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77화 (77/412)

타자 인생 3회차! 77화

12. 헤이, 부라더! (3)

2028 U-18 야구 월드컵은 조별 풀리그를 마치고 슈퍼 라운드에 돌입했다.

대한민국과 일본, 대만, 네덜란드, 이탈리아,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엮인 A조의 순위는 초반에 정해졌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네덜란드와 대만, 일본을 연파하면서 조 1위를 확정지었고.

첫 날 대만을 잡았지만 대한민국에게 일격을 허용한 일본이 2위를.

대한민국과 일본을 제외한 모든 팀들에게 승리한 대만이 3위를 차지했다.

반면 미국과 캐나다,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호주, 중국이 만난 B조는 서로 물고 물리는 접전이 펼쳐졌다.

처음 조편성이 됐을 때 전문가들은 미국과 캐나다가 슈퍼 라운드 티켓을 확보하고 쿠바와 도미니카 공화국 중의 하나가 마지막 자리를 차지할 거라 내다봤다.

여느 때였으면 다크호스 소리를 들었을 호주는 강팀들에게 밀려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개막전부터 이변이 속출하더니 중국을 제외한 모든 팀이 3승 2패를 거두면서 무려 5팀이 TQB(Team Quality Balance)로 순위를 가리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가장 먼저 사고를 친 건 미국 대표팀.

장타력이 좋은 타자들의 대표팀 합류가 불발되면서 타력이 약해지긴 했지만 준수한 마운드와 U-18 야구 올림픽 최다 메달(30회)에 빛나는 경험을 앞세워 캐나다를 잡고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을 거라는 전망이 우세지만 9회 말 마무리 투수 제레미 라이트가 등판하면서 모든 게 뒤집혔다.

3대 1, 두 점 앞선 가운데 마운드에 오른 제레미 라이트는 투아웃을 잘 잡아 놓고서 갑자기 볼넷과 몸에 맞는 공을 허용했고.

뒤이어 타석에 들어선 호주 대표팀의 3번 타자에게 한복판 빠른 공을 던졌다가 홈런을 얻어맞으면서 완벽한 소설을 집필했다.

제레미 라이트의 방화쇼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음 날.

호주 대표팀을 상대로 4대 3, 한 점차 힘겨운 리드를 지키던 가운데 9회 말에 등판해 아웃 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볼넷 안타 볼넷을 연거푸 허용하더니 밀어내기 볼넷으로 동점을 내주고 끝내기 희생 플라이를 얻어맞으며 미국 대표팀을 B조 최하위로 끌어 내렸다.

(중국과 동순위)

첫 경기는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갔던 미국 언론도 호주전 패배 앞에서는 참지 못했다.

제레미 라이트를 기용하는 건 토니 스크럭스 감독의 문제.

제레미 라이트에 대한 과한 기대가 화를 불렀다.

2경기 5실점. 역대 최악의 마무리 투수 제레미 라이트.

목표였던 우승은커녕 슈퍼 라운드 진출도 불투명해지자 고집불통이라 불리던 토니 스크럭스 감독도 제레미 라이트를 대신해 조이 켈러에게 마무리를 맡기겠다는 뜻을 밝혔고.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난적인 도미니카 공화국과 쿠바를 연달아 잡아내며 기사회생에 성공했다.

한편 첫 경기에서 미국을 잡아내고 결승 직행을 자신했던 캐나다는 롤러 코스터를 타다가 추락했다.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경기에서는 경기 후반에 터진 결정적인 실책으로 무너졌고.

이어진 쿠바와의 경기에서는 상대의 실책을 파고들어 한점 차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중국을 13대 2, 7회 콜드 게임으로 대파하고 한 수 아래인 호주와의 경기만을 남겨 놓았을 때 호주 언론은 B조 1위 진출을 자신했지만.

경우의 수를 따져봐도 슈퍼 라운드 진출 가능성이 거의 없었던 호주가 고춧가 루를 뿌리면서 제대로 발목이 잡혀버렸다.

미국에 이어 캐나다를 잡아낸 호주는 3승 2패로 공동 1위에 이름을 올렸고.

캐나다와 함께 3승 1패로 1위를 달리던 도미니카 공화국 역시 쿠바에 11대 9로 패배하면서 슈퍼 라운드 자력 진출이 무산됐다.

캐나다와 미국에 덜미를 잡혔던 아마 최강 쿠바는 도미니카 공화국을 잡아내면서 꺼져가는 슈퍼 라운드에 대한 희망을 되살렸다.

그리고 공은 TQB로 넘어왔다.

세계 야구 협회 규정 상 동순위 팀이 3팀 이상 나올 경우 TQB 공식으로 순위를 가리게 된다.

총 득점/총 공격 이닝에서 총 실점/총 수비 이닝을 빼는.

쉽게 말해 득실 밸런스가 좋은 팀이 유리해지는 방식인데 여기서 미국 대표팀이 1위를 차지했다.

B조 최종 순위(괄호 안은 TQB)

1. 미국 3승 2패(0.188)

2. 도미니카 공화국 3승 2패(0.114)

3. 쿠바 3승 2패(0.062)

4. 캐나다 3승 2패(-0.124)

5. 호주 3승 2패(?0.176)

6. 중국 5패

각 조 상위 3팀을 묶어 총 6개 팀이 경쟁하는 슈퍼 라운드의 일정은 사흘.

다시 풀리그를 펼친다면 최소 5일이 필요했지만.

조별 예선에서 붙은 팀들은 조별 예선의 결과를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상대 조에서 올라온 팀들과만 경기를 치르게 된다.

따라서 조별 예선 성적에 따라 시작부터 순위기 갈렸다.

“B조에서는 미국이 2승이지?”

“네. 패배한 캐나다하고 호주는 슈퍼 라운드에서 아웃이라 도미니카 공화국하고 쿠바 전 전적만 올라갑니다.”

“운도 좋네. 캐나다나 호주, 둘 중에 한 나라만 올라왔어도 1패를 떠안는 건데.”

“그래도 미국이 1위로 올라 와 다행입니다. 쿠바하고 도미니카 공화국은 타선이 좋으니까요.”

슈퍼 라운드는 조별 순위 역순으로 매치가 진행된다.

A조 1위인 대한민국은 B조 3위인 쿠바를 시작으로 2위 도미니카 공화국과 1위미국과 결전을 치를 예정이었다.

“너 지금 우리 경호 무시하냐?”

“무시하는 게 아니라 까놓고 말해서 대표팀 원투펀치는 신우하고 관우죠. 괜히 쌍우가 아니라니까요?”

“너 그런 얘기 애들 앞에서는 하지 마라.”

“감독님이나 기자들 앞에서 이상한 소리 마세요.”

“내가 뭘?”

“그래도 딱 한 명 최고를 뽑으라면 역시 저겠죠? 제가 박유성 선수를 강력 추천했으니까요.”

“너, 한 번만 더 그 얘기 해 봐.”

“걱정 마세요. 아껴 놨다가 나중에 제 미튜브 채널에 올릴 거니까.”

“어휴. 저런 게 수석 코치라고.”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팀에 뽑힌 8명의 투수들 중에 우선 지명이 유력한 선수는 무려 6명이었다.

대표팀에서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는 김신우는 타이거즈에서 일찌감치 우선 지명을 확정지었고.

이관우도 메이저리그 이슈만 없다면 히어로즈에서 데려갈 가능성이 높았다.

베어스는 선인 고등학교 원투펀치인 김영진과 나해준을 두고 저울질 중.

여기에 경성 고등학교 강우석과 군산 고등학교 강준기, 청송 고등학교 안경호도 트윈스와 파이터즈, 와이번즈 우선 지명 후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충열 고등학교 최현준도 최소 1라운드 지명이 유력하기 때문에 실력적으로 투수들의 우열을 나누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선수들이 쭉쭉 성장한다는 여름으로 접어들지 않은 이 시점에서 청소년 대표팀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원투 펀치는 김신우와 이관우였다.

“신우가 쿠바고 관우가 도미니카 공화국이지?”

“네. 그것도 딱 맞아 떨어집니다. 쿠바 애들은 전체적으로 선풍기 기질이 있어서 제구가 좋은 석우가 딱이고 도미니카 애들은 좌완에 약하니까 관우가 딱이고요.”

“일단 그 두 경기만 잡아내면 마지막 경기 때 미국한테 져도 결승 진출은 확정이지?”

“미국이 슈퍼 라운드에서 전승하면 일본은 2패니까 못 올라오고요. 만약에 일본이 미국을 잡고 우리가 미국한테 진다면 TQB 따져야 합니다.”

“뭐야? 그럼 마지막까지 이 악물고 해야 하는 거야?”

“감독님. 우리 놀러 온 거 아닙니다. 청소년 대회이긴 해도 국제 대회에요.

그럼 당연히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죠.”

“그래. 너 잘났다.”

선수 시절에는 방용택 감독도 전근우 수석 코치만큼이나 투지가 넘치는 선수였지만 막상 청소년 대표팀의 선장이 되고 나니까 조금 더 쉬운 길을 찾게 됐다.

힘겹게 얻어낸 승리는 달콤하지만 그걸 지켜보는 피로도는 선수 시절과 비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심 지름길이 나와 주길 원했는데 일본의 경기력이 워낙에 좋아서 슈퍼 라운드를 전망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일단 쿠바부터 잡고 시작하시죠.”

“쿠바가 1승 1패지?”

“네. 3위로 올라왔지만 슈퍼 라운드 전적은 1승 1패입니다.”

“죽어라 덤비겠네.”

“그러니까 꼭 이겨야죠.”

B조 3위인 쿠바는 TQB에 밀렸을 뿐 2위인 도미니카 공화국을 잡아낸 전적이 있었다.

따라서 같은 조 조별 예선 전적을 승계하는 슈퍼 라운드 성적은 1승 1패.

대한민국 대표팀과는 고작 1패 차이이다 보니 첫 경기에 목숨을 걸 가능성이 컸다.

“쿠바 예상 선발이 누구야?”

방용택 감독이 고개를 돌려 이동헌 투수 코치를 바라봤다. 그러자 이동헌 투수 코치가 손에 든 전력 분석표를 보며 말했다.

“순서대로라면 라파엘 산체스입니다. 하지만 쿠바도 일본전이 중요해서 산체스를 일본전으로 돌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산체스는 피하고 싶은데. 걔가 키가 190이 넘지?”

“192인가 그럴 겁니다. 거의 관우죠.”

“그런데 또 체격은 호리호리합니다. 반대로 팔은 상당히 길고요.”

“포심에 슬라이더 투 피치였던가?”

“포심에 커터입니다. 둘 다 찍히면 155km/h 이상 나오고요.”

“흠······.”

방용택 감독이 길게 신음했다.

쿠바의 에이스 라파엘 산체스는 긴 팔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타자들을 힘으로 찍어 누르는 스타일이었다.

호주와의 예선전 때는 컨디션 난조로 5이닝 3실점 하긴 했지만 시차 적응을 끝내고 만나게 될 이번에는 다를 터.

“결국 믿을 건 유성이 뿐인가.”

“기승전박유성이죠 뭐.”

방용택 감독의 푸념에 전근우 수석 코치가 냉큼 장단을 맞췄다.

만만찮은 투수를 상대로 포문을 열어 줄 수 있는 건 대표팀에서 박유성 뿐이었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김태윤 타격 코치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타순을 조정해 보는 게 어떨까요?”

“타순을? 어떻게?”

“유성이는 1번이 딱이야. 다른 타순으로 돌리면 팀 공격력 자체가 죽어버린다고.”

전근우 수석 코치가 노파심에 나섰다.

어지간한 클린업보다 잘 치는 박유성을 두고 3번 타순에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프로 시절 최고의 톱타자 중 한 명으로 활약해 온 전근우 수석 코치의 생각은 달랐다.

박유성의 최대 장점은 빠른 발과 영리한 타격으로 경기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표팀에서 이동엽 다음으로 많은 홈런을 때려내고 있긴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때문에 클린업으로 돌리는 건 박유성의 장점을 죽이는 짓이었다.

“그건 내 생각도 같아. 유성이는 1번으로 뛰는 게 맞아.”

방용택 감독도 전근우 수석 코치의 의견에 동의했다.

박유성을 대신해 홈런과 타점을 챙겨 줄 선수는 제법 많지만 박유성만큼 톱타자로 활약해 줄 수 있는 선수는 대표팀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자 김태윤 타격 코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 말 좀 듣고 얘기하세요. 저도 유성이가 1번을 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유성이의 공격력을 100퍼센트 활용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유성이가 주자 있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적이 거의 없으니까요.”

박유성의 이번 대회 타율은 놀랍게도 1.000

8타수 8안타를 기록 중이었다.

심지어 남은 타석도 전부 볼넷으로 출루하면서 100퍼센트 출루를 이어가고 있었다.

“슈퍼 라운드 때는 각 팀의 에이스급 투수들을 상대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를 노리고 저격이 들어 올 수도 있고요. 이런 때에 유성이가 묶여 버리면 점수 내기 힘들어 질 겁니다.”

“그래서 요점이 뭐야?”

“현중이과 우일이를 8,9번에 배치하면 어떨까요?”

“현중이와 우일이를? 잠깐, 그렇게 되면······.”

“네. 유성이는 3번 같은 1번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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