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56화
09. 누가 1번이야? (6)
성강대학교와의 연습 경기는 6대 1, 청소년 대표팀의 완패로 끝이 났다.
급조된 경기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투수들은 물론이고 타자들도 기대 이하의 경기력으로 방용택 감독을 신음하게 만들었다.
“내가 빨리 합숙 들어가야 한다고 말 했지?”
“그러게. 뭐가 이렇게 엉망이지?”
“요즘 애들은 개인주의가 강하다니까. 다들 자기 할 것만 하잖아.”
“이러다 진짜 2년 전 꼴 나겠어.”
“짜식이 악담은. 누구 모가지 잘리는 꼴 보고 싶냐?”
그 와중에 박용택 감동과 전근우 수석 코치를 웃게 만든 건 역시나 박유성이었다.
3타수 3안타에 3도루 1득점.
팀의 유일한 점수를 만들어낸 것은 물론이고 루상에 나가 대학 선수들을 부지런히 괴롭혔다.
오죽하면 성 대학교 감독이 박유성에게 짜증을 냈을 정도.
“그래도 유성이 하나 건져서 다행이야.”
“내가 말 했잖아. 유성이 저 녀석은 물건이라고.”
“유성이 아니었으면 점수 못 냈겠지?”
“못 냈지. 2루타 치고 나가서 3루 도루하는 정신 나간 놈이 몇이나 되겠어?
그것도 우완 투수 앞에서.”
“그건 솔직히 나도 자신 없을 거 같은데?”
“나도 마찬가지야. 거기서 죽으면 분위기 개판 되는데 그걸 각오할 수 있는 간 큰 녀석? 솔직히 유성이 빼곤 없을걸?”
경기가 끝나고 황금사자기 4강전 결과가 들어왔다.
앞서 치러진 광일 고등학교와 선인 고등학교는 광일 고등학교의 4대 3, 한 점차 신승으로 끝이 났다.
“이거 선인한테 미안한데?”
“뭐가 미안해? 선인이나 광일이나 에이스 빼고 붙은 건데.”
“그래도 선인은 3명이나 뺐잖아.”
“형. 선인은 오히려 신우 안 나와서 할만하다고 생각했을걸?”
“그런가?”
이 때까지만 해도 내심 찜찜했던 방용택 감독은 다음 날 들어 온 경성 고등학교와 휘명 고등학교의 결과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9대 3?”
“휘명이 원사이드하게 이겼다는데?”
“경성 선발 강우석 아니었어?”
“강우석이라고 맨날 잘 던지나? 오늘은 5이닝도 못 버텼대.”
4강전이 끝났지만 경성 고등학교 3인방은 대표팀에 합류하지 않았다.
서울 지역 라이벌인 선인 고등학교와 3,4위전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강우석도 못 온대?”
“협회 쪽에서 물어봤는데 강우석도 등판 예정이라던데?”
“수요일에 던지고 금요일에 또 올린다고?”
“고교 야구잖아. 감독이 까라면 까야지.”
“이거 우석이는 선발 라인업에서 완전히 빼야겠는데?”
총 8명의 투수들 중에 보직이 확정된 건 4명 뿐이었다.
일단 광일 고등학교 우완 투수 김신우는 모든 투수들을 통틀어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
올 시즌 성적도 나무랄 데 없는 데다가 돌부처라는 별명처럼 멘탈이 강하다 보니 큰 경기에 믿고 내보낼 수 있었다.
김신우와 반대로 다소 기복이 있는 경기력을 보여주었던 덕우 고등학교 좌완이관우도 일단은 합격점을 받았다.
워낙에 체격이 좋고 공격적이라 일본 전은 어렵더라도 좌타자가 많은 팀을 상대로 충분히 제 몫을 해 줄 거라 여겼다.
청송 고등학교 좌완 안경호는 평가전을 통해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투구폼 자체가 공략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가 기본적으로 제구가 좋아서 대학교 타자들조차 까다로워했다.
마지막으로 첫날에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충열 고등학교 최현준은 조기에 마무리 투수로 확정됐다.
작년까지 교내에서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 전례가 있다 보니 최현준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나머지 선발은 어떻게 할 거야?”
“해준이하고 준기 어때?”
“영진이는 불펜으로 돌리려고?”
“준기보다는 영진이가 낫지 않을까? 어차피 준기도 슈퍼 라운드 들어가면 불펜으로 돌릴 거잖아.”
“일본전 때문에 그러는 거구나?”
“우석이가 일찍 합류했으면 영진이하고 준기 둘 다 불펜으로 돌리는 건데 그건 어려울 거 같으니까 일단은 영진이라도 준비 시켜야지.”
총 12개국이 참가하는 이번 대회에서 대한민국은 네덜란드, 대만, 일본, 남아 프리카 공화국, 이탈리아와 한 조로 묶였다.
상위 3팀이 올라가는 슈퍼 라운드에 진출하려면 최소 4승을 거두어야 하는데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이탈리아를 제외하고는 승리를 장담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B조에서는 누가 올라올까?”
“미국하고 캐나다는 고정일 거 같고 쿠바하고 도미니카 공화국, 호주 중에 추가가 되지 않겠어?”
“뭐야, 그게. 중국 빼고 다 나왔네.”
“그만큼 애매하잖아. B조는.”
B조는 미국과 캐나다,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호주, 중국이 한 조를 이뤄 풀리그를 치른다.
단순히 이름값만 놓고 보자면 야구 종주국을 자처하는 미국과 아마 야구 최강쿠바, 그리고 만만찮은 전력을 과시해 온 캐나다가 눈에 띄지만.
U-18 야구 월드컵에 진심으로 출전하는 나라들이 아니다 보니 도미니카 공화국이나 호주 같은 다크호스들의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B조가 서로 물고 물리면 무조건 A조 1위로 올라가야 해.”
“결국 일본을 잡아야 한다는 거네.”
“그런데 일본 애들은 왜 저렇게 열심인 거야?”
“여름 코시엔 전에 열리는 대회라잖아. 일본 입장에서는 선수 차출하기 편한 거지.”
코시엔이라 불리는 일본의 전국대회는 봄과 여름에 열린다.
그래서 대회 기간에 U-18 야구 월드컵이 열리면 코시엔 탈락팀 중에서 대표팀을 선발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봄 코시엔과 여름 코시엔의 딱 중간에 대회가 잡혀서 베스트 전력을 구상했다.
해외 언론들은 벌써부터 이번 대회 우승 후보 1순위로 일본 대표팀을 꼽을 정도.
반면 대한민국 대표팀은 홈 어드벤티지를 고려하고도 미국, 쿠바에 밀려 4순위에 그쳤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전하고 이탈리아 전을 먼저 치르면 좋을텐데 아쉽네.”
“그러게. 그랬으면 일본 전때 투수를 전부 끌어 쓸 수 있잖아.”
2028 U-18 야구 월드컵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22일(목) 네덜란드
23일(금) 대만
24일(토) 일본
25일(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26일(월) 이탈리아
28일(수) 슈퍼 라운드 1경기
29일(목) 슈퍼 라운드 2경기
30일(금) 슈퍼 라운드 3경기
01일(토) 순위 결정전
02일(일) 3,4위전 및 결승전
콜드 게임이 유력시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전과 이탈리아 전을 먼저 치렀다면 투입한 선발 투수들을 일본전에 대기시키는 구상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동헌 투수 코치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게 되면 결승전 선발이 꼬여요.”
“그런가?”
“결승전 상대에 따라 신우나 관우를 준비시켜야 하는데 조별리그 등판 일정밀리면 힘들죠.”
“하긴. 그것도 그렇겠다.”
11일간의 경기 일정 중에 휴식일은 슈퍼 라운드 직전에 주어지는 하루밖에 없었다.
그것도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경기 중단 상황에 대한 예비일로 빼놓은 거지 선수들의 휴식을 보장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9월 1일에 열리는 결승전에 진출한다고 가정했을 때 에이스인 김신우는 무조건 조별리그 첫 경기에 등판하는 게 좋았다.
“일단 신우가 22일 1경기 때 나오고 5일 쉬고 28일 슈퍼 라운드 1경기 뛰고 결승 준비하는 게 최선이에요.”
“만약에 관우가 나갈 상황이면?”
“관우 혼자로는 좀 불안하죠. 신우 대기 시켜야죠.”
“신우 등판할 때도 마찬가지고?”
“결승전은 신우하고 관우 세트로 끌고 가는 게 최선이에요. 솔직히 다른 애들은 그냥 좀 잘 던지는 정도고요.”
언론들은 톱 5니 4대천왕이니 떠들며 선수들의 등급 나누기에 혈안이 되어 있지만.
프로야구에서만 19년을 뛴 이동헌의 눈에는 다 고만고만했다.
김신우와 이관우도 경기 운영 능력과 체력에 강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투수들을 압도할 정도의 기량을 갖춘 건 아니었다.
“2년 전과 비교하면 어때?”
“비슷하거나 살짝 나은 정도?”
“낫긴 한 거야?”
“일단 제가 합류했으니 좀 더 낫지 않을까요?”
“네가 던지냐?”
“엔트리 등록시켜 주세요. 제 남은 인대를 대표팀을 위해 쓰겠습니다.”
이동헌 투수 코치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김태윤 타격 코치가 코웃음을 쳤다.
“네 인대 필요 없어. 우리에게는 유성이가 있으니까.”
“맞아. 우리에겐 유성이가 있지.”
“그래. 유성이.”
김태윤 타격 코치의 말에 전근우 수석 코치와 방용택 감독이 줄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유성이가 그렇게 잘 해요?”
“보면 몰라? 잘 하잖아.”
“잘하는 거야 알죠. 근데 이렇게 셋이서 호들갑을 떨 정도로 잘하는 거 맞냐고요.”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에 박유성의 실력에 대해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단 고교 야구에서 보여준 성적이 월등하고 연습 경기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도 다른 선수들과 급이 달랐기 때문이다.
만약에 아마추어 지도자인 송영학 코치나 민병욱 코치, 박재혁 코치가 그런 말을 했다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프로 야구 레전드인 방용택과 전근우, 김태윤이 한 목소리로 극찬을 쏟아내는 게 어색하기만 했다.
그러자 전근우 수석 코치가 웃으며 말했다.
“너 아까 태윤이가 라인업 짜면서 뭐라고 한 줄 아냐?”
“뭐라고 했는데요?”
“유성이가 세 명이었으면 좋겠대. 1번하고 3번, 9번에 넣으면 딱이라고.”
“1번하고 9번은 알겠는데 3번은 뭐예요?”
“유성이 타석에서 집중력 좋잖아. 게다가 장타도 제법 치고.”
“그래도 3번은 홈런을 쳐 줘야 하지 않아요?”
“국제 대회에서 홈런이 나와봐야 얼마나 나오겠어? 어차피 홈런은 흐름이야.
그 흐름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해.”
김태윤의 바람대로 박유성은 4차례 평가전에서 전부 다른 타순을 쳤다.
영광 대학교와의 경기에서는 앞선 경기처럼 9번 타순으로 출전해 4타수 3안타에 2득점, 2도루를 기록했고.
중영 대학교 전에서는 1번 타자로 올라와 4타수 3안타에 1타점 2득점 도루 3개로 청소년 대표팀의 공격을 주도했다.
대학 리그 우승 후보인 동호 대학교와의 경기에서는 3번 타순에 배치됐는데 다시 만난 고윤식을 상대로 4타수 2안타 3타점을 기록하며 코칭스태프들을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
“유성이 진짜 3번 넣어도 될 거 같은데?”
“그러게. 나도 고윤식이 상대로 그렇게 잘 할 줄은 몰랐다.”
“고윤식이 그 녀석 유성이 이겨 먹으려고 악착같이 던지더만?”
“원래 5이닝만 던지기로 했는데 7회까지 버텼잖아.”
“마지막에는 김혜성이 나왔으니까 고윤식이 상대로는 3타수 2안타인 건가?”
“그것도 한 번은 야수 직선타였으니까 완패라고 봐야겠지.”
야구 연습장에 가서도 155km/h 이상의 공을 가볍게 때려댄 박유성에게 대학 리그 투수들의 공은 대단할 게 없었다.
고교 야구 투수들에 비해 무브먼트가 좋긴 했지만 프로 40년차 짬에 수많은 투수들을 상대해 온 박유성에게는 흔하디 흔한 공이었다.
하지만 박유성을 제외한 청소년 대표팀 타자들은 한 수 위의 대학 리그 투수들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했다.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 현중이하고 우일이를 1,2번으로 두고 유성이를 3번에 넣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럼 유성이의 기동력이 죽잖아.”
“어차피 경기 시작하고 나면 1번 타자는 의미 없어. 경기에 가장 먼저 나오는 타자일 뿐이라고.”
“수비 포지션도 생각해야지. 유성이를 지명에 넣으려고?”
박유성의 주가가 나날이 치솟는 가운데 뒤늦게 경성 고등학교 선수들이 대표팀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