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68화 (68/412)

타자 인생 3회차! 68화

11. 원더 보이 (3)

2

U-18 야구 월드컵이 5월 말에 한국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일본 야구 기구는 우승을 확신했다.

봄의 코시엔과 여름의 코시엔을 절묘하게 피했기 때문이다.

보통 여름 코시엔은 8월에 열린다.

여름 코시엔에서 떨어지면 끝이라는 말처럼 일본 고교 야구 선수들은 이 기간에 모든 걸 쏟아붓는다.

따라서 여름 코시엔 전후로 U-18 야구 월드컵이 잡혀 버리면 일본 입장에서는 선수 구성이 애매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봄 코시엔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최강의 청소년 대표팀구성에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요시다는 무조건 뽑아야 합니다!”

“요시다 뿐입니까? 코노하고 하라구치도 데려 가야죠.”

“스즈키 지로에 나라시와 유야, 나시모토 준야로 클린업을 짜면 우승 확정입니다.”

“이거 주최국인 한국에서 항의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하하. 한국은 이번 대회 3위만 해도 기적입니다. 지난 대회 때 최악이었잖아요?”

“그래도 한국은 질투가 심한 나라니까요. 늘 조심해야 합니다.”

“하긴. 우리가 잘 되는 꼴을 두고 보지 못하죠.”

일찌감치 최강의 대표팀을 천명한 일본 청소년 대표팀의 면면은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셨다.

선배들의 뒤를 이어 메이저리그에서 뛸 재목이라 평가받는 요시다 코헤이(좌완)를 필두로 봄의 코시엔에서 4승을 거두며 모교를 우승으로 이끈 철완 코노카이토(우완)에 전성기 구로다 히데키를 빼닮았다는 하라구치 유타(좌완)가 이끄는 선발진은 그 자체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고.

봄의 코시엔 홈런왕 출신인 나라시와 유야와 타점왕 나시모토 준야, 그리고 일본 야구 영웅 스즈키 이치이로의 조카인 스즈키 지로가 합류한 타선은 힘이 좋기로 유명한 북중미와 겨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아직 고등학생들이라 미숙함이 남아 있지만.

국가대표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똘똘 뭉친다면 전승 우승은 떼 놓은 당상이라는 게 일본 야구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출발한 일본 청소년 야구 대표팀의 경기력은 기대에 못미쳤다.

대만 전에 선발로 출전한 도쿄 왕자, 요시다 코헤이는 5이닝 동안 3점을 내주며 강판당했고 이탈리아 전에 선발 등판한 코노 카이토도 6회까지 100개가 넘는 공을 던지며 실망감을 더했다.

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만 전은 에이스인 왕웨이신을 상대했다고 하더라도 이탈리아 전의 공격 양상은 보는 이들을 답답하다 못해 화병이 나게 만들었다.

이런 와중에 개최국인 대한민국 대표팀과의 경기가 닥치자 나가타 유이 감독은 다급히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한국에서 제일 경계해야 할 타자가 누구입니까?”

“박유성입니다.”

“박유성이면······ 1번 아닙니까?”

“한국 대표팀의 공격은 박유성에서 시작해 박유성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타격 스타일만 놓고 보자면 스즈키 지로에 견줄 정도입니다.”

일본의 청소년 대표팀은 봄의 코시엔을 기준으로 선발했다.

32강이 겨루는 봄의 코시엔은 전년도 추계 대회의 성적을 기준으로 29개 학교를 선발하고 추가로 3개의 학교를 초청 형식으로 뽑는데 21세기 전형으로 올라온 학교를 제외한 나머지 학교들은 여름철 코시엔의 우승을 다툴 만 한 강호 중의 강호들이었다.

이들 중 스즈키 지로가 몸담고 있던 학교는 16강에서 탈락했지만 스즈키 지로의 청소년 대표팀 발탁에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스즈키 이치이로의 조카인 걸 떠나 천재적인 타격 실력 앞에서 야구 전문가들이 혀를 내둘렀기 때문이다.

-스즈키 지로는 스즈키 이치이로의 진정한 후계자입니다. 스즈키 이치이로의 타격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요.

-스즈키 지로는 힘에 의존하는 타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빠르고 강력한 스윙을 가졌어요. 마치 방망이에 혼을 불어넣어 타격을 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찍힌 공은 담장 밖으로 사라지죠.

-스즈키 지로의 메이저리그 가능성이요? 하하. 뭔가를 물어보려면 명예의 전당 헌액 가능성을 물어봐야 할 겁니다. 그것에 대한 대답이요? 70퍼센트, 아니 80퍼센트 정도?

-한국에서는 송현민이 인기라죠? 몇 년만 기다려 보세요. 송현민이라는 이름은 스즈키 지로의 그림자에 가려질 테니까.

스즈키 이치이로를 의식한 듯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의 평들이 쏟아지긴 했지만 현재 일본 청소년 대표팀에서 제 몫을 다 해 주고 있는 건 스즈키 지로 뿐이었다.

두 경기에 출전해 홈런 2개 포함 8타수 5안타에 4타점.

추가로 도루까지 2개 기록했으니 이 정도면 만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성적은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전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내고 있습니다.”

“그래요?”

“게다가 홈런을 4개나 쳤습니다.”

“······?”

“네덜란드 전에서는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고요.”

“······!”

같은 조에 속해 있긴 하지만 나가타 유이 감독은 대한민국 대표팀을 딱히 의식하지 않았다.

앞선 대회에서도 역대 최고의 선수단을 꾸렸다고 자평해 놓고 6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 해는 일본 대표팀 역시 역대 최강으로 꾸려졌으니 대한민국 대표팀이 뭘 하든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경기 결과만 보고 받고 넘겼는데.

스즈키 지로를 능가하는 타자가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투수가 만만했던 거 아닙니까?”

“네덜란드 전 선발 투수는 도니오 브릭이었습니다. 현재 메츠에서 눈여겨보고 있는 선수죠.”

“그렇다 해도 우리 선발진보다 한 수 아래잖아요.”

“그럼 왕치엔은 어떻습니까?”

“왕치엔은······ 제법 잘 던지지 않나요?”

“그 왕치엔을 상대로 3연타석 홈런을 때려 냈습니다.”

“3연타석 홈런이요?”

도니오 브릭은 주로 서양 언론이 띄워주던 선수라 별 감흥이 없었지만 왕치엔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단일 시즌 동양인 최다 승을 2년 연속 써낸 대만 야구의 영웅, 왕젠미엔이 직접 키운 선수가 바로 왕치엔이었다.

대만과 같은 조에 편성되자 일본 야구계에서 먼저 스즈키 지로와 왕젠미엔의 후계자들의 싸움을 보게 됐다며 호들갑을 떨었을 정도.

“왕치엔의 싱커는 프로에서도 통할 정도라던데 와전된 거였습니까?”

“경기에서 싱커를 거의 던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하나를 박유성에게 얻어맞았고요.”

“싱커를 받아 칠 정도로 타격이 완성됐다는 겁니까?”

“전력 분석 자료가 넘어와야 알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가볍게 여길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날 저녁.

대한민국 대표팀과 대만 대표팀 간의 경기 영상이 일본 대표팀으로 넘어왔다.

“흠······.”

박유성의 홈런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 본 나타 유이 감독은 긴 신음만 흘렸다.

스즈키 지로의 재능을 뛰어넘는 또래 선수는 없을 거라 단언했는데.

박유성이 나타날 줄은 꿈에도 예상 못한 것이다.

그런 나가타 유이 감독을 대신해 가가와 준야 수석 코치가 미팅을 주도했다.

“박유성과는 절대 승부를 해서는 안 됩니다.”

“박유성은 발이 빠른 선수입니다. 루상에 내보내면 골치 아파 질 수도 있습니다.”

“미즈시마 게이도 어깨가 좋습니다. 박유성의 발이 얼마나 빠른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도루를 허용하지 않을 겁니다.”

“박유성은 왕치엔을 상대로 3개의 홈런을 때려냈을 만큼 절정의 타격감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지금 기세가 높으니 일단은 피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코칭 스테프 회의 결과는 곧바로 하라구치 유타에게 전달됐다.

“정면 승부를 하지 말라고요?”

“한국의 1번 타자가 공격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어. 그러니까 최대한 어렵게 승부해. 범타로 유도하면 좋겠지만 볼넷으로 거르더라도 상관없어.”

“좌타자라면 자신 있습니다. 맡겨 주세요.”

“하라구치. 지금은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니야. 한국의 1번 타자는 두 경기 연속 선두타자 홈런을 때려냈다고.”

하라구치 유타는 박유성이 자신의 포크 볼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할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구보 타쿠미 투수 코치는 이미 결정된 사실만 통보할 뿐이었다.

“젠장할! 왜 승부하지 못하게 하는 거야?”

“한국의 1번이 지금까지 전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냈대.”

“그게 뭐? 투수가 내가 아니었잖아?”

“하라구치. 일단은 구보 코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게 좋겠어.”

“고작 한국 타자를 상대로 도망치란 말이야?”

“구보 코치님이 최대한 어렵게 승부 하라고 했잖아? 넌 제구가 좋고 구종이 다양하니까 충분히 잡아낼 수 있을 거야.”

“하아. 이러다 포크 볼을 던질 기회가 생길지 모르겠어.”

다음 날.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공으로 대한민국 대 일본의 조별 풀리그 3일차 경기가 시작됐다.

비비적비비적. 탁탁. 스윽. 휘리릭. 타압.

오늘도 보란 듯이 루틴을 펼친 박유성을 보며 하라구치 유타는 갈등에 빠졌다.

‘저 건방진 자식에게 포크 볼을 먹여 줘? 하아. 아니야. 참자. 구보 코치님이 보고 있을 거야.’

아주 잠깐 몸 쪽으로 포크 볼을 붙여 헛스윙을 이끌어내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지만 하라구치 유타는 힘겹게 참아냈다.

그리고는 포수 미즈시마 게이의 요구대로 바깥 쪽으로 꺾여 나가는 슬라이더를 던졌다.

후앗!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슬라이더라면 한 번쯤 건드려볼 만 했지만 박유성은 가볍게 흘려보냈다.

축적된 경험상 볼이라는 확신이 드는데 쓸데없이 볼카운트를 까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2구째 몸쪽으로 들어 온 체인지업도 마찬가지.

‘낮아.’

공을 떨어뜨리는 데 집착한 나머지 릴리즈 포인트가 초구보다 낮아졌으니 속아주려고 해도 속을 수가 없었다.

따악!

그나마 3구째 바깥쪽 꽉 차게 들어오는 포심 패스트 볼은 한 번 건드려줬지만.

4구에 몸쪽으로 밋밋한 커브가 들어오자 박유성은 헛웃음만 났다.

‘하고 싶은 게 뭐야? 구종 자랑이야?’

빠른 공 다음에 느린 공으로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게 볼배합의 기본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투 볼로 몰라다가 파울로 첫 스트라이크를 잡은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투 스트라이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걷어내기도 애매한 커브 볼이라니.

이건 승부하고 싶지 않다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5구와 6구를 툭툭 건드려 봤지만.

퍼억!

애쓴 보람도 없이 하라구치 유타의 손을 떠난 7번째 공은 거의 얼굴 높이로 날아들었다.

-하라구치 유타! 하이 코스로 승부를 걸었습니다만 박유성이 잘 참아 냈습니다.

-방금 공은 참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어쩌면 공이 너무 빨라서 대응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죠.

박유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일본 중계석은 155km/h의 구속에 꽂혔다.

요시다 코헤이처럼 160km/h의 빠른 공을 던지는 건 아니지만 좌완인 걸 감안했을 때 좌타자인 박유성이 흠칫 놀랐을 거라며 떠들어댔다.

하지만 대한민국 중계진의 반응은 달랐다.

-하라구치 유타 선수가 하이 패스트 볼을 던져 봤습니다만 통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박유성 선수에 대한 전략 분석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은데요. 박유성 선수는 그냥 정면 승부하는 게 속 편합니다. 괜히 유인구 던져봐야 투구수만 늘어나요.

-게다가 좌투수의 공을 워낙에 잘 공략하는 타자니까요.

-현 고교야구 타자들 중에 좌투수 공을 잘 치는 좌타자가 전부 대표팀에 있거든요? 박유성 선수와 이동엽 선수. 그리고 김현중 선수인데 이동엽 선수와 김현중 선수의 타율을 더해야 박유성 선수와 비슷할 겁니다.

-그 정도인가요?

-거의 그럴 겁니다. 그 정도로 박유성 선수는 좌투수를 상대하는 데 도가 텄어요.

-그 박유성 선수가 지금 1루 베이스에 나가 있는데요. 뛸까요?

-뛰겠죠. 박유성 선수라면 당연히 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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