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54화
09. 누가 1번이야? (4)
3
2028년 U-18 야구 월드컵 대표팀 최종 명단
감독 - 방용택
코치 - 전근우, 이동헌, 김태윤, 송영학(경암고등학교), 민병욱(경성고등학교), 박재혁(청라고등학교)
투수(8명)
강우석(경성고등학교 3학년), 강준기(군산고등학교 3학년), 김신우(광일고등 학교 3학년), 김영진(선인고등학교 3학년), 나해준(선인고등학교 3학년), 안경호(청송고등학교 3학년), 이관우(덕우고등학교 3학년), 최현준(충열고등학교 3학년)
포수(3명)
송산아(광일고등학교 3학년), 안우현(경성고등학교 3학년), 최민석(덕우고등 학교 3학년)
내야수(5명)
강준혁(경암고등학교 3학년), 오대석(충열고등학교 3학년), 이동엽(선인고등 학교 3학년), 채준영(휘명고등학교 3학년), 홍우진(북익고등학교 3학년)
외야수(4명)
고우일(인흥고등학교 3학년), 김현중(경성고등학교 3학년), 박유성(신성고등 학교 3학년), 홍상철(경복고등학교 3학년)
“네 이름이 어디 있다는 거야?”
“아버지. 외야수에 있잖아요.”
“어디? 안 보이는데?”
“여기요. 여기! 우리 아버지 안과도 가셔야겠네.”
“이 놈아! 안경도 안 쓰는데 안과를 왜 가?”
“그러게 안경도 안 쓰시는데 이걸 왜 못 보세요?”
박유성의 손가락 끝에 걸린 아들의 이름을 보며 박명철은 애써 웃음을 참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별 성적을 못 내서 프로는 물건너갔다 싶었는데.
갑작스럽게 야구를 열심히 하더니 이제는 청소년 대표로까지 뽑혔다.
“이게 다 해서 몇 명이냐?”
“20명이죠.”
“그러니까 네가 20명 안에 든다는 거야?”
“에이, 아버지. 1등이에요. 1등.”
“1등은 무슨.”
“진짜라니까요? 저 어제 누구 만나고 왔는 줄 아세요?”
“누구?”
“아버지가 그렇게 애증해 마지않는 용택이 삼촌이요.”
“용택? 설마 방용택이?”
“네. 청소년 대표팀 감독님이시거든요.”
“허, 감독? 감도오오옥?”
순간 박명철은 기가 차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들이 갑자기 야구 도사가 된 것도 믿기 어려운데 방용택이 감독이라니.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아니 방용택이가 뭘 했다고 감독이야?”
“에이, 방용택 감독님 정도면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으셨죠.”
“졸렬하게 한 획을 그었다냐?”
“왜 또 우리 감독님 치부를 건드리세요.”
“우리 감독니임?”
“그럼 남의 감독님인가요? 암튼 아버지도 이제 트윈스 혐오를 멈춰 주세요.”
박유성이 짓궂게 말했다.
송현민에 이어 방용택까지 트윈스의 스타플레이어들과 엮이고 있는데 베어스골수팬이라는 이유로 깎아 내리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박명철은 박유성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베어스에 진심이었다.
“혐오는 무슨. 싫은 걸 싫다고 말하는 게 어떻게 혐오냐?”
“요즘 같은 시대에 그렇게 직설적으로 감정을 표출하시면 큰일나요.”
“지금이 무슨 일제 시대야? 싫은 걸 어떻게 하냐 싫은 걸! 그 줄무늬 유니폼만 봐도 밥맛이 뚝 떨어지는 걸 어떻게 해?”
“아이고. 우리 아버지 나중에 트윈스 입단한다고 하면 기절하시겠네.”
“뭐 이놈아?”
“트윈스 찍고 양키즈를 갈까요? 그럼 줄무늬 유니폼에 익숙해 지시려나?”
“너 나가. 나가 이놈아!”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합숙이거든요? 그러니까 저 쫓아낼 생각 마시고 약속지키세요. 아셨죠?”
“약속? 무슨 약속?”
“저하고 약속하셨잖아요. 억대 계약금 받으면 유신이 야구 시키신다고요.”
“이 놈아. 받고나 말 해.”
“아버지. 그냥 쿨 하게 패배를 인정하시죠?”
“인정 못 해! 아니 안 해! 그리고 너 미리 경고하는데 트윈스 가기만 해. 내가 아주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버릴 거야.”
박명철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박유성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1회차와 2회차 시절 파이터즈에 입단했을 때도 박명철은 군 말 없이 야구장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윈스는 좀 위험할지도.”
더 이상 아버지를 놀려봐야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박유성은 자연스럽게 박유신의 방을 찾아갔다.
살가운 형제처럼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더니.
“뭐, 뭐야!”
박유신이 자지러지며 태블릿을 등 뒤로 감췄다.
“뭐긴 인마. 형이지. 근데 너 뭐하고 있었어?”
“아무것도 안 했어.”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
“응.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
“그런데 등뒤에 뭘 감춘 거야?”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이리 줘 봐. 정말 아무것도 아닌가 보게.”
“아니야. 싫어. 시러어어어어.”
박유신이 악착같이 버텼지만 요즘 들어 부쩍 근력이 는 박유성을 당해낼 순없었다.
“짜식이 내가 송흔민 보지 말랬지?”
박유성이 씩 웃으며 테블릿을 두드렸다.
보나마나 따라잡지도 못할 송흔민 스페셜을 보며 침을 질질 흘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배경이 야구장이었다.
심지어 등장하는 선수들의 유니폼에는 너무나 낯선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신성.
“네가 이걸 왜 봐?”
박유성이 놀란 눈으로 박유신을 바라봤다. 그러자 박유신이 빨개진 얼굴로 소리쳤다.
“헝아 졌잖아! 바보 멍충이! 메롱!”
“그러니까 네가 이걸 왜 보고 있냐고?”
“흥! 형아랑 안 놀아!”
할 말이 없어진 박유신이 쪼르르 도망치려 했지만 박유성은 예나 지금이나 집요했다.
“어딜 도망가? 얼른 말 안 해?”
“싫어! 말 안 할거야.”
“형아가 멋있어서 본 거야?”
“아니!”
“그럼 형아가 엄청 멋있어서 본 거야?”
“아니!”
“짜식이. 형아가 그렇게 멋있었어? 송흔민보다 형아가 더 멋있는 거야? 그래?”
“아니 아니!”
박유신이 열심히 고개를 흔들었지만 박유성의 눈에는 한없는 긍정으로 느껴졌다.
“짜식. 보는 눈이 있어. 그래, 좋아. 이번에는 형도 자신 있거든? 그러니까 따라 올 테면 따라와 봐.”
“뭐래! 나 갈 거야!”
이때다 싶어 후다닥 도망치는 박유신을 보며 박유성이 피식 웃었다.
2회차 시절에도 이렇게 빠르진 않았는데.
미래의 슈퍼스타께서 벌써부터 형아바보가 됐다고 생각하니까 괜히 우쭐해졌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오늘 하루 쉬려고 했는데 더 빡세게 해야겠어.”
박유성은 야구 가방을 챙겨들고 집 근처에 있는 실내 야구 연습장으로 향했다.
작년 말부터 다니기 시작한 곳인데 최고 160km/h까지 나오는 최신식 피칭 머신이 구비되어 있었다.
퍼엉!
오늘도 여느 때처럼 피칭 머신 주변으로 사야인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실제 경기에서는 구경조차 하지 못할 빠른 공을 쳐 보고 싶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갔지만.
선수 출신이 아니고서야 150km/h 이상의 공과 정면승부를 벌이는 건 무모해 보였다.
그 때 사장인 김대균이 박유성에게 다가왔다.
“왔냐?”
“오늘도 난리가 아니네요.”
“하아. 저거 그냥 팔아버리던가 해야지 안 되겠다.”
“왜요?”
“여기가 코인 배팅장인지 베이스볼 트레이닝 센터인지 분간이 안 돼.”
다른 사람이었다면 피칭 머신을 한 대 더 구입할 생각을 했겠지만 코치 역할을 병행하는 김대균은 눈앞의 풍경이 한심스럽기만 했다.
실제로 저런 행태가 못마땅해 레슨을 취소한 회원도 세 명이나 됐다.
“제가 정리 좀 해 드려요?”
“그래주면 고맙고.”
“대신 알죠?”
“네가 언제는 돈 내고 연습했냐?”
오늘도 뻔뻔하게 공짜를 요구하는 박유성을 보며 김대균이 코웃음을 쳤다.
솔직히 박유성 정도 실력이면 센터에 가끔 와 주기만 해도 고마운 상황이었지만.
매번 저렇게 입으로 까먹으니 자꾸 얄미워졌다.
“일단 몸부터 풀게요.”
라커 룸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은 뒤 박유성은 꼼꼼히 몸을 풀었다.
그러면서 누가 얼마나 잘 하나 조용히 지켜봤는데.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뱃심으로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암튼 야구 미튜버들이 여럿 망친다니까.”
적당히 몸을 푼 박유성은 원목의 방망이를 꺼내들고 배팅 케이지로 다가갔다.
고작 배팅 볼을 치는데 한 자루에 100만원을 호가하는 경기용 방망이를 쓰는 건 아직 무리였다.
“뭐야? 너도 치게?”
“꼬마야. 그러다 다친다.”
박유성이 다가오자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중년 사내들이 비웃듯 말했다.
가끔 호승심에 덤벼들었다가 망신만 당하고 도망치는 젊은 친구들이 많은데 박유성도 그들 중 하나일 거라 여겼다.
하지만 박유성의 타격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감히 그런 말을 하지 못했다.
“어이구. 우리 박 선수 왔어?”
“종우 아저씨 또 오셨네요?”
“아저씨라니. 형이라고 부르라니까.”
“형은 좀······.”
“그럼 중간쯤에 삼촌에서 만나자.”
“그렇게 해요. 종우 삼촌.”
삼촌이라는 말에 신이 난 배종우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사내들을 뒤로 잡아 끌었다.
“왜 이래? 내 차례인데.”
“거 참. 넌 아까도 쳤잖아.”
“형. 이거 새치기 아니에요?”
“새치는 네 머리에 난 게 새치고.”
“어휴. 재미없어.”
“이제부터 재미있는 거 보여 줄 테니까 눈 똑바로 뜨고 있어.”
배종우가 바람을 잡는 동안 김대균은 피칭 머신의 구속을 조정했다.
“유성아. 155부터 시작할 거지?”
“네.”
“지난번처럼 기계 맞추지 마라.”
“조심할게요.”
왼쪽 타석에 들어선 박유성은 평소처럼 루틴을 실행했다.
오른 발로 흙이 깔린 타석을 훑은 뒤에 방망이를 쭉 내밀어 오른 쪽 타석 안쪽선을 긁고.
다시 왼 쪽 발을 단단히 파묻고는 방망이를 빙글 돌려 어깨에 가볍게 안착했다.
“꼴 갑을 떨고 있네.”
“그러게. 프로야구가 애들 망친다니까.”
박유성에게 순서를 뺏긴 몇몇 사내들이 투덜거렸지만 박유성은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달그닥 거리는 소리와 함께 피칭 머신이 새하얀 공을 내뿜자 기다렸다는듯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따악!
방망이 중심에 제대로 걸린 타구가 김대균을 향해 뻗어 나갔고.
“어이구!”
김대균은 다급히 철망 아래로 몸을 숙여야 했다.
“나이스 배팅!”
배종우의 입에서도 감탄이 터져 나왔다.
송현민의 열혈 팬으로서 작년까지 트윈스 파크를 밥 먹듯 드나들었지만 박유성처럼 어린 나이에 시원시원한 타격을 보여주는 타자는 처음이었다.
심지어 송현민조차 첫 해는 공을 쫓아다니기 바빴는데 박유성은 155km/h짜리 빠른 공이 몸 쪽을 파고들어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따악!
뒤이어 날아드는 공도 센터 쪽으로 정확하게 때려내자 비아냥거리던 사내들의 입이 쑥 들어갔다.
“뭐야, 저 녀석? 선출이야?”
“신성 고등학교 박유성 몰라?”
“신성 고등학교에 야구부가 있었어?”
“허, 이거 큰일 났구먼. 큰일 났어. 미래의 슈퍼스타도 몰라보고 말이야.”
“미래의 슈퍼스타는 무슨. 그래서 뭐? 국가 대표라도 돼?”
배종우의 자랑이 못마땅했던지 사내 중 하나가 콧방귀를 뀌었다.
야구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 중에 슈퍼스타 소리를 들으려면 최소한 태극마크 쯤은 달아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자 배종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찢었다.
“어떻게 알았어?”
“······?”
“우리 유성이 이번에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대회 나가잖아.”
“뭐? 정말?”
“속고만 살았나. 핸드폰으로 박유성 쳐 봐. 바로 기사 뜰 거니까.”
면박을 당한 사내는 뒷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박유성이라는 이름을 검색했다.
그리고는 하필 공윤경 기자가 쓴 기사를 클릭했다.
<중략>
박유성의 가세로 청소년 대표팀의 공격 전술은 더욱 다양해질 전망이다.
박유성은 고교 야구 전체 타격 1위를 달릴 정도로 정확도가 높은 타자이며 동시에 가장 많은 도루를 훔칠 만큼 발이 빠르다.
루상에 나가면 공격적인 베이스러닝으로 야수들을 긴장시키며 득점권 타율도 여느 클린업 타자들보다 높은 편이다.
청소년 대표팀을 이끌게 된 방용택 감독도 박유성을 자신에 빗대어 대표팀의 키플레이어라고 추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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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야구를 보고 돌아 온 작가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진짜 더럽게 못하네. 어휴. 스트레스 받아.”
그런 작가의 눈에 랜섬웨어를 발견했다는 사약 알람이 들어왔다.
“랜섬웨어? 뭐야 이거?”
작가는 잠시 고민하다 신고하기 버튼을 눌렀다.
그냥 바이러스였다면 넘어갔을 텐데.
랜섬웨이라고 하니까 신고를 해야 할 것 같은 사명감이 들었다.
그런데.
“뭐야? 이거 컴퓨터가 갑자기 왜 이래? 진짜 랜섬웨어 걸린 거야? 그래?”
갑자기 먹통이 된 컴퓨터를 붙잡고 8시간 사투를 벌였지만 맛탱이가 간 윈도 우는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서브 컴퓨터 하드 디스크를 빼와서 문제의 사약을 없앴지만.
이틀간의 작업 분량과 정리한 자료들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실화입니다.
혹시 사약이 깔려 있다면 지우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윈도우 10은 안전 모드 들어가는 거 부터가 일입니다.
저처럼 메인 디스크 백업을 잘 안하는 분들은 치명상을 당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