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39화 (39/412)

타자 인생 3회차! 39화

06. 박유성이 누구야? (7)

기대 이상으로 잘 던지던 김동화는 6회 말에 무너졌다.

5회까지 1실점으로 막아내며 긁히는 날의 김동화는 다르다는 걸 보여줬는데 6회에 선인 고등학교의 클린업 트리오에게 연속 안타를 허용하며 3실점을 하고만 것이다.

4점의 점수 차이가 한 점까지 좁혀지자 김석률 수석 코치도 어쩔 수 없이 투수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고.

벤치로 물러난 김동화는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졸이며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김석률 수석 코치는 김동화를 탓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늘 정말 잘 했다. 네 성에 차지 않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선인 고등학교를 상대로 그만큼 던지는 게 쉬운 게 아니야.”

김석률 수석 코치가 김동화의 기를 살려 주었다. 그러자 박유성도 옆에서 부지런히 피처링을 넣었다.

“맞아. 오늘 잘 했어. 어제 이관우도 깨졌잖아?”

“나 정말 잘 한 거 맞아?”

“잘 했다니까? 네가 못 버텼으면 오늘 못 이겼을 거야. 그렇죠, 코치님?”

“그래. 유성이가 말 한번 잘 했다. 네가 5회까지 잘 버텨 준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

“다행이다. 난 오늘 엄청 혼날 줄 알았어.”

김동화의 표정이 한 결 밝아졌다. 그저 운 좋게 승리 투수가 된 것 같아서 부끄러웠는데 김석률 수석 코치와 경기 MVP인 박유성이 한 목소리로 칭찬해 주니까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그러자 박유성이 씩 웃으며 말했다.

“동화야. 경기력으로 깔 만큼 너에 대한 기대가 크진 않았어.”

“윽. 팩폭이냐?”

“하지만 앞으로는 기대 좀 해 보려고. 그러니까 다음 경기는 더 잘 해라. 알았지?”

“너도. 오늘처럼만 해 줘.”

“걱정하지 마. 네가 등판할 때 마다 안타 두 개씩 때려 줄 테니까.”

웃으며 자리로 돌아간 김동화는 다시 젓가락을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이 왁자지껄하게 변했다.

“크으, 회식은 역시 이래야죠.”

사이다로 입을 행군 박유성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김석률 수석 코치가 헛웃음을 흘렸다.

“무슨 사이다를 소주처럼 마시냐?”

“소주를 못 마시니까 사이다라도 마셔야죠.”

“뭐?”

“지금은 미성년자라 소주를 못 마시니까 사이다로 기분만 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박유성이 대충 얼버무렸다. 그렇다고 나승균 감독의 테이블에 가서 소주 한 잔 얻어마시고 싶은 걸 꾹 참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코치님. 무슨 걱정 있으세요?”

“아니다. 그런 거 없어.”

“대통령배 때문에요?”

“······?”

“최소 두 경기는 잡아야 본선인데 대진이 별로잖아요. 그것 때문에 고민 중이 신 거 아니었어요?”

순간 김석률 수석 코치가 놀란 눈으로 박유성을 바라봤다.

박유성이 제법 어른스러워진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로 생각이 깊어졌을 줄은 미처 몰랐다.

주말 리그가 개막하고 지난 3주 간 신성 고등학교는 두 명의 투수로 경기를 치러 왔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만 경기가 잡혀 있다 보니 무리해서 3인 로테이션을 가동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배 예선이 시작되는 다음 주 부터는 그러기 어려웠다.

당장 다음 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서울 지역 24강전이 나뉘어 열리고.

그 다음 주 화요일에 12강과 6강 토너먼트 일정이 잡혀 있다 보니 최소 3명의 선발 투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물론 작년처럼 대통령배 예선에서 탈락해서 본선에 진출하지 못한다면 3인 로테이션을 가동하는 기간이 짧아지겠지만.

‘올 해는 이 녀석이 있으니까.’

김석률 수석 코치가 맞은 편에 앉은 박유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박유성이 씩 웃더니 특제 쌈을 싸서 김석률 수석 코치에게 내밀었다.

“됐다.”

“에이, 그러지 말고 한 쌈 잡숴보세요.”

“그건 나중에 여자 만날 때나 싸 줘.”

“그 레시피는 따로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얼른 아 하세요. 아~”

박유성이 코맹맹이 소리를 내자 김석률 수석 코치도 어쩔 수 없이 쌈을 받아 먹었다.

사실 쌈이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는데.

박유성이 싸 주는 쌈은 뭔가 맛이 달랐다.

‘특별히 뭘 더 넣은 거 같진 않은데. 배합의 차이인가? 아니지. 지금 쌈 맛에 빠질 때가 아니지.’

김석률 수석 코치는 다급히 정신을 붙들었다. 그리고 꼬여버린 대진표를 떠올렸다.

서울 지역 주말 리그는 총 24개의 학교가 3개의 지구로 나뉘어 풀리그 방식으로 경기를 치른다.

왕중왕전인 황금사자기와 청룡기에 진출할 수 있는 건 절반인 12개 학교.

그 중 절반은 단골손님이라 불릴 만큼 거의 매년 왕중왕전에 올라갔다.

그리고 나머지는 중위권 학교들끼리 치열하게 각축전을 펼치는 중이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서울 지역 학교 전력은 6강 12중 6약 정도로 볼 수 있었다.

이 중에 대통령배 본선에 초대받는 건 6개에서 8개 학교 정도.

일단 6강 토너먼트에 올라간 6개 팀은 진출이 확정적이며.

작년도 우승팀에게 주어지는 티켓과 인천경기 지역 팀과의 플레이오프로 주어지는 티켓까지 포함해 최대 8팀까지 대통령배를 맛볼 수 있게 된다.

다행이도 지난 해 서울 지역의 경성 고등학교가 우승하면서 올 시즌 서울 지역은 일단 7장의 티켓을 확보한 상태였다.

그래서 올 해 만큼은 대통령배 본선에 올라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대진표가 최악으로 나왔다.

24강전 상대인 배대 고등학교도 만만치 않은데 12강전에서 전통의 강호 충열고등학교와 만날 가능성이 높았다.

박유성의 활약 덕분에 덕우 고등학교와 선인 고등학교를 한 번씩 잡긴 했지만.

김석률 수석 코치는 신성 고등학교가 강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15승이 가능한 에이스.

30세이브가 가능한 마무리 투수.

3할에 30홈런, 100타점을 쳐 줄 수 있는 클린업.

3할에 30개 도루 이상이 가능한 테이블 세터.

마지막으로 수비력이 좋은 안방마님.

프로 야구 쪽에서 흔히 말하는 우승을 위한 필수 조건들이었다.

이 중 신성 고등학교에 적용되는 건 냉정하게 테이블 세터뿐이었다.

박유성만큼은 고교 야구 최고의 테이블세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만.

먹자 캠프를 통해 10kg 넘게 증량한 장태수는 아직 타격감이 완전히 올라오지 않았고.

손지원은 서울 지역 에이스 투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있으며 붙박이로 쓸 마무리 투수가 없어서 상황에 맞게 불펜 투수들을 가동하는 중이었다.

‘그나마 후하게 쳐 주면 산이 까지겠지.’

지난 5경기를 통해 보여 준 김 산의 수비 능력은 인상적이었다.

감히 팀 전력의 50퍼센트라 불리던 레전드 포수 박경환에 비할 바 못 되겠지만 김 산이 포수 마스크를 쓰는 것만으로도 투수들이 안정감을 얻었다.

적어도 캐칭 능력은 현 고교 야구 포수들 중에 첫 손가락 안에 꼽힐 터.

타격은 여전히 한심스럽지만 만약 김 산이 없었다면 덕우 고등학교와 선인 고등학교를 상대로 신승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24강 토너먼트 대진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24강을 뚫고 12강에 올라가는 건 기본이고.

12강에서도 최대한 해볼 만한 학교와 붙어야 했는데 하필이면 투타 밸런스가 좋기로 소문난 충열 고등학교가 나와 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24강전이 목요일에 잡혀 있다는 것과 주말 리그에서 4승을 챙겼다는 점이다.

주말 리그 성적이 좋지 않았다면 다른 학교들이 대통령배에 집중하는 틈을 노려 에이스 손지원을 돌려야겠지만 현재 선인 고등학교와 함께 지구 공동 1위를 달리는 만큼 이번 주 주말 리그는 2선발 김동화와 3선발 이영재에게 맡기고 어제 등판한 에이스 손지원을 대통령배 예선에 집중시키는 게 가능했다.

관건은 역시나 충열 고등학교였다.

충열 고등학교가 에이스 카드 대신 최소 2선발 이하를 내주고 손지원이 신들 린 투구로 충열 고등학교 타자들을 제압해서 어떻게든 승리를 따낸다면 참 좋을 텐데 그게 말처럼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박유성이 쌈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코치님. 제가 어제 꿈을 꿨거든요?”

“꿈?”

“네. 우리가 12강에서 졌잘싸하고 플레이오프 진출해서 대통령배 본선 가는 꿈이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플레이오프라.”

김석률 수석 코치도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떻게든 6강에 올라가는 게 최고의 시나리오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차선책으로 플레이오프를 노려야 했다.

플레이오프 출전권은 12강 탈락팀들 가운데 가장 성적이 좋은 한 팀에게 주어진다.

보통 플레이오프는 대진운이 나빠 아깝게 떨어진 강호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지만 올 해는 경성 고등학교가 우승팀으로 빠졌고 6강권 학교들이 전부 흩어져 있어서 충열 고등학교와의 12강전에서 선전한다면 요즘 젊은 애들이 말하는 경기력도르를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꿈대로 됐으면 좋겠다.”

“걱정 마세요. 그대로 될 테니까요.”

김석률 수석 코치에게는 꿈이라고 둘러댔지만.

대통령배 서울 지역 예선 24강 대진표는 앞선 회차와 동일하게 나왔다.

1회차 때는 충열 고등학교를 상대로 무기력하게 밀렸다.

박유성이 2안타로 분전했지만 클린업이 침묵하면서 점수 자체를 뽑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2회차 때는 박유성이 합류한 클린업에서 점수를 내주면서 12강 탈락팀들 중에 두 번째로 좋은 득실차를 기록했다.

‘2회차 때는 한 끗 차이로 밀렸으니까 이번 3회차는 플레이오프 진출 노려볼만 해.’

박유성은 다시 한 쌈 크게 입 안에 밀어 넣었다.

1회차 때에 비해 2회차 때 신성 고등학교 성적이 조금 더 좋았던 것처럼 이번 3회차 때도 보다 나은 성적이 나오길 기대했다.

그로부터 나흘 뒤 펼쳐진 대통령배 24강전 2일차 경기에서 신성 고등학교는 배대 고등학교를 11대 3, 7회 콜드 게임으로 격파하고 12강 진출에 성공했다.

선발 투수 손지원이 6이닝 3실점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고 박유성도 홈런 포함 2안타에 3타점을 올리며 김석률 수석 코치를 흐뭇하게 만들었다.

주말에 진행된 주말 리그 성적은 1승 1패.

우명 고등학교를 상대로 6대 5, 한 점차 승리를 거둘 때 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는데 다음 날 덕우 고등학교에 12대 2, 6회 콜드 게임으로 대패하면서 4연승 행진이 끝났다.

“내가 말 했지? 신성 별거 아니라니까?”

경기가 끝나고 이관우를 비롯해 덕우 고등학교 코칭스태프들이 비아냥거렸지만 신성 고등학교는 딱히 대응하지 않았다.

3선발인 이영재가 처음으로 선발 등판한 경기였고 지금 당장은 대통령배 12강전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김 코치. 내일 이길 수 있겠지?”

“장담은 못하지만 최선을 다 해 보겠습니다.”

“이기자. 이기고 올라가서 숨 좀 돌리자고.”

나승균 감독은 신성 고등학교가 다시 한 번 기적을 쓰길 바랐지만.

신성 고등학교에 대해 철저히 연구해 온 충열 고등학교는 빈틈이 없었다.

“볼!”

1회에 안타를 허용한 이후 충열 고등학교 투수들은 박유성을 철저하게 볼넷으로 걸렀고.

박유성이 빠른 발로 그라운드를 흔들 때마다 충열 고등학교 벤치가 움직여 선수들의 동요를 최소화시켰다.

최종 스코어는 6대 2

“아깝다. 아까워. 한 타이밍만 있었으면 충열을 잡을 수 있었는데.”

나승균 감독은 진심으로 아쉬워했지만 김석률 수석 코치를 비롯한 코치들은 경기 결과에 만족했다.

신성 고등학교의 1라운드와 2라운드 합산 득실은 +4.

12강전에서 탈락한 팀들 가운데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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