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84화 (84/412)

타자 인생 3회차! 84화

13. 박유성은 못 말려(3)

연말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픽도 가능하다는 블레이크 마틴이나 마이크 아벨이라면 한 점만으로 안심하기 이르지만.

도미니카 공화국 타자들을 상대로 볼질을 하다가 3이닝 만에 강판당한 마르쿠스 고든이라면 얼마든지 추가점을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예상대로 대한민국 대표팀은 1회 초에 추가 득점을 올렸다.

1사 이후 3번 타자 이동엽이 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때려내면서 스코어링 포지션으로 나갔고.

뒤이어 타석에 들어선 4번 타자 강준혁이 중견수 키를 넘기는 2루타를 때려내면서 이동엽을 홈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한국 2 : 0 미국

1회 초. 한국 공격.(투수 마르쿠스 고든)

-1번 타자 박유성

└1구 타격. 우중간 홈런.

-2번 타자 오대석

└3구 타격. 유격수 땅볼 아웃.

-3번 타자 이동엽

└3구 타격. 좌중간 2루타.

-4번 타자 강준혁

└1구 타격. 중견수 뒤 2루타. 이동엽 득점.

경기 초반에 대량 득점의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댓글 반응은 순식간에 대한민국 쪽으로 기울었다.

└좋아! 한국! 이대로 가자! (QS45F2E6Q7)

└한국이 이기면 우린 자동으로 결승 진출이지? (V1C5S76F8W9)

└아니. 우리도 쿠바를 잡아야 해. 우리가 쿠바를 잡고 한국이 미국을 잡아주면 우리가 4승 1패로 2위가 된다고. (Q16WE6T34A)

└뭐야? 여긴 춍들밖에 없는 거야? (SAR32GQ525)

└춍춍거리는 머저리는 꺼져 버려! (KA23E4I58T)

└난 솔직히 미국이 이기길 바라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 미국이 3점 차 이내로 한국을 이기면 우린 TQB에서 밀려서 3위가 되잖아? 하지만 한국이 이기는 건 변수가 없어. (A52WE4Q2F6)

└그런데 TQB가 뭐야? (Q127QW35ER)

└테크니컬 퀄리티 밸런스라고 3팀 이상 승패가 같을 때 따지는 내부 규정 같은 거야 (VA11S4D6W7)

└테크니컬? 팀 퀄리티 밸런스가 아니고? (BV31AD534G)

└큰 틀에서 보자면 그게 그거 아닌가? 결국 기술적인 부분으로 승부를 가리는 거니까. (B12AS5D3G6)

└내 친구는 한국이 이기면 우리가 탈락할 거라고 했는데 아니었어? (ND341SF5H6)

└멍청아. 한국이 4승이고 우리하고 미국은 3승 1패야. 우리가 쿠바를 잡고 한국이 미국을 잡으면 한국이 5승, 우리가 4승 1패, 미국이 3승 2패가 되잖아! (S11G5H7GD8)

└만약에 우리가 쿠바에게 지면 어떻게 되는 거야? (A31S45DQ7F)

└우리가 쿠바에게 졌는데 미국이 한국을 이기면 한국과 미국이 결승전을 치르게 될 거야. 반대로 한국이 미국을 이기면 우리와 미국, 쿠바가 3승 2패로 동률이라 TQB를 따지게 되겠지. (R6Z31S6D7S)

└이렇게 되면 우리는 결승에 올라갈 수가 없어. TQB상 미국이 무조건 2위야. 우리는 쿠바에게 지는 순간 미국에게 밀리게 된다고. (P12D5G6J7G)

└그럼 무조건 한국이 이겨야 하는 거잖아? (QGU315Y7J8)

└한국 힘내라! 이대로 미국을 쓰러뜨려! (H13SD5F72E)

└너희들 제정신이야? 미국은 우리의 영원한 우방이야. 한국 따위에게 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SAR32GQ525)

└멍청아. 그건 정치적인 이야기잖아. 스포츠는 다르다고! (AS12G5F6G7)

└스포츠도 전쟁이나 다름없어! 두고 봐. 한국의 득점은 여기서 끝날 테니까. (SAR32GQ525)

그 와중에 아득바득 물타기를 하는 극우 아이디를 보며 사사키 코지는 코웃음을 쳤다.

“이 멍청이들아. 부모들 피를 빨면서 방구석에서 병신 짓을 할 시간에 아르바이트라고 구해! 아니면 나처럼 프리라이트라도 하든가.”

사사키 코지는 가볍게 새로고침을 눌렀다.

잠깐의 버퍼링 후 바뀐 문자 중계 화면은 볼카운트가 3-1까지 몰려 있었다.

“마르쿠스 고든은 제구가 좋지 않아. 멘탈도 약한 편이고. 공이 빨라서 대표팀에 뽑힌 거 같은데 그 정도로는 한국을 이길 수가 없어.”

보나 마나 볼넷을 내줄 거라 생각한 사사키 코지는 도시락 뚜껑을 열고 케첩을 버무린 소시지를 깨물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물가가 오르면서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200엔짜리 도시락이 출시됐는데 수입이 일정치 않은 사사키 코지도 그 덕분에 큰 부담 없이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제 이건 좀 물리네. 빨리 취직이 되어야 할 텐데.”

사사키 코지는 어려서부터 야구 전문 기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

큰 수입이 안 되는 야구 관련 블로그를 5년째 운영하고 있는 것도 일종의 관련 업계 경험치를 쌓기 위해서였다.

물론 모두가 알 만한 대단한 언론사에 입사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해 줄 수만 있다면 신생 언론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잠깐 새로 온 메일을 확인했지만.

“쳇. 없네.”

잠을 자는 사이에 온 12개의 메일 중에 면접이나 채용 관련 건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중계 사이트를 새로고침했는데.

“뭐야?”

눈 깜짝할 사이에 공수가 바뀌어 있었다.

볼넷을 고를 줄 알았던 5번 타자 홍상철과 6번 타자 홍우진이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나면서 1사 2루의 득점 기회를 날려 버린 것이다.

“이거 또 난리 나겠네.”

서둘러 경기 결과를 올리며 사사키 코지는 댓글 분위기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뭐야? 왜 업데이트가 안 되는 거야? (B13S4Q65SD)

└중계자! 뭘 하는 거야? 설마 급똥이라도 싸러 간 거야? (CA27W62F6A)

└보나 마나 담배 한 대 태우고 있을걸? (N1S5W7F8S0)

└으으. 싫다. (B13S4Q65SD)

└책임감 있는 줄 알았는데 실망인걸? (D53R2G7A2S)

└조금 기다려 봐. 별일 없나 보지. (L1QS7D4G64)

└다른 중계글을 보고 왔는데 한국의 공격이 끝났어. (GE11S4C6G8)

└뭐? 벌써? (B3E698AS1F)

└한국의 5번이 3-1에서 볼을 건드려서 죽어버렸어. 6번도 초구를 건드려서 죽었고. (GE11S4C6G8)

└이런 멍청이들! 볼카운트가 유리할 때는 공 하나 정도 지켜봐야 하잖아! (B3E698AS1F)

└왜들 흥분하고 난리야? 한국의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되는 건데. (DK351KAB55)

└맞아. 두고 봐. 한국의 멸망이 시작될 테니까. (SAR32GQ525)

└아직 한국이 2 대 0으로 이기고 있습니다만? (KA23E4I58T)

└미국은 강해! 2점쯤은 언제든 뒤집을 수 있을걸? (DK351KAB55)

└미국 타선은 역대 최약체라고 하던걸요? (KA23E4I58T)

└이봐, 춍. 언제까지 웃을 수 있나 지켜보자고. (DK351KAB55)

유독 티 나게 구는 두 극우 유저의 저주 때문일까.

대한민국의 득점은 정말로 2점에서 멈춰 버렸다.

2회 초 공격은 2사 1, 2루 상황을 날렸고.

3회 초와 4회 초 공격은 삼자범퇴로 끝이 났다.

그사이 미국 대표팀은 야금야금 점수를 따라붙었다.

2회 말.

선두 타자로 나선 4번 타자 타일러 브릭스가 안경호의 체인지업을 걷어 올려 비거리 130m짜리 홈런을 때려냈고.

4회 말에는 3번 타자 AJ 홀터와 4번 타자 타일러 브릭스, 5번 타자 콜비 브리츠의 연속 안타가 터지면서 다시 한 점을 쫓아갔다.

“뭐야, 안경호! 왜 이렇게 얻어맞는 거야?”

일본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던 안경호가 동점을 내주자 사사키 코지는 한국의 채팅창을 살폈다.

한때 한국의 걸그룹에 빠져 살면서 공부한 한국어 덕분에 대략적인 상황은 파악이 가능했는데 힘이 좋은 미국 타자들이 힘으로 억지 안타를 만드는 모양이었다.

“이러면 불안한데.”

야구에서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가서 잡히는 것 이상의 최악은 빗맞은 타자가 안타가 되면서 점수를 내주는 것이었다.

무사 1, 3루의 중계 화면을 주기적으로 새로고침하던 사사키 코지로는 달라진 결과를 보며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 2 : 3 미국

지금껏 단 한 차례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던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미국에게 리드를 빼앗긴 것이다.

다행히 6번 타자 놀런 매드레인이 병살타를 치면서 루상이 깨끗이 정리됐지만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어이, 박유성. 뭐라도 좀 해봐!”

사사키 코지는 습관적으로 박유성을 찾았다.

현재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힘을 쓸 수 있는 건 홈런과 볼넷으로 100퍼센트 출루한 박유성밖에 없었다.

예상대로 선두 타자로 나온 고우일은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3구 타격, 좌중간 2루타.

└155㎞/h 포심 패스트 볼.

“그렇지!”

박유성이 1회에 이어 5회에도 마르쿠스 고든의 빠른 공을 공략해 안타를 때려냈다.

뒤이어 3루까지 훔쳐낸 박유성은.

-4구 타격. 중견수 플라이.

└135㎞/h 체인지업.

-3루 주자 박유성 득점.

-한국 3 : 3 미국

2번 타자 오대석의 희생플라이 때 홈을 밟으면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 버렸다.

“후우…….”

재빨리 중계를 업데이트 한 사사키 코지가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한결 여유롭게 댓글 반응을 살폈는데 이상한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다 필요 없어. 망했어. (N5S3D8F9W4)

└제길. 쿠바에게 질 줄이야. (P145EI6D7K)

└그게 무슨 소리야? 쿠바에게 지다니? (A4W63FA8S0)

└방금 역전 3점포 얻어맞았어. (P145EI6D7K)

└거짓말하지 마! 너 춍이지? (SAR32GQ525)

└정말이야. 멍청아. 지금 캐스터도 할 말을 잃었다고. (P145EI6D7K)

사사키 코지는 다급히 TV를 켰다.

쿠지TV에서 U-18 야구 월드컵 일본 경기를 전 경기 생중계 중이었는데 정말로 3 대 1로 쿠바가 앞서가고 있었다.

“미친! 하라구치 저 녀석,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중계 카메라가 선발 투수 하라구치 유타를 비추자 사사키 코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지난 한국전 때도 형편없더니 쿠바에게 역전을 허용했다고 하니까 실망감을 넘어서 화가 났다.

“힘을 내! 여기서 지면 결승전은 물 건너가는 거라고!”

이때부터 사사키 코지는 문자 중계 화면보다 TV 중계 화면을 더 오래 바라봤다.

다들 같은 마음인지 업데이트가 느려도 불평의 댓글이 거의 올라오지 않았다.

그 염원이 통했을까.

따악!

한 점을 따라붙은 가운데 스즈키 지로가 단숨에 역전 투런 홈런을 쏘아냈다.

“그렇지!”

주먹을 움켜쥐며 좋아하던 사사키 코지는 문자 중계 화면을 새로고침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쪽에서 난리가 났다.

-한국 3 : 4 미국

오늘 2타점을 올린 타일러 브릭스가 다시 한번 적시타를 때려낸 것이다.

“안 돼!”

사사키 코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뒤늦게 경기 소식을 접한 댓글창도 난리가 났다.

└젠장할. 일본이 역전을 하니까 한국이 역전을 당해 버렸어! (E2W4D5G77)

└뭐? 정말? 아직 업데이트가 안 됐는데? (Q6W8D4TQ25)

└여기 소식이 느린 거 같아서 다른 중계글도 보고 있는데 두 곳에서 역전 소식이 올라왔다고. (M2E4W66F8G)

└좋아. 모든 게 계획대로 되고 있어. (SAR32GQ525)

└이 멍청아! 분위기 봐가면서 까불어! (Q22W3D7R8T)

└지금 축제 분위기 아니야? 아, 너는 춍이라 웃을 수가 없지? (DK351KAB55)

└한국과 함께 춍도 멸망해 버렸으면! (SAR32GQ525)

└이 멍청이들. 지금 한국이 지기만을 바라고 있어. 이대로 가다간 일본이 탈락이라고! (I2E4F7H1S0)

└무슨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거야? 미국이 이기고 일본이 이기면 일본과 미국이 결승전을 치르는 거잖아? (DK351KAB55)

└이 멍청아! 미국이 한국을 3점 차 이상 이기지 못하면 한국과 미국이 결승에 올라간다고! (Q5W9D22Q5W)

└뭐? 그게 사실이야? (SAR32GQ525)

└이미 언론에서 몇 번 TQB에 대해 설명해 줬잖아. 못 본 거야? (Q5W9D22Q5W)

└젠장. 그딴 헛소리를 볼 리가 없잖아. (DK351KAB55)

대한민국과 일본, 미국이 4승 1패로 동률을 이루면서 TQB까지 갔을 때 가장 불리한 건 이미 모든 경기를 치른 일본이었다.

일본은 대한민국에게 1 대 3으로 패배했고 미국에게 4 대 3으로 승리했다.

합산 득실은 -1점.

일본전의 -1점을 안고 시작하는 미국은 대한민국을 이기면 자연스럽게 득실이 0 이상이 되기 때문에 일본보다 앞서게 되고.

일본전의 2점을 안고 가는 대한민국은 미국에 3점 차 이상 패배해야만 득실이 ?1이 된다.

미국이 3점 차이로 승리해 일본과 대한민국의 득실이 같아진다고 가정했을 때 일본이 한국을 제치고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총득점/공격이닝)-(총실점/수비이닝)으로 구하는 TQB 공식상 수비 이닝이 많은 쪽이 TQB 점수가 높은데.

일본은 두 경기에서 총 18이닝을 수비한 반면 대한민국은 오늘 초공이라 연장전에 가지 않는 한 최대 17이닝밖에 수비할 수가 없었다.

문제는 미국이 추가 득점을 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