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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48화 (48/412)

타자 인생 3회차! 48화

08. 태극마크 어때? (3)

신상욱 회장의 계획은 간단했다.

“지금 3학년들 중에 유성이보다 잘하는 선수가 있나?”

“냉정하게 없습니다.”

“그럼 대표팀에 뽑히는 건 어렵지 않겠지?”

“황금 사자기에서도 이만큼만 해 준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한 실장 생각은 어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박유성 선수라면 청소년 대표팀에서도 잘 할 거 같습니다.”

“잘 하겠지. 잘 할 녀석이고.”

신상욱 회장은 청소년 대표팀에서 맹활약할 박유성을 상상하며 씩 웃었다.

전국 대회에서 변변한 성적 한 번 못 내던 신성 고등학교를 대통령배 4강으로 이끈 박유성이라면 이번 U-18 야구 월드컵에서도 제 몫을 단단히 해 줄 것 같았다.

그런데 신성 고등학교가 황금사자기에서 광탈하면서 일이 꼬여버렸다.

1라운드에서 대회 초청팀인 한밭 고등학교를 13대 2(5회 콜드 게임)로 잡아내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하필이면 2라운드 상대가 광일 고등학교였다.

동명 고등학교에게 광주 A지구 1위 자리를 내주고 2라운드로 내려 온 광일 고등학교 송경환 감독은 조 추첨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일 무서운 팀이요? 신성이죠. 대통령배 때 졌지 않습니까. 제일 만나고 싶은 팀이요? 하하. 그것도 신성이죠. 우리가 또 지고는 못 살지 않습니까?”

광일 고등학교의 선전 포고에 나승균 감독도 호기롭게 맞장구를 쳤다.

“광일 좋죠. 이번에는 더 높은 곳에서 만나 봅시다.”

나승균 감독은 내심 4강전을 염두에 뒀다.

같은 블록에 편성된다면 가장 마지막으로 붙는 경기가 4강전이기 때문이었다.

4강에서 광일 고등학교와 리벤지 매치가 열린다면 설사 지더라도 큰소리를 칠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광일 고등학교는 신성 고등학교의 바로 옆자리에 이름을 올렸고.

에이스인 김신우를 8회까지 끌고 가며 신성 고등학교 타자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박유성이 안타와 2루타를 때려내며 분위기를 이끌었지만 광일 고등학교는 당했던 패턴에 또 당할 만큼 허술한 팀이 아니었다.

“박유성은 신경 쓰지 마. 점수를 내 줘도 좋으니까 무조건 타자하고 승부해.”

송경환 감독은 앞서 서울 지역 강팀들이 보여주었던 해법을 참고했다.

박유성에게 줄 점수는 주고 나머지는 확실히 막는다.

에이스로서 자존심이 상할 텐데도 김신우는 군 말 없이 작전대로 경기를 운영했고.

그 결과 대통령배 8강의 한 점차 패배를 만회하고 5대 2로 신성 고등학교를 제압할 수 있었다.

경기 직후 기자들은 신성 고등학교의 경기력을 칭찬했다.

“광일하고 5대 2면 진짜 졌잘싸지.”

“김신우가 8회까지 던졌잖아. 신성에서 조금만 더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면 7회 이전에 강판당했을 걸?”

“아까 김신우 표정 못 봤지? 박유성하고 마지막 타석 승부할 때 진짜 죽으려고 하더라고.”

“그래도 결국 플라이로 잡았잖아. 그거 잡아내고 삼진 잡은 것처럼 포효하는거 보니까 인간미 있던데?”

“박유성이 파울만 5개를 때려냈잖아. 거기서 박유성 나갔어 봐. 경기 어떻게 됐을지 몰라.”

“그나저나 박유성이도 많이 컸네. 우리 대화 속에 끼고 말이야.”

“이러다 박유성 우선 지명 되는 거 아냐?”

“에이. 스타즈가 미쳤다고 박유성을 데려가겠어? 이제 막 치고 올라오는 녀석을?”

“박유성은 검증이 더 필요해. 솔직히 오늘 경기도 평소보다는 못했잖아.”

“하긴. 상대가 김우신인 걸 감안하더라도 2안타는 좀 부진한 느낌?”

“여보세요들. 그 부진했다는 박유성이 대회 타율이 7할이 넘습니다. 7할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한밭고 상대로 몰아친 게 무슨 의미가 있어? 광일처럼 강팀하고 할 때 해 줘야지.”

“흠······. 듣고 보니까 일리가 있는데?”

“박유성은 이제 시험대에 오른 거라고. 그러니까 쟤들처럼 너무 성급하게 빨아주지 마. 그러다 탈 날 수도 있으니까.”

일부 기자들의 시선이 구석에 자리한 베이스볼 패치 팀으로 향했다.

그러자 공윤경 기자가 빨개진 얼굴로 나영진 기자를 바라봤다.

“선배! 기사는 들어가서 쓰시라니까요.”

“거의 다 썼으니까 재촉 좀 하지 마.”

“자꾸 우리 힐끔거리니까 그렇죠.”

“그러게 뭐하러 신성이 이길 거라고 떠들어? 야구공은 둥글고 경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거 몰라?”

“다들 광일이 이길 거라고 하니까 열 받잖아요. 그리고 선배도 신성이 이길 거라고 했거든요?”

“이겼으면 좋겠다고 했지 이길 거라고는 안 했어.”

나영진 기자가 쓰게 웃었다.

솔직히 고교 야구에서 3점 차이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점수였다.

상대가 전국 대회 우승권 팀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고교 야구 골수팬들도 약팀이 강팀을 언제든지 잡을 수 있다는 걸 고교 야구최고의 재미로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 신성 고등학교는 한 스텝이 부족했다.

“선배도 표정을 보니까 열 받은 거 같은데요?”

“응원하는 입장에서는 열 받지.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이긴 하지만.”

“근데 오늘 왜 진 걸까요? 저는 이길 것 같았거든요?”

“왜 지긴 왜 져. 못 했으니까 진 거지.”

“그러니까요. 정확하게 뭘 못 한 거예요?”

공윤경 기자의 물음에 나영진 기자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미리 써 놓은 기사를 바탕으로 설명을 해 주었다.

“1회 초부터 복기해 보자.”

“1회 초요? 유성이가 안타 치고 도루해서 2루까지 갔잖아요. 그 다음에 희생 번트로 3루 보냈고요.”

“그게 잘못됐어.”

“희생번트가요?”

“애당초 광일은 유성이를 무시하는 작전을 썼어. 2루 도루 때도 별다른 견제가 없었고. 송산아도 무리해서 2루로 공을 던지지 않았지.”

“타이밍이 늦어서 안 던진 거 아니었어요?”

“물론 무리해서 던지다 빠지면 3루까지 갈 수도 있는 거니까 안 던지는 게 나을 수도 있지. 하지만 경기 초반이고 고교 야구잖아. 기 싸움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어깨 좋은 송산아가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포기했다? 이건 다른 이야기거든.”

“아하, 그러니까 벤치에서 작전이 나왔다는 거네요?”

“그렇지. 그럼 신성에서도 눈치를 채고 박유성에게 3루 도루를 맡겨야 했어.

박유성이 일단 3루로 뛰는 시늉이라도 해야 광일 고등학교 배터리가 바빠질 테니까.”

“그런데 그냥 편하게 희생 번트로 갔던 거군요.”

“신성도 선취점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겠지. 그 근거는 한 점차로 이긴 지난 경기에 있을 테고.”

광일 고등학교와 신성 고등학교가 공식 대회에서 만난 건 지난 대통령배가 두번째였다.

8년 전, 창단한지 얼마 되지 않아 치른 경기에서 신성 고등학교는 광일 고등 학교에게 16대 0, 5회 콜드 게임 패배를 당했다.

두고두고 조롱거리가 될 만한 결과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신성 고등학교에서 그 경기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승균 감독을 비롯해 코칭스테프들은 그 이후에 신성 고등학교로 넘어왔고 지금 주전으로 뛰고 있는 3학년들 역시 대패 당시에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그렇다보니 16대 0의 대패보다 3대 2, 한 점차 신승이 더 큰 경험으로 작용한 것이다.

“박유성이 3루 도루를 성공시켰다면 오진욱의 활용도도 커졌을 거야. 오진욱도 요즘 타격감이 좋거든.”

“오진욱이 땅볼이라도 쳐서 유성이가 홈으로 뛰었다면 볼만했겠네요.”

“그렇지. 유성이를 그냥 포기할 수도 있지만 송구가 홈으로 가 버리면 또 모르는 거잖아.”

“그럼 장태수도 부담감이 줄어들었겠죠?”

“장태수의 희생 플라이는 팀의 중심 타자로서 잘 한 거야.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실망스러운 타격이었어. 박유성을 불러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커 보였거든.”

“어디까지나 결과론이겠지만 선배 말처럼 됐다면 김신우가 고생 좀 했겠는데요?”

“그래. 그게 포인트야. 김신우의 기를 살려 주면 안 됐어. 그게 신성의 가장 큰 패인이라고.”

지난 대통령배 8강에서 김신우는 박유성에게 홈런을 맞고 한 점 차 뒤진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리고 끝내 패전의 멍에를 안았다.

호남 지역 주말 리그를 포함해 올 시즌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던 김신우를 신성 고등학교가 잡아낸 것이다.

제 아무리 돌부처라 불리는 김신우라 하더라도 신성 고등학교와의 리턴 매치는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을 터.

그렇다면 더 치열하고 집요하게 김신우를 물고 늘어졌어야 했는데 신성 고등 학교는 그러지 못했다.

“전 5회 말 수비가 두고두고 아쉬워요.”

“1사 만루?”

“네. 그거 2루로 던졌어야 했잖아요. 아니에요?”

“솔직히 그건 프로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라서 뭐라고 하긴 그런데······ 아쉽긴 하지.”

5회 말, 선발로 등판한 손지원은 1사 만루 위기에 빠졌다.

1대 1로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점수를 내주고 싶지 않았던 손지원은 바깥 쪽 낮은 체인지업을 던져 8번 타자 고광열을 유격수 땅볼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여기까지는 완벽했는데

2학년인 유격수 이재윤이 2루가 아니라 홈을 선택하면서 상황이 꼬여버렸다.

전진 수비 상황이었고 3루 주자가 눈앞에서 뛰니까 다급한 마음에 몸이 움직였던 것이겠지만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면서 송구가 오른 쪽으로 빠져 버렸고.

포수 김 산이 그 공을 어렵게 잡고 1루 송구 자세를 취했을 때는 이미 발 빠른 고광열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한 뒤였다.

“공 기자도 들어봤지? 1루는 슬라이딩 보다 뛰는 게 더 빠르다고.”

“네. 게다가 부상 위험도 크잖아요.”

“그런데 왜 선수들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는 줄 알아?”

“시각적 효과?”

“그래. 슬라이딩을 하면 던지기 애매해지거든. 물론 1루는 포스 아웃 상황이라 던지기만 하면 되는데 상대가 요란을 떠니까 덩달아 마음이 급해져.”

“근데 고광열이 슬라이딩 안 했더라도 살지 않았을까요?”

“세이프일 확률이 높았지. 빠질 뻔 한 공을 김 산이 어렵게 잡아낸 거잖아.

사실 그 터무니없는 송구를 잡아낸 것만으로도 잘 한 거야.”

본래라면 더블 플레이로 끝났어야 할 이닝은 2사 만루로 이어졌고.

9번 타자 최동진이 툭 밀어진 타구가 2루수 키를 살짝 넘기면서 두 명의 주자가 홈을 밟았다.

“선배. 어디까지나 결과론인데요.”

“만약에 5회 때 점수를 내주지 않았다면 어땠을 것 같냐고?”

“그럼 신성이 이겼을까요?”

“가능성은 있었겠지. 그 다음에 유성이가 2루타 치고 나갔잖아.”

이어지는 6회 초 공격에서 박유성은 선제 2루타를 때려냈고.

장태수의 안타 때 홈을 밟아 팀의 두 번째 득점을 만들어냈다.

앞서 2실점이 없었다면 신성 고등학교가 2대 1로 리드를 했을 터.

“아마 그렇게 됐다면 김신우 머릿속에 대통령배가 떠오르겠지.”

“그날의 악몽이 말이죠.”

공윤경 기자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영진 기자와 대화를 하다 보니 경기 내내 답답했던 게 시원하게 해갈되는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우리 유성이 어떻게 해요?”

“유성이가 왜?”

“국대요. 국대. 그래도 16강까지는 올라가야 했는데.”

공윤경 기자가 울상을 지었다.

자신이 점찍은 박유성이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는데 팀이 2라운드에서 탈락했으니 속이 상했다.

나영진 기자도 한숨을 내쉬었다.

“정상적인 인간들이라면 유성이는 무조건 데려갈 텐데 참······.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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