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63화
10. 저 선수가 바로 박유성입니다! (6)
트윈스 스카우트 팀을 총괄하는 김인호 팀장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자유로운 의견 개진도 좋지만 송현민의 발언이 어떤 반응으로 이어졌는지부터 파악해야 했다.
그러자 박남중 대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사줘입니다.”
“누굴? FA?”
“아뇨. 박유성이요.”
“야구 월드컵에서 사이클링 히트 쳤다는 그 친구?”
“네. 청소년 국대 막차를 탔다는데 지금 주장이 됐습니다.”
“주장?”
“방용택 감독님께 슬쩍 여쭤봤는데 여간내기가 아니라고 합니다. 트윈스에 꼭 필요한 인재라고도 하셨고요.”
“흠······. 그래?”
방용택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김인호 팀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송현민이 트윈스 최고의 스타였던 것처럼 김인호 팀장의 시대에 트윈스 스타는 방용택이었다.
입단 이후 19년 간 트윈스에서만 뛰었고 마지막 시즌 때도 3할을 칠 만큼 기복 없는 꾸준한 플레이로 트윈스의 기둥 노릇을 해 주었다.
그런 방용택이 박유성을 추천했다고 하니까 그 어떤 설명보다 확실하게 와닿았다.
그러자 스카우트 팀 막내 조영식 대리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질문 있습니다.”
“하지 마.”
“박유성은 신성 고등학교 소속이고······.”
“시끄러.”
“신성 고등학교는 저희 관할이 아닌데요?”
막내 조영식이 눈치 없이 팩트를 언급했다.
폐지됐던 우선 지명권이 스타즈의 서울 입성으로 다시 부활한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순번제를 시작으로 서울 지역 유망주들의 합리적인 배분을 위해 노력했지만 마땅한 답이 없었고.
결국 기존의 방식대로 서울 지역을 4개로 쪼개어 트윈스와 스타즈, 히어로즈, 베어스가 나눠 갖게 됐다.
그리고 현재 박유성이 다니는 신성 고등학교는 스타즈 연고 학교로 지정된 상태였다.
만약에 누군가 박유성에 대한 우선권을 주장한다면 그건 우선 지명권을 가진 스타즈일 터.
방용택 감독이 박유성을 추천한다 한들 지금 당장 트윈스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아 보였다.
그러자 황영수 과장이 짜증을 냈다.
“지금 여기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다들 우선 지명 생각하시는 거 같아서요.”
“그러니까 누가 우선 지명을 언급했는데? 내가? 아니면 박 대리가?”
“1차 지명으로 가도 불가능한 건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 작년에 우승했는데요.”
황영수 과장의 잔소리가 부당하다고 생각했던지 조영식이 다시 반박했다.
하지만 트윈스라는,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인기 구단의 스카우트 팀원 중에 그런 뻔한 사실들을 놓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식아. 낄끼빠빠 좀 해라.”
“제가 틀린 말 했습니까?”
“어. 틀린 말 했어. 그러니까 제발 입 좀 다물어. 넌 짬도 안 되는 게 왜 이 럴 때마다 설치는 거야?”
“그럼 저는 언제 낄 수 있습니까?”
“나도 팀장님하고 과장님 대화에 끼는 데 5년 걸렸어. 너 이제 3년차지? 2년 더 채워.”
“2년이나요?”
“야. 박 대리. 쟤는 2년으로 어림 없어. 너나 되니까 받아 준 거지 저 놈은 답이 없다. 답이 없어.”
황영수 과장이 혀를 쯧쯧 찼고.
박남중 대리는 억울해 하는 조영식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
“대리님. 진짜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너야말로 이건 좀 아니지 않아? 내가 말 했지? 너만 잘났고 너만 다 알고 있다는 생각 좀 버리라고.”
“갑자기 박유성 얘기가 나오니까 그런 거잖습니까?”
“그래서 뭐? 박유성을 트윈스에 데려올 가치가 없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네가 밀고 있는 선수들이 트윈스에 못 올까 봐 설레발치는 거야?”
“그런 거 아닙니다. 저는 단지······.”
“너 김경진 협회장하고 따로 연락하는 거 모르는 사람 없다. 그러니까 입 닥치고 있어.”
“······!”
“너 한 번만 더 선 넘으면 그땐 아웃이다.”
벙찐 조영식을 뒤로하고 박남중 대리가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영식이는?”
“제가 따끔하게 한 마디 했습니다.”
“쟤는 말로 해서는 안 돼. 그냥 내쫓아야지.”
“일단 놔둬. 아직 무슨 짓을 한 건 아니잖아.”
“무슨 짓을 하기 전에 내쫓아야죠. 저나 팀장님도 아니고 짬도 안 되는 새끼가 뒤에서 헛짓거리 하고 다니는 게 말이나 됩니까?”
“황 과장 짬이면 뒤에서 헛짓거리 해도 괜찮다는 거야?”
“말이 그렇다는 거죠.”
“암튼 영식이는 지금처럼 박 대리가 잘 관리하고.”
“네. 팀장님.”
“하던 얘기 마저 하자고. 박유성이가 필요해?”
김인호 팀장이 박남중 대리를 먼저 바라봤다.
약간 딸랑이 기질이 있는 황영수 과장보다는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박남중 대리의 의견이 보다 객관적일 것 같았다.
그러자 박남중 대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합니다.”
“꼭 데려올 정도 까지는 아니야?”
“지금까지 보여준 결과만 놓고 보자면 우선 지명을 받아도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다만 지난 2년간 보여준 게 아무것도 없어서요. 누적 데이터를 봐야 할것 같습니다.”
“저도 박 대리와 같은 생각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갑툭튀인데······ 이런 부류의 선수들이 모 아니면 도지 않습니까.”
“잘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죽 쑤거나?”
“다른 포지션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톱 타자에 중견수면 2군에서 테스트해 볼시간도 없이 바로 불려 올라갈 텐데 만에 하나 삽질하기라도 하면······.”
“우리한테 불똥이 튀겠지. 솔직히 현민이 이후로 재미 본 선수가 없으니까.”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지만 우선 지명 선수 중에 프로에서 대성한 경우는 손에 꼽혔다.
해마다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선수라 해도 프로의 세계는 냉정한 법.
날고 기는 선배들과의 경쟁을 이겨내고 기회를 보장받은 뒤에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려면 보통 잘하는 정도로는 어림없었다.
우선 지명이니까 당연히 잘해야 하고 1군에서 뛰려면 더 잘해야 하며 주전으로 출전하려면 진짜 잘해야 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1년 반짝하는 선수보다는 떡잎부터 다른 선수들에게 조금 더 정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럼 현민이 이야기는 뭐야?”
“그렇지 않아도 아까 현민이하고 통화했는데 작년 겨울에 처음 봤답니다. 재능이 있어 보여서 따로 후원해 왔다고 하고요.”
“그러니까 작년 겨울부터 갑자기 실력이 늘었다는 거야? 이거 설마······?”
“도핑은 아닙니다.”
“확실해?”
“네. 협회에서 이미 3번이나 도핑 테스트를 했는데 아무 것도 나온 게 없다고 합니다.”
“그 검사를 어디서 했는데?”
“신성 강남 병원이요.”
“그럼 확실한 거네.”
“네. 그쪽으로는 깨끗하다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신성 강남 병원에 마련된 도핑 분석 센터는 벌써 부터 아시아 도핑 검사의 중심이 될 거라는 호평을 받고 있었다.
황인철 센터장이 워낙에 유명한데다가 세계 수준의 도핑 검사 장치들을 빠르게 도입하면서 주변국들의 검사 의뢰가 밀려드는 상황이었다.
송현민도 미국으로 출국 전에 신성 강남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아무 이상 없다는 확인서를 발급받았을 정도.
“도핑이 아니면 뭐야? 갑자기 각성이라도 한 거야?”
“들리는 소문으로는 뭔가 계기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계기?”
“정확한 건 잘 모르겠지만요.”
“흠······.”
잠시 고심하던 김인호 팀장이 황영수 과장을 바라봤다.
“혹시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나?”
“어떻게 아셨습니까? 박유성 아버지가 암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암?”
“네. 다행이 초기에 발견되어서 완치됐다고 하고요.”
“그럼 그거겠네.”
“네?”
“나도 고등학교 2학년 때 까지 공부하고 담을 쌓았거든. 그런데 겨울 쯤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암이라는데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
“아이고.”
“어머니 소원이 나 대학가는거라고 하셔서 그 때부터 진짜 이악물고 공부했어. 그리고 지금 이렇게 사는 중이고.”
“박유성이도 뒤늦게 정신 차렸을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시네요.”
“원래 재능도 가지고 있었겠지. 그런데 아버지 병환 때문에 야구에 집중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고.”
꿈보다 해몽이었지만 황영수 과장은 물론이고 박남중 대리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재능이 없던 선수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보다 원래 재능은 있었지만 노력하지 않은 선수가 정신 차린 쪽이 훨씬 더 그럴듯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성 고등학교 전력이 문제였겠네요.”
“전력?”
“강팀들은 학년 불문하고 실력만 보잖아요. 반대로 전국 대회에서 부진한 팀들은 프로 입시가 중요하니까요.”
“3학년 위주로 팀을 꾸릴 수 밖에 없다는 얘기로군.”
“박유성은 그런 게 싫지 않았을까요? 나는 분명 재능이 있는데 선배랍시고 길을 막고 있으니까요.”
“그럴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실 장태수라고 신성에서 더 주목받던 선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는 이번에 청소년 대표팀에 합류못했습니다. 반면 박유성은 방용택 감독님이 직접 데려 가셨고요.”
“그리고 개막전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쳐버렸지.”
“제 생각이지만 어쩌면 방용택 감독님은 박유성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으셨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가 점점 산으로 갔지만 김인호 팀장은 그 어떤 말보다 깊이 공감했다.
삼국지 유비가 서서의 추천으로 와룡이라 불리는 제갈공명을 찾아간 것처럼 방용택 감독도 신성 고등학교에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는 박유성의 진가를 알아채고 발탁한 거라면?
잠깐 반짝하는 선수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일단 박유성을 뽑을 방법부터 만들어 보자고.”
김인호 팀장이 다시 분위기를 다잡았다. 그러자 박남중 대리가 곧바로 말을 받았다.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지명권 트레이드?”
“우선 지명권은 트레이드를 할 수가 없으니까 1차 지명권을 받아 와야 합니다.”
“가장 빠른 게 파이터즈지?”
“네. 가장 말이 잘 통하는 팀이죠.”
프로야구 드래프트는 전년도 성적 역순으로 선발권이 주어진다.
2027년 프로야구 최하위 팀은 올해도 파이터즈.
모기업의 지원이 한정적이라 제대로 된 용병 선수들조차 수급하지 못하고 있었다.
“파이터즈가 뭘 원할까? 선수? 아니면 돈?”
“둘 다죠. 파이터즈 욕심 장난 아니지 않습니까?”
“경쟁이 붙으면 값이 오를 겁니다.”
“박유성이 그 정도까지 갈까?”
“지금 시점에서 고졸 외야수를 1라운드에 지명할 팀은 우리뿐이겠지만 나중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드래프트 시장에서 프로야구 구단이 가장 선호하는 건 언제나 투수였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처럼 잘 키운 투수 한 명의 가치는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12구단 체제에 접어들면서 외국인 용병 제한이 4명으로 늘어나자 모든 구단이 투수를 3명으로 늘렸다.
우승을 차지한 구단도 투수 왕국이라 불리는 구단도 예외는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투수 유망주들이 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나서야 투수를 최대 2명까지 쓸 수 있다는 제한이 생겼다.
올해 드래프트 시장도 예년과 비슷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컸다.
일단은 우선 지명을 받지 못한 투수들 위주로.
다음으로 즉시 전력감이라 불리는 대학 졸업 선수들.
다음으로 취약 포지션에서 키워 볼 만한 장타력을 갖춘 타자들.
일반적으로 박유성 같은 유형의 차례는 그 다음이었다.
하지만 박유성이 이번 U-18 야구 월드컵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친다면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