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64화 (64/412)

타자 인생 3회차! 64화

10. 저 선수가 바로 박유성입니다! (7)

“박유성이 현민이만큼 클 수 있을까?”

김인호 팀장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솔직히 부정적인 대답을 기대하고 말을 꺼냈던 건데.

“현민이는 자기보다 낫다고 하던데요?”

“방용택 감독님도 비슷한 말씀 하셨습니다. 재능은 비슷한 거 같은데 성장 가능성은 박유성이 더 높아 보인다고요.”

황영수 과장은 물론이고 박남중 대리까지 한 목소리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거 이러다 스타즈에서 우선 지명하는 거 아냐?”

김인호 팀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황영수 과장과 박남중 대리가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스타즈는 신성 선수 못 뽑을 겁니다.”

“이미 전례가 있으니까요. 박유성 욕심냈다간 연고 지역 학교 학부형들 전부 들고 일어날걸요?”

“그렇지? 대놓고 뽑진 못하겠지?”

“스타즈 보다는 다른 구단들이 더 문제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 파이터즈에서 무슨 농간을 부릴지 모르니까요.”

“이거 조만간에 단장님께 보고 올려야겠는데?”

“그래도 일단 조별 풀리그까지는 보고 하시죠. 오늘 지나치게 컨디션이 좋았던 건지도 모르니까요.”

황영수 과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괜히 설레발쳤다가 박유성이 경기를 말아먹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하지만 박남중 대리는 그럴 일은 없을 거라 확신했다.

‘과장님도 아직 반신반의하시는 거네. 박유성은 급이 다른데 말이야.’

그 예상대로 다음 날 펼쳐진 대만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박유성은 또 다시 선두타자 홈런을 때려냈다.

2

따악!

방망이가 쪼개질 듯 한 파열음이 경기장에 울려 퍼지자 한국 중계석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중견수 뒤로! 중견수 뒤로! 아아아아! 이 타구가 전광판 상단에 꽂힙니다!

반면 지난 대회 성적을 들먹이며 재잘재잘 떠들어대던 대만 쪽 중계석은 누가 오디오 선을 뽑기라도 한 것처럼 고요해졌다.

-아, 한국의 1번 타자가 초구를 잡아당겨 홈런을 때려 냈습니다.

-느린 화면으로 다시 보니까 공이 몰린 느낌인데요. 박유성 선수가 실투를 놓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참 만에 입을 뗀 대만 중계석은 실투 타령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오리올스에서 16승을 거둔 대만 대표팀 감독 청웨인은 완벽한 타격이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콴 코치. 저 친구 치는 거 봤어요?”

“네. 봤습니다. 몸쪽 빠른 공이었는데 제대로 받아쳤더라고요.”

“그렇죠?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죠?”

청웨인 감독이 씩 웃었다.

은퇴 이후 예능 쪽에서 활동하다가 갑자기 청소년 대표팀을 맡게 되긴 했지만 조금 전의 타격은 투수로서 승부욕을 돋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콴 시엔 린 수석 코치는 박유성 때문에 오늘 경기가 꼬일 것 같아 불안해졌다.

“일단 다음 타석 때 부터는 승부를 최대한 피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박유성은 어제 경기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칠 만큼 타격감이 좋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선발 이관우도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는 투수입니다.

점수를 더 내주면 오늘 경기를 잡기 어려워질지 모릅니다.”

오늘 대만이 한국을 잡기 위해 준비한 투수는 쌍왕의 한 사람인 왕치엔.

우완 정통파 투수로 155km/h에 달하는 포심 패스트볼에 슬라이더와 커브, 체인지업, 싱커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선수였다.

그 중 주무기는 150km/h까지 찍히는 싱커.

팔꿈치 보호를 위해 자주 던지지는 않지만 대만 야구의 전설이라 불리는 전직메이저리거 왕젠미엔이 극찬할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그래서 한국을 상대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여겼는데.

몸 쪽 깊숙이 들어온 포심 패스트 볼을 그대로 통타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콴 시엔 린 수석 코치가 고개를 돌려 마운드를 바라봤다.

예상대로 승부욕이 강한 왕치엔은 박유성에게 얻어맞은 홈런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싱커를 던지면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왕치엔에게 직접 물어보진 않았지만 평소 왕치엔의 성격이라면 분명 다음번 박유성 타석 때 싱커를 꺼내 들 것이다.

제 아무리 박유성이라 해도 싱커 하나로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왕젠미엔 표싱커를 쉽게 공략해내지는 못하겠지만 싱커를 남발하면 투구 전체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았다.

왕치엔의 삼촌인 왕젠미엔은 대회 전에 싱커 제한을 요청했다.

“아직 싱커를 많이 던질 만큼 몸이 단단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싱커의 비율이 10퍼센트가 넘지 않도록 체크 해 주세요.”

이후 왕치엔이 10퍼센트는 너무 적다고 항의해서 10구로 합의를 봤지만.

콴 시엔 린 수석 코치가 보기에 10구도 너무 많았다.

온몸을 쥐어 짜내 싱커를 던지고 나면 투구 밸런스가 급격하게 무너지기 때문이었다.

‘한국에는 박유성만 있는 게 아니야. 네덜란드 전에서 전원 안타를 때려냈고 홈런을 친 선수도 4명이나 된다고.’

협회에서 얼굴마담으로 앉힌 청웨인 감독은 청춘들의 피튀기는 싸움이 즐거울지 몰라도 실질적으로 대만 대표팀을 이끄는 역할을 맡은 콴 시엔 린 수석 코치는 성적에 대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어제 대만 대표팀은 일본 대표팀에 석패했다.

에이스인 좌완 왕웨이신을 앞세워 7회까지 3대 2, 한 점 차 리드를 지켰지만 8회와 9회 연거푸 투런 홈런을 얻어맞으며 6대 4로 경기를 내줘야 했다.

목표인 결승 진출을 달성하려면 오늘 한국을 무조건 잡아야 하는 상황.

“왕천화!”

콴 시엔 린 수석 코치는 다급히 포수 왕천화를 더그아웃 쪽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별도의 허락이 있을 때 까지 싱커 사인을 절대 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알겠습니다. 코치님.”

콴 시엔 린 수석 코치 만큼이나 왕치엔에 대해 잘 아는 왕천화는 최대한 다양한 구질을 요구하며 왕치엔의 싱커 집착을 낮췄다.

“스트라이크, 아웃!”

2번 타순에 선발 출전한 김현중은 삼진으로 처리했고.

“아웃!”

까다로운 3번 타자 이동엽은 풀카운트 접전 끝에 중견수 뜬공으로 잡았다.

따악!

4번 타자 강준혁에게 몸쪽 체인지업이 몰리면서 2루타를 얻어 맞았지만.

“마이 볼!”

5번 타자 홍상철에게 또다시 몸쪽 체인지업을 던지는 과감한 승부를 펼친 끝에 3루 파울 플라이를 이끌어냈다.

-박유성 선수에게 선두타자 홈런을 얻어맞았던 왕치엔 선수가 후속 세 타자를 깔끔하게 잡아냈습니다.

-확실히 까다로운 투수네요. 삼촌을 잘 보고 배운 것 같습니다.

-왕치엔 선수의 삼촌이 대만 야구계의 전설 왕젠미엔 선수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왕젠미엔 선수 하면 또 하드싱커 아니겠습니까? 그 하드 싱커를 왕치엔 선수가 전수를 받았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대만 야구계에서 왕웨이신 선수와 더불어 대만 야구계를 이끌어 갈쌍왕이라 부르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안정감은 왕웨이신 선수 쪽이 낫지만 공의 위력은 왕치엔 선수가 한 수 위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발 투수는 이관우 선수인데요. 이관우 선수와 비교하면 어떨까요?

-우리 이관우 선수도 어디 가서 빠질 선수는 결코 아닙니다. 일단······ 저 체격을 보세요. 마운드 위에 산이 솟은 느낌입니다.

-이번에 대표팀에 합류하면서 신체검사를 했는데 이관우 선수가 최장신으로 나왔습니다. 키가 무려 189.7cm라고 하는데요.

-그 정도면 190cm죠. 저 큰 키에서 찍어 던지는 포심 패스트 볼은 알려줘도 치기 어려울 겁니다.

-어제 이 마운드 위에서 김신우 선수가 호투를 펼치는 모습을 지켜봤을 텐데요. 이관우 선수는 어떤 피칭을 보여줄지 기대해 보겠습니다.

박유성이 기억하는 이관우는 제 잘난 맛에 사는 녀석이었다.

히어로즈에 1차 지명을 받은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던 와중에도 늘 고교 시절을 운운하며 인정받으려 애를 쓰곤 했었다.

그래서 청소년 대표팀에서 마주쳤을 때 이관우와는 일부러 거리를 뒀다.

‘원래 인간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그 이관우가 달라졌다.

재수 없게 구는 건 여전했지만 다른 선수들을 인정할 줄도 알았고 모나게 굴지도 않았다.

지난번 경성 고등학교 선수들이 준비한 사과 파티 때도 가장 먼저 참석해 마지막까지 웃고 떠들다 갔다.

‘사람이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던데······.’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슬쩍 말을 건네봤는데.

뚱딴지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유성아. 난 할 수만 있다면 청대에 계속 있고 싶다.”

“뭔 소리야?”

“학교에 있을 때는 부담감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거든? 그런데 여기는 편해. 솔직히 다들 나만큼은 하는 애들이잖아.”

“그 와중에 네가 제일 잘 하고. 그렇지?”

“투수 중에서? 글쎄.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는데 신우는 못 이기겠더라.

경호도 생각보다 잘 던지고. 주변에서 체격발이라고 할 때마다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거든? 근데 그 말이 맞았어. 이 체격이 아니었다면 아마 대표팀에 못뽑혔을 걸?”

“······?”

“왜 그렇게 바라봐?”

“저기 누구세요?”

“······?”

“제가 아는 이관우는 이런 성격이 아닌데요. 싸가지에 밥을 몇 그릇 말아먹은 놈인데요?”

“야, 너도 싸가지 없는 건 마찬가지거든?”

“나? 웃기네. 야! 난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 어디 너하고 비교해?”

“다른 애들한테 물어봐라. 네가 더 싸가지 없다고 하지.”

“내기할래?”

“콜!”

결과적으로 이 날 내기는 박유성의 완패로 끝이 났다.

중립적인 김신우부터 시작해 같은 방을 쓰면서 나름 친해졌다고 여긴 고우일까지 전부 이관우의 편을 들어 준 것이다.

그제야 박유성은 싸가지 없다는 말이 얄미울 정도로 야구를 잘 한다는 의미라는 걸 깨달았다.

어쨌거나 이관우는 앞선 회차 때와 많이 달라졌다.

이관우와 같은 방을 쓰는 강우석의 말에 따르면 신성 고등학교 전과 선인 고등학교 전에서 연달아 무너진 게 충격이 컸다고 했다.

“뭐야? 기승전내잘못이야?”

“네 잘못 맞지. 넌 신우하고 경호도 우울증 걸리게 만들었잖아.”

“뭐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야구를 더럽게 잘 하는 게 잘못이면 사형 수준?”

“아니 야구선수가 야구를 잘 하는게 잘못이야? 그게 잘못이야?”

“그러게 좀 적당히 잘 하지 그랬냐. 너 하는 거 보고 있잖아? 그냥 프로 선수가 나이 속이고 우리 농락하는 거 같아.”

“소설 쓰냐?”

“내가 그래서 야구 소설은 안 봐. 현타오거든.”

앞선 회차 때보다 일찍 무너지면서 일종의 자기반성이 들었다던데.

왠지 히어로즈 팬들에게만 좋은 일을 시킨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청소년 대표팀에 큰 힘이 되었다.

-헛스윙 삼진 아웃! 이관우 선수가 3번 타자 호엉쉰까지 삼진으로 잡아냅니다!

-이관우 선수, 오늘 페이스가 어마어마한데요? 세 타자를 전부 삼진으로 돌려 세웠습니다.

-지금 중계 카메라가 박유성 선수를 비추고 있는데요. 무슨 의미일까요?

-오늘은 박유성 선수가 호수비를 펼칠 일이 없을 거라는 얘기 같은데요. 솔직히 이대로 이관우 선수가 계속해서 삼진 퍼레이드를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이관우의 호투는 다시 왕치엔의 각성으로 이어졌다.

-왕치엔 선수가 오대석 선수에 이어 홍우진 선수까지 삼진으로 잡아냅니다.

-이렇게 되면 탈삼진 수가 3대 3인데요. 팽팽한 투수전 양상으로 흘러가는 기분입니다.

왕치엔이 따라붙자 이관우도 5번 타자 린쯔화와 6번 타자 왕순하오를 삼진으로 솎아내며 격차를 벌였고.

다시 3회 초에 왕치엔이 8번 타자 송산아와 9번 타자 채준영을 삼진으로 돌려 세우며 5대 5 균형을 맞췄다.

그렇게 2사 주자 없는 가운데 박유성의 두 번째 타석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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