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44화 (44/412)

타자 인생 3회차! 44화

07. 끝내주는 녀석 (5)

신성 그룹에서 스타즈를 창단했을 때.

신성 고등학교에서 우선 지명과 1차 지명이 나올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실제로 신생팀 특권으로 2년 간 2명의 우선 지명권을 얻은 스타즈는 그 중 한 장을 신성 고등학교 출신 나현호에게 썼다.

당시 나현호는 우선 지명을 받을만 한 실력이 아니었다.

신성 고등학교 전력이 약해 전국 대회에서 보여주지 못한 건 둘째 치고 포심패스트 볼 최고 구속이 150km/h를 넘지 못했다.

그나마 188cm에 82kg의 건장한 체격에 좌완 투수라는 이점을 살려 우선 지명권을 행사했지만 나현호는 1군 무대에 얼굴조차 비추지 못하고 은퇴를 했다.

음주 운전.

그것도 뺑소니로 경찰에 잡히면서 스타즈와 신성 그룹은 한동안 야구팬들의 조롱을 받아야 했다.

“그 빌어먹을 놈은 뭐 하고 있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빌어먹을 놈이라고 하셨으니까 어디 가서 빌어먹고 있겠죠.”

“어이구. 김 코치도 그런 말 할 줄 알아?”

“그 놈은 그런 말 들어도 쌉니다. 선배란 놈이 후배들 앞길을 막았잖습니까.”

김석률 수석 코치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현호와는 일면식도 없지만 야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절대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나승균 감독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열 내는 거 보니까 김 코치도 내심 기대하는 거네?”

“네?”

“우선 지명 말이야. 유성이 정도면 가능성은 있잖아. 안 그래?”

프로 구단들이 즉시 전력감으로 대학 졸업자들을 우대하는 상황이라 투수도 아닌 고교 야구 타자가 우선 지명을 받는 일은 손에 꼽혔지만.

나승균 감독은 박유성 정도면 밀어볼 만 하다고 생각했다.

“가능성은 있습니다. 높지 않을 뿐이죠.”

“뭐가 부족한데? 실력? 아니면 시간?”

“둘 다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박유성이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탈고교급이었다.

만나는 상대 팀 감독들마다 도핑 여부를 의심할 정도.

전국 대회 우승을 노리는 덕우 고등학교와 충열 고등학교는 아예 대놓고 볼넷작전을 쓰고 있으니 박유성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다만 지금껏 보여준 게 없다는 게 아쉬웠다.

올 해 두각을 드러내는 3학년들은 대부분 2학년 때부터 크고 작은 활약을 해왔다.

당장 장태수만 하더라도 나승균 감독이 전략적으로 키웠다.

물론 박유성도 어느 정도 출전 기회를 받긴 했지만 주로 대주자나 대수비로 나서다 보니 주목을 받기 어려웠다.

메이저리그에서 장기 계약을 진행할 때 가장 눈여겨보는 게 바로 꾸준함이었다.

평균적인 성적을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가.

그 기대 여부에 따라 계약 기간과 총액이 천차만별로 갈리게 된다.

프로 야구 스카우트들이 보기에 박유성은 말 그대로 갑툭튀었다.

누군지도 모르던 녀석이 약이라도 빤 것처럼 갑자기 미친 듯이 잘 하는데 헝그리 정신으로 야구를 하던 예전이라면 몰라도 요즘에는 마냥 좋게만 보기 어려웠다.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면 한창 열심히 해야 할 시기에 나태했다는 소리고.

뒤늦게 경기력이 올라왔다고 하기에는 이렇다 할 전조 증상이 전혀 없었다.

실력은 물론이고 인성 문제까지 철저하게 따지는 요즘 같은 시대에 박유성의 활약상은 여러모로 불안한 게 사실이었다.

그 불안함을 잠재우려면 지금처럼 좋은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줘야 하지만.

애석하게도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우선 지명은 세 번째 전국 대회인 협회장기 직후에 발표한다.

그래서 이번 대통령배와 다음번에 있을 황금사자기에서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데 신성 고등학교의 전력 상 호성적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 대회하고 다음 대회까지 8강가면 좀 낫지 않을까?”

나승균 감독이 희망찬 전망을 늘어놓았다.

이번 대통령배처럼 황금사자기도 대진 운이 따라 준다면 8강까지 가 보고 싶었다.

그러자 김석률 수석 코치가 정색하며 말했다.

“감독님. 황금 사자기에서 8강을 가려면 5번을 이겨야 합니다.”

“5번이나?”

“저희는 1라운드부터 치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선을 거쳐 32강전으로 시작하는 대통령배와 달리 황금사자기에는 총 60개 학교가 출전한다.

주말리그 성적이 좋은 52개 학교와 작년 우승팀, 그리고 최근 5년 간 황금사자기에 출전하지 못한 학교들 중에 7팀을 추가로 초청하는데 초청 방식에 따라 출발점이 달랐다.

전년도 우승 팀과 전국 13개 지구 우승팀은 곧바로 3라운드부터 시작하는 반면 지구 2위팀과 3위팀은 2라운드를 거쳐야 하고.

지구 4위와 초청팀들은 1라운드부터 진흙탕 싸움을 벌여야 했다.

“우리가 지구 3위 하면 2라운드부터 시작 아니야?”

“대통령배 치르셔야죠.”

“젠장. 그게 있었네.”

덕우 고등학교와 선인 고등학교에 패배하면서 신성 고등학교는 서울 A지구 3위로 내려앉았다.

4위 성현 고등학교와는 고작 한 경기 차이.

대통령배 예선을 뚫지 못한 성현 고등학교가 주말 리그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걸 감안했을 때 3위 자리를 지키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5라운드까지 올라가는 건 무리겠지?”

“영재가 이겨준다면 가능성은 있겠습니다만······.”

“그럼 무리겠네.”

3선발인 이영재의 이름이 나오자 나승균 감독이 대번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년을 위해 억지로 선발로 기용하고 있긴 하지만.

이영재의 피칭을 볼 때마다 나승균 감독은 속이 문드러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우리 애들 실력이 많이 는 건 사실입니다. 확실히 강팀들과 붙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청백전 백날 해 봐야 무슨 의미가 있어? 살얼음판 같은 전국대회에서 버티고 싸우고 이기면서 크는 거야.”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이틀 후 열린 16강전에서 신성 고등학교는 한라 고등학교를 7대 3으로 제압하고 창단 첫 대통령배 8강에 올라갔다.

“8강전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월요일입니다. 회장님.”

“그 경기 스케쥴 비워 놔.”

“알겠습니다. 회장님.”

신성 고등학교의 선전에 기분이 좋아진 신성 그룹 신상욱 회장은 특별히 TV 관람을 결정했다.

그리고 다시 나흘이 지난 월요일.

SBX 스포츠를 통해 대통령배 8강전 경기가 생중계됐다.

4

-고교 야구를 사랑하시는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캐스터 박성구입니다.

오늘은 대통령배 8강 첫 경기인 신성 고등학교와 광일 고등학교, 광일 고등학교와 신성 고등학교의 경기를 중계해 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제 옆에는 고교 야구 전문가시죠. 한윤재 해설 위원께서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십니까. 한윤재입니다.

-지난 전국 체전 이후로 오랜만에 뵙는데요. 잘 지내셨습니까?

-네. 한동안 집에서 아내 눈치를 좀 봤지만 그럭저럭 잘 지냈습니다. 박성구캐스터는 어떻게 지냈어요?

-저는 보다 나은 중계를 위해서 스피치 학원도 다니고 선배 캐스터들의 중계 영상도 보면서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아······. 저도 그렇게 말할 걸 그랬네요.

-이미 늦었습니다.

-얄미운 건 여전하네요.

-대통령배 예선이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요. 시청자 여러분들께는 처음으로 중계를 해 드리게 됐습니다.

-예전처럼 고교 야구의 열기가 뜨겁다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그래도 8강전부터는 SBX 스포츠 채널을 통해 중계를 진행하니까요. 고교 야구를 사랑하시는 시청자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오늘 경기는 이 곳 목동 야구장에서 진행이 될 예정인데 어떻게 보십니까?

-16강 전까지는 신성 고교 야구 전용 야구장에서 경기를 치렀죠. 거기도 아마추어 야구장 치고는 시설이 좋은 편입니다만 이 곳 목동 구장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긴 한 때 히어로즈가 홈 구장으로 썼을 만큼 규모가 크니까요.

-비록 평일 오전이라 관중석은 대부분 비어 있지만 전체적인 규모와 위압감이 다를 테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게 수치로만 따지자면 크게 차이는 안 나거든요. 목동야구장이 좌우 98미터에 센터까지 120미터가 조금 안 되고 신성 야구장은 좌우 95미터에 센터까지 115미터 정도입니다.

-목동 구장이 조금 더 크네요.

-그런데 펜스는 신성 야구장이 더 높습니다. 신성 야구장이 3미터고 목동 야구장이 2미터거든요. 센터는 몰라도 좌우 코너 쪽 홈런은 목동 구장이 더 잘나온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지난 대회 때도 홈런 타구 대부분이 좌측과 우측에 몰렸는데요. 상대적으로 깊은 좌중간이나 우중간, 센터 쪽 홈런은 다 해서 5개 밖에 되지 않습니다.

-좋은 지적을 해 주셨는데요. 홈런도 홈런이지만 경기를 중계하다 보면 생각보다 3루타가 많이 나옵니다. 신성 고교 야구 전용 야구장도 지방의 경기장보다 외야가 넓거든요? 그런데 목동 야구장은 더 넓어요. 외야수들이 조금이라도 안이한 플레이를 하면 공이 블랙홀 속에 빨려 들어갈 겁니다.

-저도 작년에 나왔던 3루타 장면이 몇 개 떠올랐는데요. 양 팀의 외야수들이 평소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 후.

중계 화면으로 신성 고등학교와 광일 고등학교의 하이라이트 영상이 흘러 나왔다.

-지난 해 대통령배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광일 고등학교는 말이 필요 없는 강팀입니다. 전국 대회 8강 단골 팀인데요. 신성 고등학교의 선전이 놀랍습니다.

-신성 고등학교는 지난 해 전국 대회 성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데 올 해갑자기 일을 내고 있네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저도 오늘 경기를 준비하면서 신성 고등학교의 특색이 뭘까 고민을 해 봤거든요? 그런데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팀 전력도 작년보다 확실히 좋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이고요.

-그럼 운이 따랐던 걸까요?

-16강전에서 북익 고등학교가 아니라 한라 고등학교를 꺾고 올라왔으니까요.

-한라 고등학교가 1라운드에서 북익 고등학교를 잡아낸 게 이번 대통령배 최대의 이변인데 그 덕을 신성 고등학교가 본 모양이네요.

-물론 대진 운이 따랐다고 해서 신성 고등학교를 얕잡아봐서는 안 될 겁니다.

신성 고등학교를 상대한 팀들의 말에 따르면 1번을 치고 있는 박유성 선수가 특히 까다롭다고 하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박유성 선수의 활약상이 놀랍습니다. 대통령배 예선 3경기를 포함해 5경기에서 타율이 무려 0.688입니다.

-세 타석 중에 두 번은 안타를 때려냈다는 얘기인데요. 이렇게 좋은 선수가 있는데 신성 고등학교에 대한 평가가 야박한 게 아니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전국 대회라는 게 그렇습니다. 결국 지금까지 해 온 학교가 잘 하거든요.

-도둑질도 해 본 놈이 잘 한다, 뭐 그런 걸까요?

-우승 트로피를 훔치는 것도 도둑질이라면 그렇습니다. 작년에 광일 고등학교는 이 곳 목동 구장에서 11경기를 치렀거든요? 반면 신성 고등학교는 전국 대회 8강도 처음이고 목동 구장도 처음입니다.

-이제 양 팀이 경기 준비를 마친 것 같은데요. 선공에 나서는 신성 고등학교의 엔트리부터 소개를 해 드리겠습니다. 1번에 중견수 박유성. 2번에 2루수오진욱. 3번에 1루수 장태수. 4번에 우익수 김병욱. 5번에 지명타자 홍선우.

6번에 포수 김 산. 7번에 좌익수 김경준. 8번에 3루수 이현재. 마지막으로 9번 타순에 유격수 이재윤 선수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장태수 선수는 작년부터 기대주로 평가를 받아 왔는데요. 올 해 신성 고등학교의 3번 타순을 치고 있네요.

-이에 맞서는 광일 고등학교의 수비 위치입니다. 1루에 박해영. 2루에 강재영. 3루에 이윤식. 유격수 자리에 김은호가 들어갔고 외야는 차례대로 최동진, 고광열, 한민호 순서입니다. 포수는 송산아 선수. 그리고 투수는 광일 고등학교가 자랑하는 에이스, 김신우 선수입니다.

-지금 텅 빈 관중석 구석에 선글라스를 낀 외국인들이 앉아 있거든요? 저 사람들이 여길 왜 왔을까요?

-야구를 보러 오지 않았을까요?

-우문현답이네요. 맞습니다. 정확하게는 김신우 선수를 보러 왔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김신우 선수를 주목한다는 이야기는 봄부터 들려 왔었는데요. 이렇게 목동 구장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까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김칫국 들이킬 필요는 없습니다. 스카우트들 하는 일이라는 게 야구장 와서 경기 보는 거니까요.

-그래도 김신우 선수의 초반 페이스가 매섭지 않습니까?

-호남 지역 주말 리그와 대통령배에서 전승 행진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만 야구공은 둥그니까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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