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46화 (46/412)

타자 인생 3회차! 46화

08. 태극마크 어때? (1)

1

-쳤습니다! 쭉쭉 뻗어 나갑니다!

-아아, 이건 넘어간 것 같은데요?

-우익수 뒤로! 우익수 뒤로! 우익수 키를 넘어갔습니다! 홈런! 신성 고등학교의 박유성 선수가 오늘 경기 두 번째 홈런을 때려냅니다!

박유성에게 불의의 홈런을 얻어맞았지만 김신우는 흔들리지 않았다.

2번 타자 오진욱을 삼진으로 잡아 내고.

3번 타자 장태수를 중견수 뜬 공으로 유도한 뒤에

4번 타자 김병욱을 다시 삼진으로 처리하고 이닝을 끝냈다.

6회까지 투구수는 고작 72구.

김신우는 충분히 더 던질 수 있었지만 송경환 감독은 곧바로 투수 교체를 지시했다.

사흘 후 4강전에서 김신우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투수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던 김신우가 라커룸으로 들어가자 나승균 감독이 씩 웃었다.

“내가 말 했지? 김신우 바꿀 거라고.”

“솔직히 한 점차로 지고 있는데 바꿀 줄은 몰랐습니다.”

“4강전 상대로 경복이 유력하잖아. 경복을 잡으려면 김신우를 아껴야겠지.”

이제 8강전의 첫 경기가 치러지고 있어서 장담하기 어렵지만 4강전 파트너는 대구의 강호 경복 고등학교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경복 고등학교는 대대로 화끈한 타격을 자랑하는 팀.

만약에 경복 고등학교와의 4강전이 확정된다면 현 고교 야구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신우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광일에 투수가 없는 것도 아니고 참······.”

김석률 수석 코치가 고개를 흔들었다. 큰 점수 차이로 이기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한 점 차로 뒤진 가운데 에이스 투수를 내린 광일 고등학교의 결정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마추어 야구 지도자 생활을 오래 해 온 나승균 감독은 광일 고등학교 송경환 감독의 심정이 십분 이해갔다.

“송 감독 입장에서는 도박을 걸 수밖에 없어. 김신우를 끝까지 끌고 가서 오늘 경기 잡아내면 이사회가 좋아할까? 아니야. 4강에서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밀리면 당장 송 감독 자르자고 난리일 걸?”

“그러니까 우리보다 경복고가 더 신경 쓰인다는 겁니까?”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 자네가 저쪽 더그아웃에서 있어 봐. 우리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두들길 수 있다고 생각할 걸?”

박유성의 홈런으로 경기의 분위기를 다시 가져오긴 했지만.

이 분위기가 계속 유지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선발 등판한 에이스 손지원은 5회까지 87구를 던졌고.

손지원이 내려가고 나면 짜임새 있는 광일 고등학교 타자들을 막아 줄 투수가 없었다.

“어차피 우리도 7회부터는 불펜을 가동해야 해. 그냥 광일 쪽에서 먼저 칼을 뽑아든 것뿐이라고.”

“후우······.”

“그리고 아까 광일에 투수가 없냐고 했지? 내가 알기론 없어. 2선발과 3선발까지 챙겨 가는 건 수도권 팀들 뿐이야. 지방 팀은 제대로 된 녀석 하나 키우기도 벅차다고.”

“광일도 말입니까?”

“김신우가 처음부터 에이스였는지 알아? 광일에서 1학년 때부터 굴려서 저만큼 는 거야. 저 녀석 서울 학교에서 뛰었으면 어림없었어.”

“······.”

지방 학교의 씁쓸한 현실을 전해들은 김석률 수석 코치도 더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광일 고등학교는 지난 해 협회장기를 거머쥔 강호 중의 강호.

전국대회 우승 20번에 선동연, 기종범, 김병헌, 이강천, 최희석 등 한국 야구사에 길이 남을 레전드 선수를 다수 배출해 낸 곳이었다.

그런데 그런 광일 고등학교조차 에이스를 돌려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인프라 좋은 신성 고등학교에서 너무 편하게 지도자 생활을 했다는 자기반성마저 들었다.

“감독님. 오늘 경기 꼭 이기시죠.”

“왜? 광일 하는 짓이 꼴 보기 싫어?”

“아뇨. 저 결정이 잘못됐다는 걸 알려줘야죠. 그래야 대안을 찾을 거 아닙니까.”

“암튼 자네는 생각하는 게 남달라.”

오늘 경기에서 이기면 사흘 후 경복 고등학교와 맞붙게 될지도 모르는 건 신성 고등학교도 마찬가지였지만.

김석률 수석 코치는 2선발 김동화를 제외한 모든 투수들을 전부 출전시켰다.

“감독님. 신성은 총력전인 거 같습니다.”

“신성은 저게 최선이겠지. 우린 우리 방식이 있는 거고.”

광일 고등학교 송경환 감독은 뚝심 있게 버텼다.

애당초 김신우는 오래 던지게 할 생각이 없었다.

초반에 신성 고등학교의 기세만 꺾어 놓고 불펜을 투입해 경기를 끝내려고 했는데 신성 고등학교에서 끈질기게 버티는 바람에 김신우를 6회까지 끌고 가게 된 것이다.

그나마 2선발인 오영준이라도 건재했다면 조금 더 일찍 분위기를 바꿨겠지만.

“영준이 녀석 어디 갔어?”

“안에서 쉰다고 합니다.”

“이 녀석이. 경기 중에 멋대로 쉬러 가는 녀석이 어디 있어?”

“그게 검사 결과는 이상 없다고 하는데······.”

“계속 아프대?”

“공을 던지기 불편하다고 합니다. 4강전이라 더 부담스러워 하는 거 같고요.”

“하아. 진짜 믿을 놈이 없다. 믿을 놈이 없어.”

송경환 감독은 마당쇠 역할을 하는 불펜 투수 심재열에게 마지막까지 던져 줄것을 부탁했고.

심재열은 3이닝을 1실점으로 틀어막으며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 사이 광일 고등학교 타자들도 부지런히 안타를 때려냈다.

7회 말 공격에서 경기 내내 침묵하던 5번 타자 한민호가 2루타를 치고 나갔고.

6번 타자 조태영의 안타로 무사 1,3루를 만들면서 단숨에 신성 고등학교의 숨통을 조였다.

하지만 7번 타자 송산아가 친 공이 하필 중견수 방면으로 떴고.

박유성의 어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단 한민호가 무리하게 홈을 파고들다 죽으면서 순식간에 이닝이 끝나 버렸다.

8회 말 공격도 마찬가지.

1사 이후 9번 타자 최동진이 친 타구가 좌중간을 가르면서 다시 한 번 득점기회를 잡아냈지만.

1번 타자 김은호의 짧은 안타 때 최동진이 무리하게 홈을 노렸다가 런다운에 걸리면서 횡사를 당했고.

이어진 2사 2루 상황에서 강재영이 삼진을 당하면서 또 다시 득점 기회가 무산됐다.

9회 말.

따악!

3대 1로 두 점 뒤진 마지막 공격에서 3번 타자 박해영이 2학년 투수 장기석을 상대로 추격의 솔로 홈런을 때려냈지만.

“기석아! 괜찮아!”

“맞아도 돼! 씩씩하게 던져!”

박유성으로부터 시작된 독려에 힘을 얻은 장기석이 이윤식과 한민호, 조태영을 범타로 돌려 세우며 한 점차 리드를 지켜냈다.

최종 스코어 3대 2.

신성 고등학교가 창단 이래 처음으로 전국 대회 4강에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신성 고등학교 강하네요.”

“오늘은 운이 좋았습니다.”

“운도 실력 아니겠습니까? 부디 이 기세대로 결승까지 가시기 바랍니다.”

패장인 송경환 감독은 직접 3루 쪽 더그아웃까지 찾아와 덕담을 건넸다.

그러면서 다음번에 만나면 절대지지 않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는 뭐 당하고만 있을까?”

고개를 숙인 채 짐을 싸는 광일 고등학교 선수들을 바라보며 나승균 감독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사흘 후 펼쳐진 4강전에서.

신성 고등학교는 경복 고등학교에게 13대 3, 대패를 당했다.

2

“······이상입니다.”

보고를 마친 박원호 과장이 조심스럽게 신상욱 회장을 바라봤다.

일단 시키는 대로 신성 고등학교의 대통령배 활약상을 정리하긴 했는데 마지막 경기의 임팩트가 마음에 걸렸다.

‘질 거면 좀 적당히 지지. 13대 3이 뭐야. 13대 3이.’

옛말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고 하지만.

지난 4강전은 그 정도로 포장이 되지 않았다.

그냥 10점 차 대패가 아니라 최선을 다 했는데 10점차가 났기 때문이었다.

그 경기에서 박유성이 펼친 호수비만 일곱 개.

그 중에 절반만 빠졌더라도 점수 차이는 더 크게 벌어졌을 거다.

그래서 신상욱 회장도 언짢아 할 줄 알았는데.

“한 실장.”

“네. 회장님.”

“이번 대회 전까지는 8강이 최고 기록이었나?”

“네. 그렇습니다. 회장님.”

“태산은?”

“태산은 아직도 16강이 최고 기록입니다.”

“그럼 이제 두 단계 차이로군.”

신상욱 회장이 씩 웃었다.

4강 진출 소식을 듣고 태산 그룹 황성규 회장이 부들부들 거릴 걸 떠올리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자 함께 보고를 받던 신현민 부회장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래도 10점 차이는 좀 심한 거 같습니다.”

“10점 차이?”

“못 들으셨습니까? 4강전은 13대 3으로 졌습니다.”

“그래? 그럼 콜드 게임으로 진 거야?”

신상욱 회장이 미간을 찌푸리자 박원호 과장이 냉큼 말을 받았다.

“아닙니다. 회장님. 전국 대회는 4강부터 콜드 게임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9이닝까지 다 해서 열 점 차이로 진 거라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김 과장이라고 했나?”

“박원호입니다. 회장님.”

“어, 그래. 미안해. 나이를 먹다 보니까 자꾸 깜빡깜빡하네.”

“아닙니다. 회장님.”

“자네가 직접 보기에 어땠어? 그렇게 형편없는 경기였어?”

순간 모두의 시선이 박원호 과장을 향했고.

박원호 과장은 마른 침부터 삼킬 수밖에 없었다.

신성 그룹의 회장인 신상욱 회장을 중심으로 좌우에 차기 회장 자리를 두고 다투는 신현민 부회장과 신현준 부회장까지 앉아 있으니 개인적인 평가를 하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러자 한용준 비서실장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으니까 편하게 얘기해 봐요. 회장님도 TV를 통해 경기를 보셨으니까요.”

“이 친구야. 그걸 말 하면 어떻게 해?”

“죄송합니다. 제가 눈치가 없었습니다.”

“어이구. 내가 일부러 물어본 건데 참. 암튼 박 과장?”

“네. 회장님.”

“어떻게 봤냐니까?”

신상욱 회장의 집요한 질문에 박원호 과장이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솔직히······ 경기력은 형편 없었습니다.”

“그래? 그 정도였어?”

“하지만 작년에 봤던 태산 고등학교와의 경기에 비하면 일취월장했습니다.”

“일취월장?”

“네. 지금 전력으로 태산 고등학교와 붙는다면 무조건 이길 것 같습니다.”

정답일지는 모르겠지만.

박원호 과장은 하고 싶은 말을 전부 내뱉었다.

경복 고등학교에 맞서 싸우기엔 아직 무리였지만 그래도 지난 몇 개월간 큰 성장을 이뤄 낸 걸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졌잘싸야 뭐야? 무슨 포장을 그렇게 해?”

태산 고등학교를 끌고 오는 게 못마땅했던지 신현민 부회장이 한 소리 했다.

하지만 신현준 부회장의 입장은 달랐다.

“작년에 전국 대회 8강 구경도 해 보지 못한 팀이 올 해 첫 전국 대회에서 4강에 올랐으니까 칭찬할 건 칭찬해야죠.”

신현준 부회장이 입에 발린 소리를 하자 신현민 부회장이 날을 세웠다.

“네가 그러니까 전자 쪽 실적이 그 모양인 거야. 도대체 1위는 언제 할 건데?”

“여기서 실적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저도 건설 쪽 사건 사고 이야기 좀 읊어드려요?”

신현준 부회장도 이에 질세라 목소리를 높였고.

“두 분. 회장님 앞입니다.”

여느 때처럼 한용준 비서실장이 교통정리를 해야 했다.

“어이구. 창피한 놈들. 내일 모레면 반백인 놈들이 아직까지도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

“죄송합니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됐고 두 놈 다 나가. 그러게 뭐 하러 여기 껴서 내 취미 생활을 방해 해?”

신상욱 회장에게 점수를 따려 했던 신현민 부회장과 신현준 부회장은 본전도 못 찾고 그대로 회장실에서 쫓겨났고.

회장실 안에는 신상욱 회장과 한용준 비서실장, 그리고 박원호 과장만 남게 됐다.

“그래서, 그 박유성인가 뭔가 하는 놈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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