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42화 (42/412)

타자 인생 3회차! 42화

07. 끝내주는 녀석 (3)

송현민이 메이저리그 도전을 포기하고 드래프트 참가를 선언했을 때.

트윈스나 베어스만큼이나 랜더스도 송현민을 간절히 원했다.

용병으로 돌려막고 있는 중견수 자리에 송현민이 들어가 준다면 완벽한 그림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현민은 트윈스에 입단했고.

랜더스의 중견수 자리는 여전히 용병으로 돌려막는 중이었다.

그나마 외국인 용병 제한이 4명으로 풀리면서 숨통이 트이긴 했지만.

장타력이 좋은 코너 외야수들을 내버려두고 언제까지 중견수 수비가 가능한 선수만 고집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과장님. 어디 가서 그런 말씀 마세요. 욕먹습니다.”

“내가 내 생각을 말 하는데 누가 욕을 해?”

“아무리 그래도 송현민은 아니죠. 송현민 극성팬들 모르세요?”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글까?”

“구더기도 구더기 나름이죠. 송현민 팬들은 안 건드리는 게 상책입니다.”

이명진 대리가 질색을 하며 말했다.

재능 있는 미혼의 스포츠 스타들에게 여성 팬이 따르는 건 당연한 현상이지만 송현민은 그 정도가 심했다.

“송현민한테 빈볼 던졌다가 은퇴 당한 강현모 기억하시죠?”

“강현모가 은퇴를 당한 거야?”

“송현민이 팬들이 SNS 테러에 이어 구단 홈페이지까지 마비시키니까 결국 구단에서 손절한 거잖아요.”

“그게 또 그렇게 되나?”

“송현민이 강현모 가게 가서 사진 찍어주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시끄러웠을 걸요?”

“그런데 갑자기 얘기가 왜 이렇게 흐르는 거야?”

“그러니까 안경호를 보세요. 지금 다른 선수 보실 때가 아닙니다.”

안경호는 2회 초도 삼자범퇴로 틀어막았다.

5번 타자 홍선우에게 제법 큼지막한 타구를 얻어맞았지만 우익수 정면으로 날아가면서 잡아냈고.

6번 타자 김 산과 7번 타자 김경준은 나란히 2루수 앞 땅볼로 이끌어냈다.

3회 초에는 2학년인 이현재와 이재윤을 연속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8연속 타자 범타 행진을 이어 나갔다.

“과장님. 방금 공 보셨어요? 우타자 바깥쪽에 살짝 걸쳐 들어가는데 크으, 기가 막히네요.”

“안경호 칭찬에 내 귀가 막히겠다.”

“잘 하는 걸 어떻게 합니까? 솔직히 저는 이관우보다 안경호가 한 수 위라고 생각합니다.”

“얼씨구? 그 말 단장님 앞에서 할 수 있겠어?”

“못할 게 뭐가 있습니까? 어차피 우리가 데려 올 수 있는 선수도 아닌데요.”

이명진 대리가 호들갑을 떠는 사이에 신성 고등학교의 타순이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앞서 선제 홈런을 때려 낸 박유성이 새까만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들어섰다.

“어이구. 벌써 이렇게 됐어?”

“과장님.”

“안다. 알아. 안경호 볼 거야. 그러니까 잔소리 좀 그만 해.”

“두고 보십시오. 이번에는 안경호가 이길 겁니다.”

이명진 대리는 안경호가 기세를 탔다고 확신했고

“왔냐?”

안경호도 박유성에게 두 번 당해 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박유성은 아무렇지 않게 안경호의 초구를 잡아당겨 안타를 때려냈다.

그리고는

타다다다닥!

안경호의 코앞에서 단숨에 2루를 훔쳐 냈다.

“야, 저 놈. 기똥차네.”

“1번 타자가 도루하는 게 뭐가 대숩니까.”

“그 1번 타자한테 연속 안타 맞은 안경호는?”

“크흠. 두고 보십시오. 마지막 아웃카운트 깔끔하게 잡아 내고 끝낼 겁니다.”

이명진 대리는 안경호가 이 위기를 이겨낼 거라고 확신했다.

박유성과는 뭔가 맞지 않는 모습이지만 앞서 박유성을 제외한 모든 타자들을 손쉽게 요리했으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아. 진짜 짜증나는 녀석이네.”

안경호도 길게 숨을 골랐다.

이번에 만나면 무조건 삼진으로 잡아낼 생각이었는데.

몸 쪽에 제대로 들어간 커터를 아무렇지 않게 때려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2루타 맞았다고 생각하자.”

등 뒤에서 알짱거리는 박유성을 무시하고 안경호는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했다.

앞선 타석 때처럼 바깥 쪽을 최대한 활용해 던진다면 일단 아웃 카운트 하나는 손쉽게 잡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타석에 선 오진욱은 1회 초의 오진욱이 아니었다.

“초구에 빠른 공이 들어왔으니까 이번에는 슬라이더나 커터겠지?”

박유성은 안경호가 같은 구종의 공을 연달아 던지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경호 쟤는 빠른 공도 커터 느낌이야. 오른 손 타자 기준으로 살짝 말려 들어온다고. 거기에 슬라이더도 던지고 진짜 커터도 던지지. 타자 입장에서는 그걸 눈으로 보고 구분하는 건 쉽지 않아. 그래서 일부러 구종을 섞어 던질 거야.”

대충 돌려 말했지만 실제로 안경호는 김강현을 만나기 전까지 타자와의 가위바위보 싸움에 집중했다.

자신의 빠른 공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던 결과였다.

게다가 박유성의 팁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포심 기준으로 커터, 슬라이더로 갈수록 공이 귀에서 떨어져서 나와. 처음보면 헷갈릴 수 있겠지만 눈 부릅뜨고 보면 보일 거야. 커브는 알아서 하고 뭔가 낮게 깔려 들어오는 공은 건드리지 마. 체인지업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코스는?”

“왜? 아예 밥을 떠 먹여 달라고 하지? 진욱이 너한테는 몸 쪽 승부 잘 안 할 거야. 철저하게 바깥쪽으로 던질 걸?”

“확실한 거지?”

“보면 알아.”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유성이 때문에 몸 쪽으로 못 던지는 구나.’

박유성의 발이 빠르다는 데이터는 청송 고등학교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금껏 도루를 시도해서 단 한 번도 죽은 적이 없고 3루도 심심찮게 훔쳐 왔으니 박유성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예상대로 강해승은 2구 째 바깥 쪽 슬라이더 사인을 냈다.

“또 바깥쪽이야?”

안경호는 연이은 바깥 쪽 승부가 못마땅했지만 방금 전 2루 도루 때 공을 던져보지도 못했던 강해승도 어쩔 수가 없었다.

‘몸 쪽으로 던지면 저 녀석, 무조건 뛸 거야.’

우타자 타석에서 2루 주자가 3루로 뛰어 버린다면 포수는 일단 홈플레이트 앞쪽이나 옆쪽으로 완전히 빠져서 시야부터 확보해야 한다.

그것 자체만으로도 부담인데 몸 쪽 공이 들어온다면 포구 이후 몸의 균형을 잡는 시간까지 추가가 될 것이다.

‘차라리 안타를 맞고 말지. 또 다시 도루를 내 줄 수는 없어.’

프로 입시를 준비하는 건 안경호만이 아니었다.

오늘 이 경기에 뛰고 있는 모든 3학년 선수들은 프로 진출을 목표로 싸우고 있었다.

랜더스 우선 지명 얘기가 나오는 안경호야 어떻게든 프로에 가겠지만 강해승은 달랐다.

가뜩이나 안경호를 보겠다고 프로 스카우트들이 와 있는데 2루 도루로도 모자라 3루 도루까지 맥없이 내준다면?

어깨가 형편없다는 꼬리표를 달게 될 것이다.

강해승의 고집 속에 바깥 쪽 승부가 펼쳐졌고.

퍼엉!

먼 곳에서 출발한 공은 스트라이크 존에 살짝 걸치듯 들어왔다.

“아무튼 공 뭣같이 던진다니까.”

박유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구종마다 릴리즈 포인트의 차이가 심해서 공략하기 쉬울 줄 알았는데.

슬라이더를 던질 때 거의 사이드암처럼 팔 높이가 내려가다 보니 횡적인 무브먼트가 더 커진 것 같았다.

‘진욱이는 힘들겠고. 태수 타석 때 3루를 훔쳐야 하나?’

오진욱에 대한 기대가 아쉬움으로 바뀌려던 그 때.

후앗!

안경호의 손 끝을 빠져나간 공이 다시 한 번 바깥 쪽으로 향했고.

따악!

오진욱이 기다렸다는 듯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리고 타구는 정확하게 1루수와 2루수 사이를 갈랐다.

“돌아! 돌아!”

박유성은 망설이지 않고 3루를 돌아 홈까지 파고들었다.

우익수 박성용이 무리하게 홈 승부를 걸었지만 홈플레이트를 크게 벗어난 송구로는 박유성을 잡아 낼 수가 없었다.

그 사이 안타를 치고 나간 오진욱도 2루에 안착.

또 다시 무사 2루의 기회가 이어졌다.

“뭐야? 진욱이 왜 저래?”

타석으로 들어가려던 장태수가 오진욱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투 스트라이크를 먹고 시작했는데 바깥 쪽 공을 밀어쳐 안타를 때려내다니.

평소 오진욱답지 않았다.

그러자 박유성이 장태수의 사타구니 쪽을 툭 치며 말했다.

“아이 씨! 어딜 건드려?”

“뭐 닿았어? 난 아무 느낌 없는데?”

“야! 장난해?”

“너도 아까 내가 했던 말 들었지? 명심해라. 진욱이한테 놀림 당하지 말고.”

평소 장태수였다면 박유성의 조언은 메주로 콩을 쑨다고 해도 무시했겠지만.

바로 앞에서 오진욱이 안타를 때려서일까.

‘어쩔 수 없어. 일단은 살고 보자.’

박유성의 조언대로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어 자세를 잡았다.

순간 안경호의 눈매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래서는 지금껏 재미를 봤던 백도어 슬라이더를 써먹을 수가 없었다.

물론 맞을 테면 맞아보라며 당당하게 던질 수도 있었다.

서너점 차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주자가 없다면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좋지 않았다.

2대 0으로 뒤지고 있고 연속 안타를 얻어맞았으며 등 뒤에 주자가 나가 있다.

제 아무리 배짱 좋은 안경호라 해도 여기서 몸에 맞는 공을 각오하는 건 무리였다.

그리고 승부는 거기에서 끝났다.

따악!

안경호의 몸 쪽 슬라이더를 봉쇄한 장태수는 3구 째 바깥 쪽 빠른 공을 밀어 때려 무사 1,3루를 만들었고.

뒤이어 타석에 들어 온 김병욱이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행운의 안타를 만들어내며 오진욱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이어진 2사 1,2루 상황에서.

따악!

박유성의 신봉자로 거듭난 홍선우가 우익수 파울 라인 안쪽에 떨어지는 2루타를 때려냈다.

“뛰어! 뛰어!”

“태수야 달려!”

스타트가 늦었던 장태수가 홈을 노리는 건 무리였지만 신기남 주루 코치는 망설이지 않고 팔을 돌렸다.

앞서 박유성의 주루 때 실수를 했던 우익수 박성용이라면 또 다시 실수를 할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그 예상대로 박성용은 앵커맨을 생략하고 포수 강해승을 향해 힘껏 공을 던졌고.

“빠졌다!”

그 공은 그대로 강해승의 머리를 넘겨 버렸다.

“이야, 진짜 한 편의 코메디가 따로 없다. 그렇지?”

황인석 과장이 피식 웃었다.

분명 안경호가 두 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을 때 까지만 해도 점수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점수가 5대 0까지 벌어졌다.

“하아. 이건 경호 문제가 아닌 거 같습니다.”

“그럼?”

“우익수가 문제죠. 애당초 수비를 저렇게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 우익수가 박성용인 건 알고 하는 말이지?”

박성용은 청송 고등학교 4번 타자다.

3번을 치는 1루수 강민석과 함께 청송 고등학교 공격을 이끄는 강타자였다.

랜더스 스카우트 팀에서도 5라운드나 6라운드 쯤에 박성용을 뽑는 게 어떻겠냐는 얘기가 나오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더 화가 나는 겁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줄 알면 더 열심히 해야 죠. 저게 뭡니까? 경기를 던지는 것도 아니고.”

“박성용이 송구 개판인 게 어제 오늘의 일이야? 쟤 원래 저랬잖아.”

“암튼 오늘 경기는 박성용 때문에 망했습니다.”

아직 경기가 끝난 건 아니지만 이명진 대리는 박성용을 패배의 주범으로 꼽았다.

하지만 황인석 과장의 생각은 달랐다.

만약 오늘 경기가 이대로 끝이 난다면

“저 녀석 덕분이겠지.”

황인석 과장의 시선이 3루 쪽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신성 고등학교 벤치 한 가운데서 박유성이 웃는 얼굴로 땀을 닦고 있었다.

“진짜 서울 녀석만 아니었으면 무조건 뽑고 보는 건데.”

황인석 과장이 아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랜더스의 연고 지역은 인천과 경기 일부.

우선 지명(1차 지명)권으로는 서울 소속인 박유성을 뽑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박유성이 2차 드래프트 랜더스 차례까지 남아 있어 준다면 참 좋겠지만.

왠지 그림의 떡이 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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