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47화 (47/412)

타자 인생 3회차! 47화

08. 태극마크 어때? (2)

방해꾼들이 사라지자 신상욱 회장이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박원호 과장을 본사로 불러 올려 대통령배 4강 직관을 시키고 보고서까지 만들게 한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박유성 때문이었다.

그러자 박원호 과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페이지를 넘겼다.

“일단 박유성 선수 데이터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이구. 이것도 준비했어?”

신상욱 회장이 반색하자 박원호 과장이 다시 한 번 주먹을 움켜쥐었다.

왠지 신상욱 회장이 눈여겨보는 게 신성 고등학교가 아니라 박유성일 것 같아서 따로 PPT 자료를 만들었는데 그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대통령배에서 박유성 선수는 총 24타수 16안타를 기록했습니다. 타율은 0.667 대통령배 예선 3경기와 본선 4경기 모두 0.667입니다.”

“0.667이 실제로 가능한 타율이야?”

“자주는 아니지만 5할 이상의 타율은 종종 나오는 편입니다. 송현민 선수도 고등학교 시절 통산 타율이 6할 가까이 됐고요.”

“3년 동안 6할?”

“네. 그래서 당시 메이저리그 여러 구단들이 눈독을 들였습니다.”

레인저스로 이적한 송현민의 고교 시절은 말 그대로 전설이었다.

1학년 때부터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다가 2학년이 되자마자 주전 자리를 꿰차고 3학년 시절에는 아예 고교 야구를 씹어 먹다시피 했으니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제 2의 송현민을 찾아 헤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유성이 통산 타율은 어때? 송현민보다 많이 떨어지나?”

“아닙니다. 회장님. 송현민 선수보다 낫습니다.”

“낫다고?”

“네. 박유성 선수는 1학년 때 경기를 출전한 적이 없습니다. 2학년 때는 세번 타석에 들어선 게 전부고요. 그래서 통산 타율은······ 0.638입니다.”

“하하. 내가 뭐랬어? 이 놈 난 놈이라고 했지?”

신상욱 회장이 껄껄 웃었다. 그러자 한용준 비서실장이 비위를 맞추듯 말을 받았다.

“역시 회장님의 안목은 탁월하십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하다니까?”

다른 성공한 기업인들처럼 신상욱 회장도 스스로의 안목을 높이 평가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점찍은 박유성이 더 크게 되길 바랐다.

“저 정도면 스타즈에서 우선 지명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 한 실장 생각은 어때?”

“실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만?”

“주목을 받은 게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게 아쉽습니다.”

숨을 죽여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박원호 과장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신상욱 회장이 우선 지명을 운운했을 때 너무 급발진을 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이 한용준 비서실장이 브레이크를 잡아 주었다.

“박 과장.”

“네. 회장님.”

“박유성이 이번 대회에서 상 받는 거 없어?”

“아직 결승전이 남아 있어서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현재 기준으로는 타격 4관왕이 유력합니다.”

“4관왕?”

“최다안타상과 타격상은 확정적이고 최다득점상과 최다도루상도 유력한 상황입니다.”

“8개 중에서 절반을 챙긴 거네?”

“8개가 아니라 6개 부문입니다. 회장님. 고교 야구는 장타율과 출루율 1위를 따로 뽑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어때?”

“홈런은 본선 4경기에서 3개를 쳐서 공동 5위이고 타점은 7개로 공동 11위입니다.”

“4경기에서 고작 7타점밖에 못 냈어?”

“신성 고등학교 하위 타선은 2학년 위주라서요. 박유성 선수에게까지 찬스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는데?”

신상욱 회장이 다시 한용준 비서실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한용준 비서실장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스타즈 단장이었다면 군 말 없이 우선 지명으로 뽑았을 겁니다. 하지만 스타즈도 현재 검토 중인 선수들이 있을 테니까요.”

“그 놈들이 다 별 볼일 없으니까 하는 말이잖아.”

나현호 사건 이후 스타즈 구단에 대한 간섭을 최소로 하고 있다지만 신상욱회장은 여전히 스타즈의 구단주였다.

현재도 주기적으로 스타즈 구단의 보고를 받는 중인데 지난주에 우선 지명 후보 최종 5명에 대한 이력이 올라왔다.

배성 고등학교의 우완 투수 배현우

선인 고등학교의 좌완 투수 김영진

선인 고등학교의 우완 투수 나해준

동호 대학교 우완 투수 고윤식

동호 대학교 좌완 투수 김혜성

5명의 후보 중에 김혜성은 당초 명단에서 빠져 있었다.

같은 학교 내 동일 포지션의 선수는 한 명만 선별하는 게 원칙이라 김혜성 대신 고윤식의 이름이 올라갔다.

그런데 김혜성이 선발 자리를 꿰차면서 상황이 변했다.

본래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이 빠르기로 유명했지만 빈볼 사건 이후로 한 물갔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선발 데뷔전에서 159km/h를 찍어버린 것이다.

김혜성에 대해 부정적이던 스타즈 스카우트들도 각성한 좌완 파이어볼러 앞에서는 선입견을 지울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김혜성이 포함된 최종 명단이 올라왔다.

스타즈 구단 입장에서는 김혜성을 추가하면서 우선 지명의 모든 퍼즐을 맞췄다고 자평했지만.

정작 신상욱 회장은 성에 차지 않았다.

“박 과장.”

“네. 회장님.”

“배현우하고 김영진, 나해준 중에서 누가 제일 나아?”

“그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김영진과 나해준이 비슷하고 배현우는 조금 아래입니다.”

“그럼 김영진이도 박유성만 못하다는 거네?”

“네? 아, 네. 그렇게 생각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 리그 전반기 경기에서 박유성은 선발로 등판한 나해준을 두들겨 신성 고등학교에 승리를 안겨 주었다.

언론에서는 좌완이라는 이유로 김영진을 나해준보다 앞에 두지만.

신상욱 회장의 지시로 고교 야구판을 정밀 분석한 박원호 과장의 생각은 달랐다.

좌완이라는 매리트를 빼고 보자면 투수로서의 자질은 나해준이 김영진보다 조금 더 높았다.

그런 나해준도 박유성을 당해내지 못했으니 김영진도 마찬가지일 터.

“그럼 남은 건 고윤식하고 김혜성인데 둘 다 유성이한테 호되게 당했잖아?”

“······네?”

“뭐야? 모르고 있었어? 이거이거 박 과장 안 되겠네. 내가 아는 걸 몰라서 쓰겠어?”

“그게······ 죄송합니다. 회장님.”

박원호 과장이 냉큼 고개를 숙였다.

신상욱 회장의 특별 지시를 받고 나름 열심히 뛰어다녔다고 생각했는데 고윤식과 김혜성이 박유성을 상대했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러자 신상욱 회장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건 박 과장이 죄송할 일이 아니야. 대외비로 진행된 거였으니까.”

“······네?”

“지금은 해고된 송현민 선수 에이전트가 박유성 선수 실력 테스트를 위해 고윤식 선수와 김혜성 선수를 동원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두 선수 모두 박유성 선수에게 안타를 허용했고요.”

“아아, 네에. 저는 제가 놓친 줄 알았습니다.”

“박 과장 열심히 하는 건 여기 계신 회장님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 친구가? 그거 내 대사 아니야?”

“회장님이 너무 놀리셔서 제가 대신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그런데 저 친구 말이야. 은근 놀리는 재미가 있지 않아? 꼭 신입 시절에 자네를 보는 거 같아. 하하하.”

한참을 시원하게 웃어대던 신상욱 회장이 다시 박원호 과장을 바라봤다.

“박 과장. 이제 내가 왜 박유성이한테 관심을 갖는지 알겠어?”

“네. 알 것 같습니다. 회장님.”

모르는 사람은 신상욱 회장이 또 신성 학원 산하의 유망주에게 꽂혀서 고집을 부리는 거라 여기겠지만.

박원호 과장이 보기에도 우선 지명 후보로 올라온 5명 중에 박유성보다 확실히 낫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우선 지명이 유력했던 고윤식은 작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게 없었고.

김혜성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했다는 걸 증명할 시간이 필요하며 고교 투수 3인방은 즉시 전력감이라고 보기에 손색이 있었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5명의 투수들을 대신해 박유성을 우선 지명으로 뽑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박 과장 생각은 어때? 박유성이 정말 안 되겠어?”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유는?”

“지난 3년 간 고졸 야수가 우선 지명을 받은 적은 손에 꼽힙니다. 지명을 받은 선수들도 취약 포지션이거나 장타력을 갖춘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하지만 스타즈는 중견수에 다니엘 브리토가 있습니다. 코너 외야수들도 만만치 않고요.”

박원호 과장은 박유성이 우선 지명을 받을 정도의 장타력을 갖췄는지에 대해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스타즈의 현 상황 상 박유성의 자리가 없음을 강조했다.

“브리토 계약 종료가 언제야?”

“지난 시즌 끝나고 4년 계약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4년이나?”

“정확하게는 2+2년 계약인데 브리토를 대체할 만한 타자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입단 4년차인 다니엘 브리토는 스타즈의 효자 용병이었다.

2021년부터 오리올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경험을 쌓았고.

2024년 후반기에 주전 중견수가 30일 짜리 DL에 등재된 틈을 노려 메이저리그로 올라갔다.

당시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오리올스 구단은 주전 중견수가 복귀하기가 무섭게 다니엘 브리토를 트리플 A로 보내버렸고 이후 스프링캠프 때도 이렇다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자신이 차별받았다고 생각한 다니엘 브리토는 구단 측에 계약 해지를 요청하고 아시아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당시 스타즈를 비롯해 트윈스, 파이터즈, 다 이노스 등 중견수가 필요한 프로 야구 모든 구단이 덤벼들었다.

창단한 지 고작 3년째이고 프로 야구에 진입한 지 2년차라 다니엘 브리토가 스타즈를 선택할 가능성은 턱없이 낮았지만.

정작 다니엘 브리토는 에이전트를 통해 스타즈 행을 결정했다.

유니폼과 팀의 이름이 마음에 든다는 심플한 이유에서였다.

스타즈에 입단한 이후 지난 3년 간.

다니엘 브리토는 0.329의 타율과 연평균 34개의 홈런, 107개의 타점을 기록중이었다.

만약 다니엘 브리토가 없었다면 지난 시즌 막판까지 포스트 시즌 경쟁을 하지 못했을 터.

그런 다니엘 브리토를 대신해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를 뽑아 키우겠다고 하면 당장 스타즈 팬들이 들고 일어날 것 같았다.

“브리토를 좌익수나 우익수로 돌리는 건 어때?”

“브리토는 중견수 수비에 대한 자부심이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견수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좌익수하고 우익수는?”

“최일준 선수와 박준수 선수가 지키고 있습니다.”

“흠······. 둘 다 핵심 선수잖아.”

다니엘 브리토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최일준과 박준수의 활약상도 무시하기 어려웠다.

최일준은 연습생으로 입단해 4년 연속 3할을 때려낸 악바리 선수이고 박준수는 휘명 고등학교 4번 타자 출신으로 신성 고등학교에서 간판급으로 키우는 중이었다.

최일준이나 박준수, 둘 중 한 명을 지명 타자로 돌리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건 박유성이 코너 외야 수비를 중견 수비만큼 잘 볼 때의 이야기였다.

“결국 이름값이 떨어진다는 말이로군.”

신상욱 회장이 묵묵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테이블을 내리치며 말했다.

“그럼 플랜 B로 가는 수밖에 없겠어.”

“플랜 B요?”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가 언제였지?”

“황금 사자기 끝나고 바로 다음입니다.”

“일단 거기부터 시작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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