렸다는 듯이 투구판을 박차고 나왔다.

후앗!

한복판을 가로질러 몸 쪽을 파고드는 공의 궤적이 제법 날카로웠지만.

프로 40년 차 박유성에게는 너무나 흔하고 뻔한 공일 뿐이었다.

따악!

망설이지 않고 내두른 방망이 중심에 정확하게 공이 얹혔고.

-아! 큽니다! 쭉쭉 뻗어 나갑니다!

-어어! 이거 넘어갈 것 같은데요?

-중견수 뒤로! 중견수 뒤로! 중견수우우! 잡지 못합니다! 홈런! 박유성 선수가 다시 경기를 뒤집습니다!

-크으! 박유성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걸 제대로 보여줬어요.

-토니 스크럭스 감독. 고개를 가로젓는데요.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감독으로서 자격 미달이겠죠. 어쨌거나 박유성 선수의 홈런 덕분에 전승으로 결승에 갈 길이 열렸습니다!

문자 중계 화면에 박유성의 홈런 소식이 전해지자 사사키 코지는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만세를 불렀고.

└역시 박유성! (DK351KAB55)

└믿고 있었다고! (SAR32GQ525)

극우 유저들도 정체성을 잊은 채 박유성을 목놓아 부르짖었다.

그리고 한 점 차로 경기를 뒤집은 9회 말.

1사 1루 상황에서 2번 타자 로버트 하이넨이 때려낸 타구가 중견수 쪽으로 뻗어 나가자 토니 스크럭스 감독의 입에서 고함이 터졌다.

“뛰어! 뛰라고!”

타구의 방향을 체크하던 3루 베이스 코치는 토니 스크럭스 감독의 외침에 팔을 돌렸고.

발 빠른 2루 주자 피터 암스트롱은 단숨에 3루를 지나 홈까지 파고들었다.

그런데 중견수 키를 충분히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던 타구가 박유성의 글러브에 잡히면서 모든 게 끝나 버렸다.

-박유성 뜁니다. 박유성! 박유성! 박유성! 박유서어어엉! 박유성 선수가 이걸 잡습니다!

-제가 뭐랬습니까? 성급하게 뛰면 안 된다고 했죠?

-박유성 선수가 던진 공이 2루로 향합니다만 피터 암스트롱 선수. 귀루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겠죠. 저건 원래 잡히면 안 되는 타구니까요.

-심지어 송구도 예쁘게 2루수 정면으로 향했는데요. 2루심이 아웃을 선언합니다. 쓰리 아웃. 치열했던 오늘 경기가 이렇게 끝이 납니다.

-정말 박유성 선수로 시작해 박유성 선수로 끝이 난 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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